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리) 날 짜 (Date): 1998년 8월 7일 금요일 오전 02시 01분 00초 제 목(Title): 도올 벽암록 마지막회/신동아 도올 『碧巖錄』 講話 제6화·마지막회 돌이 되려면 돌을 버려라 끊임없는 지적탐구와 도전으로 「한시대를 열어가는」 철학자 겸 한의사 도올 김용옥이 8월 「또 한번 자신과의 싸움」을 위한 유학을 떠난다. 그런 연유로 그의 『벽암록』강화도 제6화로 끝을 맺는다. 「시대의 철인」이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접는다.<편집자> 도올 김용옥 철학자·한의사 ------------------------------------------------------------------------------- - 【無足】일천구백구십팔년 사월 십팔일 법정(法頂) 스님께서 도올서원에 오셨다. 인연인즉 스님께서, 佛日庵에 주석하고 계실 때, 내가 귀국한 이듬핸가 십오륙년 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나 이 자리에서 그런 시시콜콜한 世俗의 塵事를 이야기할 바 없다. 無名無處의 강원도 어느 두메산골에서 朝夕獨炊하시면서 絶緣의 고매한 삶을 사시는 스님을 五色五音이 馳騁하는 狂亂의 駱山자락 한복판에 모신다는 것도 실로 송구스러운 일이다. 『과거에 남겨놓은 緣도 있고, 어차피 城北 吉祥에 내려갈 차제에 한번 들르겠소』 법정스님 하면 많은 사람들이 詩人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詩人 하면 물론 부드러운 詩心이 있어야 하는 것이요, 그러니 연약하고 감상적이고 섬세한 여성적 人品을 떠올리기 쉽다. 허나 법정 그 인간은 전혀 우리의 常念을 깨부순다. 내가 생각건대 스님은 文人이라기보다는 武人기질의 소유자요, 섬세키보다는 직선직설적이요, 감상적이기보다는 과감과단의 사람이요, 연약하고 부드럽기보다는 강건하고 철두철미하다. 『사람은 모름지기 사나운 새나 짐승처럼 사납고 전투적인 기상이 있고나서 그것을 부드럽게 안으로 다스려 법도에 알맞게 행하면 유용한 인재가 될 수 있다』 스님은 말문을 여시자마자 茶山이 康津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一句를 인용하시었다. 아마도 스님 자신의 性品을 독백하시는 말씀이었을지도 모른다. 말도 처음부터 유순한 말은 쓸모가 없다. 다룰 수 없으리만큼 세차게 거항하고 튀쳐오르는 사나운 말이라야 길들일 가치가 있고 또 천리마가 되는 법이다. 과연, 스님은 이날 도올서원에서 『臨濟錄』을 講하시었다. 「과연」이란, 臨濟義玄(?~867) 의 인격과 성품을 두고 하는 말이다. 臨濟는 南嶽下 黃檗希運의 제자요, 臨濟宗의 開祖다. 앞서 누누이 말했지만 중국의 선종인 五家七宗이 宋代에 이르면 臨濟一宗을 제외하고는 모두 絶滅에 歸하고 衰微에 就할 뿐이었다. 오직 임제 외로는 曹洞一派가 宋末에 잠깐 빤짝였을 뿐이다. 후대에 우리가 禪宗을 말하자면 그것은 모두 臨濟一風을 말하는 것이다. 임제는 馬祖道一에 의하여 大成된 南宗의 大機大用의 禪을 「無位眞人」이라고 하는 절대주체 확립의 道로 완성했고, 매우 날카롭고 명료한 언어와 行業으로 독자적인 禪風을 선양하였고, 그 門下가 결국 宋代 이후 중국불교의 主流를 형성했던 것이다. 카마쿠라(鎌倉) ·무로마찌(室町) 시대를 정점으로 하여 일본에 渡來한 禪의 流派를 흔히 二十四流라 말하는데 그중 三流만이 曹洞계통이요, 그 외로는 전부가 임제다. 일본 임제종의 祖라 불리는 에이사이(榮西, 1141~1215) 를 제외하면 모두가 楊岐派(임제종의 일파) 의 禪을 傳한 것이다. 임제종은 카마쿠라와 京都에 있었던 武家에 흡수돼 鎌倉五山·京都五山을 중심으로 敎線을 전개하며 五山文學을 융성시켰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임제의 宗風을 「臨濟將軍之禪」이라 부르는데, 앞으로 말하겠지만 臨濟의 武人다운 성품이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에 洽合하는 면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 海東에도 羅末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南宗禪風이, 고려에 들어오면서 그 기세를 크게 떨쳐 九山門의 禪派를 성립시킨다. (迦智山派 · 實相山派 · 桐裡山派 · 聖住山派 · �e�e山派 · 師子山派 · 鳳林山派 · 須彌山派 · 曦陽山派) . 그런데 麗末에 이르러서는 이 九山의 실제적인 宗派的 의미가 상실되고 그것이 「曹溪의 宗」이라고 하는 하나의 개념으로 지칭되는 경향을 보인다. 「曹溪」란 慧能이 曹溪山 寶林寺(韶州 廣東省 曲江縣) 에서 선법을 개창한 데서 연유되는 말이다. 「曹溪」는 실제의미맥락에서는 대부분 慧能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지칭한다. 기실 南宗禪風이란 알고보면 모두 六祖 慧能에서부터 연원된 것이므로, 九山이 각기 중국의 五家七宗 중 어느 法嗣를 이었든지간에 그것은 모두 「曹溪의 宗」임에 틀림이 없다. 과연 麗末에 「曹溪宗」이라고 하는 단일한 宗派가 존재했었는지조차 심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단지 義天이 天台宗을 확립하고 天台敎學을 선양하면서 禪宗을 敵視하는 경향이 생겨나자 그러한 탄압에 반사적으로 어떤 「曹溪의 宗」이라고 하는 단일의식이 생겨났을 수는 있을 것이다. 허나 조선조에 들어와 世宗6년(1424) 에 諸宗의 통폐합이 단행되었을 때, 曹溪·天台·摠南의 三宗을 하나로 묶어 「禪宗」이라 하고, 華嚴·慈恩·始興·中神의 四宗을 하나로 묶어 「敎宗」이라 하여버렸으므로, 曹溪宗은 실제로 추상적인 개념으로 존재했을 뿐이요, 만약 그 확연한 종파의 역사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명한 것이었을 뿐이다. 曹溪宗의 開祖를 普照知訥(1158~1210) 로 잡느냐, 太古普愚 (1301~1382) 로 잡느냐. 그것은 오늘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문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결국 「조계종」이라고 하는 개념의 실체가 명확지 않기 때문에 파생하는 문제일 것이다. 曹溪宗 開祖를 太古普愚로 삼는 한에 있어서 우리나라 曹溪宗도 臨濟宗의 一色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忠南 洪城 (洪州) 사람인 태고보우는 忠穆王 2년 (1346) , 46세의 나이에 元나라에 들어가, 湖州 霞霧山의 天湖庵에 가서 臨濟의 後嗣인 石屋淸珙에게 參禪을 배우고 印可를 얻어 袈裟를 받았다. 그의 명성이 자자하여 元나라 順宗은 普愚를 請하여 永寧 (明) 寺에 開堂說法하게 했고, 金컏의 袈裟와 沈香을 하사하였던 것이다. 忠穆王 4년, 그는 귀국하여 重興寺에 掛錫하였고, 또한 小雪山에 隱棲하면서 臨濟의 宗風을 펼쳐 海東 臨濟宗의 始祖가 된 것이다. 지눌은 中國의 禪風과는 다른, 독자적인 禪風을 세움으로써 朝鮮禪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보겠지만, 그에게 大悟의 계기를 마련한 『大慧語錄』의 주인공인 大慧宗�e(1089~1163) 는 바로 『벽암록』에 垂示·著語·評唱을 加한 �L悟克勤의 法嗣며 臨濟宗 楊岐派의 적통이며, 曹洞宗의 禪을 默照禪이라 하여 크게 비난하고 看話禪·公案禪의 妙用을 옹호한 인물이므로 臨濟宗의 禪風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하여튼 여말에서 조선조를 거쳐 오늘 우리나라 修行佛敎의 現況에 이르기까지 그 주류를 이룬 것은 禪이요, 이 禪風의 大勢를 굳이 중국의 종풍과 관련해서 論하자면 臨濟의 「無依道人」 禪風의 大流 속에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五家七宗의 적통이 실제로 臨濟一宗뿐이므로, 『臨濟錄』은 역사적으로 語錄의 王으로 불리었고 禪語錄의 바이블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제자 三聖慧然이 編한 『임제록』 현행본을 자세히 살펴보면 임제를 임제종의 宗祖로 모시는 측면이 강조되었고 전기적 자료에 상당한 윤색이 이루어졌음을 간과할 수 없지만 『임제록』이 애초에 임제종의 바이블로 편찬된 것은 아니다. 