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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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dwij (드위지)
날 짜 (Date): 1998년 4월 30일 목요일 오후 02시 07분 55초
제 목(Title): Hynayana 와 Mahayana


라즈니쉬의 <달마 어록 강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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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은 두 가지 종류의 구도자들을 만들어 내었다.

하나는 아라한으로 불려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보살이라고 불려지는
존재들이다.

아라한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바치다가 한번 깨달음을 얻
게되면, 어둠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리는 사람
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로 간접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깨달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실 아라한들의 말에 따르면 자비심 같은 위
대한 생각도 엄밀하게 말해서 집착이란 것이다.

아라한들은 아무도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한다. 남을 도와 준다는 
생각은 애당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대는 오직 자신만을 도울 수 있다.

보통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아라한들은 매우 이기적인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
러나 그대가 어떤 선입관도 없이 본다면, 그들의 선언은 이세상에서 매우 중
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남을 돕는 것은 남의 삶에 간섭하는 것이다. 그사
람의 생활방식에, 운명에, 그의 미래에 간섭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라한들은 
어떤 자비심도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욕망에 대한 아름다운 
이름일 뿐이다.

그래서 아라한은 깨닫는 순간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설법도 하지 않
고 어떤 방식으로도 남을 돕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자신의 황홀경속에서 살아
간다. 만약 누군가가 그의 샘물에 목을 축이러 온다면 그때는 그사람을 막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에게 샘물을 마시러 오라는 초대장 같은 것은 결코 보내
지 않는다. 만약 그대 스스로가 그의 현존을 마신다면 그것은 그대의 일이다.
그대가 길을 잘못 들어선다 해도 그는 그대를 말리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는 자신들의 제자들 중 몇몇 사람이 아라한이 되는것을 받아들
였다. 그리고 그들의 길을 히나야나(Hynayana)라고 불렀다. 그것은 소승, 즉
작은 수레라는 뜻이다.  한배에 한 사람만 타고서 강을 건너갈 수 있는 작은
배란 뜻이다. 그들은 큰 배를 만드는 번잡스러움을 피한다. 피안으로 건너가
는 데에 노아의 방주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 오직 홀로 이세상에 태어
나서 홀로 수백만 번의 생을 거듭하다가 홀로 우주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부처는 아라한의 길을 받아들였고 또 존경했다. 그러나 또한 이 세상에는 많
은 자비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을 그는 간과하지 않았다.  그들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들의 첫번째 열망은 자신들의 기쁨을, 진리를 나누어 주는 것이
었다.  자비는 그들의 길이다. 그들은 역시 심오한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
이다.

이 사람들을 보살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초대하고 설득시켜서 
같은 경험을 맛보도록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쪽 언덕에서 가능한 많은 구도
자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보살은 피안으로 건너가기를
자꾸만 연기한다. 그것은 어둠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향한 자비심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의 관점이기도 했다. 더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아란한은 아라한이고 보살은 보살이다. 그들은 다른 운명을 갖고 있다.  물론
목적지는 동일하다. 그 목적지에 이르는 길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보살들은 뱃사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다리라. 서두르지 말라. 나는 이쪽 언덕에서 충분히 오랫동안 머물러야 한
다. 그래서 고통속에 있은 사람, 번뇌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한다.
나는 절대적인 평화와 축복속에 있다. 나에게는 피안이 필요 없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이곳에서 도울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도 역시 이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는 아라한과 보살을
어떤차별을 두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맞는 삶을 택하라고 했다. 그래서 보살들
은 마하야냐(Mahayana) 라고 불린다. 그 말은 대승, 즉 큰 수레, 큰 배라는 뜻
이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가 죽은후에 이 두 흐름은 2, 500년 동안 서로 자
신의 길이 옳다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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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은 보살을 이해할 수 없다. 보살 역시 아라한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완전히 반대극이다.

이제 불교국가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졌다. 한국이나 일본같은 나라는 대
승불교에 속한다. 그곳은 보살들의 땅이다. 그리고 스리랑카 같은 나라는 소승
불교에 속한다. 그곳은 아라한의 땅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전혀 선불교를 존경
하지 않는다.  만약 그대가 스리랑카에 가서 달마를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웃을 
것이다. 만약 그대가 아난다 같은 아라한을 일본에 가서 말한다면 그들은 그가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 Ðωi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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