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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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luvhurtz (  송 훈)
날 짜 (Date): 1998년04월02일(목) 05시29분22초 ROK
제 목(Title): [cap] 벽암록 제2 강화/ 김용옥, 신동아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artistry)
날 짜 (Date): 1998년04월02일(목) 04시25분34초 ROK
제 목(Title): 벽암록 제2 강화/ 김용옥, 신동아 


도올 『碧巖錄』 講話 제2화 

최고의 道는 어렵지 않은 걸! 

『스님께서 「나도 몰라」 하신다면, 왜 명명백백한 절대경지에도 있지 않다고 아는 
체 하셨습니까?』 『다 물었냐? 그럼 이제 절하고 가 봐』 

도올 김용옥 (철학자·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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蛇足 禪은 인도불교의 중국화(Sinicization of Indian Buddhism)의 頂點이다. 
그것은 중국언어의 특성속에서 피어난 것이며, 중국언어를 빌린 중국인의 
상상력속에서 개화된 것이다. 그런데 중국언어라는 것은 역사적 축적체다. 
중국언어는 중국인의 감정과 생활습관과 과거사건의 통시적 축적태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통시적 축적태는 일정한 사유의 구조를 갖는다. 『벽암록』의 
제1칙!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우발적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禪을 
말하는 자 儒를 모르고, 儒를 말하는 자 禪을 모른다. 

제1칙을 바라보는 갈등의 요체는 바로 「聖」이라는 단 하나의 글자에 있다. 
다시말해서 「聖諦」라 했을 때 그 무게중심이 眞諦라 하는 諦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수식하는 「聖」에 있다. 모든 종교는 「聖」을 강조하고 「聖」을 
第一義로 가장한다. 모든 종교가 「俗」에 대한 「聖」의 권위를 존중하려 한다. 
그리고 聖의 특수한 권위가 없이는 종교는 성립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루돌프 
옷토(Rudolf Otto, 1869~1937년)는 聖(Das Heilige)을 존재로부터는 차단시켰지만 
그는 또 다시 聖을 도덕이나 이성이 접근할 수 없는 절대적 영역(numinous)으로 
실체화하고 있다. 이러한 본체적 영역은 어떠한 타자에로도 환원될 수 없는 것(sui 
generis)이며, 그것은 인간에게 「떨림」을 불러일으키는 궁극적 신비다(mysterium 
tremendum). 그것은 강렬한 끌림의 요소다(mysterium fascinans). 그에게 있어서 
聖은 존재가 아니요 느낌(feeling)이요, 바람(longing)이라는 의미에서 과거의 
기독교적 사상가와는 획을 긋는 측면이 있지만, 옷토와 같은 이들에게서 끝끝내 
해탈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불필요한 지나친 경건주의(Pietismus)다. 옷토는 그의 
성적 영역(numinous)속에서 동과 서의 신비주의를 융합하려고 했지만 그가 말하는 
서는 마이스터 엑카르트(Meister Eckehart, c.1260~1327년)요, 그가 말하는 동은 
힌두사상가다. 그는 중국의 禪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옷토는 聖을 
콘스트럭트하려고 했지만 달마는 聖을 여지없이 디콘스트럭트해버린다. 

