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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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dalma ()
날 짜 (Date): 1998년 8월 30일 일요일 오전 07시 07분 18초
제 목(Title): 퍼온글: “큰스님,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뉴스제공시각 : 08/26 00:00                   출처 : 시사저널
 제목 : [종교]“큰스님,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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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선불교‘무차선회’87년 만에 부활…
  전세계 상대로‘거대한 설법’시작


  백양사가 준비한 5천명분 도시락은 금세 동이 났다. 공양을 마친
사부 대중은 대웅전 앞뜰에 설치한 대형 텐트를 꽉꽉 채우고 있었다.
다른 사찰에서 온 비구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 대웅전을 향해
끊임없이 절을 하는 사람, 좌선에 든 자세로 꿈쩍도 않는 사람.
그야말로 야단법석(野壇法席·야외에서 베푸는 설법)이 벌어진
현장이었다.

  소란함은 법회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경내는 오직 큰스님께 설법을 청하는 청법게(請法偈) 읊는 소리로 가득
찼다. 8월18∼22일 전남 장성 백양사 고불총림에서는 무차선회
(無遮禪會)가 이렇게 막이 올랐다.


  “깨닫지 못하는 자, 몽둥이 30대 맞거라”


  실로 87년 만의 부활이었다. 1912년 금강산 건봉사에서 마지막
무차회가 열린 이래 한국에서 무차회 전통은 끊겨 있었다. 인도 원시
불교에서 유래한 무차회는 본래 4부 대중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이 모여 음식을 나누던 공양의
자리였다. 이것이 동북아시아에 전래되면서 어떤 법이 바른지 논하는
난상 토론의 장으로 바뀌었다. 이 자리에서는 신분이나 도력의
높낮이와 관계없이 누구라도 불법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일반 법회와 비교한다면 파격적인 형식의 무차회에 대중의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무차회 첫날 ‘고승 대법회’에서 이같은 파격은
현실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단상에 오른 서옹 스님(고불총림 방장)의
설법이 끝나자 한 비구가 그 앞에 총총히 나아가 “고불총림이라고
해서 왔더니 옛 부처(古佛)도 스님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스님의 본래
모습을 보여 달라”고 법거량(법을 묻고 가르침을 청하는 일)을 했다.

  그에게 돌아온 서옹 스님의 대답은 “나의 모습이어도 몽둥이 30대
[三十棒], 나의 모습을 투과해도 몽둥이 30대”였다. “그래도 (스님의
본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비구가 재청하자 서옹 스님은 다시
“아악[喝]” 하고 고함을 질렀다. 벼락처럼 떨어진 큰스님의
‘선문답’이었다(몽둥이로 내려치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제자를 밀치는
따위 선사들이 벌이는 과격 행동은 수행자가 번뇌 망상에 빠지는 것을
박살내기 위한 충격 요법으로 이해되고 있다).

  진제 스님(동화사 금당선원 조실)이 설법을 끝낸 뒤에도 비슷한
광경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30대 남자가
큰스님 앞에 섰다. “스님의 본래 모습[眞面目]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큰스님은 주장자(지팡이)를 높이 든 뒤 “冬至寒食百五日
(동지에서 한식까지가 1백5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남자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물고늘어지자 큰스님은 허허 웃으며
이렇게 응수했다. “차나 한잔 들고 가시게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일반 대중에게는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선사들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무차회를 부활시킨 한국
불교의 야심 만만한 목표가 녹아들어 있다. 무차회를 처음 제안한 서옹
스님은 그 목표가 ‘위기에 처한 조사선의 전통을 재확립하고, 한국
선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데 있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한국 불교, 선불교 정통성 선언


  조사선(祖師禪)이란 6조 혜능이 체계화한 선의 한 갈래이다. 보리
달마가 동방에 불교를 전한 이래 종조를 거듭하며 발전하던 선종(禪宗)
은 5조 홍인이 죽은 뒤 남종선과 북종선으로 갈라졌다. 홍인의 제자
가운데 신수가 북종선, 혜능이 남종선을 이루면서 서로 정통성을 놓고
다투게 된 것이다. 이들의 대립은 732년 중국 허난성 활대 대운사에서
열린 무차회를 계기로 끝이 났다. 정월 대보름날의 열띤 논전에서
남종선이 대승을 거두었고, 그 뒤 조사선은 중국은 물론
한국·일본에까지 지배적인 종파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처럼 선종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무차회를 빌려 한국
불교가 노린 것은 무엇일까.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하면서
불교를 소홀히 해 전통을 잃어버렸다. 일본의 선불교는 형식만을
강조하고 있다.” 서옹 스님의 지적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곧 선불교의 정통성을 한국 불교가 계승하고 있다는 선언이다.

  이같은 정신 아래 선사들이 대중 앞에서 조사선의 수행 방식을
한자락 펼쳐 보인 것이다. 자기 안에 있는 불성을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見性成佛]이 조사선의 근본 정신이라면, 이런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한국 조사선이 제시한 방식은 ‘공안(화두)을
참구하는 것’이다.