당시만 해도 그런 종파 의식이 없었고 또 어떠한 문헌을 교조화하려는 의도에서 언어를 조작하는 일은 禪家에는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다. 제자의 견식이 스승과 동일할 때에는 스승의 德은 반감하게 마련이다.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모두 다 액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스승을 배반하는 일이다. 문헌을 통해 교조적으로 스승의 가르침이 전수된다고 하는 것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임제록』은 임제라는 실존적 인물이 자기와 벌인 투쟁의 진솔한 기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禪에는 宗派의 別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이러한 깨달음의 기록을 통한 師資相承 家風의 傳承과 發展이 있을 뿐이다. 법정스님께서 도올서원에 와서 『임제록』을 설파하신 연유도 조선의 조계종이 임제종을 적통으로 하기 때문이 아니요, 바로 임제가 모든 造作을 버리고 平常心의 無事之人이 되려고 한 자기격투의 실존적 고뇌가 법정스님의 실존적 고뇌와 동일한 혜망의 선상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臨濟를 보통 靑原下 德山宣鑑의 棒과 대비하여 機峰이 날카로운 喝의 雙壁으로 거론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는 오히려 臨濟를 동시대의 趙州從픹 (778~897) 과 비교하는 것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두 사람이 모두 唐末이라고 하는 퇴폐적인 下剋上의 고뇌의 시대를 산, 同鄕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趙州도 臨濟도 같은 北方의 산뚱 (山東) 사람들이다. 趙州는 曹州 (山東省) �P鄕人이요, 臨濟는 曹州 (山東省) 南華의 人이다. 그런데 같은 산뚱 사람이지만 北方人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은 조주가 아닌 임제다. 조주는 오히려 온화한 남방인의 기질에 가깝다. 조주를 여성적이라 하면 임제는 남성적이다. 조주를 언설적이라 하면 임제는 행동적이다. 조주를 기지의 인간이라 하면 임제는 우직의 인간이다. 조주는 섬세하고 임제는 거칠다. 그러나 임제는 그만큼 철두철미한 易簡의 지혜를 만인에게 傳한 것이다. 임제는 唐나라 傳燈 역사의 마지막 走者였다. 그리고 禪이 갈 수 있는 최궁극점 (Ne plus ultra) 까지 그 횃불을 밝혔던 것이다. 법정스님이 임제를 說한 것은 임제라는 역사적 개인을 객관적으로 소개한 것이 아니다. 산뚱人 임제와 목포人 법정은 기질상 공통점이 많고 지향점이 일치한다. 법정스님은 임제의 이야기를 통하여 자신의 公案을 說한 것이다. 『도올서원에 나오시는 재생여러분! 도올을 죽이시오. 그래야 비로소 그대들은 도올이 원하는 인간이 될 것입니다』 법정스님께서 강론의 대미에 하신 말씀이다. 선승들의 이야기는 直截하다. 그 말투가 몹시 과격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인품이 과격한 것이 아니요,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진리의 내용이 근원적인 것이라서 그 언어의 외투가 과격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임제는 어느날 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道를 따르는 그대들이여! 우리는 왜 出家를 했는가? 참으로 道를 배우고 터득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이 산에 사는 승려들을 예로 들어보자! 나 역시 처음에는 毘尼 즉 계율 (vinaya=毘奈耶) 에 나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나는 진리를 발견하고자 또한 經 (sutras) 과 論 (shastras) 의 논리적 해박한 지식을 열렬히 추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추구 끝에 내가 깨달은 것은 이러한 계율이나 의식이나 서물이 가르쳐주는 것은 단지 이 세계를 구원하고자 하는 방편에 불과한 것이요, 병든 자에게 내리는 처방과도 같은 것이요,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간판의 문구와도 같은 것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시에 이 모든 것을 내동댕이쳐버리고 또 그 자체의 직접적인 참구를 위하여 禪에 몰입하였다. 후에 나는 다행히도 黃檗禪師와 같은 大善知識을 스승으로 만날 기회를 얻어 비로소 道의 心眼이 分明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비로소 천하의 老스님들의 경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고 또 진짜와 가짜를 분간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면서부터 곧 이런 능력을 얻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장기간에 걸쳐 몸으로 체득하고 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연마에 연마를 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날 아침 홀연히 스스로 깨닫는 날이 오는 것이다. 道를 사랑하는 그대들이여! 그대들이 참으로 진실한 법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얻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은 훌륭하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잘못 인도되는 것이다. 이것이 人惑이다! 밖으로 구하든 안으로 구하든 구하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족족 죽여야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달마) 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아라한 (羅漢, Arhat) 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여라! 엄마 아버지를 만나면 엄마 아버지를 죽여라! 사랑하는 자식이나 친척을 만나면 자식과 친척을 죽여라! 오로지 이러한 길에서만이 그대는 벗어남 (解脫) 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사물에도 구애됨이 없을 때 비로소 우리는 훨훨 벗을 수 있고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道流, 出家兒且要學道. 祗如山僧, 往日曾向毘尼中留心, 亦曾於經論尋討. 後方知是濟世藥, 表顯之說, 遂乃一時抛��, 卽訪道參禪. 後遇大善知識, 方乃道眼分明, 始識得天下老和尙, 知其邪正. 不是娘生下便會, 還是體究練磨, 一朝自省. 道流, 쵴欲得如法見解, 但莫受人惑. 向裏向外, 逢著便殺. 逢佛殺佛, 逢祖殺祖, 逢羅漢殺羅漢, 逢父母殺父母, 逢親眷殺親眷, 始得解脫. 不與物拘, 透脫自在. 우리나라 불교사를 회고컨대, 과거 고승들의 이름만 보아도 떠오르는 재미난 우주의 氣流를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이 외래의 종교인 불교의 전래를 살펴보면 등장하는 최초의 이름들, 아도 (阿道) 니 마라난타 (摩羅難陀) 니 묵호자 (墨胡子) 니 하는 것들은 매우 불특정적 추측에 의한 이름들임을 알 수 있다. 「아도」란 「아무개」라는 의미 외엔 아무 뜻도 없다. 마라난타는 백제에 온 인도승 이름의 음역이다. 묵호자란 그냥 「얼굴이 검은 오랑캐녀석」이란 뜻이다. 이렇게 어설픈 초기의 傳道를 거쳐 二興 연간에 신라불교는 르네상스적 발흥기를 만났고 그 후 통일신라의 대통합 기운 속에서 조선문명 최초의 통일이데올로기로서 불교는 그 창조적 기염을 토하기 시작했으니, 조선문명 개벽의 첫새벽을 밝힌 샛별이 바로 원효 (元曉) 다. 원효는 말 그대로 「최초의 새벽」이란 뜻이니 그것은 곧 조선문명의 원점이다. 