廓然無聖! 俗諦 아닌 聖諦가 무엇이냐? 諦를 말하기 전에 聖은 무어 말라빠진 
聖이냐? 텅 비었는데! 확연(廓然)에는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이탈(Detachment, 
독일어로 Gelassenheit 혹은 Abgeschiedenheit)조차 의미를 잃는다. 영혼과 神의 
合一을 論究할 바탕조차 없다. 聖을 向한 모든 염원이 달마의 「확연무성」 앞에서 
확연히 다 무너져버린다. 「경건」만이 종교의 제1의라고 생각하는 모든 편견이 
타파되어버리는 것이다. 禪에는 경건조차 없다. 경건조차 없을 때 「절대」는 우뚝 
솟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재미난 얘기를 하나 들어보자! 난 대학교 시절에, 그때 한국에 처음 부임해온 
평화봉사단원(K1)들에게 영어로 동양사상, 특히 노장사상과 불교철학을 강의한 
적이 있다. 그때 나의 영어강의를 수강한 사람 중에 독일선교사가 한 명 있었다. 
그의 이름은 게하르트 브라이덴슈타인(Gehard Breidenstein). 그는 사회주의적 
성향의 진보적 기독교인이었는데, 박정권하 한국의 초기자본주의 발전양상에 매우 
비판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선교사이면서도 「예수」를 팔아먹을 생각은 
안 하고 사회운동조직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를 조선땅에 팔아먹기 
전에 조선땅에서 무언가 배움으로써 자기 기독교신앙의 틀을 벗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는 한국에 있는 동안 KSCF(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의 운동을 이론적으로 
조직하여 『학생과 사회정의』(1971)라는 책까지 발간하였고, 남·북한 경제의 
비교연구 없이는 한국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길이 없다고 하여 나중 출국 후에는 
북한 현지에까지 직접 가서 북한경제를 연구했던 인물이다. 그가 당시에 쓴 논문 
하나가 프랑크 볼드윈(Frank Baldwin)이 편한 책, 『평행선을 넘어서(Without 
Parallel)』속에 「Capitalism in South Korea」란 제목으로 들어가 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고려대학 「하꼬방」이라고 부르던, 지금 고려대학교 
홍보관 앞쪽으로 너절하게 펼쳐져 있던 학생 서클실이 자리잡은 판자촌의 고대 
기독교학생회 서클실에서였다. 나는 당시 고려대학교 철학과 3학년 학생으로서 
기독교운동에 열심이었고, 그는 고대 기독학생회 초청강사로 와서 바이블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 그의 첫만남에는 묘한 화두가 개재되어 있었다. 
고려대학교 철학과 학부학생으로 있을 때 나는 이미 신학대학을 다닌 경험이 있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담배를 지독히 피웠다. 고교시절부터 워낙 불량기가 
많아 담배를 몸에 익히긴 했지만, 관절염으로 기나긴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지독한 
독서벽과 함께 흡연 습관은 가중되어만 갔다. 

요즈음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 기독교인의 홀마크는 담배·술을 안 하는 
것이었다. 보통 담배·술을 끊기 위해 교회 간다는 것은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는 
한국기독교의 위대한 전통이었다. 그런데 나는 신학대학에 가서도 담배를 못 
끊었다. 한국신학대학 재학시에 나는 학생처장댁에서 그 교수님 아들 
가정교사노릇하면서 방을 얻어 살았는데, 처장댁에서도 담배를 피워 처장님을 
곤혹스럽게 해드렸다. 물론 신학대학에서는, 그것은 퇴학처벌할 행위였다. 

신학대학에서 내가 고려대학으로 학교를 옮겼을 때 나는 해방감을 만끽했다. 
그런데 기독학생회는 당대의 일반 통념에 따라 교계가 요구하는 엄격한 도덕성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브라이덴슈타인의 바이블 클래스에서 무의식중에 담배를 
피워물었다. 아마도 강의 중에 피웠을 리는 만무하고, 잠깐 쉬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때 기독학생회 회장이 나보고 학생회실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항심에 나가지 않고 계속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진보적인 독일선교사 브라이덴슈타인이 내 편을 들어 학생회장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분명 잘못한 일일 것이고, 
회장이 담배를 서클실 밖에 나가서 피우라고 한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회장의 실수는 바로 「聖」, 이 한마디였다. 기독교학생회의실은 기독교도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교회와도 같이 성스러운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바로 여기에 「신앙」과 「성」과 「교회」 「학교 
서클실」이라는 개념이 얽힌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브라이덴슈타인은 신앙과 
聖스러움과 담배와 대학은 혼동될 수 없는 문제라고 하는 나의 주장을 후원했다. 
그는 나의 날카로운 논리와 무엇보다도 나의 유창한 영어실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담배를 한 개비 달라고 하더니 나와 같이 피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독교학생 서클실을 나서면서 나이를 초월해서 친구가 
되었다. 한마디로 그와 내가 만난 첫 인연은 「확연무성」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聖이 있는 게 無聖이냐? 없는 게 無聖이냐? 

