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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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리)
날 짜 (Date): 1998년 7월  4일 토요일 오전 05시 43분 29초
제 목(Title): 도올벽암록 제 4강화/신동아 


Posted By: artistry   (토종이) on 'Philosophy'
Title:     도올 벽암록 제 4강화(중략된 부분 수정판)/신동아
Date:      Sat Jul 04 04:52:23 1998 GMT

 [26] 제목 : 도올 『碧巖錄』 講話 제4화 -1

눈(雪)위에  서리(霜) 그려본 들
도올 김용옥(철학자·한의사)

 The rest is silence. (Ⅴ/ⅱ)

이제 남은 것은 침묵 뿐. 今歸于默. 햄릿의  마지막 말. 『햄릿』은 공
안이다. 셰익스피어도 하나의 공안이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And by opposing end them. To die ― to sleep
No more;and by a sleep to say we end
The heart-ache and the thousand natural shocks
That flesh is heir to:’tis a consummation
Devoutly to be wish’d. To die, to sleep;
To sleep, perchance to dream―ay, there’s the rub:
For in that sleep of death what dreams may come,
When we have shuffled off this mortal coil
Must give us pause―there’s the respect
That makes calamity of so long life.
For who would bear the whips and scorns of time,
Th’oppressor’s wrong, the proud man’s contumely,
The pangs of dispriz’d love, the law’s delay,
The insolence of office, and the spurns
That patient merit of th’unworthy takes,
When he himself might his quietus make
With a bare bodkin? Who would fardels bear,
To grunt and sweat under a weary life,
But that the dread of something after death,
The undiscover’d country, from whose bourn
No traveller returns, puzzles the will,
And makes us rather bear those ills we have
Than fly to others that we know not of?
Thus conscience does make cowards of us all,
And thus the native hue of resolution
Is sicklied o’er with the pale cast of thought,
And enterprises of great pitch and moment
With this regard their currents turn awry
And lose the name of action. (Ⅲ/ⅰ)



존재할 것이냐, 존재하지 않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고도
가슴 속에 꾹 참는 것이 고매한 정신이냐?
아니면 조수처럼 밀려드는 환난을 두 손으로 막아
그를 없애버리는 것이 고매한 정신이냐?
죽는 것은 자는 것, 다만 그뿐이다.
잠 한번으로 이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천만가지 갈등을 다 끝낼 수 있다 한다면,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삶의 완성,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잔다! 그래 꿈도 꾸겠지!
꿈을 꾼다? 아! 참!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었군!
이 윤회의 굴레를 훨훨 벗어던지고
죽음이라는 정적 속으로 잠들 때에,
그 어떤 꿈이 우리를 찾아올까 생각하면
차마 잠드는 죽음으로 발길이 내키질 않는다.
그 바보 같은 염려 때문에 우리는
삶의 고통을 일평생 끌고 나가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조소를 참을쏘냐?
짧은 단 한자루의 칼이면
그 자신의 삶을 깨끗이 청산할 수도 있을 텐데,
압박자의 억울한 횡포, 권세가의 무례, 멸시받는 사랑의 고통,
법률의 태만, 관리들의 오만,
유덕한 사람이 가치 없는 자에게서 꾹 참고 당해야만 하는 발길질,
이 모든 것을 과연 누가 참을쏘냐?
죽은 뒤에 무엇이 올지 모르는 두려움과
나그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 못 오는 미지의 나라가
사람의 마음을 망설이게 하고,
아지 못하는 저 세상으로 날아가느니
차라리 갖은 환난을 참게 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이 무거운 고통의 짐을 걸머지고
지루한 인생행로에서 신음하며 진땀을 뺄 것인가?
이래서 분별심은 우리를 모두 다 겁쟁이로 만들고 만다.
이래서 또 결심의 상기하는 혈색 위에
침울한 사색의 창백한 병색이 그늘져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를 품고 세웠던 중대한 계획도 마침내
잡념에 사로잡혀 발길이 어긋나고
실행이라는 이름조차 묘연해지고 만다.






 [25] 제목 : 도올 『碧巖錄』 講話 제4화 -2

보통 햄릿을 우리는  동키호테라는 캐릭터와  대비적으로 정형화시켜,
동키호테가 외향적이고 돌진적이고  실천적이라 한다면  햄릿이야말로 
내향적이고 반추적이고 사색적인 인간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키호테를 과단성의 상징이라 한다면 햄릿이야말로 우유부단  주저의 
상징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그리고 이 유명한 「투비 오아 낫 투비(To  be, or not to be)」란 햄
릿의 독백, 아버지의 복수를 결심하고 오필리아를 만나기 전, 3막의 첫
머리에서 이루어지는 이 독백을  모두 햄릿의 우유부단함이  자아내는 
멜로드라마적 비극의 원천으로 생각한다. 기껏해서 그  「오아(or)」라
는 접속사에서 키에르 케고르의 「아이더  오아(either or)」를 읽어내
거나, 우리 삶에 항상 불어닥치는 실존적  결단의 한 모멘트로 해석하
곤 한다. 

그러나 햄릿의 독백을 지배하는  음산한 영혼의 외침은  「오아」라는 
논리적 구조의 현상적 의미에 깃들이지  아니한다. 햄릿의 「오아」는 
바로 우리 삶의 순간순간에 밀어닥치는 모든 「오아」의 해탈을  의미
하는 것이다.

「투비」와 「낫 투비」는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최
재서의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 이덕수의 『과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강우영의 『삶이냐,  죽음이냐』
에 대하여 최종철의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번
역은 셰익스피어가 존재의 심연에서 의도하고자 했던 바를 심층적으로 
파고든 고충이 엿보이지만, 『있음이냐 없음이냐』라는 번역은 이것이 
어디까지나 극작대본이라는 맥락에서 타당치 못하다.  그것은 한국 일
상언어에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영문학자들의 한국말 실
력에 좀 문제가 있다. 있음, 없음을 명사화시켜 이냐를 붙여본들  그것
은 전혀 의미가 전달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햄릿의 『투비 오아 낫 투비』는 모든 존재와 비존재의 문제임에 틀림
이 없다. 一切皆苦의 삼법인이 말하는 梵我一如적인 발상이나,  중국인
의 천지코스몰로지적인 萬物同胞(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의  탯줄)의 일
체감에 적용되는 모든 존재와 비존재의 문제의식이 여기 깔려 있는 것
이다. 삼촌 크로디아스를 죽이든 말든, 그리고 햄릿 자신이 죽든 말든, 
그의 문제의식은 죽느냐 마느냐 하는 실존적 결단으로 해결의  실마리
를 찾지는 않는다. 

그의 독백은 죽음과 삶의 선택이 강요되는  순간의 독백이 아니라, 죽
는 쪽을 택하든, 사는 쪽을 택하든, 근원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고 하는 「무의미성」에 있는 것이다. 그가  지향하는 것은 모든 존재
와 비존재가 초월되는 그 무엇이요, 그 무엇은 바로 禪이 제시하는 해
탈일 수밖에 없다.


인도 본래의 불교는 삶의 가치에 대해  죽음의 가치를 숭상한다. 프로
이드의 언어를 빌린다면 그것은 에로스적 충동보다 타나토스적 충동이 
더 강하다. 불교가 말하는 멸집(滅執)이란 어떤 의미에서 모든 에로스
적 충동의 거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기로는  인도 문명의 
저변에는 죽음에 대한 예찬이 감돌고 있다.  열반이란 삶의 차별이 해
소되는 무차별이다. 무차별은 죽음이다. 열반이란 결국 죽음이다. 

삶이란 차별에서 오는 희·비의 연속이요 리듬이다. 허나 구극적 열반
이란 이러한 모든 삶의 차별을 무차별로 돌린다. 삶은 차별의  가치요, 
죽음은 무차별의 가치다. 산다는 것 그것은  결국 죽음을 향한 행진이
다. 삶 속엔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있다. 그런데 그 죽음의  그림자가 
인간에게 공포로서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근원적  충동으로서 
내면화된다. 그것이 열반이요, 대각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이러한 인도인의 심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국인
들은 죽음을 근원적 삶의 가치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유교는 죽
음을 거부한다.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일지언정 그것을 에포케(괄호)속에 
가두려 한다. 『내 어찌 삶도 다 알지 못하거늘, 죽음을 알 수  있으리
오?(未知生, 焉知死?)』라고 季路에게 답하는 孔子의 태도속에는 죽음
의 거부가 아닌 죽음을 배제한 삶의 가치만으로 삶을 해결해보려는 강
인한 윤리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유교의  仁愛를 거부하는 老莊조차도 
철저히 생명의 약동을 예찬한다.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故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老子 76장).


인간의 삶은 여리고 약한 것이지만, 그 죽음은 딱딱하고 강한  것이다. 
딱딱하고 강한 그 죽음의 세계, 그것은  전혀 노장의 가치세계에 긍정
적 요소로 반입되지 않는다.

禪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음의 가치를 삶의 
가치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다. 그것은 인도문명의  죽음의 평등이 중
국문명의 삶의 차등으로 전환되는 계기이다. 기억하는가? 천신만고 끝
에 천리길 만리길을 헤매고 달려온 사미승,  열반과 해탈의 길을 묻는 
말에 조주스님의 그 한마디는 무엇이었던가?

『아침 먹었느냐?』

아침 한 숟가락, 거기에 바로 대각의 모멘트가 깃들인다. 그것은  죽음
의 평등이 삶의 차등으로 전환되는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이다. 禪에
는 이런 말이 있다.

萬古長空,
一朝風月

만고의 변함없는 거대한 스페이스, 혼돈과 무차별의 시공! 한 아침에 
이는 바람 지는 달! 만고의 長空과 일조의 風月, 그것은 혼돈과 질서, 
무차별과 차별, 영원과  순간, 정적과 운동의  콘트라스트를 의미한다. 
禪의 모멘트는 이 콘트라스트를 초월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우리  대각
의 계기는 萬古의 長空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萬古의 長空에 
그려지는 一朝의 風月에 있다. 아는가? 그 유명한 바쇼오(芭蕉, 1644∼
1694)의 하이쿠(排句, 5·7·5 열일곱자)를!