  이번 법회에서 서옹 스님은 ‘화두를 의심하여 공부하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徑絶]이라고 잘라 말했다.
진제 스님 또한 염불이나 다른 명상법들은 우주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을 일으키지 못하므로 ‘깨달음에 이르는 열쇠를 빠뜨리고 있는
셈’이라며, 공안 참구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일반 대중 또한 옛
선사들이 남긴 1천7백여 공안이 아니더라도 ‘부모에게서 나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던고’처럼 자기 근기(根氣: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능력)에
걸맞는 공안을 택해 참구하다 보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진제
스님의 가르침이다.

  선사들에 따르면, 이들 공안 가운데 한 가지를 깨치면 나머지 공안은
저절로 깨닫게 된다[頓悟]. 이에 반해 오늘날 일본은 공안을 하나씩
체계적으로 풀어 가면서 조사(助師)로부터 이를 인가받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보광 스님(동국대 교수·선학)은 ‘학생이 학년을
진급하듯’ 조사 관문을 통과하는 이같은 방식이 활달한 조사선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한국 선불교의 정통성을 세계적으로 확인받는 작업이 왜
지금 중요한가. 그것은 바로 위기 의식 때문이다.


  “인류는 물질 문명에 사로잡혀 제 정신이 아니다”


  서옹 스님은 서양 문명을 1차적인 위기 제공자로 지목한다. 인류가
과학·물질 문명에 ‘끄달려’ 제 정신을 잃고 있는 문명사적 한계
상황이 곧 선의 위기라고 서옹 스님은 간파한다. 이는 서양 사상가들의
위기 의식과도 궤를 같이한다. 근대 유럽의 세계관이 공존(조화의
자연관과 기계적 자연관 공존)에서 일극(기계적 자연관으로 편중)으로
치닫게 되면서 서양 정신이 서서히 불성실한 데 빠져들었다는 것이
카를 야스퍼스의 통찰이다.

  그러나 위기는 한국 불교 내부에서도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선불교가 조사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학자건 승려건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이불 속 활개 치기’라는 사실이다. 최근 불교계는 한 대학 교수의
논문 때문에 발칵 뒤집힌 일이 있다. 서강종교연구회가 발행한 <종교의
이해>에 최준식 교수(이화여대·한국학)가 발표한 논문 ‘한국의
한심한 종교들’이 그것이다.

  이 논문에서 최교수는 불교를 이렇게 비판했다. ‘승려 대부분이
아직도 19세기 말씀에 살고 있어 불교 교학을 세우지 못했고, 세계
불교 학계에 나가 영어로 자기 논문을 발표할 만한 이도 드물다.’
나아가 최교수는 현재 세계가 인정하는 불교 종주국은 일본인데도 일본
불교에 대해 ‘교학은 발달했는데 신심이 없다’는 식으로 깔보는 것은
한국밖에 없다고 불교계의 독선과 아집을 꼬집었다.

  최교수로부터 이같은 독화살을 맞고도 불교계는 맞대응하지 않았다.
논문에 대해 반론다운 반론을 실은 매체도 없었다.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였다는 것이 공식 반응이었지만, 당시 불교계
일각에서는 ‘전적으로 틀린 말도 아니지 않느냐’는 말들이 오갔다.

  8월 초 한국갤럽이 발표한 설문 조사는 또 한 번 불교계를 뒤집어
놓았다. 한국갤럽이 84년, 89년, 97년 세 차례에 걸쳐 ‘한국인의 종교
실태’를 추적한 결과 지난해 처음으로 개신교도 숫자가 불교 신자를
앞섰다는 통계 수치가 나온 것이다(개신교 20.3%, 불교 18.3%, 천주교
7.4%). 더 심각한 것은 고학력층에서 불교 신자 감소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었다. 대학 재학 이상 불자 비율은 9년 전과
비교했을 때 2.5%포인트가 줄어든 상태였다.

  한국 선불교가 살아 남을 길은 결국 ‘선 대중화·세계화’뿐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목표를 내건 무차회가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했다.  이번 무차회 기간에 백양사는 국내외 학자 50여 명을
초청해 ‘한국 선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했고, 이 내용을 인터넷으로
전세계에 생중계했다. 겉으로 보아 이는 분명 한국 선불교의 잠재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첫 토론장이었다(위 상자 기사 참조).

  물론 무차회에 부정적인 평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
신림동에서 왔다는 한 스님은 이번 법회가 속 빈 강정이었다고
혹평했다. 한국에 선을 뿌리 내리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논의는
빠뜨린 채 큰스님들의 고담 준론만 차고 넘치는 자리였다는 것이다.
‘무차’의 정신을 내세운 법회답지 않게 대중을 ‘학자들의
들러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도 등장했다(실제로 일반인이 발언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무차회는 한국 선종의 역사에서 볼 때 현대판 중흥
시도라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심재룡 교수(서울대·철학)
의 평가이다(64쪽 상자 기사 참조). 세계사적으로도 이번 법회는
‘서양 물질·과학 문명의 도전에 대한 대처이자, 새 문명 건설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거대한 시도’로서 의의를 갖는다는 것이다.

  ‘동쪽에 해가 뜨니 낮과 같이 광명이 비치고, 무차선회를 여니
비로불(毘盧佛)이 빛을 놓네.’ 혜암 스님(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이
무차회에 부친 헌사처럼 한국 선불교는 지금 세계  문명과 인류를
상대로 거대한 교화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전남 장성·金恩男 기자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dalma
new yo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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