그뒤로 브라이덴슈타인은 자기가 한국에서 만난, 영어를 잘하면서 동양철학에 밝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날 좋아했다. 그리고 이제는 거꾸로 내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無聖」의 公案으로 만난 그와 나였지만 그와 나는 만날 때마다 계속 
싸웠다. 그의 사고는 항상 선교사 본색을 떨궈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儒를 말하든, 道를 말하든, 佛을 말하든 그는 내 말끝마다 서양에도 그런 사상이 
있다고 훈을 달았다. 그리고 기독교 교리의 바른 해석은 내가 말하는 동양사상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도대체 왜 동양사상을 배우려 
하는가? 기독교 가지고 콩죽도 쑤고 팥죽도 쑤고 다해먹으면 될 것 아닌가? 왜 날 
괴롭히누? 

그러면서도 내가 브라이덴슈타인과 사상적 교류를 계속했던 이유는 그의 강변을 
통해 내가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서양사상들의 깊이를 다시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학은 논전 즉 아규먼트로부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도 
소피스트들과의 논전 속에서 그의 철학을 키웠다. 孟子도 위대한 논객이었다. 
논란이 없으면 자기 문제에 대한 성찰이 결여된다. 

젊은 날 나의 철학적 성찰을 출발시킨 집요한 두 논객이 있었으니 그 첫사람이 
바로 독일선교사 브라이덴슈타인이요, 그 두번째 사람이 대만대학 동반동학이었던 
이스라엘인 요아브 아리엘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나에게 동양사상을 배우려 
하면서도 나의 동양철학 아성을 파괴시키려 들었다. 나는 거꾸로 나의 아성을 
고수하면서 그들의 아성을 무너뜨려야만 했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서양에서 벗어나오느라고 겪었던 心의 
고초와 身의 고통을(내가 신학대학을 들어갔다가 뛰쳐나오는 삶의 역정으로 
상징화되는) 최소한 그들도 겪어야 된다고 나는 믿었다. 

나는 브라이덴슈타인에게 『老子道德經』을 강의했다. 한문 한자 한자를 
영역해가면서 그 배후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와 나의 논전이 짙은 녹음과 함께 
무르익던 어느 한 여름날, 나는 호두나무 이파리의 향기와 쓰르람매미의 따가운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남루한 고찰, 광덕사에서 브라이덴슈타인과 마주 앉아 
불교철학을 설파하고 있었다. 나는 광덕사에서 수도승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브라이덴슈타인이 불교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간청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광덕의 가람으로 안내했다. 내 고향 천안 풍새 안켠에 자리잡은 
광덕사는 당시 거의 돌보는 사람이 없는 폐찰에 가까웠으나 그만큼 자연스런 
고찰의 풍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물레방앗간이 옛모습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밑구녕이 훤히 내다보이는 시원한 판자때기 측간에, 주승은 오간 데 없이 
인경소리만 객의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아름다운 가람이었다. 방장실에 앉아 발을 
걷고 모기를 쫓으며 찌그러진 서안에 푸른 백발의 브라이덴슈타인과 미래의 철학자 
도올은(참, 그땐 도올이란 號도 아직 없었구나!) 푸근한 정담과 비지땀 흘리는 
논전을 아끼지 않았다. 