후루이케야 (ふるいけや)
카와즈토비코무 (かわづとびこむ)
미즈노오토 (みづのおと)


적막한 옛 못
개구리 날아드네
물소리 퐁 당


「적막한 옛 못」은 萬古長空에  해당될 것이다. 「개구리  퐁 당」은 
一朝風月에 해당될 것이다. 적막한 옛 못은 열반이요 죽음이요 여여요 
적정이다. 그 적정을 깨뜨리는  개구리의 약동, 너울너울 원을  그리며 
퍼져가는 퐁 당, 그 퐁  당이야말로 삶의 계기들이다. 적막한 옛  못과 
청개구리 퐁 당에 또 무슨 차별심이 있으랴마는 이 하이쿠의 맛은  역
시 적막한 옛 못에 대한 청개구리 퐁 당의 콘트라스트에 있다. 

허나 그 콘트라스트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옛 못 쪽으로 가는 것이  아
니라, 퐁 당 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만물이 있는 그대로 비치는 거울
과 같은 옛 못 위에 던져지는 삶의 계기,  청개구리의 퐁 당이 근원적
으로 존재하지 않는 적막한 옛 못, 과연 그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열반
의 궁극적 의미가 될 것인가?


청개구리 퐁 당
조주스님 왈
아침 먹었느냐?


햄릿은 혼자 중얼거린다. 죽는 것은 자는 것,  다만 그뿐이다. 잠 한번
으로 일체의 고뇌를 다 끊어버릴 수 있다면 죽음이야말로 삶의 완성(a 
consummation devoutly to be wished),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잔다! 
잔다! 그런데 꿈을 꾸지 않는가? 정말 또  그것이 문제로군! 아, 인
간은 또 다시 그 꿈이 두려워 삶의 무거운 멍에를 걸머지고 지루한 인
생행로를 지속하고 있질 않은가?

햄릿에 있어서도 죽음은 해탈이요 열반이요 삶의 완성이다. 허나 인간
의 아이러니는 바로 그 열반에 대한 공포다. 여기에 인간의 최대 비극
이 있다.

여기에 삶과 죽음의 이중주가  있는 것이다. 열반이라는  꿈이 또다시 
우리에게 분별심을 자아내고 그 분별심은 우리를 겁쟁이로 만든다. 또 
다시 삶의 포로로 만든다. 죽음이라는, 해탈 그 자체가 해탈되는  곳에 
햄릿의 구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The rest is silence. 그것은 침묵이었
다.


O that this too too sullied flesh would melt,
Thaw and resolve itself into a dew,
Or that the Everlasting had not fix’d
His canon’gainst self-slaughter. O God! God!
How weary, stale, flat, and unprofitable
Seem to me all the uses of this world! (Ⅰ/ⅱ)


아아, 너무도 너무도 추잡한 이 육신,
녹고 녹아 한방울 이슬로 화해버렸으면 좋으련만,
아니면 영원한 주께서 자살을 금하는 계율이라도
제정하시지 않았더라면 좋았으련만,
아아, 하나님! 하나님!
세상만사 돌아가는 꼴이
나에게는 왜 이리도 지루하고,
맥빠지고, 김빠지고 부질없게만 보이는가?

맥베스는 외친다.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Macbeth Ⅴ/ⅴ)


인생이란 걸어가는 그림자,
자기가 맡은 시간만은
장한 듯이 무대 위서 떠들지만
그것이 지나가면 잊혀지는
가련한 배우일 뿐.
인생이란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
시끄러운 소리와 광포로 가득하지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이야기.






 [24] 제목 : 도올 『碧巖錄』 講話 제4화 -3

여기서 너무도 명백해진다. 셰익스피어를 지배하는  삶의 실체는 기독
교식 원죄나 고통이나 사랑이나 구원이 아니다. 그것은 근원적 무의미
성이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signifying nothing) 잡음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지배하는 정조는 기독교적 
세계관과는 무관하다. 우리는 너무, 서양을 단지 서양이라는 이유로 기
독교식으로만 이해하는 뿌리깊은 악습에 젖어있다. 

셰익스피어가 바라보고 있는 삶의 실체는  불교가 말하는 「空」이요, 
노자가 말하는 「無」다. 셰익스피어의 해결방식은  이 虛無의 초월이 
아니라 바로 그 虛無 속으로 융해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점을 셰익스
피어의 해설자 그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셰익스피어가 말
하고자 하는 세계관의 근원이 초월이  아닌 순환에 있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햄릿, 자기가 죽인 오필리아의 아버지 폴로니어스의 시체를 찾고 있는 
국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King. Now, Hamlet, Where’s Polonius?

Ham. At supper.

King. At supper? Where?

Ham. Not   where he   eats, but   where a  is  eaten.  A  certain 
convocation of politic worms are e’en at him. Your worm is  your 
only emperor for diet: we fat all creatures else to fat  us, and we 
fat ourselves for maggots. Your  fat king and your  lean beggar is 
but variable service―  two dishes,  but to one  table. That’s  the 
end.

King. Alas, alas.

Ham. A man may fish with the worm that hath eat of a king, and 
eat of the fish that hath fed of that worm.

King. What dost thou mean by this?

Ham. Nothing but  to show you  how a king  may go  a progress 
through the guts of a beggar.

King. Where is Polonius? (Ⅳ/ⅲ)



국왕 : 자아, 햄릿왕자, 폴로니어스는 어디 있느냐?

햄릿 : 식사중이옵니다.

국왕 : 식사중이라구? 어디서?

햄릿 : 먹는 장소가 아니라, 먹히는 장소에 있다구요. 지금 이 순간 한 
무더기의 정치꾼 같은 구더기새끼들이  한참 그를 파먹으면서  회의를 
열고 있답니다. 구더기라는 건, 먹는데 관해서는 천하에 일등 가는  제
왕입니다. 우리가 다른 동물들을  살찌우는 것은 웬 일인  줄 아세요? 
우리가 살찌기 위해서죠. 그런데 우리가 살찌는 것은 왜 그런 줄 아세
요? 그건 바로 구더기를 살찌우기 위해서랍니다.  살진 임금님과 여위
어빠진 거지는 하나의 구더기식탁에 올라앉는 종류가 다른 두  접시의 
요리지요. 결국 그렇게 한 식탁에서 끝나는 겁니다.

국왕 : 저런, 저런.

햄릿 : 사람이란 왕을 뜯어먹어 살이 찐 구더기를 미끼로 생선을 낚을 
수도 있고, 구더기를 먹어 살이 찐 생선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국왕 : 그건 또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햄릿 : 그저 임금님께서 거지 뱃속으로 화려한 행차를 하실 수도 있다
는 것을 보여드리려는 뜻밖에는 없습니다.

국왕 : 폴로니어스는 어디 있느냐?


구더기란 중앙토(土)요, 중앙토란 五行의 근원이요, 그것은 부숙지기운
(腐熟之氣運)이다. 토란 썩힘이요, 썩힘은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다.  그 
토의 주체는 구더기요 미생물이다.



From ashes to ashes!

흙에서 흙으로!

그것은 모든 순환론적 세계관의 정형이요, 꾸밈없는 인간의 최종적 진
실이다. 여기에 천당이니 지옥이니, 육신의 동굴이니 태양의 이데아니, 
죽음이니 부활이니, 아무리 이런 거짓말을 나열해본들, 그것은 모두 종
교의 속임수요 나약한 인간의 허울이요, 허약한 개념의 장난이요, 공허
한 상상의 굴레일 뿐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하려는 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이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기독교적 삶의 가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그의 위대한 혼을  혹사시
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한 광대의 
잡음과도 같은 생명의 순환이요, 순환론적 세계관이요, 오늘 우리가 말
하는 에코시스템(ecosystem)의 과학이다. 

그는 그 이상을 인간에게서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그의 비
극이다. 이러한 햄릿의 공안은  햄릿이 영국으로 유배되어  가는 길에 
해적선을 만나 죽음을 면하고 다시 덴마크로 돌아왔을 때 우연히 목격
하게 된, 묘지에서 오필리아의 무덤을 파고 있는 두 광대와 나눈 대화
에서 그 극치에 이르게 된다. 다음은 5막 1장에  나오는 두 광대의 대
화다.



Other. Who  builds  stronger than  a  mason, a  shipwright,  or a 
carpenter?

Grave. Ay, tell me that and unyoke.

Other. Marry, now I can tell.

Grave. To’t.

Other. Mass, I cannot tell.

Grave. Cudgel thy brains no  more about it, for your  dull ass will 
not mend his  pace with  beating. And  when you  are asked  this 
question next, say 「A grave-maker」. The houses he makes lasts 
till doomsday. (Ⅴ/ⅰ)



묘지일꾼 2 : 석수보다도,  조선공보다도, 목수보다도 더  튼튼한 것을 
짓는 자가 누구냐고 했지?

묘지일꾼 1 : 그래, 그 대답을 한번 해봐. 대답하면 일을 좀 쉴 테니까.

묘지일꾼 2 : 제기, 이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묘지일꾼 1 : 그래 말해봐.

묘지일꾼 2 : 제기랄, 정말 모르겠는 걸.

묘지일꾼 1 : 이제 그 문제로 더 이상 자네 대가리를 짜내지 말게. 어
차피 자네 같은 멍청한 당나귀, 채찍질한다고  발걸음이 더 빨라질 리
가 없어. 다음에 또 이런 질문을 받거든, 『무덤파는 일꾼』이라고  말
하게. 그가 짓는 집은 최후의 심판날까지 견딜 테니까!






 [23] 제목 : 도올 『碧巖錄』 講話 제4화 -4

인간이 짓는 집, 그것은 문명의  전부다. 석수, 조선공, 목수들이  짓는
행위, 그것은 문명의 건설, 그것은 인간의 유위(有爲)의 장난이 보여주
는 가장 보편적 형태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인간의 최후의 집이 아니
다. 그것은 유위의 허상이다. 석수, 조선공, 목수가 짓는 집보다  더 튼
튼한 집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덤이다. 

