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4월 12일 일요일 오후 02시 17분 44초 제 목(Title): 부처님 숨결따라 새로쓰는 성지순례기 15 오늘 일요일인데 인도로 여행한번 다녀오시죠. 상상의 나래를 펴서요. 법보신문에서 퍼왔습니다. --------------------------------------------------- "아잔타를 보기전에 인도를 말하지 말라" 지금으로부터 179년전인 서기 1819년 봄이었다. 한 무리의 영국군 장교들이 손에 손에 총을 들고 호랑이 사냥을 하고 있었 다. 장소는 인도의 중서부 아우랑가바드의 북서쪽 101km, 옛날 인도의 남과 북을 이어주던 교통로의 요지 아잔타(Ajanta)의 산속이었다. 이곳은 데칸고원의 험준한 산속으로 몇겹의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고 봉우리 와 봉우리 사이 계곡에는 와고라강이 흐르고 있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마드라스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 장교들 이, 이곳 험준한 산속까지 들어가 마음대로 호랑이 사냥을 즐겼던 것이다. 이 영국군 장교 가운데 죤 스미스라는 젊은 장교는 호랑이의 발자국을 쫓던 중 와고라 강을 건너 서쪽을 바라보며 길게 누워있는 거대한 바위산 밑에 이르렀다. 험한 산비탈을 기어 올라온 스미스는 지친 나머지 바위산에 기대 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가 토해낸 담배연기가 그의 등뒤 바위산 안으로 고스란히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스미스는 이상히 여 겨 연기가 빨려들어 가는 바위산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뒤엉킨 나무 덩쿨로 뒤덮여 있던 거대한 바위산 아래쪽으로 담배연기는 계속 빨려들어 가고 있었고, 연기가 빨려 들어가는 곳을 헤집고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거기엔 거대한 석굴의 입구가 뚫려 있는게 아닌가? 스미스는 소스라치게 놀라 굴안에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총을 바로 겨누며 굴안으로 들어갔다. 긴장과 불안에 휩싸인채 한걸음 한걸음 굴안으로 들어간 스미스는 그러나 굴안에서 호랑이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지니고 있던 성냥으로 불을 밝히는 순간, 그는 그만 소스라치 게 놀라고 말았다. 천년의 어둠속에 묻혀 있었던 그 석굴안에는 거대한 불상과 아름다운 벽화 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사람, 죤 스미스(John smith)라는 젊은 영국군 장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석굴이 바로 오늘의 아잔타 석굴. 죤 스미스의 보고에 의해 영국정 부가 조사에 착수, 석굴은 하나가 아니라 무려 29개에 이르는 거대한 석굴 군(郡)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아잔타 석굴이야말로 인도 불교문화유적 가운데 가장 거대한 보고(寶庫)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되찾은 이후 두번에 걸친 본격적인 발굴 작업과 조사 연구에 의해 아잔타 석굴은 오늘의 모습을 되찾아 세계의 관광 객들에게 공개되게 되었고 전세계 불자들의 참배지가 되었다. 거대한 바위산 밑을 뚫어 줄줄이 자리잡고 있는 29개의 석굴 사원들. 그 안에 들어가 보니, 도무지 벌어진 입을 다물수가 없다. 과연 이 엄청난 석굴을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흔히 말하기를 “타지마할을 보기 전에는 인도를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 러나 나는 감히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아잔타 석굴 사원을 보기 전에는 감히 인도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더더구나 인도의 불교성지를 참배하는 불자들에게 아잔타 석굴 참배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려는 불자들이라 면 지극 정성이 무엇이며 신심(信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아잔타 석굴사원 을 참배하기 전에는 감히 말할 수 없으리라. 우리나라 경주 토함산의 험한 산길을 올라가 석굴암을 참배할적마다, 그 옛 날 이 험한 산중에 과연 어떻게 저 큰 석불상을 모실 수 있었을까, 생각이 아득하여 우리 조상님들의 지극했던 불심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던 우리들이 다. 그러나 아잔타 석굴사원 안에 들어가보면, 대체 이 어마어마한 바위산에 감히 어떻게 이런 석굴법당을 만들고, 감히 어떻게 이런 석굴정사를 만들 수 있었을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불심(佛心)이란 이런 것이구나” “신심(信心)이란 이런 것이구나” 제1석굴부터 제29석굴까지 일련번호가 붙여진 석굴을 자리잡고 앉아있는 순 서대로 한곳 한곳 들어가 보면, 참으로 우리들의 불심, 우리들의 신심은 부 끄럽고 초라할 수 밖에 없다. 