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6월 8일 월요일 오전 05시 05분 04초 제 목(Title): [퍼]해인사 팔만대장경 지킨 김영환 장군 번호 : 2/11 입력일 : 97/07/04 15:36:08 자료량 :60줄 제목 : (6.25특집)해인사 팔만대장경 지킨 김영환 장군 6.25 당시 지리산과 가야산에 숨어있는 공비를 토벌하기 위해 해인사 폭격 을 지시한 상부 명령을 항명하며 우리민족의 국보인 팔만대장경을 지킨 고 김영환장군의 공덕비가 해인사에 건립된다. 총무원은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문화 유산의 해 조직위원회 공군본부 해인 사 후원으로 문화유산 보존 숨은 공로자발굴 선양사업의 하나로 김영환장군 공덕비를 해인사 일주문앞에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실무추진위원회를 구성했 다. 실무추진위는 5천여만원의 예산으로 올 10월 경에 해인사 일주문앞 세계문 화유산 지정기념비 옆에 공덕비를 건립키로 했다. 공덕비의 주인공 김영환장군(당시 공군제1전투비행단 대령)은 51년 12월18 일 상오 지리산 가야산 등지에 숨어있는 공산패잔병 소탕작전을 위해 공중 지원차 출격했다. 김영환 장군을 편대장으로 한 4대의 F-15기는 5백파운드 폭탄 2발 5인치 로케트탄 6발 기총 1천8백발을 장착했으며, 편대장은 7천5백파운드짜리 네 이팜탄 2발을 보유하고 있었다. 해인사와 인근지역 공비소굴을 폭격하여 지상군을 지원하라는 훈령을 받은 김장군은 미정찰기의 뒤를 따라 해인사를 향해 급강하여 공비들의 도주현황 을 살폈다. 그때 정찰기가 해인사 법당에 흰연막탄을 터트리며 폭격지점을 가리켰다. 편대가 공격에 돌입하려 할 때 김장군은 급상승하며 휘하의 편대원에게 다 음과 같이 명령했다. "편대장의 지시없이 폭탄과 로케트탄을 사용하지 말라" "기관총만으로 사찰주변의 능선을 소사 공격하라" 이때 미정찰기는 "해인사를 네이팜탄과 폭탄으로 공격하라" "편대장은 무엇하고 있는가"하며 독촉 훈령을 내렸다. 그러나 김장군은 끝까지 부하들에게 "공격하지 말라"고 재차 강조하고 해인사 뒤쪽 능선으로 몇개의 폭탄과 로케트탄을 터뜨리고 귀대했다. 그날 저녁 미공군고문단은 김장군에게 목표를 알리는 연막탄을 보고 왜 폭 격을 하지 않았느냐며 "사찰이 전쟁과 무슨 관계냐" "사찰이 국가보다 더 중요하냐"며 따졌다. 이에 김장군은 "사찰이 국가보다 중요하지 않지만 공비보다는 사찰이 중요 하다"라며 "그 사찰엔 7백년을 내려온 우리민족 정신이 어린 문화재가 있다 "라고 답했다. 또 김장군은 "2차대전때 프랑스가 파리의 문화를 살리기 위해서 프랑스전 체를 나치에 넘겼고, 미국이 일본문화를 살리려고 교토를 폭격하지 않은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라며 자기 주장을 밝혔다. 미고문단은 김장군의 말에 부동자세를 취하며 경레를 하고 "김대령과 같은 지휘관을 가진 한국공군의 앞날은 희망뿐이다"라고 말했다고 당시 김장군과 함께 폭격에 가담했던 전우들이 전했다. 그러나 김장군은 54년 3월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같은 사 실은 68년 뒤늦게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고 당시 이순희(영남일보사장)씨 청 담스님등 각계인사 20여명은 "국보고려대장경판 수호공적탑 건립위"를 구성 하기도 했으나 안타깝게도 결실을 맺지못했다.<邊大龍 기자> <발행일(1631호):1997년 7월 1일 ,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