영원히 견디는 집, 영원히 인간이 귀속되는 대지의 자궁, 구더기의  왕
국, 모든  인간적 가치의  종국적 형태다.  최후의 심판날까지  견디는 
집! 그것은 죽음의 집이다. 그것은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가건물이 
아닌 인간의 영원한 집이다. 기독교의 천국이라고 하는 허상을 벗어난 
셰익스피어의 진실 속에 바로 서구인의 비극적 정조가 가장  진실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우피치박물관의 한 소장품으로 매몰될 그런 예술가가 아
니다.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이미 헨리8세(1491∼1547)가 천일의 앤  불
린(Anne Boleyn, 1507∼36)과 결혼하기 위하여 지상에서 하늘의 권위
를 가졌던 로마교황청과 결별하고 앵글리칸 처치를 세우는가 하면, 그
에 반대했던 철인 토머스 모어의 대가리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표독했던 앤의 딸 엘리자베드(1533∼1603, 1558∼1603 재위)가  스페인
의 무적함대를 쳐부수는, 인류문명사상 인간이성이  가장 개명한 로맨
스를 구가했던 그러한 시기였다. 

에이번의 시인(the   Bard of  Avon),  에이번의  백조(the Swan   of 
Avon),     1564년     4월26일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번
(stratford-upon-Avon)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고, 바로 태어
난 곳에서 쓸쓸히 소리없이 묘비에 이름하나 남기지 않고 1616년  4월 
23일 유명을 달리한 셰익스피어라는 역사적 인물에 관해서 우리는  놀
랍게도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갈릴리 촌놈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 우리가 별로 아는 바가  없
다면 똑같이 이 스트라트포드의 시골 신사, 두 번째로 좋은 침대 하나
를 마누라에게 유산으로 남긴다는 쪼잔한 유서 한쪼가리를 남기고  죽
은 이 촌놈에 대하여도 정말 아는 바가 없다.  허나 그가 인류에게 찬
란한 4대비극의 언어를 선사한 그 시대는 엘리자베드 시대의 영화(the 
glory of Elizabethan Age)가 눈부신 향기를 발하고 이제 짙은 낙엽의 
홍조로 물들어 가던 그때였다. 그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로맨스의 절정
을 구현한 혼이었다.

이 세상의 어느 집보다,  석수·조선공·목수가 짓는 어느  집보다 더 
튼튼한 집, 如如의 自然!  거기에는 분명 죽음·열반에  대한 예찬이 
숨어 있다.

인도는 내주어도 셰익스피어는 내줄 수 없다.

인도인이 들으면 참으로 오만불손한 제국주의자들의 혐오스러운  발언
이겠지만 분명 이 말은 구체적 맥락이  있다. 죽음을 예찬하는 셰익스
피어의 세계관에는 이미 인도문명이 구가하고자 하는 삶의 본질이  내
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가치가  셰익스피어보다 못하다는 얘기
가 아니라 인도문명이 세계인들에게 자랑하고픈 그러한 본질적 가치가 
이미 셰익스피어의 내면에 물들어  있다고 하는 영국인들의  자만감은 
분명 허언만은 아닌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도 결국 셰익스피어가 교육한 인물이 아니겠는가?  그래
도 영국놈들은 인도지배 3백년에 마하트마 간디라도 길러놓았는데  왜
소한 일본놈들은 조선지배 30년에 무얼  길러 놓았나? 참으로 쪼잔한 
새끼들이다!



묘지일꾼이 무덤 파는 일을 시작한 바로 그 날은 햄릿이 태어난  날이
다. 그리고 그 날은 바로 햄릿선왕이 포틴브라스를 쳐부순 날이다.  그
리고 바로 햄릿이 죽는 그날, 햄릿이  물려받기로 했던 왕위가 포틴브
라스의 아들에게로 돌아간다. 여기에 불교적인 윤회의 싸이클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윤회는 공허한 혼령만의 외로운 윤회가 아니라  사람이 
구더기를 살찌우고 구더기는 다시  사람을 살찌우는 그러한  구체적인 
대지의 氣의 윤회다. 햄릿선왕의 유령도 기독교적인 유령이 아니다. 그
것은 朱子가 말하는 鬼神論의  神이요, 魂魄論의 魂이다. 그것은  鬼의 
자리를 갑자기 잃어버린 神이요, 魄의 자리를 갑자기 강탈당한 寃魂이
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언어에는 인도문명과 중국문명이 공존한다. 그것
은 셰익스피어가 인도철학을 습득하고 중국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이 아
니요, 로마의 정신적 압제에서 해방된  엘리자베단 에이지(Elizabethan 
Age)의 인간본연의 자리다. 

기독교라는 억압과 고통의 수난 속에서 갈망하는 구원의 빛에 대한 염
원이 아니라, 세계가 하나로 해탈된 대영 제국주의 르네상스의 정신이
다. 셰익스피어의 비전은 초월이 아니요 내재요 생명의 순환이다. 종교
의 구극적 과제는 구원(Salvation)이 아니라 해탈(Enlightenment)이다.


햄릿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비극과  그의 죽음을 알고 이해하고  있
다. 그의 죽음은 의도된 필연일 뿐 우연이 아니다. 오직 오필리아만 자
기의 운명을 모른다. 오직 그만이 시끄러운  잡음을 남길 뿐인 어리석
은 광대, 이디어트, 백치일 뿐,  오필리아는 결코 『햄릿』의 여주인공
이 아닌 한 단역일 뿐이다. 

존재와 비존재를 초월하는 저 검은 침묵의 위대성을 드러내기 위한 한 
방편일 뿐이었다. 햄릿은 혼자 죽지 않는다. 모든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그러하듯이 주인공의 죽음은 주변 모든 사람의 죽음을 동반한다. 햄릿
의 죽음은 같이 죽는 죽음이다. 「투비」의  죄악을 다 함께 묻어버리
는 「낫 투비」의 해탈이다. 햄릿의 죽음은 해탈이요 대각이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의 출발이다. 그것은 비극과 생명의 이중주였던 것이다.


아는가? 그대는, 『햄릿』이 쓰여진 그때, 1601년! 그 즈음  동인도회
사가 설립되고, 써  월터 랄레이(Sir  Walter Raleigh, 1554?∼1618)가 
처녀여왕 엘리자베드의 처녀성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미국땅 최초의 영
국 식민지 버지니아를 개척하여 엘리자베드 여왕에게 헌납한 사실을! 

엘리자베드 시대의 모험과 낭만과 자유와 회의정신을 대변하는 탐험가
며 작가며 여왕 엘리자베드의 애인이기도 했던 랄레이, 화려한 외투와 
파이프를 물고 저 남아메리카의 구이아나(Guiana)까지 끝없이  끝없이 
항해를 계속했던 로맨티스트,  대담하게 이야기하고  회의주의 철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수학에 심취하고,  항해학·화학·의학의 대가, 무신
론의 선두에 섰던 랄레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에까지 풍자되는 인물로 
등장하는 모험의 정신, 끝끝내 제임스 1세의 미움을 사 반역의 누명을 
쓰고 런던 타워에 감금되었다가 그 목에 시퍼런 도끼의 칼날이 떨어지
고 말았던 그 랄레이와 엘리자베드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생각할  때마
다 나는 고요히, 나를 감동시킨 20세기의 哲聖 화이트헤드가 『심볼리
즘』이란 책의 冒頭에 헌사로 바친 그 은빛 찬란한 문장을 생각한다.

수학자·물리학자로서 생의 대부분을 케임브리지 대학과 런던  대학에
서 보냈던 화이트헤드(A.  N. Whitehead,  1861∼1947)가, 철학교수로 
변신하여 미국 하버드대학으로 초빙되어  간 것은 1924년,  그가 63세 
되던 해였다.   이듬해 1925년  『과학과  근대세계(Science  and the 
Modern World)』라는 불후의 명저를  발표하면서 미국의 지식사회에 
충격을 던진다. 

미국에 온 지  만 3년 되던  해, 화이트헤드는 미국의  버지니아 대학
(University of Virginia)에서 「상징주의」에  관한 일련의 강연을 부
탁받고 1927년 4월 18일, 영국의 노신사  화이트헤드는 매사추세츠 케
임브리지를 떠나 난생 처음 버지니아주의 주경을 넘고 미국의 수도 워
싱턴 디씨, 삼백년전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하여 지금 워싱턴메모리얼
의 첨탑이 국회의사당, 에이브라함 링컨의  거대석상과 함께 펼쳐지는 
광활한 장관의 충격을 체험한다. 그때 그는 이렇게 썼다.


DEDICATION

These chapters  were written  before I  had seen  the Washington 
monument which faces the Capitol in  the City of Washington, and 
before I had enjoyed the experience of  crossing the borders of the 
State of Virginia―a great experience for an Englishman.

Virginia, that symbol for romance throughout the  world of English 
speech:Virginia,  which  was  captured  for  that  world  in   the 
romantic period of English history by  Sir Walter Raleigh, its most 
romantic figure: Virginia, which  has been true  to its origin  and 
has steeped its history in romance.

Romance does  not yield  unbroken happiness:Sir  Walter Raleigh 
suffered for   his romance.  Romance  does  not creep   along the 
ground; like  the memorial  to Washington,   it reaches upward―a 
silver thread uniting earth to the blue of heaven above.



April 18, 1927.
Whitehead

헌 사

여기 이 『심볼리즘』의 章들은 워싱턴 디씨의 국회의사당을 마주보고 
있는 워싱턴기념탑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기  전에, 그리고 내가 버
지니아의 주경을 건너는 체험을 향유하기 전에  쓴 것이다. 그 체험이
란 나, 한 사람의 영국인에게는 참으로 위대한 경험이었다.

버지니아! 그것은 영어를 말하는 사람들의 세계에 있어서는 로맨스의 
상징이다. 

버지니아! 그것은 영국역사의 낭만적인 시대의 가장 낭만적인 인물이
었던 써 월터 랄레이에 의하여 세상에 그 자태를 드러냈다.

버지니아! 그것은 그 원래 자태의 의미에 충실하게 인류 역사에 있어
서 찬란한 로맨스 속으로 속으로 젖어들어갔다.

