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5월 7일 목요일 오후 03시 59분 15초 제 목(Title): Re: 회자정리 croce 님이 또 떠나시는군요. 훌륭하신 분들이 자꾸 떠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회자정리인데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것도 집착이겠지요. 나름대로 뜻하신 바가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다 이루시길.. 오늘 신문에서 좋은 말을 배웠습니다. 줄탁동시. 병아리가 계란을 깨려는 것이 '줄'이고 밖에서 어미닭이 껍질은 쪼아 주는 것이 '탁'인데, 두가지 노력이 시간적으로 맞아야 계란을 깨고 병아리가 나온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회자정리라지만, 명쾌하게 '탁'을 해주는 그런 소리가 듣고 싶어서 떠남을 아쉬워 하는 것은 중생들의 어쩔 수 없는 바램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불교보드에는 좋은 말씀들려 주시는 분들께서는 떠나지 마시고 좋은 말씀을 계속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몇번의 소란으로 시끄럽게 해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쉬워서 몇자 적어봤습니다. ------------------------------------------------------------- 번호 : 81/84 입력일 : 95/03/14 15:25:54 자료량 :46 제목 : 신행상담-계환스님께 묻습니다 질문 책을 읽다가 '줄탁동시'라는 단어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글의 앞뒤 내용 을 보아서는 서로 도와준다는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그러나 좀더 자세한 본 래의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서울 서대문구 홍은동;무애심) 대답 '줄탁동시'는 <벽암록> 제 16측에 나오는 공안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주 로 선종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는 말인데,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선에 관한것 인 모양이군요. 그 내용인죽, 닭이 알을 품었다고 달아 차서 알 속의 병아리가 안에서 껍 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그 반대로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 서 맞쪼아 껍질을 깨뜨려 주는 것을 '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리하여 온전한 병아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선가에서는 스승이 제자를 지도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에 비 유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치 어미닭이 소중하게 알을 품듯이, 스승 이 제자를 끊임없이 보살펴서 그 근기가 무르익었을때, 깨달음의 길로 주는 겁니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할이라든가, 방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제자의 근기에 맞는 방법을 택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시기 가 올 때까지 제자는 오매불망 정진에 힘써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와 같이 스승과 제자의 행동이 동시에 이루어질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 가 열리게 되는 겁니다. 결국 사제간의 인연이 어느 기회에 딱 맞아 떨어지 는 것을 선가에서는 줄탁동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단 선가의 지도법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라, 현대 교 육에서도 참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스승은 제자를 위하 여 참되게 '탁'을 해줄수 있는 안목과 지도가 절실히 요망되고, 제자 또한 스승을 존경하고 학업과 인격도야에 전념하여 언제라도 '줄'을 할 수 있는 요건을 구비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어는 한 쪽만의 노력으로는 결코 이루어 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 다. 따라서 동시에 이루어진다는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즉 '줄탁동시'는 가장 이상적인 사제지간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법보신문] -------------------------------------------------------------------- 님의 침묵 지은이 : 한용운 님은 갔읍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읍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 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읍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읍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읍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읍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 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읍니다. 우리가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읍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