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맧) 날 짜 (Date): 1998년04월03일(금) 05시56분49초 ROK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식종자의 저장소 번호 : 17/2926 입력일 : 98/03/31 09:27:07 자료량 :64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식종자의 저장소 지난호에서 우리는 분별하는 제6식과 자아에 집착하는 제7식을 살펴보았 다. 감각기관의 인식으로 이루어진 전5식을 기본적인 표면식이라고 한다면, 제6식은 좀더 깊이 자리한 분별식, 그리고 제7식은 표면식과 잠재식의 중간 에 위치한 자아 사량식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 식들의 활동을 뒷받 침하고 거두어들이는 심층식, 무의식, 또는 잠재식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유식에서는 제8아뢰야(alaya, 阿佶耶)識이라고 부른다. 물론 전5식으 로부터 제8식까지의 모든 식이 떨어져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실 상을 세밀하게 살피기 위해서 편의상 인식의 특징에 따라 일련번호와 이름 을 붙였을 뿐이다. 범어 `아뢰야'는 결합, 주거지, 장소, 기저 등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아뢰 야식을 보통 `장식(藏識)'이나 `택식(宅識)'으로 번역한다. 모든 인식활동의 창고나 집처럼 기본이 되는 식이라는 뜻이다. 이 아뢰야식은 크게 세 가지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째는 능동적으로 모든 식들의 활동을 뒷바라 지 해주면서, 사물을 종자의 형태로 자신 속에 내장하는 것이다. 둘째는 수 동적으로 사물에 끌려 다닌다. 아뢰야식은 사물의 움직임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 유지되기 때문에 사물에 매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이 아뢰야식이 제7마나식에 의해서 자아로 오인되고 집착되는 것이다. 유식 용어로는 첫째를 능장(能藏), 둘째를 소장 (所藏), 셋째를 집장(執藏)이라고 한다. 이 삼장(三藏)은 아뢰야식의 종자가 어떻게 활동하느냐를 나타내기도 하고, 아뢰야식과 사물의 움직임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느냐를 보여주기도 한다. 첫째 식종자로서의 아뢰야식은 눈앞에 벌어지는 일체 제법을 낳는다. 식이 분열해서 주관과 객관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유식에 있어서는 주관과 객 관이 다같이 식의 발현이다. 둘째 주관 객관으로 벌어진 눈앞의 세계에는 움직임의 업이 있게 되고, 그 업은 다시 종자식(種子識)에 영향을 준다. 이것을 훈습이라고 한다. 셋째 현 행의 제법으로부터 훈습을 받는 종자는 한시라도 고정된 상태로 있을 수 없 다. 찰나 찰나 연속되는 식종자를 발생한다. 그런데 이와같이 종자식이 현실 세계를 낳고, 현실 세계가 종자를 훈습하고, 훈습받은 종자가 다시 종자를 낳은 순환관계는 논리적인 면에서만 앞뒤가 있을 뿐이다. 시간적으로는 동시에 이루어진다. 여기서 눈앞에 펼쳐지는 일체법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별것이 아니다. 전5식, 제6식, 제7식이 합동으로 인식하는 것 일 뿐이다. 이때 아뢰야식과 앞의 일곱가지 식 즉 7전식이 동시적인 인과관 계를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서 있는 갈대와 타고 있는 불로 비유된다. 갈대 묶음이 갈대들의 상호의 기댐에 의지해서 서 있을 수 있는 것과 같고, 연료 와 불이 상호의지 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과 같다. 삼장 가운데 능장은 식종자가 현실 세계를 낳거나 다시 식종자를 발생하는 것이고, 소장은 현실 세계에 의해서 식종자가 훈습 또는 영향을 받는 것이 다. 그리고 집장은 이와같은 식종자와 현행 제법간의 동시적인 순환관계가 끊어짐이 없이 계속되기 때문에, 그 연속성이 자아로서 오인 받는 것이다. 이 아뢰야식에 현실의 제법이나 또 다른 식종자를 발생하는 자주적인 면 과,식종자와 현행 제법 사이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연속적인 면이 있 기는 하지만, 결코 고정체는 아니다. 연이어서 동시적으로 소진되고 탄생하 는 변화적 연속체일 뿐이다. 마치 전등의 불빛이 전류를 공급받아 고정체가 아니면서도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과 같다. 전5식이나 제6식이 단절적인데 반해서 아뢰야식에 연속성이 있기는 하지 만, 그것도 공이나 무상의 법칙 내에 있다는 말이다. 아뢰야식의 다른 이름 들도 각기 이 식의 특징을 나타낸다.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 근본식(根本 識), 집지식(執持識), 이숙식(異熟識) 등이다. 이 가운데 이숙식은 다겁생래 업의 과보체임을 뜻한다. *발행일(1667호):1998년 3월 31일 , 구독문의 (02)730-4488 <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