로맨스! 그것은 결코 깨질 수 없는  행복을 생산하지는 않는다. 월터 
랄레이경은 그의 로맨스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로맨스는 땅만
을 기어다니지는 않는다. 로맨스는 저 워싱턴의 기념첨탑처럼 위로 위
로 뻗어 올라간다. 이 땅을 저기 저 드높은 하늘의 푸르름으로 연결시
키는 한 줄기 은빛 실처럼!



일천구백이십칠년 사월 십팔일

白頭


로맨스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움에 대한 동경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다. 인간 관념의 모험이요, 신체의 항해다.

禪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체를 거부하는 끊임없는 권위에 대한 도전
이요, 이성의 오만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이요, 초월의 고매한  정신이 
저지르기 쉬운 허구에 대한 반역이다. 禪이란  무엇인가? 열반의 꿈마
저 거부하는 햄릿처럼, 이 땅(地)의 현실을 저기 저 드높은 하늘(天)의 
푸르름으로 연결시키는 한 줄기 은빛 실처럼, 끊임없이 인간을 고양시
키는 깨달음, 그 깨달음 그자체인 것이다.



第四則 德山到噴山


垂示云 : 靑天白日, 不可更指東劃西 ; 時節因緣, 亦須應病與藥. 且道, 放
行好? 把定好? 試擧看.

제4칙 덕산, 위산에 올라

 청천백일, 푸른하늘 대낮에는 동쪽을  가리키거나 서쪽을 가리키거나 
할 수 없다. 시절인연, 인연이 맞는 결정적인 시기에도 반드시 병에 따
라 약을 주어야 한다. 말해보라! 풀어놓는 것이 좋은가? 조여 단속하
는 것이 좋은가? 다음 덕산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자!

 여기 「靑天白日」이라 함은,  오늘 우리가 宋代白話의  用法을 그냥 
일상용어에서 쓰고 있듯이 말 그대로다.  그런데 이 구름 한  점 없는 
대낮, 청천백일이란 말은 인간의 깨달음의  정신세계에 있어서는 어떤 
동 서 남 북의 구분이 갈 수 없는  무차별의 절대경지를 일컬으며, 그
것은 다음의 「時節因緣」이라는 말과 대비되는 것이다. 시절인연이라 
함은 봄은 봄다워야  하고 여름은 여름다워야  하는 것이니  「靑天白
日」이라는 말과는 좀 대비되는 「상대성」 「상황성」의 뉘앙스를 지
닌다. 즉 깨달음의 경지에는 반드시 이러한 두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청천백일의 절대성이요, 하나는 시절인연의 상대성이다. 청천백
일에는 동을 가리키거나 서를 가리킬 필요가  없다. 즉 상대적 언어의 
갈등에 인간을 현혹시키거나 一曲에 얽매이게 할 수가 없다. 청천백일
의 正中央이야말로 방위가 사라지는 인간의  無碍境이기 때문이다. 허
나 인간의 아이러니는 이러한 청천백일의 절대경만으로 깨달음의 삶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천백일과 더불어 시절인연이 반
드시 共存하는 것이다. 

시절인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는 반드시 병에 따라 약을  주
어야 하고 체질에 맞추어 用藥의 妙를 기해야 할 것이다.

應病與藥! 이것이 곧 佛家에서  말하는 方便이다. 이  방편의 묘미는 
어디에 있는가? 깨달음의 역정에 있어서 인간을 방치할 것인가? 규율 
속으로 엄하게 단속할 것인가? 결국 인간의 삶은 리듬이다! 이  리듬
에 따라 인간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것, 이것이 바로 大禪師들의 
교육방법이다.

「放行」이란 스스로 공부하고 깨닫도록 풀어준다는 의미다. 「把定」
이란 「把住」라고도 하는데 규범을 따르게  만든다, 규제한다는 뜻이
다. 『∼好∼好』란 구문은 『…하면  좋을 것인가, …하면 좋을  것인
가?』 즉 『either∼or』의 백화체용법이다. 그런데  이 수시는 다음의 
본칙 내용을 알게 되면 너무도 훌륭한  도론적 암시임을 깨닫게 된다. 
과연 다음 얘기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22] 제목 : 도올 『碧巖錄』 講話 제4화 -5

기억하는가? 「德山棒, 臨濟喝」이란 유명한 이야기를! 이 말은 덕산
이나 임제나 모두 求道의 자세에  있어서 매우 맹렬한 정열과  준엄한 
기준을 가지고 산 사람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德山宣鑑(780∼865)
과 臨濟義玄(?∼867)은 동시대인으로 서로 교분도 있었지만 이들의 계
보는 慧能의 제자 중에서 후대에 크게 종풍을 선양한 두 제자, 靑原行
思와 南嶽懷讓의 각기 다른 法嗣를 잇고 있다. 

청원행사 아래 법통의 대표적 인물로 덕산을  들고, 남악회양 아래 법
통의 대표적 인물로 임제를 들어, 이 쌍벽의 종풍을 棒과 喝로 특징짓
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4칙은 덕산과 임제 이야기가 아니라,  덕산
과 남악회양하의 또다른 거맥 噴仰宗의 개조 噴山靈祐(771∼853)의 역
사적 해후 장면을 그리고 있는 매우  계발적인 이야기다. 이들의 계보
를 독자들이 알기 쉽도록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德山 아래서 雪峰義存이 나왔고, 설봉의존의 문하에서 雲門宗의  개조, 
雲門文偃이 나왔고, 운문 아래 계보에서 설두가 나왔으니,  설두스님에
게 이 德山의 存在는 소홀히 할 수 없는 家風과도 관련이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德山은 드디어 4칙에 등장한다.


德山! 그는 매우 맹렬한  사람이다. 기개가 항상  충천하고 에너지가 
남아돌아가 어쩔 줄을 모르는 사나운 맹수와도 같다. 만화가 이두호선
생이 그린 임꺽정이 연상되기도  하는 그런 인물이다.  어찌보면 매우 
촌스럽기도 한데 어찌보면 그만큼 우직하고 진솔하고 구도에 대한  집
념과 실천이 강하다. 

그리고 덕산을 생각하면 난 되다 만 우리 나라 스님 가운데 이 덕산아
류가 무지하게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德山선감은 지금의 사천성 
簡州 劍南 사람인데 俗姓은 周氏였다. 사천요리가 맵기로 유명하고 한
국사람들 입맛에 잘 맞는데 이런 탓에 덕산의 기질과 한국인의 기질이 
너무도 기분나쁘게 통하는 데가 많을지도 모른다. 허허!

덕산은 아주 어려서(卯歲) 출가하였고 아주 어려서 이미 계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원래 律藏을 精究하였고 性相의 諸經 旨趣를 관통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주 『金剛經』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항상  『금강경』
을 강의하였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속성을 따라 별명짓기를 「周金
剛(Diamond Chou)」이라 하였다. 

덕산이 『금강경』에 미쳤다는 얘기는 덕산의 종풍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가 후대에 자신이 금과옥조처럼 아끼던 『금강경소초』를 
태워버렸다고는 하지만, 『금강경』에 내재하는 空사상, 그리고 부정의 
정신은 그의 일생을 지배하는 맹렬한 아이코노크라스틱한  우상파괴주
의적 경향과 일체의 이원성을 거부하는 철저한 무아사상의 기질을  형
성하는 것이다.

그는 북방사천에서 律藏의 정통을 지키면서 남방에서 禪席이 성행한다
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르기를 : 『아
니 진리에 뜻을 둔 자가 출가를 하게 되면 천겁이 걸려야 부처님의 威
儀를 배울 수 있고, 만겁이 걸려야 겨우 부처님의  細行을 배울 수 있
고 그렇게 노력을 해도 成佛의 길은 묘연한데,  뭐라구? 그 남방의 악
마 같은 새끼들이 감히 막바로 人心을  가리키고, 본성을 깨달으면 곧
바로 성불한다구 떠들어! 내가 그놈들 소굴로 뛰어들어가 그  종자새
끼 씨를   말려버리겠노라. 그리하여  내가 부처님의   은혜를 갚겠노
라!』(出家兒, 千劫學佛威儀, 萬劫學佛細行, 不得成佛. 南方魔子, 敢言
直指人心, 見性成佛. 我當佑 其窟穴, 滅其種類, 以報佛恩.)

그래서 드디어 덕산은 『靑龍疏梢』를 멜빵에 걸머지고 蜀나라를 떠나 
당대의 유명한 선승, 龍潭崇信이 주석하고  있던 호남성 澧陽지역으로 
오게 된다. 동정호로 흘러들어가는  예강이 흐르는 澧州  어느 路上에
서! 허세로 가득찬 덕산, 아무리 에너지가 넘친다지만 배꼽시계는 돌
아가는 법, 지극히 배가 출출하여 침을 꼴딱꼴딱 삼키고 있던 한낮, 자
글자글 빈대떡을 부치고 있는 노점상 한 노파의 모습이 안계에 들어오
는 것이 아닌가? 

성큼 다가설 수밖에! 아 참! 판본에 따라 여러 다른 얘기가  있지만 
『청룡소초』라 함은 『금강경』에 대한 덕산 자신의 주석을 단  역저
라는 얘기도 있고, 일설에는 덕산이  존숭하던 청룡법사의 『金剛經』
소초라는 얘기도 있다. 원오는 평창에  그냥 『금강경疏梢』라고만 해 
놓았다. 청룡이면 어떻구, 백호면 어떻구, 다이아몬드면 어떻구 차돌멩
이면 어떠냐? 결국 개구란데! 且喜沒交涉.


노파, 덕산의 멜빵에 담긴 짐을 가리켜 이르기를 : 저 거추장스럽게 메
고 다니는게 뭔고?(所載者是什匿?)

덕산 대답하기를 : 청룡소초니라.

노파, 이르기를 : 소초라! 뭔 경을 해설한 게요?(講何經?)

덕산 왈 : 금강경이니라(金剛經.)

노파 왈 : 금강경이라구? 내 일찍이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는데 니가 
만약 대답을 하면 내 점심을  거저 주마. 대답을 못한다면  딴 곳으로 
꺼져라!(我有一問. 彬若答得, 施與點心, 若答不得, 且別處去. )

덕산 왈 : 어서 씹어보아라!