麗末에 이르면 그 새벽은 점점 밝아져 태양이 떠오르고 그 태양은 中天에 대낮을 밝혀 모든 萬物에 두루두루 비추니 그 이름이 곧 普照知訥이다. 「보조」란 「두루두루 비춘다」는 뜻이다. 이렇게 두루두루 보편적인 빛을 발하던 불교가 조선왕조에 오면 정도전의 排佛을 筆頭로 新儒學 (近世 宋學) 이 그 옥좌를 대신하니 衰亡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普照하던 태양이 쇠락하여 西山에 걸리니 그 황혼의 찬란함을 대변하는 이가 곧 西山大師요, 조선불교는 西山의 줄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해가 서산에 지고 나니 해는 없어지고 빈 하늘, 텅빈 어둠에 달만 덩그러니 걸렸으니 鮮末에 대선사 鏡虛 (1846~1912) 니 滿空 (1871~1946) 이니 하는 이름들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요, 그러한 암울한 역사적 기운을 대변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접어들어 日帝라고 하는 암울한 자기상실의 역사 속에서도 이전의 역사와는 단절된 새로운 기운이 세차게 솟고 있었으니, 그것은 새로운 새벽의 먼동이 찾아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샛별이었다. 효봉학눌 (曉峰學訥, 1888~1966) ! 단절은 곧 새로운 시작이다. 찬란한 태양은 저 동쪽하늘 원새벽을 밝히고 中天에 떠서 普照하여 西山으로 기울어 滿空의 月面을 비추었건만 기나긴 어둠을 뚫고 다시 새벽 (曉) 봉우리 (峰) 를 비추었다. 元曉에서 曉峰으로! 단군 이래 아사달의 역사는 기나긴 사이클을 한바퀴 돌린 것이다. 법명은 學訥, 호는 曉峰, 성은 李氏, 이름은 燦亨, 父는 炳億, 母는 金氏, 1888년 4월28일 평안도 양덕 수안이씨 가문에서 태어나 평양고보를 거쳐 그 재질이 뛰어나 일찍이 일본에 유학, 와세다 (早稻田) 대학 법과를 卒業, 고등고시를 패스하고 평양복심법원 판사가 되었다. 당대의 조선인으로 누릴 수 있었던 최고의 권세였다. 1914년 26세 弱冠 때 일이었다. 或說에 의하면 그가 독립투사를 판결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가책으로 번민했다 하고 或說에 의하면 그가 내린 어느 凡夫에 대한 사형언도가 잘못된 것임이 밝혀져, 한 인간이 자기로 인해 죄없이 목숨을 잃은 데 대한 통한으로 생 그 자체를 회의하고 모든 것을 떨치고 엿장수·노동일을 마다 않으며 조선팔도를 방황타가, 1925년 金剛山 神溪寺에 들어가 때마침 주석하고 계시던 石頭寶澤和尙을 뵙기에 이르렀다. 『어디서 왔는가?』 『楡岾寺에서 왔습니다』 『몇걸음에 왔는고?』 이에 이찬형은 벌쩍 일어나 큰 방을 한바퀴 빙 돌고와서 제자리에 앉았을 뿐이었다. 이를 보고 있던, 옆에 앉아 있던 노스님 한분이 이르시기를 『10년 공부한 首座보다 낫군!』 이에 곧 삭발을 허락받았으니 37세 7월8일의 일이었다. 이듬해 4월8일, 東宣淨義和尙을 계사로 하여 구족계 보살계를 받고 법명은 학눌, 호를 효봉이라 하였다. 석두화상의 훌륭한 교훈으로 금강산 법기암 뒤에 토굴을 짓고 두문불출하여 참선공부에 열중한 스님은 정좌불와·용맹정진·일종식 등으로 초인적인 수행을 하기 1년반만에 크게 깨우치고 이렇게 읊었다. 海底燕巢鹿抱卵 火裡蛛室魚煎茶 此家消息誰能識 白雲西飛月東走 바다밑 제비둥지엔 사슴이 알을 품었고 불속 거미집에선 고기가 차를 달인다 이 집안의 소식을 뉘 있어 알아볼건가 흰구름 서쪽으로 날으니 달은 동으로 달리네 나 도올은 대학시절에 이 게송을 접하고 울고 또 울었다. 해탈인의 경지, 이미 언어를 초탈해버린 이 道人의 포효를 어찌 名色으로 더럽히랴마는, 생각해보라! 이 한 게송에 맺힌 피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그 얼마나 각고의 수련 끝에 이 장엄한 우주적 如如의 심포니가 울려퍼졌을까? 금강산 일만이천봉 깊은 계곡 스러져가는 한 토굴의 처마밑에 달린 달을 쳐다보며 스님은 과연 무엇을 깨달았으랴! 오늘날 한국불교의 가장 큰 문제는 당초로부터 효봉과 같은 걸출한 인물이 불교종단으로 흡수가 되질 않았다는 것이다. 당대에 일본유학을 거쳐 판사가 된 영특한 지혜의 소유자란 스님이기 이전에 당대의 현실적 권세와 영예를 독차지한 최고의 지성인이란 뜻이다. 이러한 인물이 良心의 명령에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修道의 苦行길을 택한 그 감동의 행로를! 보라! 임제는 뭐라 말했던가? 『이러한 능력은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기에 걸친 體究와 각고의 練磨끝에 어느 아침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不是娘生下便會, 還是體究練磨, 一朝自省.) 효봉의 大覺의 게송의 위대함은 오늘날 어느 누구의 말장난도 그 발꼬락에도 미칠 수 없다. 효봉의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우주적 통찰의 신선함이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문자 그대로, 청자빛을 발하는 새벽 봉우리의 새로움이다. 토굴에서 나와 5년간 전국 선원을 다니며 정진하다가 전라 송광사에 머물기 10년, 어느날 홀연히 우리나라 열여섯째 국사이신 高峰法藏스님이 나타나 하시는 말씀이 煩惱盡時生死絶 微細注流永斷滅 圓覺大智常獨存 卽現百億化身佛 번민이 다하면 생사도 초월해 미세한 흐름조차 마음속에 영원히 단멸되었네 원각의 큰 지혜만 홀로 빛나니 그것이 곧 백억의 석가님 화신불 문득 꿈을 깨니 스님의 몸과 마음이 비 갠 날 일점의 흐림조차 없는 푸른 하늘과도 같았다. 이에 스스로 우러나오는 말씀이 不落二邊去 到無着脚處 忽逢無位人 正是本來汝 이변에 떨어지지 않고 나아가 발 붙일 수 없는 곳까지 이르러 이름없고 자리없는 한 사람을 문득 만나면 그것이 곧 너의 본래 모습 바로 이 게송에서 효봉스님이 한 말씀 「忽逢無位人」이란 일구절을 우리는 놓치면 안된다. 여기서 「無位人」이란 「無位眞人」의 약어로 그것은 본시 臨濟의 트레이드 마크에 해당되는 고유어이기 때문이다. 『莊子』의 <逍遙遊>에는 「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임제는 바로 이 장자의 사상을 禪의 언어로 둔갑시켰다. 임제는 「無位眞人」 「無依道人」 「眞正道人」이란 말을 동의어로 자주 쓴다. 그런데 『臨濟錄』에서 「無位眞人」이란 말은 「上堂」 세번째 일화에 단 한번 출현한다. (「無依道人」은 이에 비하면 5回나 출현한다) . 임제는 어느날 항상 규칙적으로 열리던 법석에 올라 말문을 열었다. 『네 놈들의 발가벗은 시뻘건 몸뚱어리 속에 자리도 없는 眞人이 한 명 살고 있나니라. 이 眞人이 너희들 얼굴 쌍판대기 위로 항상 들락날락 거리고 있나니라. 아직도 그것을 보지 못한 놈들은 자아~ 잘 들여다 보거라!』 (赤肉團上有一無位眞人, 常從汝等諸人面門出入, 未證據者看看.) 『스님! 도대체 無位眞人이란 놈은 어떻게 생긴 놈입니까?』 (如何是無位眞人?) 이때 임제스님은 갑자기 법석에서 내려오더니 화난 얼굴을 하면서 그 스님의 가슴팍을 콱 움켜쥐고 세차게 닦아세우면서 말했다. 『말해봐라! 말해봐라! 이놈!』 (道! 道!) 갑자기 휘몰리게 된 스님이 뭔가 말하려고 미적미적거리자 임제스님이 그 스님을 확 밀쳐내버리며 하는 말이 『뭐라구? 무위진인이 어떻게 생겼다구? 무위진인은 뭔 무위진인이냐? 그건 말라빠져버린 개똥덩어리다!』 (無位眞人是什큯乾屎첀!) 그리곤 뒤돌아보지도 않고 방장실로 사라져 버렸다. 이 유명한 임제의 일화에는 모종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無位眞人이란 근본적으로 無位, 즉 자리가 없는 것이다. 無位란 말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그러므로 무형체의 것이다. 물리적인 좌표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임제는 이 무위진인을 설명하는데 우리의 시뻘건 고깃덩어리 (赤肉團) 속에 분명히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의 감관이 밀집되어 있는 우리 육체의 문인 얼굴 (面門) 을 들락날락 (出入) 거린다는 것이다. 임제는 여기서 바로 이 말을 듣는 사람에게 혼동을 주었다. 자리 없는 참사람은 실체가 없는 것일 터인데 마치 그것을 듣는 사람은 실체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젊은 스님이 물었을 게다. 