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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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 크로체)
날 짜 (Date): 1998년 4월 29일 수요일 오후 11시 49분 30초
제 목(Title): 강 또는 문지방


 Enlight님이 또 좋은 글을 써주셨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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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RQ=0.5의 한계.
 이 선을 강 또는 문지방에 비유하곤 한다.
 살짝 넘어갔다 튕겨나는 것을 일별(사토리)이라 하며, 본연적 무상삼매 이외의
 삼매는 전부 여기에 해당하므로 견성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지만, 상당한 진전
 이라 알고 꾸준히 해야한다.

 다시 튕겨날 수밖에 없는 것은 정신적 경향성, 바사나 때문에 늘어난 고무줄이 
 수축하듯 자연의식으로 튕겨나가는 것이다. 이 순간적 삼매는 무척이나 황홀한 것
 이어서 이에 집착하여 그 시간을 늘이려고 하는 수행자들이 있지만 그 고무줄이
 탄력을 가지는 한, 바사나가 약해지지 않는 한 결국 다시 원상복귀할 수밖에 없다.
 관건은 고무줄이다.



 -주관과 객관의 전이점-

 이 0.5의 벽을 완전히 뛰어넘는 경험을 견성이라고 한다.
 살짝 넘었다가 다시 튕겨져나가는게 아니라, 한 번 들어오면 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상황인데, 자아반응도 부분적으로 공존한다. 그래서 CQ는 
 완전간접반응상태의 두 배가 넘게 된다. 의식이 이중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연의식상태(0.5<ERQ<1)에서 주관과 객관은 ego의 견지와 상호주관성인데 비해,
 환원된 상태에서는 이전의 주관이었던 ego는 객체로 격하되고 진정한 주인이 전면에
 나오게 된다. 이 주인은 차차 ego를 객체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지혜와 힘을
 갖추게 된다. 주관과 객관의 전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까지 이해하면
 주관과 객관의 분리라는 것은 기만이며, 진실은 참주관만이, 참객관만이 있어서
 그들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견성 초기에는 스스로 미친게 아닌가, 무엇이 나일까 하는 혼란에 빠질 수 있는데,
 이 혼란은 지혜와 힘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그 이전의 '나'는 ego와 순수의식이 
 동일시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go는 일종의 가면이나 옷에 불과
 한 것으로서,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바뀌어 몇 년에 지나면 몰라보게
 변하는 것이다. 보통 영혼이니 마음이니 초능력이니 하는 것들은 전부 이 ego에 
 불과한 허망한 것들이다. 지고불변의 진아는 ego의 틀에 의해 드러나고 있으므로
 ego를 치워버리기만 하면 된다. 진정한 주인이 주인노릇을 하게 하라.








                                               ...like tears in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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