『해탈이란 하나님마저 해탈해버리는 거라니깐』 

『그래 봤자 절대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마찬가지래두』 

『아, 글쎄 절대조차 없다니깐』 

『엑카르트의 신비주의에는 4단계가 있지. 첫째가 차별성(Dissimilarity), 둘째가 
유사성(Similarity), 셋째가 합일성(Identity), 넷째가 초월성(Breakthrough). 
그런데 넷째 단계에 오면 영혼과 신의 합일상태마저 초탈해야 해. 즉 궁극적 
초월이란 신마저 버려야 한다는 것이거든. 신이란 인간이라는 존재 이전의 
존재이기 때문이야. 이런 신비주의에 오면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가 없어져』 

『그래도 기독교와 불교는 분명히 달라! 불교를 기독교 신비주의 방식으로 
이해하면 안 되지. 논리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색깔이 다르고 냄새가 달라. 더구나 
선은 완전히 달라!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지?』 

기독교와 불교는 결국 같은 것이라고 강변하는 독일선교사 앞에서 짧은 영어로 그 
총체적 느낌을 다 전달할 수 없어 안절부절 못하는 도올 김용옥!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에게 번뜩 스쳐가는 영상이 하나 있었다. 조금 전에 그 방장스님 방 
벽장에서 내가 보았던 그림이었다. 당시 나는 그 그림의 출전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은 『景德傳燈錄』 14卷, 『五燈會元』 5卷 등에 
실려있는 단하소불(丹霞燒佛)이라는 공안을 그린, 明나라 때 유명한 그림의 
복사품이었다.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년)은 石頭希遷의 門下다. 그가 東京(河南省) 慧林寺에 
머물 때 몹시 추운 겨울 어느날이었다. 좌선을 하다가 추우니까 단하는 좌선하던 
불당의 제단에 놓인 木佛像을 내려다가 도끼로 패서 캠프파이어를 피운다. 그리고 
따끈하게 불을 쬐는 것이다. 놀라 기겁한 院主가 달려와서 웬일이냐고 꾸짖는다. 

『어쩌자구 부처님을 태우노!』 

천연덕스럽게 단하는 부지깽이로 훨훨 타오르는 목불장작을 들추면서 왈: 

『부처님 태워 사리를 얻을려구 그러지』 

원주 성나서 왈: 
『아니 나무부처에서 사리가 나와?』 

단하가 다시 대꾸하길: 
『아 그렇던가? 사리가 안 나오면 부처님 몇개 더 태울까?』 

그런데 훗날 단하는 멀쩡했는데 원주스님은 천벌을 받아 눈썹이 다 빠져버렸다. 

내가 본 그림은 이 공안에 기초했을텐데, 스님이 좌선을 하다가 궁둥이가 몹시 
시리니까 선방에 모셔놓은 나무부처를 도끼로 패서 장작불 피우고 법복 허리를 
풀어 궁둥이를 발라당 까놓고 항문 불알이 다 보이도록 발그스레한 볼기에 불을 
쬐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 이래도 불교와 기독교가 같단 말이냐?』 

나는 갑자기 광덕사 방장실 벽장을 확 열어제끼면서 브라이덴슈타인을 보고 
말했다. 

『보란 말야! 보란 말야! 이래두 불교하구 기독교하구 같애!』 

『오우 노오!』 

그 순간 경악 속에 이지러지는 브라이덴슈타인의 얼굴에 진정한 깨달음이 
있었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다스 하이리게(聖스러움)」의 확연한 
허물어짐이었다. 그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순수한 인간이었다. 
그것은 나의 논리적 승리이기 이전에 그의 깨달음의 승리였다. 순간 나의 눈에도 
피잉, 희열의 눈물이 돌았다. 