『그 무위진인은 어떻게 생긴 겁니까?』하고. 바로 이때 그 스님은 무위진인을 실체화하는 근원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결국 임제의 대답은 『무위진인이란 말라빠진 똥덩어리일뿐』 (乾屎첀) 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체화된 무위진인을 근원적으로 거부하는 언사인 것이다. 「眞人」이라는 말을 쓰면, 우리는 眞人이라는 말에 매달려 또다시 假人을 생각하게 되고, 나의 육체는 가짜덩어리요 그 속에 진짜 자아가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모든 禪客의 眞諦 추구가 이러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大錯 (큰 착오) 이라는 것이다. 임제는 말한다. 여보게들! 나 산승이 밖으로 법을 구하지 말게 말게 했더니만 이 바보 같은 새끼들이 내 말의 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번엔 또 안으로 구할려구 지랄들이란 말일세! 그러면서 벽에 기대고 좌선한답시고 앉아서 혓바닥으로 윗 아구창을 떠받치고 고요한 물면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으면서, 이것이야말로 조사께서 가르쳐주신 불법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야. 착각도 이만 저만한 착각이 아니야! 그대들이 이러한 不動淸靜의 경지가 곧 불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대들이 무명의 번뇌를 주인으로 모시는 노예새끼들이 돼버리는 것밖엔 안 돼. 옛사람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고요한 흑암의 깊은 구덩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인간의 번뇌!』 바로 그대들을 두고 한 말이야! 大德, 山僧說向外無法, 學人不會, 便卽向裏作解, 便卽倚壁坐, 舌�쀟씬�, 湛然不動, 取此爲是祖門佛法也. 大錯. 是쵴若取不動淸淨境爲是, 쵴卽認他無明爲郞主. 古人云, 湛湛黑暗深坑, 實可怖畏. 此之是也. 임제는 또 말한다. 『밖으로 구해도 법이 없다면 안으로 구해도 그것은 또한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向外無法, 內亦不可得.) 나 임제는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佛도 없고 法도 없고 修도 없고 證도 없나니라! (向쵴道, 無佛無法, 無修無證.) 佛을 求하고 法을 求하는 것은 곧 지옥을 만드는 業일 뿐이다. (求佛求法, 卽是造地獄業.) 그렇다면 과연 無位眞人이란 무엇인가? 바로 「시뻘건 고깃덩어리 (赤肉團) 」 그 자체인 것이다. 그 외로 眞我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효봉스님의 게송 마지막 구절이 바로 이러한 임제의 가르침을 몸소 구현한 체득의 포효임을 깨닫게 된다. 忽逢無位人 正是本來汝 자리없는 사람을 문득 만나면 그것이 곧 너의 본래 모습 曉峰! 과연 그는 20세기 우리 불교사의 새벽이다. 이 효봉선사 슬하에서 법정은 태어났다. 그리고 무소유철학을 실천하면서 法의 頂에 올랐다. 元曉, 普照, 西山, 鏡虛, 滿空, 曉峰, 法頂! 법정스님이 도올서원에 오셨을 때 나는 다짜고짜로 물었다. 『스님! 스님은 과연 法의 頂에 올랐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나에게 되물었다. 『도올! 선생은 아직도 그렇게 버릴 게 많으시오?』 只默默不答. 나는 빙그레 미소지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로 두달이 지난 육월 삼일, 나는 그 침묵을 깨치고 입을 열었다. 『나 도올은 서울대학·중앙대학·용인대학 3개대학의 객좌교수직을 사퇴합니다. 그리고 장안에서 많은 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도올한의원도 폐업합니다. 그리고 오직 사색과 연구에만 몰두하겠습니다』 법정스님이 불자고 나 도올이 유자라 해도 그 모두에게 끊임없이 버려야 할 업은 쌓이는 법! 나 도올에 있어서 無位란 곧 本位로의 복귀다. 나 도올의 本位란 始終이 없는 배움의 여로다! 돌이 되려면 돌을 버려라! 도올이 되려면 도올을 죽여라! 나는 일찍이 말했다. 선은 깨달음이다. 내가 도올서원에서 禪을 講했다면 나의 講의 역사 그 자체가 하나의 깨달음의 역사였을 것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깨달았는가? 깨달음은 곧 실천이다. 나의 실천은 무엇이 되었어야만 했나? 돌이 되려면 돌을 죽여라! 무소유의 실천은 나에게는 많은 사람에게 아픔을 주어야만 했다. 허나 그 아픔마저 나는 죽여야 했던 것이다. 지금 나에겐 오직 茫漠한 몸의 대지 위에 침이 한자루 꽂혀있을 뿐이다. 임제의 俗姓은 邢氏, 어려서부터 현명했고 우수했고 孝行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의 생년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9세기 초였을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出塵의 뜻을 품고 일찍이 落髮·受具하여 講席에 列하여 經律論을 考究하였다. 허나 그것은 濟世의 醫方일 뿐 濟世의 本位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禪을 흠모키에 이르렀다. 그가 南遊하여 筠州 (江西省) 黃檗山에 있는 希運을 찾아갔을 때 이미 그는 실상 훌륭한 스님이었고 학식이 높은 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성품은 매우 우직하고 내면적이고 성실하여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고 그가 大覺에 이르기 전에는 매우 소심했던 인간으로 사료된다. 황벽문하에 있기를 3년, 그는 소리없이 자기일에만 전념하였다. 『行錄』은 그의 「行業이 純一하였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매우 충직하고 순수한, 그리고 한 일에만 전념하는 평범인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황벽 門下에서 第一座는 睦州道明이었다 (陳尊宿으로도 불린다. 『指月錄』 卷十三에 그의 行錄이 있다) . 睦州는 소리없이 본업에만 충실한 임제의 인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끊임없이 그를 주시하였을 것이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목주는 임제에게 다가갔다. 『그대 여기 얼마나 머물렀던고?』 (上座在此多少時?) 『3년요』 (三年.) 『그대 황벽 큰 스님께 질문해 본 적이 있소?』 (曾參問否?) 『아뇨. 질문해본 적이 없습니다. 뭘 질문할지를 몰라 못했습니다』 (不曾參問, 不知問個甚큯.) 『그래? 그럼 저 법당 큰 스님께 이렇게 한번 여쭈어보지 그래.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하고 말야』 (何不問堂頭和尙, 如何是佛法的大意.) 이러한 제의에 따라 임제는 곧 황벽에게 가서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벽은 임제의 대가리를 방망이로 후려쳤다. 임제는 법당에서 내려왔다. 목주는 재미있어서 물었다. 『질문하니깐 뭐라 하시던?』 (問話作큯生?) 『뭐라긴요? 제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절 때리셨어요. 왜 절 때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요』 (某甲問聲未絶, 和尙便打, 某甲不會.) 목주는 살살 부추기며 말했다. 『야! 그러지말구 다시 가서 여쭈어봐!』 (但更去問.) 임제는 목주가 하라는 대로 우직하게 또 황벽에게 올라가 물었다.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방망이가 떨어졌다. 이렇게 묻기를 세 번, 똑같이 얻어맞기를 세 번. 에이, 빌어먹을! 