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8월 11일 화요일 오후 05시 39분 31초 제 목(Title): 퍼]무소유의 실천 번호 : 106/106 입력일 : 93/08/18 15:30:41 자료량 :63줄 제목 : 논단(수미 산정)-무소유의 실천 出家란 自我로 부터의 解放이다. [나]인 自我는 出生과 죽음, 역사, 문화, 사상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순수한 [나]는 自由이다. 이 自由를 지향하려는 일차적노력이 출가라는 형태로 전개된다.元曉스님이 표주박을 두들기며 無碍歌를 부른것도 결국 이 自由의 실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번에 生死를 넘어 설 수 있다" (一而無碍人, 一道出生死)는 그 노래는 이미 人爲的인 文化나 육체적인 욕망에서 벗어나야 할 인간의 고향을 지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고행은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이 그저生存이 끝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죽음은 지옥의 길이지만 손에 쥔 한줌의 흙까지 버린다면 그것이 곧 죽음의 美學을 보여 주는 것이다.죽음 앞에 누구나 하나가 되며 거기에서는 인간이 만든 罪와 罰은 無化되는 것이다. 모든 사상가나 종교인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죽음이란 마침내 이러한 無化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存在의 無化 그것은 우리를 전율케 하고 虛無의 늪으로몰아 간다. 그러기에 죽음을 삶속에 美化하고 그 美化를 통해 自我가 해방되게 하려는 것이 곧 佛敎의 無所有 無相의 철학이다. 無所有의 達觀을 요구하는 불교는 그실천자를 出家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극히 일부의 有所有의 迷妄한 사람이 비판되는 것은 이러한 無所有를 확실히 깨닫지 못한데서 오는 결과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出家人의 한 모범을 상기할 수 있다. 근세의 無所有의 스님이신 慧月이시다. 그는일찌기一日不作이면 一日不食이라는 精神을 몸소 실천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드높였다.그가 61세때 1922년 부산 부암동 선암사에 주석하면서 밭 2千坪을 개간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개간한 밭을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慧月스님에게 와서 그들에게 팔기를 권하였다. 천진한慧月스님은 그들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마침내 그들이 준다는 시세에 계약을 하고 말았다.저녁늦게 마을에서 돌아온 스님은 제자들에게 밭값을 내 놓았다. 그러나 그돈은 불과 밭 두마지기 값에 지나지 않았다. 제자들이 스님에게 힐난과 질타가 없을 수 없었다. 그러자 스님은 "이놈들아 밭 세마지기는 그대로있고 여기 두마지기 값이 있으니 다섯마지기가 아니냐, 장사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야" 하였다. 제자들이 그 허황한 산술에 어안이 벙벙하여 있을 때 "사문은 원래 욕심이 없어야 해. 어쩌면 너희들 마음에는 탐심만 가득하냐"그러자 한 제자가 "스님 그러나 우리가 너무 손해가 많습니다"라고 하니 "허허, 원래 인간의 마음에는 더할 것도 덜한 것도 없는 不增不滅인거야!"우리는 그의 그러한 세계속에 이 우주의 空間도 내 마음의 자리도 본래 누구의 소유가 아니기에 나눌 수 없는 하나임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본래 하나이기에 무소유인 것이다. 둘이기에 다툼이 있고 고뇌가 있는 것이다.또 한번은 부산 시내의 큰 부자집의 제를 지내게 되었다. 원주가 바쁜일이 있어 제물을 사러 나가지 못하고 스님께 부탁하였다. 스님이 시내에 나가 제물전을 왔다 갔다 하는데 한군데에서 사람이 죽는 소리가 났다. 그곳에가니 상인들이 모여 한 사람을 붙들어 놓고 몰매를 때리고 있었다. 스님은 그 맞은 사람 가까이 가서 상인들에게 매를 때리지 못하게 하고 전후사정을물었다. 그가 물건값을 갚지 못하여 피해 다니다가 잡혔다는 것이다. 스님은 제수값을 내어 그 사람의 빛을 갚아 주고 빈손으로 돌아 왔다. 원주가 왜 제물을 사가지고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이미 제는 다 지냈다"라고 말하고 너털 웃음을 웃는 것이 아닌가?확실히 스님은 산사람의 제를 지냈던 것이다. 나와 네가 하나 그것은 無所有의 天眞에게 온다. 慧月스님 같은 분이 그리운 시절이다. <鄭炳朝 東大부총장.본지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