|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9월 15일 화요일 오전 10시 42분 25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육상원융2 번호 : 13/3370 입력일 : 98/09/14 13:41:57 자료량 :78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육상원융 지난호에서 우리는 육상원융의 앞부분을 살펴보았다. 총상(總相)과 별 상(別相) 즉 전체성과 개별성, 동상(同相)과 이상(異相) 즉 동일성과 차이성이 모든 사물의 존재 형태에서 동시적으로 잘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성상(成相)과 괴상(壞相) 즉 성취성과 파괴성이 라는 상반된 개념이 사물 하나 하나에서 걸림 없이 내재되어 있음을 살필 차례이다. 화엄사상은 참으로 멋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삼라만물은 어느 것 을 막론하고 순간 순간 한 편으로는 어떤 목표를 향해 성취되고 있는 중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목표의 반대 방향으로 파괴되고 있는 중 이라는 것이다.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있다고 치자. 이 어린이는 지금 성취되고 있는 중인가 아니면 파괴되고 있는 중인가. 그 어린이는 분명 성취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커 가고 있다. 신체면에서는 키도 자라고 힘 도 세어지고 있다. 정신면에서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 그 어린이는 자라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출 세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자. 지금 저 어린이에게는 아무런 탐욕, 질투, 야망, 꾀, 음모의 마음이 없다. 천진도인(天眞道人)과 같은 백지의 상태 이다. ‘백지’보다는 ‘맑은 하늘’이라는 표현이 좀더 좋은 비유가 될 것 같다. 백지는 그곳에 무엇인가 쓰여져만 한다고 기대되지만 하 늘은 맑은 그대로 좋기 때문이다. 여하튼 세월이 가면서 어린이의 마 음에는 어두운 먹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남의 것을 내것으로 만들고, 남의 것보다 더 큰 것을 갖고, 남을 이기 고 부려먹고 싶어하게 된다. 시집 장가에 들고나면 자식이 생기고, 그 들과 한 통속이 되어서 부모형제와 점점 멀어질 것이다. 성장하고 출 세 할수록 경쟁 상대는 점점 더 많아지고, 백지나 하늘과 같은 맑은 마음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어린이의 성장은 바로 천진한 마음이 부서지는 것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성취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파괴되는 것이다. 부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미움에 대해서 생 각해 보자. 처음에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만난다. 만날 때의 정열과 그 표현 방법은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이 잘 그리고 있으므로 여기서 구체 적인 예를 열거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그러나 어느날 부터인가 그 정 열은 싸늘하게 식고 상대에 대해서 시들해진다. 미움이라는 말이 없더 라도 권태나 미움의 감정이 생긴다. 용기있는 이는 그 미움을 갖가지 방법으로 표현하면서 헤어진다. 어 떤 이는 헤어지면서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고 하거나, 성격차이를 들 먹이지만 적어도 계속 같이 있어야 할만큼 사랑하지는 않는다. 헤어진 부부에게 있어서 어떤 단계 어떤 시점을 이루어짐이나 부서짐 으로 잡을 것인가. 결혼하기 직전후 또는 결혼 후 3개월이나 3년쯤까 지를 성취의 단계로 보고, 헤어질 때를 파괴의 단계로 볼 수 있다. 그 런데 말이다. 사랑과 미움의 마음은 같은 사람에게서 나왔다. 처음에는 사랑만 있고 뒤에는 미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본래부터 두 사람에게 는 사랑과 미움이 같이 있었다. 사랑을 성취로 잡고 미움을 파괴로 잡는다면, 두 사람의 관계 속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편으로는 이루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서졌던 것 이다. 이혼한 부부의 이야기는 극단적인 예일 뿐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사랑과 미움이 같이 있으니 찰나 찰나 성취와 파괴의 양 방향을 가고 있는 것이다. 천년 전에 많은 성취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성취만 기억할 뿐 이다.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밀렸고 마침내 죽었다. 성취와 파괴가 같이 있 었지만 사람들이 성취만을 기록한 것이다. 천년 후의 미래에도 천년 전과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무엇인가를 이루고 부술 것이다. 앞뒤로 천만년을 잡든 아니면 하루나 한 시간을 잡든, 우리는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성취와 파괴를 행하거나 당하고 있다. 성공하거나 실패하 거나, 언제든지 우리는 두 가지를 다 겪고 있다. 한 면에서 실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면에서 성공하고, 한 면에 서 성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면에서 실패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 에, 성취와 파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성취와 파괴가 한 뭉치라는 것을 터득한다면, 그곳에 어느 것도 부술 수 없는 대자유 가 나타난다. *발행일(1689호):1998년 9월 15일 , 구독문의 (02)730-4488 <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