부처님이 태어나셨고 설법하셨고, 열반에 드신 곳은 인도의 동북부 지방이 었는데, 거기서부터 실로 수천리나 멀리 떨어진 인도의 중서부 데칸공원의 험준한 산속 바위에, 이토록 어마어마하고,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정교한 석굴사원을 만들었던 옛날 인도사람들의 불심과 신심이 정말 얼마나 깊고 지극했던지는 상상조차 할길이 없다. 부처님은 단 한번도 이곳 인도의 중서부 지역 데칸공원에는 오신 일이 없었 다. 그런데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후 4백여년이 지난 후인 BC 2세기부터 이곳 아잔타에 석굴사원이 조성되기 시작했었다. 이 당시만 해도 불교가 얼 마나 폭넓게 인도전역에 전파되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인도불교미술의 보고로 손꼽히고 있는 아잔타 석굴사원들은 BC 2세 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장장 9백년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계속해서 AD 7세기까지 그 작업이 지속되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불사(佛事)가 아닐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천2백여년전, 이 깊고 험한 산중에 거대한 바위산이 버 타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바위산에는 자연이 만들어준 굴이 전 연 없었다. 통째로 앉아 있는 엄청난 바위산 덩어리의 서쪽벽에 정과 망치 로 한조각, 한조각 바위를 쪼아내어 한치, 또 한치 파고 들어가서 거대한 돌 기둥을 만들고, 그 안에 법당을 만들고, 벽에 조각을 새기고, 또 그 벽에 오 색현란한 벽화를 그려 부처님의 세계를 펼쳐놓았다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영악한 현대인의 두뇌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초인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더구나 석굴안에 한평, 두평되는 소규모가 아니다. 수십명 아니 수백명이 들어 앉아 법회를 열 수 있을 만큼 법당안은 넓고 드높아서 우리네의 대웅 전 규모를 갖춘 곳도 있다 뿐만 아니라 스님 한 분 한 분이 방한칸씩을 차지하고 들어 앉아 수행정진 했던 석실이 줄줄이 석굴 양쪽에 자리잡고 있다. 제 1굴부터 제 29굴까지 그 내부를 낱낱히 다 자세히 소개할 수 없는 일이 지만 우선 입구에 앉아 있는 제 1굴을 들어가 보자. 제 1굴은 번호만 1일뿐 가장 먼저 지어진 굴은 아니다. 이 제 1굴은 서기 600년부터 642년까지 42년간의 작업 끝에 만들어졌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1 천3백여년전, 우리나라의 역사로 치면 신라시대에 조성된 셈이다. 굴안은 약 19.5평방미터에 이르는 드넓은 정방형 정사(精舍)의 형태. 벽에는 아직도 아름다운 불화(佛뎬)가 남아있는데 많는 벽화들은 부처님의 전생담인 〈자타카〉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고,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왼손에 연꽃 한송이를 들고 있는 연화수보살(漣花手菩薩)의 모습이 아 름답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 제1굴 안에는 부처님을 유혹했던 마라, 태자시절 겪었던 사문유 관(四門遊觀), 초전법륜상 등 부처님의 행장과 설화를 표현한 벽화와 조각들 이 가득 새겨져 있다. 제2굴, 제3굴, 차레차례 굴안에 들어가면 우리는 바위산 속에 펼쳐진 불교의 설화와 부처님의 일생,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름다운 조각과 벽화로 만날 수 있다. 특히 제10굴은 깊이가 29.5미터 넓이가 12.5미터나 되는 드넓은 법당형태인 데 수백명이 함께 들어 앉아 법회를 열 수 있는 큰법당. 기원전 11세기경 백년에 걸쳐 조성되었다고 하니 그 불심과 신심을 어찌 감히 가늠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제1굴부터 제29굴까지 세세히 다 돌아보자면 시간제약상 단체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성지순례단의 여행사에서는 빈틈없는 여행계획상 시간을 재촉 하니, 이 아잔타 석굴사원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알자면 최소한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틀동안은 여유있게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이 아잔타석굴을 제대로 보자면 반드시 개인용 랜턴을 준비해 가지 고 가야 한다. 이 아잔타 석굴에는 전깃불도 가설되어 있지도 않고, 굴안이 어두워 바깥의 햇빛만으로는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장장 9백년에 걸친 인도인의 불심과 신심으로 남겨진 아잔타 석굴사원. 그 러나 오늘 인도땅에는 어찌하여 저 지극했던 불심이 사라졌는가, 안타까울 뿐이다. 〈윤청광-객원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