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6월 17일 수요일 오전 11시 20분 07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체상용의 3대 번호 : 16/3134 입력일 : 98/06/17 09:39:11 자료량 :67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체상용의 3대 體相用 3大기신론은 기발하고 멋있는 착상으로 우리가 해탈로 갈 수 있는 근거와 길을 제시한다. 해탈을 향해서 가려면 그쪽 방향의 차량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중생심(衆生心) 즉 보통 사람인 우리의 마음이다. 큰 차량이란 대승(大乘)이고 이것은 바로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마음에는 양면이 있다. 우주 진리와 합일된 상태에 있는 고요한 진여(眞如) 의 면과 번뇌의 바람과 파도에 의해 흔들리는 생멸(生滅)의 면이다. 우리의 마음을 진여의 면에서 바라보면 그 본체만 있고 형상이나 작용이 없다. 진 여는 모든 형상, 이름, 오고 감을 떠난다. 마음의 본체, 형상, 작용의 세 가 지를 다 보려면 생멸 쪽에서야 한다. 마음의 본체, 형상, 작용에 각기 큰 대자를 붙여서 체대(體大), 상대(相大), 용대(用大)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광대무한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기신론에서의 진여는 멍하니 부동자세로 있는 응연진여(凝然眞 如)가 아니다.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 움직임을 수연(隨緣) 즉 인연을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불변(不變)의 측면도 있지만, 이것은 움직이면서도 마음의 진여 본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마음이 이처럼 위대하기 때문에 큰 대자를 붙이고, 체상용(體相用) 세 측면으로 구분해 본 것이다. 텔리비전 수상기를 체상용을 적용해서 나누 어 보자. 텔레비전의 몸체는 체,겉모양과 성능은 상, 그리고 방송국으로부터 전파를 받아 영상으로 전환해서 보여주는 기능은 용이 될 것이다. 기신론을 의식하지 않고 우리 식으로 마음을 체상용으로 나누어 본다면 어떻게 될까. 마음의 본체는 볼 수가 없으니 표현할 길도 없다. 체가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마음의 상은 성질이나 성능이 된다. 마음의 성 능이라면 우리가 품는 어떤 의지나 원력을 비롯해서 갖가지 잠재력이 될 것 이다. 마음의 용은 그 마음이 움직여서 자아내는 정신적 육체적 성능이나 작용이 될 것이다. 기신론에서는 마음의 체상용을 어떻게 구별하는가. 먼저 진여의 마음을 체로 잡는다. 그런데 진여의 체에도 두 가지가 있다. 마음을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나눌 때, 진여문에서의 체는 달랑 그 자체뿐이다. 여기에는 모든 형상과 작용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생멸문에 있어서의 체는 무상한 가운데 영원으 로 흐르는 진여이다. 진여문의 체는 부처의 것이고 생멸문의 체는 중생의 것이지만, 진여라는 점에서 부처의 진여와 중생의 진여가 아무런 차이가 없 다. 그래서 이 진여의 경지는 부처와 중생, 진여문과 생멸문에 평등하다고 한다. 마음의 상은 여래장(如來藏)이 된다. 중생의 마음은 본래 부처와 같이 청정 하지만 번뇌의 먼지가 덮였거나 제 기능이 발휘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그 러나 장차 부처로 회복될 1백퍼센트 확률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여래장 은 바로 여래를 밴 임산부를 뜻한다. 마음의 용은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하고 좋은 과보를 받는 행동 기능이다. 마음의 체상용을 좋은 쪽으로만 풀이해야 하는가. 그렇지만은 않다. 12연기 가 생사윤회 쪽으로 갈 수도 있고 반대로 윤회를 벗어나는 해탈 쪽으로 갈 수도 있듯이, 체상용도 생사와 윤회 양쪽에 똑같이 쓰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신론은 해탈로 가는 차편을 제공하려고 한다. 이 마당에 잘못된 쪽을 들추어서 일부러 크다는 말까지 붙여 줄 필요는 없다. 마음의 체는 선 과악을 다 포함하지만, 마음의 용은 오직 좋은 쪽으로 기능하는 선만 포함 한다. 체상용을 부처님의 세가지 몸에 배대할 수도 있다. 마음의 체인 진여와 상 인여래장은 똑같이 법신이 되고, 진여의 용은 보신과 화신이 된다. 여기서 진여의 체와 여래장의 상이 법신에 속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중생의 마 음을그대로 법신으로 보는 것이다. 체상용 삼대는 기신론의 독특한 착상이다. 진제(眞諦)가 번역한 십팔공론 (十八空論)에도 체상용의 삼대가 나오지만 기신론에서처럼 아이디어가 선명 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다. 다른 경론에서의 유사한 용어나 개념도 기신론의 것과동일하지는 않다. *발행일(1677호):1998년 6월 16일 , 구독문의 (02)730-4488 <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