자아! 여기서 짧은 막간을 이용하여 해설해야 할 한 마디가 있다. 우
리는 런치를 점심(點心)이라고 하는데 중국말에서  점심이란 朝飯晝食
을 전후로 해서 먹는 小食을 말하여  우리말로 간식(間食)이라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 간식의 의미가 점심(點心)이 되었을까? 이 점심
이라는 말은 唐나라 때 생겨난 말인데 한의학적 오장육부 세계관을 알
지 못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그 뜻인즉, 『마음(心)을 찍는다(點)』 『마음에 점을 찍는다』 『마음
을 새롭게 한다』 『마음에 불을 밝힌다』  등등의 의미가 있다. 배가 
출출할 때 앗쌀하게 간식하나 드는  것을 우리 동방인들은 축  늘어진 
마음에 기운을 돋우는 리프레셔(mind-refresher)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心도 오장육부 중의 하나요,  우리가 먹는 음식은  오장육부에 골고루 
퍼지는 氣가 된다. 그래서 폐·비·간·신을 총괄하는 마음(心)을 點한
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이 「점심」이라는 쌍관(雙關, pun)의  말로 노
파의 질문공세는 가열된다.

『아, 이눔아. 금강경에 이런 말이 있지 않디.  「과거의 心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心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心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그대는 뭔 心을 點하겠다는 게뇨?』 (金剛經道 : 過去心不可得, 現在心
不可得, 未來心不可得. 未審上座點那個心?)

아이쿠! 한방 된통 처먹었구나! 덕산,  아무말도 못하고 머뭇머뭇거
리니까, 노파 점잖게 崇信이 거처하는 龍潭(원래 지명)의 암자 쪽을 가
리키며 하시는 말씀이 : 『용담에게나 가 보아라!』

불쾌하지만 어찌하랴! 한방 먹은 덕산, 점심도 못 얻어먹고 터덜터덜 
성큼성큼 용담에 당도하여 법당 대문을 발로 콱 걷어차며 말하기를 :

『내 오랫동안 용담에 오기를 갈구하였노라. 드디어 나 여기 당도하였
다. 헌데 연못(潭)도 안 보이고 용(龍)도 얼씬거리지 않는구나!』 (久
嚮龍潭, 及乎到來. 潭又不見, 龍又不現!)

용담화상, 법당 병풍 뒤에 몸을 숨기고 크게 울리는 소리로 말하기를 :

『네 이놈! 니가 바로 지금 용담에 서 있느니라!』(子親到龍潭.)

아이쿠! 또 한방 먹었구나. 덕산은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당분간 용
담에 유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일단 절을 하고 물러났다.

이날 밤, 덕산은 밤늦게까지 용담스님 방에서 시립(侍立)하고 서  있었
다. 밤이 깊자, 용담스님 말씀하시기를 :

『야경이 깊었는데  왜 네  방으로 내려가지  않느냐?』(更深, 何不下
去?)

이에 덕산은 용담스님께 안녕히 주무시라 하고 문을 열고 나갔으나 곧 
되돌아 들어왔다.

『왜 돌아왔느냐?』

『문 밖이 어둡습니다.』 (門外黑.)

이때였다! 용담스님은 종이를  감아 만든 촛불을  켜서(點) 덕산에게 
건네주었다. (潭遂點紙燭度與山.) 이때였다!  덕산이 바로  그 촛불을 
받으려 할 때, 용담은 입김을 확 불어 그 촛불을 꺼버렸다. 이때였다! 
덕산은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大悟를  한 것이었다. 덕산은 일어
서서 용담스님께 큰절을 올리었다. (山方接, 潭便吹滅,  山豁然大悟, 便
禮拜.)

용담이 물었다 : 그대는 뭘 봤다구  나에게 큰 절을 올리는고?(子見個
甚匿便禮拜?)

덕산은 이에 맹세한다 : 저는 지금 이 순간부터 하늘 아래 큰스님들의 
말씀을 의심치 않겠습니다.(某甲自今後, 更不疑著天下老和尙舌頭.)

律宗에서 자라 『금강경』에 달통하고 「直指人心, 見性成佛」을 외치
는 南方禪宗의 마귀 같은 새끼들 씨를 말려버리겠다고 호랑이굴로  뛰
어든 맹렬한 사천의 시뻘건 고추와도 같은  사나이, 덕산! 그 덕산이 
禪宗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이었다. 

껍데기 속에서 꿈틀거리는 병아리, 바로 그 꿈틀거림이 있었기 때문에 
어미 닭의 한 방 쪼음으로 드디어 껍질을 破해버리고 光明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데 과연 이  덕산과 용담 간 
촛불의 오감에 내재한 논리적 맥락을 독자들은 파악했는가?

우 징시옹(吳經熊)선생은 이 장면을 해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In the present instance, the night was  dark enough, but it became 
infinitely darker  after the  candle  was lit  and blown  out  again. 
When all external lights were  out, the inner light  shone in all its 
effulgence.


바로 그 순간, 그 밤은 이미 충분히 어두웠다. 그러나 촛불이 켜졌다가 
다시 꺼졌을 땐 그 밤은 무한히 더 새카만  칠흙이 되었던 것이다. 모
든 외면적 불이 꺼지고 덕산 마음에 내면의 불꽃이 그 찬란한  광채를 
발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우 징시옹先生은 『老子』 1장의 「玄之又玄, 衆妙之門(어둡
고 또 어두워라. 그 어둠이야말로 모든 묘한 이치가 쏟아져 나오는 문
이다)」을 인용하고 있다. 해석은 자유다. 또 여기 우선생의 말과 老子
의 말을 어떻게 연결시키는가에 따라 그 내면적 의도는 또 하나의  해
석학적 회전을 거칠 수도 있다. 허나  내가 생각기로 우선생의 해석은 
너무 피상적이다.

이 기나긴 에피소드, 공안 중의 공안이라 할 덕산과 용담의 해후 장면
은 하나의 언어의 펀(pun)을 계속 주선(主線)으로 끌고 나간다. 그것은 
바로 노파의 말에서부터 암시되었던 「點心」 즉 『마음을 띠엔(點)한
다』라는 한 마디다. 마음을  띠엔한다. 띠엔할 마음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미 『금강경』의 구절을 인용한 노파의 말에 이미 그  결론
은 나와 있었다.

우리는 촛불을 켠다는 것도 「점화한다(點火)」라는 표현을 쓴다. 밥을 
먹는다, 생명의 양식을  먹는다, 해탈의  경지로 들어간다,  그 모두가 
「점심」이다. 그런데 문제는 띠엔(점)할 마음이 근원적으로  부재한다
는 데 禪의 不立文字, 直指人心의 根本義가 있다.

우선생의 해석은 촛불이 일단 켜졌다가 다시  꺼졌을 때 느끼는 적막, 
그 외계적 어둠의 변화에 초점이 놓여  있다. 즉 老子의 「玄之又玄」
의 해석이나 용담의 「吹滅」이나 모두 「어둠의 예찬」에 그  주안점
이 놓여 있다. 허나 중국선의  포인트는 여기 어둠 그  자체의 예찬에 
있지 않다. 이 公案은 그 핵심이  「점심」에서 「심」쪽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점」쪽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두웠으니 밖으로 나가라!』 나가긴 어딜 나간단 말입니까?  밖은 
어둠, 無明의 세계! 어둠! 그것은 카오스의 세계, 그것은 예찬의  대
상이 아니요, 덕산에겐 공포의 대상이요,  두려움의 대상이다. 밖이 어
둡습니다. 전 밖으로 나가기 싫어요.  왜 저를 밖으로 내치세요?  스승
님! 전 無明의 어둠이 싫단 말예요. 

저에게 빛을 주세요! 네! 저를 밝게 해주세요. 밝음을 주세요.  진리
의 횃불, 진리의 등불, 스승님! 바로 傳燈을 해주십시오! 그래  빛을 
달라구? 그래 빛을 주마! 용담은 덕산에게 촛불을 건네주었고 덕산이 
받으려고 하는 그 순간 용담은 촛불을 꺼버렸다.

禪은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 아니다. 나가자! 독재와 싸우자! 진리의 
횃불을 밝히며 이 어두운 역사의  현장으로 나가자! 횃불을 들고  마
칭! 꽁꼬르드로! 금남로로! 이러한 진리의 횃불 때문에 그  얼마나 
많은 혁명의 마치가 이루어졌고 순교의 피가 얼룩졌나? 문제는 이러한 
혁명의 마치를 禪이 거부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禪은 이 세상의 어느 진리보다도 혁명적일 수 있다. 허나 禪이 묻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진리라고 생각하고  믿는 바로 그 횃불, 
그 자체의 반추요 부정이다. 바로 우리가  안일하게 이 세상의 어둠에 
대하여 밝음이라고, 빛이라고 믿고자하는 바로 그 마음, 바로 그  마음
을 지워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마음을 꺼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용담이 촛불을 
꺼버린 순간이었다. 촛불이라는 깨달음의 방편, 그 방편을 꺼버려야 하
는 것이다. 그 순간 바로 幽(어둠)와 明(밝음)의 2원론이 해소되어버리
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를 초월한 선승들의 언어다. 그 노파의 첫
마디가 무엇이었던가?

『넌 뭔 마음을 띠엔 하겠다는 게냐?』

이것이 바로 그 찬란한 唐文明의 언어,  영국 엘리자베드 시대의 햄릿
이 「침묵」이라 부른, 존재와 비존재의 이원성이 초월되는 그러한 언
어다! 이러한 唐文明 언어의 한 가닥이 바로 우리 나라 羅僧  元曉의 
언어이기도 했던 것이다.




 [21] 제목 : 도올 『碧巖錄』 講話 제4화 -6

다음 날, 용담스님은 법석에 올라 좌중을 향해 수어를 내렸다 :

『여기 좌중에 한 새끼가 있는데 그놈 이빨은 마치 칼이 수없이  꽂힌 
수풀과도 같고, 그 놈 아구창은 시뻘건 피로 가득찬 대야와도 같다. 대
가리 한방 되게 얻어맞고도 한번 뒤돌아 봄이 없이 걸어간다면, 그 놈
이 어느 날엔가 외로운 봉우리 정상에다 나의 道를 세울 것이다.』(可
中有個漢, 牙如劍樹, 口似血盆, 一棒打不回頭,  他時異日向孤峰頂上立吾
道去在.)