임제는 이런 난센스는 이제 끽이라 생각하고 영원히 황벽산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러한 결심을 알리러 임제는 목주를 찾아가 비장한 어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찍이 상좌스님의 격려와 권고에 힘입어 法을 큰스님께 여쭐 수 있었던 것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허나 여쭐 때마다 큰스님의 방망이 세례를 얻을 뿐이었습니다. 생각해보건대 스스로 못난 인연으로 진리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음을 탓할 뿐이외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곳을 영원히 사직하고 떠나는 일뿐이외다』 (早承激勸問法, 累蒙和尙賜棒. 自恨障緣, 不領深旨. 今且辭去.) 이에 목주는 말했다. 『그대가 이곳을 떠나려고 한다면 그래도 큰스님께 떠난다고 인사드리고 떠나는 것이 예의 아니겠나?』 (汝若去, 須辭和尙了去.) 그러자 임제는 목주에게 큰절을 올리고 물러났다. 그러나 목주는 잽싸게 먼저 황벽스님께 올라가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스님! 스님! 왜 일전에 불법을 물으러 왔던 그 상좌놈 있잖아요? 그 놈이 좀 어리긴 해도 대단한 인물 같아요. 그 놈이 사직하러 올라오면 좀 교육적으로 대하세요. 그놈은 후에 한그루 거대한 나무가 될 것입니다. 분명 그 그늘이 天下를 다 휘덮을 것입니다』 (問話上座, 雖是後生, �或ㅠ體孼�. 若來辭, 方便接伊. 已後爲一株大樹, 覆蔭天下人去在.) 임제가 드디어 황벽에게 와서 사직을 고하였다. 그러자 황벽은 말했다. 『딴 곳으로 갈 필요가 없나니라. 곧 高安의 강가 여울목에 가서 大愚스님을 찾아뵈어라. 너에게 할 말이 있을 것이다』 (不須他去, �딂目竇堺ⓗ禑넛紗�, 必爲汝說.) 大愚는 南岳下 歸宗智常의 法嗣다. 임제가 대우스님께 이르니 대우는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甚處來?) 『황벽에서 왔습니다』 (黃檗來.) 『황벽이 뭐라 말씀하시던?』 (黃檗有何言句?) 『저는 세 번 불법의 대의를 여쭈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 다 얻어맞았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아직 모르겠습니다』 (某甲三度問佛法的大意, 三度被打. 不知某甲有過無過.) 그러자 대우는 또박또박하게 임제를 일깨우듯 외쳤다. 『황벽은 그렇게도 어린 아이를 보살피는 노파의 심정으로 간절하게, 너를 고해로부터 건지기 위해 철두철미한 배려를 게을리하지 않았거늘, 이 녀석아! 그래 여기까지 와서 나에게 잘못이 있냐 없냐를 물어?』 (黃檗與큯老婆心切, 爲汝得徹困, 更來這裏問有過無過?) 임제는 대우의 이 말에 대오한다. 이것이 바로 임제가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 깨달음의 순간에 임제는 다음과 같이 포효한다. 『아아~ 황벽의 불법은 원래 구질구질한 대목이 없었다!』 (元來黃檗佛法無多子!) 여기 이 순간에 임제가 외친 이 말, 「無多子」에 대한 해석은 전통적으로 異說이 많았다. 唐代의 口語인 듯한데 확연히 해석되질 않고 그 내면의 흐름을 전달하기에는 논리적으로 미흡한 점이 많다. 보통 전통적 해석은 『별 볼일 없는 것이었다』라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새기는 것이었다. 사계의 석학 이리야 요시타카 (入矢義高) 선생의 새로운 해석에 따라 『구질구질한 대목이 없다』 『자질구레하게 따지지 않는다』 『端的이다』라는 식으로 새겼다. 임제는 이 순간부터 무엇인가 자신을 획득한 공격적이고 난폭하기까지 한 인간으로 변모해간다. 이에 대우는 임제의 목덜미를 붙잡고 닦아세우며 외친다. 『이 오줌싸개 녀석! 너 지금 뭐라구 했지? 조금 아깐 와서 뭐?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알고 싶다고 징징 울더니만, 지금은 뭐 황벽의 불법은 구질구질한 데가 없다고 폼잡고 외쳐? 야 이놈아! 도대체 지금 네가 뭘 알았다구 재냐? 빨리 말해봐! 빨리 말해봐!』 (這尿牀鬼子! 適來道有過無過. 如今�祜뇔蔔匯魯浸潺噫�. 쵴見個甚큯道理, 速道! 速道!) 그러자 임제는 아무 말도 않고 대우의 갈비뼈를 세차게 세 번이나 주먹으로 후려쳤다. 퍼억! 아이구구구구! 옆구리를 얻어맞은 대우는 임제를 밀치며 소리친다. 『아이구구구구! 네놈 선생은 황벽이지 내가 아니다. 나와 상관이 없다』 (汝師黃檗, 非干我事!) 사실 난 이 대목에서 왜 임제가 대우스님을 그렇게까지 리얼하게 때려야만 했는지 그 진의나 상징성이 잘 了解되질 않는다. 하여튼 뭔가 진리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인간의 철저한 행동에 스산한 느낌이 들 뿐이다. 이에 임제는 대우에게 사직인사를 하고 다시 황벽에게 돌아갔다. 이로써 임제는 황벽의 문하생이 된 것이다. 황벽은 돌아온 임제를 보자 곧 묻는다. 『이 녀석아! 니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구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개지랄이냐? 언제까지 이 지랄하려구 그래?』 (這漢來來去去, 有什큯了期?) 그러자 임제는 말했다. 『단지 스님의 노파심이 너무 간절해서 그렇습니다』 (�딄塘혈嵬姬�.) 그리곤 큰절을 정중하게 올리고 나선 황벽의 곁에 侍立하고 섰다. 그러자 황벽이 다시 물었다. 『어딜 갔다 왔느냐?』 (甚處去來?) 『어제 스님의 자비로운 뜻을 받자옵고 대우스님께 다녀왔습니다』 (昨蒙和尙慈旨, 令參大愚去來.) 『대우스님이 뭐라 말하던?』 (大愚有何言句?) 그러자 임제는 그곳에서 있었던 자초지종을 다 말했다. 황벽스님은 말했다. 『그놈의 수다쟁이 늙은이 대우! 그놈이 이곳에 오면 한번 호되게 멕여줘야겠구만!』 (大愚老漢饒舌, 待來痛與一頓!) 그러자 임제는 받아쳤다. 『뭘 이곳에 오면 하구 말하세요. 기다릴 게 뭐가 있어요? 지금 바로 멕이지요!』 (說甚待來, 卽今便打.) 그러더니 임제는 황벽 큰스님의 면상을 따귀로 세차게 후려갈겼다. 에구구! 황벽은 소리질렀다. 『아이구 이 미친 놈 봐라! 이놈이 여기 와서 호랑이 수염을 마구 잡아당기는구나!』 (這風顚漢來這裏?}虎鬚!) 그러자 임제는 크게 소리쳤다. (師便喝.) 이것이 아마도 그 유명한 임제할 (臨濟喝) 의 첫 聲이었을 것이다. 황벽은 주변의 시자를 불러 말했다. 『이 미친 놈을 끌고 법당으로 데리고 가라!』 (引這風顚漢參堂去!) 이것이 바로 임제의 첫 깨달음을 傳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그 전말이 매우 소상하다. 『祖堂集』에도 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으나 이야기 가닥들이 사뭇 다르다. 그러나 아마도 『祖堂集』의 이야기가 『임제록』이나 『지월록』의 이야기보다는 훨씬 더 古形을 전달하는 것이리라. 나는 이 이야기를 기술하는데 있어서 『임제록』의 <行錄>부분을 취하지 않고 『지월록』 卷十四의 기술을 따랐다. 兩者는 大同小異하다. 해석은 독자의 임의적 상상에 맡기는 것이 그 느낌을 더 풍부하게 할 것이다. 허나 임제가 대우의 옆구리를 친 것이나 나중에 돌아와 황벽선사의 따귀를 갈긴 것이나, 그것은 임제의 거친 행동방식이나 보복적 반역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그가 스승으로부터 이유없이 세 번이나 맞은 것에 대한 순수한 고뇌의 깊이, 그 고뇌의 깊이로부터 느낀 사랑의 감격을 다시 표현하는 어떤 상징적 제스처로 읽어내야 할 것이다. 대각 전후에 공통된 임제의 성품이나 행동방식의 철두철미함을 우리는 외경스럽게 읽어내야 할 것이다. 하여튼 임제는 좀 스산하다. 으스스하다. 그리고 임제는 참으로 고독한 孤存의 인간이었다. 그는 중국 선종사 최후의 벼랑길이었다. 이 사건은 임제의 생애에 있어서 깊은 추억과 의미를 남긴 듯하다. 임제 자신이 이 사건을 회고해서 말하는 대목이 『임제록』에 실려 있다. 독자는 그 사건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씹어볼 수 있을 것이다. 임제는 어느날 설법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중여러분! 