일본역사에는 이런 희한한 史實이 있다. 「후미에(踏繪)」라는 얘기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임진왜란의 주인공을 아는가? 너무 황당해서 잘 이해가 안 되는 사나이, 
풍신수길(豊臣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년)! 해뿌리나라 일본의 
센고쿠(戰國)를 통일하고, 조선 중국 필리핀 인도를 정복하여 아시아 전대륙의 
황제를 꿈꾸었던 풍운의 사나이, 이순신의 거북선 앞에 무릎을 꿇고 그 꿈이 
좌절되자 홧병이 나서 꿈속으로 그 혼이 날아가버린 사나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1587년 규슈(九州) 遠征 때의 일이다. 하카타(博多)에서 滯陳중에 히데요시는 
키리시탄 다이묘오(切支丹大名, 기독교인 영주) 아리마(有馬)氏의 領內에서 침실을 
시중들 아리따운 미녀들을 뽑아오게 하였다. 히데요시는 當代 전국최고의 지배자! 
그 영광스러운 침실에 수청들러온 여인들! 이건 또 웬일인가? 그 여인들이 모두 
수청은 들지 않고 하나둘 貞潔이 목숨보다 더 소중타며 혀를 깨물고 자결해버리는 
것 아닌가? 이게 도대체 웬일이냐? 당시 일본의 봉건윤리관념으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상한 사태였다. 

『도대체 이들이 왜 이러는가? 도대체 이들이 누구란 말이냐?』 

『키리시탄(切支丹)이라 하옵니다』 

눈이 번쩍 띄었다. 무서운 일이다. 키리시탄! 무서운 자들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생전 처음으로 키리시탄에 눈을 뜬다. 그리고 규슈 일대가 이미 
외국인선교사들의 강력한 지배에 있을 뿐아니라, 나가사키(長崎)가 이미 키리시탄 
敎會領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하기에 이른다. 

『日本은 神國이다. 키리시탄 나라로부터 邪法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로고. 이제부터 그런 일은 용납될 수 없나니라』 

기독교전도가 금지되고, 외국인선교사(伴天連, 파테렌, Padre)의 국외추방령이 
내려지고, 나가사키지방의 교회령이 몰수된다. 그러면서 일본은 쇄국 일로를 
걷는다. 그리고 이러한 키리시탄 탄압은 히데요시의 후계자이며 戰國을 끝내고 
도쿠가와 幕府정권을 탄생시킨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년)의 
치세기간에 가차없이 강화되어간다. 그러나 기독교는 본시 탄압할수록 강해지는 
법, 누를수록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세키가하라 戰爭이 끝났을 무렵 키리시탄 
信徒는 75만명에 이르렀다. 

우리는 천주교박해를 생각하면 기껏해야 용산 한강변 새남터(沙南基)나 
절두산(切頭山) 聖地에 흘린 피를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키리시탄 
박해는 햇수로도 꼭 3백년을 앞서는 것이요, 그 박해의 잔혹함도 우리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가까운 이웃나라의 역사지만 우리보다 그 개화의 스케일이나 
체험의 깊이가 차원을 달리한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할 것이다. 

도쿠가와 정권은 우선 「테라우케쇼오몬(寺請言正文)」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것은 요즈음 「주민등록증」 같은 것인데, 
햐쿠쇼오(百姓)·초오닌(町人)·부시(武士)의 구별이 없이 전국민이 모두 어느 한 
절간에 주민등록을 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절간을 관공서化시키고 
중앙정보부化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일본불교를 완전히 타락시키고 생명력을 
빼앗아버렸지만 그 근본이유는 기독교도들을 색출해내기 위한 목적에 있었다. 

「후미에」란 무엇인가? 이것은 나가사키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되고 
설치되었던 것인데, 일반 백성들이 출입을 하는 남대문과 같은 성문 바닥에 예수의 
십자가상이나 성모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동판에 양각한 것을 깔아 
놓은 것을 말한다. 주민이 그것을 밟고 지나가면 내버려두고, 밟지 않고 비켜가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후미에」로 인해 목숨을 잃은 자, 
1614년에서 1635년까지의 통계로 28만에 이른다. 이러한 잔혹한 박해는 결국 
키리시탄의 시마하라(島原)·아마쿠사시마(天草島)의 반란에까지 이르지만 일본의 
기독교인은 에도(江戶)의 출발과 더불어 결국 멸종에 이르고 만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하도 밟고 다녀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 성모마리아 예수상의 후미에가 
그 피비린내나는 함성을 외면한 채 박물관 여기저기에 걸려있다. 