이에 덕산은 자기가 평생 애지중지하던 『금강경청룡소초』를 법당 앞
에 모시어 놓고 횃불을 켜 들고 외치기를 :

『모든 현묘한 언론을 다 궁구하여도 그것은 거대한 허공의 우주에 한 
털오라기를 놓는 것 같고, 모든 세상의 기틀이 되는 핵심적 이치를 다 
갈파하여도 그것은 거대한 검은 계곡에  물 한방울을 튀기는 것과  같
다.』(窮諸玄辯, 若一毫置於太虛 ; 竭世樞機, 似一滴投於巨壑.)

그리곤 『소초』를 불살라버리고 만다. 『달과 6펜스』! 그 주인공은 
평생 그린 그 위대한 그림들과 함께 자기를 불살라버리지 아니했던가? 
달과 6펜스! 그것 또한 하나의 공안 아니었던가?

이렇게 해서 득도한 덕산, 龍潭의 法을 嗣하고, 다시 噴山(湖南省 寧鄕
縣에 있는 噴水의 발원지)의 靈祐에게로 찾아간다. 바로 우리의 제4칙
은 龍潭의 法을 이은 덕산이  噴仰宗의 開祖 영우와 해후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덕산이 다시 澧陽으로 돌아와 住한 것이  30년, 武宗이 일으킨 破佛의 
변을 조우하여 그 난을 獨浮山 石室에서 피한다. 大中초년(847) 호남성 
武陵의 太守 薛廷望의  청으로 무릉의 德山(동정호  부근)에 住하면서 
宗風을 크게 떨쳤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德山이 된 것이다. 唐  成通6
년 12월3일 示寂하니, 그의 세수 86이요,  법랍 65였다. 見性大師라 諡
하다.

그가 임종 직전에까지 남긴 공안을 보면 참으로 덕산이 얼마나 철저한 
부정론자요 非二元論者였는지 알 수 있다. 임종이 가까운 덕산은 병이 
들어 몸이 아팠다. 어느 스님이 짓궂게 아픈 덕산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 아직 한번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還有不病
者也無?)

『아암, 있구 말구』(有.)

『어떤 사람이 한번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입니까?』(如何是不病者?)

이 때 덕산은 큰 소리로 아픔을 나타내는 의성어를 내뱉는다.

『아이야! 아이야 !』(阿口耶! 阿口耶!)


이 마지막 한마디는 무슨 뜻인가? 결국 자기처럼 아픈 자야말로  아프
지 않은 자라는 평소 자신의  철학을 밝힌 것이다. 아픈  자와 아프지 
않은 자의 이원론은 그의 죽음과  더불어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
다. 덕산은 이어 모인 좌중에 다음과 같이 마지막 법문을 했다.


공(空)을 어루만지며
그 소리를 들으려한들
그대들의 심신만
피곤케 할 뿐
꿈과 깸이
모두 아님을 깨달을진대
그 무슨 일이 있으랴


帝空追響
勞汝心神
夢覺覺非
竟有何事


이 말을 마치고 편안히 앉더니, 앉은 채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맹렬
한 덕산의 조용한 최후였다.

마지막으로 「덕산방, 임제할」의 쌍벽, 덕산과 임제의 이야기를  하나 
더 할까 한다.

덕산은 어느 날 대중들에게 다음과  같은 수시를 내린다 :  『난 말이
다! 올바르게 얘기하는 놈에게도 방망이 30방이요, 올바르게 얘기 못
하는 놈에게도 방망이 30방이니, 그런 줄 알라!』(道得也三十棒, 道不
得也三十棒 )

임제가 이 말을 전해듣고는 그의 친구 낙포(洛浦)에게 이른다 :

『야, 너 말야, 덕산 그놈한테  가서 왜 올바르게 말을 했는데  30방을 
얻어 맞아야 하는지 그걸 좀 물어봐라. 그러면 그놈이 분명 널 때리려 
할 것이다. 그놈이 방망이를 내려치면 그 방망이를 꽉 붙잡아  가지곤, 
확 밀치면서 그놈한테 쎄게 한번  되멕여봐! 그리고 그 놈이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란말야.』(汝去問他, 道得爲甚匿也三十棒 待伊打汝, 接住
棒, 送一送, 看伊作匿生 )

낙포는 임제가 가르쳐준 대로 가서 물었다.  그랬더니 과연 덕산은 방
망이로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낙포는 덕산의  방망이를 잡아, 오히려 
덕산에게 한 방을 멕여버렸다. 그랬더니, 이건 또 웬일인가?  시무룩한 
얼굴을 하는 덕산! 아무말도 하지 않더니 그냥 조용히 자기 방장실로 
되돌아 가는 것 아닌가? 어허! 이건 또 웬일인고!

낙포는 되돌아 와 임제에게 전후 이야기를  다 했다. 그랬더니 임제가 
말하기를 :

『난 원래 옛날부터 덕산 이 새끼가  사꾸라인줄 알았거든. 그래 그건 
그렇다치구, 낙포, 넌 덕산이  어떤 새낀지 알았냐?』(我從來疑著這漢, 
雖然如是, 彬還識德山匿?)

낙포는 주저주저 갸우뚱거렸다. 이때였다. 임제는 낙포의 대가리에  되
게 한 방을 멕였다.(浦擬議, 濟便打 ) 끝!



【本則】擧 : 德山到噴山, 挾複子於法堂上, 從東過西, 從西過東, 顧視云 
: 「無! 無!」 便出. 雪竇著語云 : 「勘破了也」  德山至門首, 柬云 : 
「也不得草草」 便具威儀, 再入相見 噴山坐次,  德山提起坐具云 : 「和
尙!」 噴山擬取拂子, 德山便喝, 拂袖而出, 雪竇着語云 : 「勘破了也.」 
德山背柬 法堂, 著草鞋便行. 噴山至晩問首座  : 「適來新到在什匿處?」 
首座云 : 「當時背柬法堂, 著草鞋出去也」 噴山云  : 「此子已後向孤峰
頂上盤結草庵, 呵佛罵祖去在. 雪竇著語云 : 「雪上加霜.」




 [20] 제목 : 도올 『碧巖錄』 講話 제4화 -7

 들어보자! 덕산이 드디어 위산에 당도하였다. 바랑을  걸머멘 채 법
당에 성큼 올라서서 동쪽에서 서로, 서쪽에서 동으로 뚜벅뚜벅 왔다갔
다 하더니만 좌우를 돌아보고 하는 말이 :

『없다! 없어! 쥐뿔 개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곤 곧바로 나와버렸다.

설두스님 착어하여 이르기를 :

『들켜버렸군!』

덕산은 대문간에 이르러 다시 되돌이켜 생각하기를 :

『내가 너무했군. 소홀할 수는 없지』

그래서 허엄! 위엄과 예의를  갖추어, 다시 돌아가  상견례를 하기에 
이르렀다.

위산이 앉으려 할 때 덕산은 방석을 들어올려 『스님!』하고 크게 불
렀다. 이때 위산이 총채를 잡으려 하자, 덕산은 잽싸게 냅다 소리를 질
러댔다. 그리곤 소매를 스치면서 다시 나와버렸다.

설두스님이 또 착어하여 이르기를 :

『들켜버렸군!』

덕산은 법당을 등 뒤로 하고 짚신을 신더니 곧 떠나버렸다.

위산은 이날 밤이 으슥해지자 슬그머니 수좌에게 물었다 :

『아까 왔던 신참내기 지금 어디 있누?』

그랬더니 수좌가 말하기를 :

『그 때 법당을 등 뒤로 하고 짚신을 신더니 나가버렸어요』

위산이 말했다.

『이 녀석이야말로 훗날 외로운 봉우리 정상에다 초가암자 하나  짓고 
둥지 틀고 앉아 부처님을 꾸짖고 조사어른들을 욕할 놈이로다!』

설두스님이 착어했다 :

『설상가상! 눈위에 서리 그려본들』

 여기 등장하는 噴山이란 인물은 唐나라 禪宗史에서 또 하나의 혁혁한 
이름을 차지하는 五家七宗 大派  중의 하나인 噴仰宗의  開祖다. 噴山 
靈祐(771∼852)가 南嶽下, 馬祖를 거쳐 바로 百丈懷海의 門下에서 배출
된 黃檗 希運과 쌍벽을 이루는 인물이라는 것은 이미 도식으로 설명한 
바와 같다. 俗姓은 趙氏요, 福州(복건성) 長谿 사람이다. 

그를 噴山이라 부르는 것은 그가 噴山에  오래 살았기 때문이요, 그의 
宗을 噴仰宗이라 부르는 것은 그의 수제자 仰山慧寂과 더불어  禪風을 
크게 擧揚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위앙종의 개조는 어디까지나 噴山 靈
祐다. 그는 15세에 이미 출가하여 本郡의 建善寺 法常律師에게 머리깎
음을 받았다. 杭州(절강성)의 龍興寺에서 大小乘敎의 經律을  考究하였
고 23세에 이르러 洪州(강서성) 百丈 懷海의 門에  들어가 그 法을 이
어 같은 門下 同輩인 黃檗 希運과 더불어 唐代禪界에 그 혁혁한  이름
을 날렸다. 

영우는 潭州(호남성) 大噴山에 止住하여  宗風을 擧揚, 會下에  수없는 
龍象을 배출하였다. 入室한 제자만도 41인, 앞서  말한 仰山慧寂(807∼
883)은 그중 가장 특출한 인물이었고, 그외로도 香嚴智閑·延慶法端·
徑山洪隨· 靈雲志勤·王敬初常侍 등은 모두 탁월한 인물들이다. 