다르마를 추구하고자 하는 자는 몸을 잃고 명을 잃는 것을 마다않을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십년동안 황벽선사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세 번 불법의 대의를 여쭈었다가 세 번 다 방망이로 얻어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마치 부드러운 버드나무가지로 나의 영혼을 쓰다듬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실로 그런 방망이 한번 더 맞아보고 싶은 심정이 간절합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날 위해 방망이질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大衆, 夫爲法者, 不避喪身失命. 我二十年, 在黃檗先師處, 三度問佛法的大意, 三度蒙他賜杖, 如蒿枝拂著相似. 如今更思得一頓棒喫, 誰人爲我行得?) 이때 어떤 멍청한 스님이 벌떡 일어나 대중 속을 걸어나오며 말했다. 『아~제가 때려드리겠습니다』 (某甲行得.) 그러자 임제스님은 방망이를 집어들어 그 스님에게 건네주려 하였다. 그러자 그 스님은 그 방망이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때였다. 임제스님은 크게 외치며 그 스님을 몹시 세차게 한방 멕여버렸다. 이러한 고사는 임제와 황벽 사이에 재현될 수 없는 어떤 魂魄의 교감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棒」이란 「때림」이 아니다. 그것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그리고 棒을 상징으로 전달되는 超言의 웅변이 우리 가슴을 저미게 되는 것이다. 法頂스님은 말했다. 『喝은 거부의 강렬한 의사표시요, 棒은 직접적인 행동이다』 내가 보기에 실제로 임제의 깨달음의 본질을 전달하는 고사는 「三度問佛, 三度蒙杖」의 공안이 아니다. 깨달은 임제의 첫 포효, 그 거친 산뚱인의 우주를 뒤흔드는 無依道人의 사자후를 전달하는 공안은 다음의 이야기다. 아마도 임제가 대우로부터 돌아와 황벽 밑에 있게 된 바로 며칠 후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임제는 모든 스님들과 함께 사원 밭에서 땅을 파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곡괭이로 땅을 파고 있던 임제는 황벽스님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임제는 일손을 멈추고 곡괭이에 기대 서 있었다. 그러자 황벽스님이 말했다. 『이 놈이 피곤한 모양이구먼』 (這漢困那!) 임제가 되쳤다. 『아니 곡괭이 한번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피곤하긴 뭐가 피곤하단 말입니까?』 (�緘�未擧, 困個甚큯?) 그러자 황벽스님이 방망이를 번쩍들어 후려치는데, 그때 임제는 그 방망이를 꽉 붙잡고 황벽 가슴팍 쪽으로 확 밀치면서 단번에 늙은 황벽을 내동댕이쳐버렸다. 에구구구구! 나자빠진 황벽은 사원 승려들의 기강을 잡는 維那(집사 같은 직책)를 불렀다. 『야, 나좀 부축해 세워라!』(扶起我來.) 유나가 황벽스님을 부축해 세우면서 『아니 스님, 어떻게 이런 미친 놈의 무례를 용인할 수 있단 말입니까?』(和尙爭容得這風顚漢無禮?) 황벽이 일어나자마자 유나에게 방망이를 멕였다. 이때 임제는 아랑곳없이 곡괭이로 땅을 파면서 다음과 같이 포효한다. 『사방에서 중놈들 죽으면 화장을 하지만, 나는 여기다 산 채로 묻어라!』(諸方火葬, 我這裏活埋!) 活埋! 나는 여기서 明末淸初의 大儒 王船山의 『自題畵像小詞』의 원형을 발견한다. 鉛華未落君還在 我自從天乞活埋 저 그림물감과 더불어 그대는 영원히 살겠지 난 말야 스스로 하늘에 빌어왔지 산채로 묻어달라고! 夫之의 觀生居 舊壁에 걸렸던 대련은 무엇을 말했던가? 六經責我開生面 七尺從天乞活埋 육경이 날 채찍하기를 살아라 살아라 하고 칠척육신은 하늘에 빌기를 빨리 죽었으면 죽었으면 하고 임제는 포효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이 자리에 생매장이다! 신체적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우리는 죽지 않으면 안된다. 산 채로, 삶의 자리에서 죽지 않으면 안된다. 날 산 채로 묻어라! 이것이 바로 임제의 부정이요, 喝聲의 최종적 의미다. 훗날 仰山이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대도는 도망쳤는데, 포졸이 덫에 걸렸군!』(正賊走��, 邏�e人喫棒.) 維那가 얻어맞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렷다. 어찌 사족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위대한 스승 황벽의 면모는 다음의 고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임제의 탁월성을 간파한 황벽은 임제의 가능성을 절대적인 긍정 속에서 키워나갔다. 그들에게서 긍정은 곧 부정이요, 부정은 곧 긍정이다. 황벽과 임제의 사이는 마치 서로의 기지를 뛰어넘으려 경쟁하는 격렬한 운동경기의 두 선수와도 같았다. 임제가 어느날 법당 한복판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황벽이 법당에 와서 보고는 그가 깔고 자고 있던 나무판대기를 지팡이로 쿵~쿵~하고 내리쳤다. 낮잠을 잘자다가 깨서 김이 샌 임제는 머리를 들고 쳐다보다가 황벽이 와서 그러는 줄 알고, 『난 또 뭐라구』하는 식으로 푸념을 뇌까리더니 다시 쓰러져서 코를 곯기 시작했다.(師在堂中睡, 黃檗下來見, 以�쀭擾料革雩殞�. 師擧頭, 見是黃檗, �顥�.) 그러자 황벽은 다시 한번 임제가 깔고 자는 나무판대기를 짓궂게 쿵쿵 치고 위칸 상좌(고참스님)들이 좌선하는 곳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首座스님이 좌선하는 것을 보더니 다음과 같이 외치는 것이었다. 『저 아래칸 젊은 녀석은 오히려 무념무상의 좌선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너는 여기 앉아서 온갖 망상을 다 지으면서 뭘 하고 있는게냐?』(下間後生�汞╆�, 汝這裏妄想作什큯?) 핏대 난 수좌스님이 성을 벌컥내며 말했다. 『이 늙은이 뭘 하는 게야!』(這老漢作什큯?) 황벽스님은 그 놈 수좌가 깔고 앉아 있던 나무판대기를 다시 쿵쿵 세차게 내리쳤다. 그리곤 법당을 나가버렸다. 열심히 좌선을 하고 있는 首座는 妄念을 짓고 있고, 정진시간에 쿨쿨 자고 있는 젊은 임제야말로 무념무상의 정진! 바로 이러한 黃檗의 정신이 임제의 「無事禪」에 핵을 이루는 것이다. 삼천배를 해도 오로지 아무개를 만나겠다는 세속적 일념이면 妄念에 불과한 것이요, 일배를 해도 佛心은 스치는 바람에도 실리는 법! 계율의 엄격이 나의 허세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악연만 더해갈 뿐인 것이다. 頓悟漸修니 頓悟頓修니 하는 말장난도 臨濟禪에 오면 그 正解가 간결히 얻어진다. 임제선사는 뭐라 말했던가? 『내 너에게 말해주마. 부처도 없고 法도 없고 修도 없고 證도 없다』(向쵴道, 無佛, 無法, 無修, 無證.) 禪의 궁극에는 깨달음(悟)도 있어서는 아니되고, 닦음(修)도 있어서는 아니된다. 頓悟頓修? 임제는 말한다! 無悟無修! 어느날 임제는 절 주변에 소나무를 심고 있었다. 황벽이 그것을 보고 물었다. 『이 심산에서 그렇게 많은 소나무를 심어 뭣하게?』(深山裏栽許多松作甚큯?) 그러자 임제는 논리정연하게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첫째, 이 소나무들은 이 山門의 경치를 아름답게 해줄 것입니다. 둘째, 후세 사람들에게 어떤 삶의 기준을 마련해줄 것입니다』(一與山門作境致, 二與後人作標榜.) 그리곤 말을 마치자마자 곡괭이머리로 땅을 세 번 내리쳤다. 황벽이 이때 말했다. 『임마 니가 아무리 그리 해도 이미 내 방망이 30방은 먹었나니라!』(雖然如是, 子已喫吾三十棒了也.) 그러자 임제는 또 곡괭이머리로 땅을 세 번 내리치고 깊은 숨을 몰아 쉬며 씨익씨익거렸다.(師又�r地三下, 噓一噓.) 이때 황벽은 말했다. 『나의 가르침이 너에 이르러 이 세상에 크게 일어나겠구나』(吾宗到汝, 大興於世.) 하안거가 반쯤 지났을 때 임제는 큰스님을 뵈러 황벽산에 올라갔다. 황벽이 경(經, sutra)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임제는 놀리는 듯. 