후미에! 생각해보라! 지나가다 예수 성모마리아의 동판을 밟는 순간, 내 모가지에 
칼날이 왔다갔다! 생각해보자! 慧林寺의 단하스님이 부처님의 후미에를 지나쳐야 
할 운명이었다면 그는 어찌했을까? 아마 도끼로 콕콕 찍고 지나갔을 것이다. 아니, 
과연 부처님후미에로 불교도를 색출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럼, 기독교도임을 자처하는 신학대학생 도올 김용옥이 나가사키후미에를 
지나쳐야 할 운명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나 말하노라! 아마도 성모마리아상 위에 
오줌 누고 똥 누고 침까지 뱉고 지나갔을 것이다. 에끼! 도올 이놈! 그걸 말이라고 
씹어뱉냐? 그럼 후미에 위에 차마 발길을 떨구지 못하고 췌췌기율(討討其慄) 그 
잔혹한 칼날에 새파란 생명을 휘날려버린 그 생령들의 진실은 단하스님의 
좆대가리터럭에 낀 서리만도 못하단 말이냐? 후미에를 비킨 28만의 죽음, 그들의 
죽음이 있었기에 찬란한 오늘 일본문명의 자태가 있는 게 아니냐? 새남터 절두산에 
뿌린 수천명의 血淚가 있었기에 오늘 자랑스런 조국, 대한민국의 개화된 모습이 
있는 게 아니냐? 에끼! 니미씨발, 뭔 그 순교자 새끼들 땜에 신도 등쳐먹는 
목사새끼들, 하룻밤 사이에 솟고 또 솟는 교회건물, 조선의 밤하늘을 가득 메운 
로마형틀 십자가의 네온사인만 백화점광고보다 더 요란하게, 골대 앞에서 무릎꿇고 
오 주여 할렐루야 쇼만 볼짝시냐?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가난한 서민들 십일조만 
빨아처먹다가 배가 꿰져 뒈졌다더라! 어 흠! 그따위 주둥아리 놀리다가 지옥에도 
못 떨어지고 유황불 나락으로 직행헐려구래? 



報身, 法身, 化身의 三身 

과연 어느 게 廓然無聖이냐? 단하소불이냐? 후미에의 진실이냐? 聖이 있는 것이 
無聖이냐? 聖이 없는 것이 無聖이냐? 不識! 나도 모른다. 

생각이 미천한 자들이 公案의 본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양무제와 달마의 만남을 
역사적 사실로 착각한다. 허나 다시한번 내 말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설두스님이 
편한 이 『벽암록』의 제1칙은 양무제라는 報身과 달마라는 法身의 해후! 또 한번 
기억해주게! 선은 인도불교의 중국화의 정점. 선은 중국인의 상상력의 소산. 
중국인의 상상력은 반드시 중국인의 언어를 빌릴 수밖에 없다. 중국인의 언어는 
十三經이라고 하는 文字의 세계다. 양무제와 달마의 해후를 만든 이들은 과연 
서역인이냐, 중국인이냐? 禪을 아는 자 儒를 모르고, 儒를 아는 자 禪을 모른다. 

생각해보라! 且道! 왜 하필 1칙이 양무제냐? 생각해보라! 且道! 『孟子』의 
첫머리가 뭐였더냐? 똑같은 양(梁)씨들 아니더냐? 생각해보라! 且道! 동편에선 
달마가 양무제를 만나러 가고, 서편에선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러 간다. 과연 
동·서의 구분이 있다더냐? 생각해보라! 且道! 양혜왕은 「利」를 말하고 양무제는 
「聖」을 말했다. 생각해보라! 且道! 맹자는 「何必曰利」를 말하고 달마는 
「廓然無聖」을 말했다. 아, 이놈! 이래도 못 알아차렸느냐? 니 몸뚱이 썩은 
고목둥아리에선 龍이 울지 않느니라! 