그가 온후한 噴仰宗의 종풍을 敷揚한 지  어언 40여년, 大中七年 正月
九일, 아침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방석에  앉더니 편안한 모습으로 示
寂하였다. 세수 83, 법랍 64, 噴山에 그 탑이 있고,  大圓禪師라 諡되었
다. 그의 말은 『 山警策』(一卷)과 『潭州噴山靈祐禪師語錄』(一卷)에 
수록되어 있다.

위산이 百丈을 찾아갔을 때,  百丈은 그를 보자마자 入室을  허락했다. 
그 그릇의 출중함을 직감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처음부터 큰 제자
로 대했다. 어느날 위산은 백장 방에서 侍立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큰 
절간방 텅 빈 한가운데 화로가 놓여 있었다. 화로는 이제 불기운이 다 
꺼져 잿더미로 화하고 미직미직  미온의 느낌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백장이 물었다 :

『거기 서 있는 게 누구냐?』(誰?)

『영우입니다』(靈祐.)

백장이 말했다.

『그 화로에 불씨가 남아 있나 쑤셔보아라!』(汝撥獒中有火否?)

위산이 잿더미를 들쑤셔보더니 :

『불씨라곤 없습니다』(無火.)

그랬더니 백장이 몸을 일으켜 몸소 화로를 쑤셔대기 시작했다. 그러더
니 어디선가 깜박깜박 명멸하는 한 불씨를 찾아내더니만 회색  잿빛속
에 빤짝이는 불씨를 가리키며 왈 :

『이놈 이게 불씨 아니고 뭐냐?』(此不是火?)

이때 위산은 發悟한다.

여기서 백장이 찾아낸 이 불씨는 아마도 위산의 심령속에 깜박이는 깨
달음의 불씨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噴仰宗의 宗風을 일으킨 
최초의 계기였을 것이다.

다시 위산이 앙산을 처음 만났을 때 얘기를 해보자! 앙산은 韶州  懷
化人으로 속성은 葉氏였는데 나이 15세에 출가를 하려니까 그  부모가 
허락질 않아 결국 2년 후에 손가락 두 개를 자르고 출가 허락을 받아
냈다. 南華寺의 通禪師에게서  受戒하고 耽源應眞에게서  이미 불교의 
玄旨를 증득한 후였다. 앙산이 위산을 처음 찾아왔을 때, 위산은  이미 
그의 그릇을 알아차리고 그의 堂奧로 앙산을 오르게 한다.

『너는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汝是有主沙彌? 無
主沙彌?)

『주인이 있는 사미올습니다』(有主.)

『그래 그 주인이 어디 있느냐?』(在什匿處?)

그러니까 앙산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위산의 서쪽에 서 있다가 동쪽으
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서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위산은 앙산
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차린다.(師從西過東立, 祐知是異人.) 그리고 위산
은 앙산에게 법문을 내리기 시작한다.

앙산이 다시 여쭈었다 :

『진짜 부처님이 계신 곳은 어딥니까?』(如何是眞佛住處?)

위산영우는 이에 큰 법문을 내린다.

『생각이 없음을 생각하는 妙함으로써  오히려 영명한 마음의  불꽃이 
끝없음을 생각하라! 생각이 다하면 그 근원으로 돌아가니 본래의  모
습과 나타난 모습이 있는 그 모습대로 있고, 현상과 본체가 둘이 아니
다. 바로 그 깨달음에 참 부처가 如如한  모습대로 있나니라.』(以思無
思之妙, 返思靈焰無窮 思盡還源, 性相常住, 事理不二, 眞佛如如.)

이 말씀이 끝나자 앙산은 頓悟를 얻었다.

우리는 이 백장과 위산, 위산과 앙산의  깨달음이 만나는 두 계기에서 
일치되는 하나의 단어를 발견한다. 그것은 불씨요,  불꽃이다. 내 마음 
속에 본시 함장된 영험스러운  불꽃의 무궁함, 그  불씨를 살려내는데 
禪의 깨달음의 모멘트들이 내재한다.

위앙종에서  유명한  것은  바로   如來禪(Tathagata Zen)과   祖師禪
(Patriarch Zen)의 對別이다. 본시 禪에서 여래선과  조사선이 따로 따
로 峙立하는 것은 아니다. 달마가  직접 전한 선이 곧 여래선이요,  그 
여래선은 조사선이다. 그런데 위앙종에서는 여래선의  종래 의미를 격
하시키고 그것을 天台의 禪으로 간주하고,  여래선 위에 直指人心·不
立文字·敎外別傳의 조사선을 놓는다. 이렇게 조사선의 의미를 여래선 
위에 별립시킨 것은 아마도 仰山이 그 최초였을 것이다.

그리고 위산과 앙산의 대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體」와 「用」이라
는 새로운 개념을 둘러싼 논박이다. 이 體와 用이라는 개념은,  불교를 
배척한 朱子에 의하여 오히려 자기 논리의 중요한 틀로 받아들였기 때
문에 宋學 그러니까 신유학에서 크게 발현하였지만 원래 그것은  唐代 
선승들이 常用하던 어휘였다.

여러 스님들이 위산의 차밭에서  하루종일 찻잎을 따고  있었다. 이때 
위산이 앙산이 있는 곳을 향해 소리쳤다.

『하루종일 찻잎을 따도록 니눔 목소리는 들리는데, 니눔 모습은 보이
지 않으니 웬일이누? 어디 한번 그 본모습을  드러내 보아라!』(終日
摘茶, 只聞子聲, 不見子形, 請現本形相見.)

그러자 앙산은 나타나지는 않고 차나무만 흔들었다.

그러니까 위산이 말하기를 :

『너는 用만 얻고 體는 못 얻었구나!』(子只得其用, 不得其體.)

그러자 앙산이 :

『아니, 그럼 스님은 도대체 어떻게 하시겠다는 게요?』

그러자 위산이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자 앙산은 침묵을 
못 견디겠다는 듯이 답답해서 다음과 같이 내질렀다.

『스님은요! 體만 얻고 用은  못 얻으셨다구요!』(和尙只得其體, 不
得其用.)

이때 위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네놈! 20방 감이다』(放子二十棒.)

사실 이 대화는 여러 구구한 해석이 있지만 그 정확한 정황이  전달되
기 어렵다. 그런데 이 대화를 일관되게 지배하는 틀은 다음과 같은 언
어들이다. 소리와 형체, 흔듦과 침묵, 用과 體!




 [19] 제목 : 도올 『碧巖錄』 講話 제4화 -8

원래 體와  用이라는 산스크리트어적  맥락은 본체(noumena)와  현상
(phenomena)이라는 서양철학적, 더 정확하게 희랍철학적 맥락과 일치
하는 개념이었을 것이다. 허나  이것이 중국어로 漢譯되는  과정에 그 
이원적 의미가 해소되어버린다. 體와  用이 다 현상계  속에서의 本과 
末로 일원화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도철학과 禪이 결
별하는 분기점이다. 『소리만 들리고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모습은 물론 體다.  그 體가 나타나는  기능·작용·현상이 곧 
소리다. 위산은 앙산에게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을 요구한다. 허나  앙산
은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차나무를 흔든다. 흔들리는  나무의 모습은 
곧 끊임없이 운동변화하는 현상의 모습이요 곧 用의 모습이다. 그래서 
위산은 앙산에게 『너는 用만 얻었고 體는 못 얻었다』고 외친다. 

그렇다면 스님은 어떻게 體를  얻습니까? 위산은 「침묵」한다.  침묵, 
그것이야말로 소리에 대한 體다. 그러자 그 침묵을 못 견딘 앙산은 외
친다. 『당신은 體만 얻고 用은 못 얻었나이다』  이때, 『이놈, 넌 20
방 감이다』하고 위산은 외친다. 허지만 「放」이라는 글자의 의미 속
에는 20방 감이지만 20방 맞을 것을 용서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앙산의 외침은 體와 用을 이원화시킨 것이다.  위산의 침묵은 用을 함
장한 體였다. 體와 用은 근원적으로 이원화될 수 없다. 헌데 앙산은 體
와 用을 이원화시켜서 위산에게 되씌웠다. 허나  그 정도의 재치면 알 
건 다 알았다. 용서하여주마! 이렇게 선승들의 언어는 오묘하다. 우리
의 상상을 초월하여 많은 논리의 거미줄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최소한 
위앙종의 풍도는 슬기롭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고 명랑하고 원숙하다. 
그리고 「덕산방」과는 대조적으로 깨달음을 가르치는데 참을성이  많
다.

우리의 본칙은 德山이 龍潭에게서 깨우침을 얻은  후, 멀지 않은 곳에 
있던 噴山을 찾아가 또 하나의 깨우침을 얻으려는 求道의  행각이었지
만 여기서 드는 느낌은 득도한 德山이 噴山을 토벌하러간 원정의 느낌
이 강하다. 여기의 덕산은 패기에 넘친 날카로운 푸른 이삭과 같은 젊
은 모습이다. 그에 비하면  위산은 침착하고 원숙한  대가다운 풍도를 
과시하는 老老大大한 모습이다. 허나 실제로 이  둘은 나이가 9세밖에
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 대단한 차이도 아니건만.

덕산이 위산이 있는 법당에 오른다. 「挾複子」라는 표현은, 어디를 왔
으면 여장을 풀고 들어가야할 텐데, 「바랑을 낀 채」 오른 것은 매우 
무례한 모습이요, 성급한 모습이다. 그리고 물론 절차를 무시한 모습이
다. 동쪽으로   서쪽으로 뚜벅뚜벅  서성거리며 외치는   말이 『無! 
無!』

이 『무! 무!』란 말은 『나와 붙어볼 만한 놈은 한 개미새끼도  없
구나!』라는 덕산의 기개를 나타내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솔직
한 것이다. 추상적인 득도의 경지를 나타내는 암호로 비화시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때  설두스님은 착어했다. 『勘破了也.』  여기서 「勘
破」란 말은 요새 우리가 쓰는 「看破」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다. 