『나는 정말 여기 사람다운 사람이 하나 앉아있으려니 했는데, 스님은 원래 깜장콩(책 위에 쓰인 문자를 비유)이나 까는 늙은 화상이었구려』(我將謂是個人, 元來是唵黑豆老和尙.) 며칠이 지나고 나서 임제는 그만 황벽산을 떠나려고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인사차 온 임제에게 황벽은 말했다. 『하안거를 중도에 破하고 여길 왔으니 여기서 하안거나 마치고 떠나지 그래』(汝破夏來, 何不終夏去.) 『저는 잠시 스님이 보고 싶어서 인사차 들렀을 뿐이외다』(某甲暫來禮拜和尙.) 이때 과연 황벽은 임제에게 방망이를 멕이면서 쫓아내버렸다. 『썩 물러가라 이놈!』 임제가 수십리를 걸어가다 생각해 보니까 황벽선사를 그렇게 떠나온 것이 영 께름칙했다. 그래서 다시 황벽산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하안거를 마쳤다. 하안거를 다 끝낸 후 임제는 또 황벽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갔다. 황벽은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甚處去?) 『黃河 남쪽 아니면 곧 북쪽으로 가지요』(不是河南, 便歸河北.) 말이 끝나자마자 황벽은 임제에게 방망이를 내리쳤다. 과연, 임제는 그 방망이를 붙잡더니 황벽에게 따귀를 한대 갈겼다. 그러자 황벽은 유쾌하게 깔깔대고 한바탕 웃어댔다. 그리곤 시자를 불러 황벽스님이 百丈懷海대사(749~814)에게 인가받을 때 하사받은 선판(禪板, 등을 대고 쉬는 기구)과 궤안(첆案, 앉은뱅이 책상)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자 임제는 말했다. 『시자! 장작불을 가져오게』(侍者, 將火來.) 황벽은 정색을 하며 만류했다. 『그러지 말게! 그냥 제발 이것을 가지고 가게. 훗날 그대는 이 선판과 궤안에 앉아 天下사람들의 혓바닥을 모두 잘라버리게 될 것일세. 그대야말로 이 책상의 주인일세!』(不然! 子但將去. 已後坐斷天下人舌頭去在.) 얼마나 멋있는 師資相承의 자리인가? 얼마나 멋있는 교육자들의 태도인가? 우리는 이것을 公案으로 읽어서는 안된다. 語錄으로 읽어서도 아니된다. 이것은 벌거벗은 두 인간의 애틋한 사랑이 있는 그대로 유로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일뿐이다. 황벽은 임제를 확실히 키웠다. 임제는 황벽의 『傳心法要』의 「心」의 사상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馬祖로부터 발현된 南宗의 大機大用은 無依道人 임제에 이르러 그 궁극에 달한다. 임제가 추구하는 인간은 절대적 자유의 인간이다. 허나 현실적 인간에게는, 우리가 몸을 가지고 사는 한에 있어서는, 그러한 절대적 자유란 어느 곳에도 없는 유토피아적 환상이다. 그렇다면 절대적 자유란 불가능한 것일까? 여기에 바로 『존재할 것이냐? 존재하지 않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라고 독백한 햄릿의 고민이 있다. 이것은 우리 인간 모두의 실존적 고민이다. 허나 임제에게 있어서는 햄릿의 삶이 지니고 있는 관계성·의존성·관념성, 그 모든 것이 부정되는 순간에만 진정하게 『존재함(To be)』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모든 「依(의존성)」와 「位(관계성)」가 단절되는 곳에서 비로소 참된 자기(眞人)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상기 궤안전수의 고사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언어는 바로 임제가 황벽을 처음 뵈었을 때 한 첫마디다. 『是個人,』 바로 이 사람! 『此人,』 바로 이 사람! 임제가 河南省 熊耳山에 있는 禪의 初祖 菩提達磨의 묘소와 탑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塔主가 말했다. 『스님 어른! 먼저 부처님께 예를 올리시겠습니까? 먼저 달마조사께 예를 올리시겠습니까?』(長老! 先禮佛? 先禮祖?) 임제가 말했다. 『나는 부처님에게도 달마조사에게도 예를 올리지 않소!』(佛祖俱不禮.) 탑주가 말했다. 『스님어른은 도대체 부처님과 달마조사와 무슨 원수지간입니까?』(佛祖與長老是什큯寃家?) 임제는 아무말도 않고 소매를 휘두르며 경내를 나가버렸다. 나자렛 예수는 말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The sabbath was made for man, not man for the sabbath ; so the Son of man is lord even of the sabbath. 마가 2 : 27) 그리고 또 말하였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bring peace on earth ; I have not come to bring peace, but a sword. For I have come to set a man against his father, and a daughter against her mother, and a daughter-in-law against her mother-in-law ; and a man’s foes will be those of his own household. 마태 10 : 34~36) 이 사람, 바로 이 사람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처도 아니요, 달마도 아니다.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요,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너요, 바로 임제의 법문을 듣고 있는 선남선녀 그대들이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그대들이여! 제발 착각하지 마라! 나는 그대들이 위대한 철학책이나 논리서를 잘 해석하고 있다고 해서 그대들을 평가하지 않는다.(我且不取쵴解經論.) 나는 그대들이 이 땅의 대통령이나 장관이 되었다고 해서 그대들을 평가하지 않는다.(我亦不取쵴國王大臣.) 나는 그대들의 언변이 저 한강물처럼 유려하게 흐른다고 해서 그대들을 평가하지 않는다.(我亦不取쵴辯似懸河.) 나는 그대들이 똑똑하기 그지없고 지혜롭기 그지없다고 해서 그대들을 평가하지 않는다.(我亦不取쵴聰明智慧.) 바로 내가 그대들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단 하나, 그대들이 참으로 바른 견해를 갖는 것이다.(唯要쵴眞正見解.) 道를 사랑하는 그대들이여! 그대들이 백권의 수트라(經)나 사스트라(論)를 해독하여 그 진의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는 절간 무명의 한 스님에도 못미치는 것이다.(道流! 設解得百本經論, 不如一箇無事底阿師.) 그대가 위대한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그대는 타인을 경멸하게 되는 것이다.(쵴解得, 卽輕탊他人.)』 이 위대한 임제의 설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두 단어는 바로 「眞正見解」요 「無事之人」이다. 眞正見解란 바로 「삶의 올바른 방향 자각」이다. 삶은 나의 위대한 지식으로 요리되는 것이 아니다. 삶은 인류의 과학적 위업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그러한 총명예지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에 대한 올바른 견해가 없으면 삶은 고뇌와 부자유의 연속일 뿐이다. 『올바른 방향의 자각』이란 삶은 하나의 과정임을 말하는 것이다. 삶은 순간에서 완성되는 돈오돈수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의미없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에 대한 바른 견해다! 「無事」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平常」이라는 것이다. 『道를 따르는 그대들이여!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본시 힘쓸 것이 없다. 그것은 단지 평상무사(平常無事)를 의미하는 것이다. 생각해봐라! 