禪이 과연 佛敎인가? 나 도올은 말한다. 禪은 佛敎가 아니다. 禪에는 佛(부처님)도 
없고 敎(가르침)도 없다. 禪은 佛敎가 아니다. 선은 祖師들의 도통체계인가? 
달마가 인도로부터 내려온 법통으로 따져 二十八祖라더냐? 二十八祖란 니에미씨팔 
십팔에 열 더해 만든 숫자라더라! 나 도올은 분명히 말하노라! 선은 도통이 
아니요, 법통이 아니다. 선은 오직 깨달음이요, 그 깨달음을 표현한 상상력은 결국 
중국인의 문자인 한문의 구조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달마와 양무제의 해후는 
결국 孟學의 「性善」으로의 귀의다. 性善이란 性이 본시 善하다는 도덕적 판단이 
아니다. 性의 본래모습속에 萬物이 다 구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孟子』「盡心上」에 이르기를: 

萬物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 
만물이 다 나에 구비되어 있도다. 
그 몸을 돌이켜보아 거짓없다면,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혜능, 『壇經』 「付囑品」 第十에 이르기를: 
我心自有佛, 自佛是眞佛 
내마음 스스로 부처님 지니고 있고, 
스스러운 부처님이야말로 진짜 부처님 아니겠나! 

혜능의 頓悟는 맹자의 性善으로의 귀의다. 禪은 인도불교가 아니다! 아니 
인도니중국이니 국적을 말할 건덕지가 없다. 유대땅의 기독교가 로마에 상륙해 
비로소 인류의 종교가 되었다면, 인도의 불교는 중국의 禪에 이르러 비로소 오늘의 
진정한 보편의 종교가 된 것이다. 禪은 唐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唐은 중국문명 
최고의 滿開다. 禪은 핍박과 억압 속에서 움튼 종교가 아니요, 풍요와 舒暢함에서 
피어난 깨달음이다. 그것은 인류 최고의 無上無等의 正覺이요 지혜요 예지다. 
혜능의 頓悟가 孟學의 性善으로의 귀의라면, 또 다시 禪을 핍박한 朱子學의 말로가 
禪기와 孟學을 품에 안은 陸王 陽明으로 귀결되는 역사적 진로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陸象山은 「學荀知本, 六經皆我註脚(배움이 진실로 그 근본을 깨닫는다면, 
六經이 모두 나 존재의 각주일뿐이다)」을 말하였고 王陽明은 「良知良能」을 
말하지 아니하였던가? 

다시 한번 기억하자! 『벽암록』의 대가리, 양무제와 달마의 해후로 꾸며진 이 
탁월한 픽션이 『孟子』의 첫머리, 양혜왕과 맹자의 해후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면, 
이 짧은 픽션속에는 佛敎의 가장 근원적인 교리인 三身思想이 동시에 치밀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도! 양무제라는 報身, 달마라는 法身, 관음대사라는 化身! 



