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 크로체) 날 짜 (Date): 1998년 4월 18일 토요일 오후 04시 28분 05초 제 목(Title): 차이점은 무엇인가. 1.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군요. 우리가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유의해야할 점은 자신과 상대방은 완전히 다른 정신의 구조와 기반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SSman님이 불교를 이해하는 방식은 기독교인으로서의 그것이며, 그 이해의 한계 는 기독교적 멘탈 인프라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불교를 진정 이해하려면 자신이 갖고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기독교가 제공하는 멘탈 인프라스트럭춰는 불교를 이해하기에 역부족인 것이 사실입니다. 접싯물로 바다를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처음의 글에서 '하느님이 진흙으로 당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빚어서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주셨다고 가르치고, 여기서 당신의 모습이란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자명합니다'고 하셨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외모를 따서 만들어 진 것으로 보아야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휴먼 타입입니다. 그 체(body)가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습니다. 만일 그 모습대로 인간을 만들었다 는 뜻이 외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외의 피조물들에 대한 추론은 불교와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크리티칼한 질문을 하나 드릴까요? "개나 고양이도 하느님을 본따서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2. 하느님께서 흰 수염달린 할아버지가 아닐테니까요. 즉, 우리는 바로 하느님의 본성(혹은 불성)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 이니 확연무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요. 죄로부터의 회개(하느님에게로 돌아섬, 곧 불협화음에서 조화로의 돌아섬)를 위해 불협화음을 강조하다 보니 아마 그렇게 생각되신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크게 다른것 같지 않습니다. --불성은 '하느님의 본성'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역할현상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성이 드러나는 하나의 형태인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본성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기적이고,질투심이 많음'이 더 맞습니다. 제가 기독교는 다짜고짜 원죄라는 불협화음의 명제로부터 출발한다고 한 것도 불협화음을 불완전성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 것입니다. 3. 제가 배우고 알고있는 바로는 기독교에서 인간을 불완전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처음부터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불완전하게 만든다는 개념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존재계는 불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완전합니다. 창조는 불성의 완전함을 소재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 오히려 너무나 완전해서 문제가 생긴거죠. 구원은 불완전에서 완전으로의 완성이 아니라 처음의 완전함을 되찾는 것입니다. --처음의 완전함을 되찾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우리는 완전함을 잃어버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원죄를 무지와 착각으로부터 비롯된 '불협화음'이라고 말하고, 구원은 '조화로움'으로 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만일 완전함을 찾는 것이 목적이라면 기독교는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구원받을 중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무지와 착각이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5. 그래서 "회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잃어버린 낙원으로의 "돌아감"입니다. 우리가 완전성을 되찾기 위해서 할수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그분이 우리 아버지임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아버지가 완전하시듯이 우리또한 완전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문제는 그 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불교에서 말하는 "내가 곧 부처"라는 의미로 알아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아버지를 알고, 그 아버지가 완전한 만큼 자녀인 우리도 완전하다는 것이 바로 불교가 말하는 "내가 곧 부처"라는 의미입니다. ......Amor vincit omn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