옷을 입고,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오줌을 누고, 피곤하면 드러누워 자고, 하는 이런 것들, 뭐 용맹정진한다고 법석댈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것이 바로 佛法인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어리석은 자들은 비웃는다. 허나 지혜로운 자들은 내가 뭔 말을 하고 있는지를 곧 알아먹을 것이다』(道流! 佛法無用功焉, 只是平常無事. 著衣喫飯, 웬矢送尿, 困來卽臥 愚人笑我, 智乃知焉.) 平常無事! 그것은 南泉의 모토였고 趙州의 실천이었다. 그러나 같은 말이지만, 같은 주제지만 왠지 임제에 오면 그 색깔이 다르다. 느낌이 다르다. 무언가 武人的 격렬함으로 우리의 폐부를 찌르고 우리를 벼랑길로 다그친다. 과연, 그는 南泉선사의 말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법한다. 『그래서 옛스승 南泉선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던가? 평상심, 그것이 곧 道니라! 여보게들! 그대들은 도대체 지금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지금 바로 이 자리 내 눈앞에서 내가 말하는 法을 듣고 있는 그대들이야말로 無依道人이요, 역력히 분명하게 자립하고 있는 존재들이며, 아무것도 결여된 것이 없는 孤存의 실재들이다!』(所以古人云, 平常心是道. 大德, 覓什큯物? 現今目前聽法無依道人, 歷歷分明, 未曾欠少.) 此人! 여기 지금 있는 그대로 우리는 오리지날이다. 결여된 것이 없는, 스스로 그러한 대로 오리지날이다. 그런데 자꾸만 오리지날이 되려고 애쓸수록 가짜가 되어버린다. 오리지날리티를 잃어버린다. 해탈! 해탈의 깊은 구덩이(解脫之深坑)이야말로 道人의 최대 경계처다! 『無事한 사람이야말로 貴한 사람입니다. 제발 뭘 한다고 꾸미고 으스대고 폼잡지 마십시오. 그저 平常한대로 있으시오』(無事是貴人, 但莫造作, 祗是平常!) 『도를 따르는 그대들이여! 지금 내 앞에서 法을 듣고 있는 것은 그대들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四大(地, 水, 火, 風)가 아닙니다. 그대들이 法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오로지 그 四大를 부릴 수 있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만 있다면 죽음과 삶이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道流! 쵴祗今聽法者, 不是쵴四大, 能用쵴四大. 若能如是見得, 便乃去住自由.) 인간은 몸의 존재다. 깨달은 자는 심신이 원융한 자요, 몸이 부정된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몸을 혐오해서는 아니 된다. 허나 우리는 진정한 몸의 평상의 규율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대들이 진정으로 生死去住(죽음과 삶, 감과 있음)의 세계에서 모든 집착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고자 한다면 지금 바로 내 앞에서 法을 듣고 있는 그대들이야말로 형체도 없고 모습도 없고 뿌리도 없고 어떠한 공간도 항구적으로 점유하지 않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이 존재는 팔딱팔딱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만가지로 다양한 상황에 무궁하게 대응하며, 그 신비로운 움직임은 아무런 고정된 궤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것을 쫓아가면 쫓아갈수록 멀리 도망가고, 구하려고 하면 할수록 어긋나버립니다. 인간처럼 비밀스러운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쵴若欲得生死去住, 脫著自由, 卽今識取聽法底人, 無形無相, 無根無本, 無住處, 活톻톻地. 應是萬種施設, 用處祗是無處. 所以覓著轉遠, 求之轉乖. 號之爲秘密.) 그는 끊임없이 강조한다. 『지금 法을 듣고 있는 그대야말로 無依道人! 無依道人이야말로 모든 부처의 어머니다! 부처란 바로 無依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無依를 깨달으면 부처가 곧 무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것을 알게되면 그것이 곧 내가 말하는 眞正見解인 것이다』(唯有聽法無依道人, 是諸佛之母. 所以佛從無依生. 若悟無依, 佛亦無得. 若如是見得, 是眞正見解.) 이것은 老子 無爲思想의 구극적 언사다! 禪이란 실로 알고보면 儒·佛·道의 統合인 것이다. 儒에서는 일상성의 도덕성을 취하고 道에서는 무위자연의 자연스러움을, 佛에서는 자기부정의 철저성을 취한 것이다. 『道를 사랑하는 그대들이여! 그대들이 진정으로 法과 같이 되고자 한다면 함부로 의심을 生해서는 아니된다. 그대야말로 펼치면 온 法界를 휘덮을 수 있고, 그것을 오므리면 한 머리카락도 들어갈 틈이 없다. 그것은 역력히 스스로 빛나는 고독한 빛(Solitary Light)이다. 그것은 조금도 결여된 것이 없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으니, 글쎄 그것을 무어라 부르면 좋겠는가? 그래서 일찍이 南嶽懷讓선사에게 六祖혜능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어느 한 것과 같다고 하면 이미 빗나가버린다고. 그러니 그대 자신이 스스로 볼 수밖에 없다. 또 다시 뭐 그리 대단한게 있겠는가? 그걸 말로 하자면 끝이 없을 뿐이다. 여러분 개개인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주게! 그리고 珍重하시기를!』(道流, 쵴欲得如法, 但莫生疑 展則彌綸法界, 收則絲髮不立. 歷歷孤明, 未曾欠少 眼不見, 耳不聞, 喚作什큯物. 古人云, 說似一物則不中. 쵴但自家看. 更有什큯, 說亦無盡. 各自著力, 珍重.) Solitary Light! 이것이 그의 어록 『示衆』에 기록된 마지막 말이다. 禪의 황금시대에 마지막 거장, 늙은 임제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大名府의 興化寺 東堂에 어둑어둑 거미가 깔렸다. 임종을 지켜보려는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임제는 모든 威儀를 갖추고 근엄한 모습으로 앉아 말문을 열었다. 『내가 滅했다 해서 나의 正法眼藏을 滅해서는 아니된다』(吾滅後, 不得滅�昏全贖唾欄�.) 이때 임제의 法嗣 三聖慧然이 대중으로부터 나와 말씀드렸다. 『어떻게 감히 스님의 정법안장을 滅할 수 있겠습니까?』(爭敢滅�嬅眩폄贖唾欄�?) 『그럼 내가 죽은 후에 사람들이 너에게 정법안장을 물으면 넌 그들에게 뭐라 대답하겠느냐?』(已後有人問 , 向他道什큯?) 그러자 三聖은 큰 소리를 지르며 喝하였다. 그러자 임제스님은 다음과 같이 마지막 말을 뱉었다. 『아아 그 누가 알았으랴!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깔 먼 비루먹은 망아지새끼 손에서 멸망할 줄이야!』(誰知吾正法眼藏向這?{驢邊滅��!) 이 말이 끝나자 임제는 단정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다.(言訖, 端然示寂.) 咸通 八年 丁亥 四月 十日의 일이었다. 三聖慧然은 후에 바로 『임제록』을 지었다. 그러나 임제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후계자 삼성에 대한 분노의 염을 삭이지 않았다. 진리에 대한 向心의 준열함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三聖이 喝을 했다는 것은 바로 임제의 흉내를 낸 것이다. 평생 임제가 빨아먹은 진부한 장난을 되풀이한 것이다. 임제를 喝 禪風의 주인공으로 규정하는 것은 임제에 대한 최대의 모독이다. 임제는 바로 우리의 의미없는 喝을 지금도 증오하고 있는 것이다. 臨濟喝, 德山棒? 臨濟는 無位의 眞人일 뿐이었다. ------------------------------------------------------------------------------- - Copyright(c) 1998 All rights Reserved. E-mail: newsroom@mail.dongailbo.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