「識破」 「照破」 「踏破」란 말이 같은 의미로 쓰인다. 즉 「꿰뚫어 
보았다」라는 의미다.  『간파해버렸군』을 나는   『들켜버렸군』으로 
바꾸었다. 즉 法의 본상은 無인  것이다. 아무 것도 없이 공허한  것이
다. 그런데 위산이래봐야 그리 宗을 立하고 허세를 세울 것은 없는 것
이다. 그러니 덕산의 기개는 그 본질을 꿰뚫었다. 즉 위산의  입장에선 
들킨 것이다. 설두의 착어는  무례한 덕산에게 관대하다. 역시  덕산이 
설두가 속한 운문종의 祖宗이라는 것도 감출 수 없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러한 승리를 구가하고  홀로 나가봤자 별재미가 없다.  덕산, 
대문에 이르렀을 때 혼자 중얼거리기를 『내가 좀 너무 심했던 것  아
닌가? 나혼자 통장 반장 다 해먹은들 누가  알아주랴! 요시, 다시 위
의를 갖추고 들어가보자!』 여기 「具威儀」란 말은 아까 「挾複子」
라는 말과 대비된다. 즉 여장을 풀고  제대로 가사를 차려입었다는 뜻
이다.

드디어 위산과 덕산의 정중한  상견례가 이루어지는 스릴  있는 장면. 
위산이 들어와 앉는다. 이때  덕산이 「提起坐具」라 했는데  이 당시 
「좌구」의 정확한 실체는 내가  잘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상대방에게 
절하기 위해서 앞에 까는 것을 말한다.  나는 그냥 「방석」으로 번역
하였다. 그리고 「스님」하고 크게 외친다. 이 순간이었다. 

위산이 불자(拂子)를   들려고 하였다.  「擬取」의  「擬」는 영어의 
『be going to』 우리말로 『…하려하다』는 백화투다. 불자는 총채다. 
스님들이 대나무에 말총을 말아 묶어 놓은 것인데 스님들이 먼지를 털
거나 모기·파리를 쫓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아마도 이 순간 위산은 
불자로 덕산에게 한 방 멕이려 했을지도 모른다. 

이 순간, 덕산은 선수를  친다. 할! 할이란  근원적 부정의 외침이다. 
허나 그 순간에, 할을 하는 덕산의 자세는 문자 그대로  위기일발이요, 
의기충천이요, 유아독존이요, 천하무적이다. 소매를  확 제키고 찬바람 
일며 위산을 등 뒤로 하고 유유히 위산을 떠나는 덕산! 『법당을  등
뒤로 하고 짚신을 신고 곧 떠났다』 덕산의 할의 순간에 설두는 또 착
어를 멕였다 : 『勘破了也.』 또 꿰뚫었군, 또 들켰군!


보통 사람 같으면 도무지 괘씸하여 이를 갈았을 것이다. 온후한  위산, 
그날 밤, 슬그머니 수좌에게 묻는다 : 『아까 그 설익은 신참내기 어디 
있느냐?』 바보같은 수좌새끼, 이것 또한 공안 속의 공안인가? 『법당
을 등뒤로 하고 짚신 신고 곧 떠났습니다』 如如行인가?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인가? 바보 같은 수좌새끼 너무도 자신  없는, 저는 쏙 빠진 
대답이다. 

이에 위산의 최후의 한마디 :  『고봉정상, 가불마조!』 이 『고봉정
상』이라는 이미지는 덕산에 대한 위산 최고의 찬사다. 禪은 깨달음이
다. 깨달음은 외롭다. 진정 깨달았다면 외로울 수밖에 없다. 진정한 覺
者는 홀로 설 수밖에 없다. 고봉정상에 설 수밖에 없다. 진정한 覺者는 
무리를 짓지 않는다. 派를 만들지 않는다. 宗을 만들지 않는다. 존재의 
아래 위를 다 죽인다. 그것이 바로 「가불마조」다!

이 공안 최고의 메시지는 이 「가불마조」 한 마디에 있다. 부처를 죽
이고 조사를 욕해라! 교육자로서 위산 최고의 풍도요 품위요 여유다.

생각해보라! 이 도올이 갑자기 해인사 백련암에 올라가 從東過西, 從
西過東, 삼천배를 하고 있는 신도들을  짓밟으며 말하기를, 『야이, 병
신새끼들아! 뭘 쳐다보고 절을 하고 있느냐! 삼천배 좋아하시네. 불
심이 없으면 삼천배도 일배만도  못한 것이요, 때로는  무심한 일배도 
삼천배를 능가하거늘, 뭐, 성철을 만나겠다는 일편단심 俗心에  무릎을 
삼천번 구부려! 니기미씨팔, 이 중생을 삼천배에 묶어대는 천박한 律
師새끼 나와라! 니기미 되도 않은 게송이나 씨부렁거리구, 그걸 겨우 
한문실력이라구 내뱉냐? 부수도 못 가리는 어린 사미들 앞에서나 통하
는 개구라지, 나와라  나와! 니기미 좆도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구
나! 무! 무! 뭐라구 돈오돈수! 무! 무!』

그리고 나에게 한 방 棒을  멕이려는 성철스님의 방망이를 뺏어  되레 
한방 멕이고 뒤돌아 보지도 않고 찬바람을 휙 일으키며 해인사 대문을 
걸어나오는 나를 빙그레 여유롭게 쳐다보면서,  『과연! 천하의 도올
이로고! 훗날 저놈이야말로 가야산 고봉정상에 우뚝 서서 부처를  죽
이고 조사를 무색하게 만들 놈이야!』 

과연 성철은 그렇게 외칠 것인가? 말이 그렇지, 상상은 좋다, 과연  우
리나라 큰스님들께 위산과 같은 위대한 통찰과 관용과, 후학을 사랑하
는 마음, 자신을 삭일 수 있는 마음이 있을까? 큰스님을 얘기 안 해도 
좋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에서 교육자라고 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로 
결여된 것은 이 위산의 「고봉정상, 가불마조」에 대한 관용과 예찬이
다. 

성철스님의 문제는 바로 자신에 대한 엄격성의 잣대를 타인에게  무차
별하게 적용하는 독선과 독단과 오만이다.  그러한 禪門에서는 「가불
마조」의 호방한 위인들이 배출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 20세기 
불교사 최대의 문제요, 일제식민지 교육의 권위주의에 포로가 된 교육
계의 비극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에게 창조성이 결여되어가고 있
는 허망한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 공안의 파워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마지막 설두의 착
어는 무엇이었던가? 설상가상!

흔히 우리는 옛 문헌을 대할 때, 거기에 쓰인 의미체계를 나타내고 있
는 문자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동일할 때, 곧 우리가 알고 있
는 그 문자의 상식적 의미를 덮어씌워 이해해버리고 마는 그러한 오류
를 곧잘 범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한문해석학」의  문제요, 
우리나라 학계의 학식이 일천함이다. 「大器晩成」도 그렇고 「切磋琢
磨」도 그렇고 「雪上加霜」도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와는 전
혀 다른 뜻이다. 우리의 현재 의미는 오랜 세월에 걸쳐 우연한 계기로 
와전된 것이다.

설상가상을 우리는 흔히 나쁜 데 더 나쁜 게 덮쳤다는 의미로 쓰지만, 
여기서는 문자 그대로 「눈 위에 서리를  그려 본들」 즉 생색 안  나
는, 표 안 나는 가식, 부질없는 짓이라는 얘기다. 德山이 이미 짚신 신
고 떠나버렸을 때, 위산은 알 거 다 알았어야 했다. 

뒤늦게 수좌 데리고 「고봉정상, 가불마조」 운운 해본들, 눈위에 서리 
개칠하는 셈, 뭐 대단한 개구라도 못된다. 설두의 착어, 또다시 위산의 
위대함을 예찬하는 우리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설상가상! 禪의 
부정의 부정의 부정의 부정은 끝이 없다. 일순간도 방심하면 아니된다. 
아∼ 진리의 구도란 그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頌】  一勘破, 二勘破
       雪上加霜,曾汨墮
       飛騎將軍入虜庭,
       再得完全能幾箇?
       急走過, 不放過
       孤峰頂上草裏坐
       讐��

        한 번 깨지고
        두 번 깨지고
        세 번째는 겨우 눈위에 서리 그렸으니
        결국 벼랑에 떨어지고 말았구나
        비기장군, 오랑캐 진영 한복판에 들어갔다.
        과연 온전히 다시 빠져나올 자
        몇 명이나 될까?
        서둘러 도망쳤건만
        놓아주지 않네.
        외로운 봉우리 꼭대기
        수풀속에 앉아 있구나.
        쯧!

 항상 그러하듯이 이 頌 또한 그 논리적 맥락이 정확히 구성되기는 어
렵다. 허나 첫 두 줄은 설두의 착어 그  자체를 가지고 만든 것이기에 
역시 위산에 대한 설두의 평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汨墮』란 『위
험한 곳으로 떨어졌다』는 뜻이다.  허나 이 「험타」는  사실 덕산과 
위산 모두에게 적용된다.

「비기장군」이란 漢나라 李廣의 고사에서 온 것이다. 이광은 활과 말
타기의 명수였다. 그래서 漢 孝文帝가  그를 「飛騎將軍」으로 봉하였
다. 이광은 오랑캐나라 진영에 깊숙이 들어갔다가 흉노왕 單于에게 잡
혀 포로가 되었다. 그런데 말  사이에서 죽은 척 누워  있다가 기발한 
묘수를 내어 성공적인 탈출을 한다. 

설두는 바로 덕산이 위산의 진영에 들어갔다가 탈출하여 나온 이 공안
의 내용을 비기장군 이광의 고사에 빗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전히 살아 나올 자 몇 명이뇨? 덕산이 제아무리 서둘러 도
망쳐 나왔다지만, 과연 위산이  쉽사리 놓아줄 리 있는가?  그런데 또 
왜 고봉정상 풀잎 속에 앉아있다고 했을까? 과연 그것이 그를  칭찬한 
것일까? 덕산이 孤峰頂上, 呵佛罵祖만 고집했다면 과연 덕산이 되었을
까?

마지막 한 마디! 『쯧!』 이 한 마디는 아무  의미도 없다. 아무 의
미도 없는 만큼 우리의 모든 논리적 사고를 단절시킨다. 且道落在什汨
處? 말해보라! 그 핵심이 어디에 있나를! 更參三十年! 족히 30년은 
생각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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