텅 빈 것은 텅 빈 채로 남겨두어라 

廓然無聖! 확연, 『텅 비었다』하니까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 요즈음 나는 혼자 
산다. 마누라가 도망가버렸다. 내 언어갈등에서 벗어나겠다구 아주 멀리멀리 
오래오래 도망가버렸다. 그래서 지난 주말 오랜만에 혼자 어슬렁 어슬렁 즐겨타는 
북한산 山行길에 올랐다. 구기동계곡으로 해서 大南門으로 올라가는 밋밋하고 
점잖게 생긴 코스를 택했다. 北漢山은 참으로 조선민족의 축복이요, 서울시민의 
천혜의 행복이다. 제아무리 백두가 장쾌를 자랑하고, 금강이 수려를 자만하고, 
지리가 위엄을 과시하고, 한라가 고고를 뽐낸다 하지만, 모두 현대적 삶속에선 
화중의 병이요, 발길이 미치기 어려운 것이다. 허나 北漢은 비록 그런 名山의 
뛰어난 一面을 과시하지 않으나 모든 名山의 면목을 一切 具備한 名山 중의 
名山이요, 質素한 중에 모든 수려함을 감추고 있는 제잠의 허리다. 서울과 같은 
메트로폴리탄 한복판, 엎드리면 코닿는 곳에 北漢과 같은 위대한 自然이 
共存한다는 것은 이 地球上에서 꿈도 꿀 수 없는, 類比가 불가능한 天惠 중의 
天惠요, 낙원 중의 낙원이요, 천지신명의 축복 중의 축복이다. 서울시민이 세계를 
향해 뽐내고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프라이드야말로, 서울대학교도 아닐 것이요, 
청와대도 아닐 것이요, 동숭동 문화의 거리도 아닐 것이다. 바로 이 北漢의 
存在다! 도올한의원에 와서 보약 100첩 잡수느니 北漢山에 한번 오르시라! 

오랜만에 고독을 즐기며 北漢의 秀壯함을 음미하면서 어슬렁 어슬렁 뒷짐지고 
오르는데 깔딱 깔딱 깔딱고개를 오르려니 제법 숨이 차고 비지땀이 비질비질 
속옷을 적신다. 헉헉거리며 깔딱고개에 오르는 순간! 대남문까지 확트인 거대한 
분지의 空寂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시 北漢은 名山 중의 名山이로고! 그런데 
도대체 이게 웬일인가! 廓然無聖을 강의하는 도올의 눈에 들어온 
깔딱고개-대남문의 廓然이야말로 텅 빔 중의 텅 빔이요, 萬 畏를 감춘 如如의 
本來面目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웬일인가! 이 如如의 空寂을 꽉 메우는 
電波의 世音이 있었으니 대남문 곁에 자리잡은 文殊寺에서 마이크확성기로 
울려퍼지는, 깨진 레코드판처럼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있는 도덕적 법문이랍시고 
들려주고 있는 개땅쇠도 안 처먹을 녹음테이프였다. Shit! 

우리가 山에는 왜 가는가? 人爲를 벗어나 無爲가 그립기 때문이다. 모든 文明의 
汚染에서 벗어나 自然의 淸淨함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人世의 복잡한 조작적 
인연에서 벗어나 自然의 단순한 如如의 心鏡을 회복하기 위하여 가는 것이다. 
市中에서 들여마신 공기를 뱉고 폐세탁을 하기 위함이요, 巷間에서 들은 
언어갈등을 후벼내고 귀청소를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文殊寺 주지스님은 그러한 
갈망과 소망과 희망을 품고 大自然이라는 부처님의 품안에 귀의하는 서울의 천만 
衆生들에게 전파로 똥물을 세례하고 계신 것이다. 

『니기미씨팔! 니 똥구멍에나 처박아 넣어라!』 

『부처님은 …… 하시나니 ……하지말지어다 …… 하시나니 …… 하지말지어다』 
도덕적 훈계경구를 그것도 싸구려 서양음악배경에다 편집하여, 그것도 타락과 
위선과 권위와 음탕으로 질펀한 땡중의 목소리로, 그것도 모든 감동을 가장하는 
싸구려 변사조의 억양으로! 

『어~ 어~억!』 

그날따라, 사실 항상 들어왔던 문수사 주지스님 녹음테이프였지만, 구역질에 
구역질이 솟구쳐 나는 번뇌에 휩싸이는 초라한 분노에 어쩔줄을 몰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이얀 쌀밥 위에 지금 시뻘겋고 굵은 황토지렁이가 하나 처억 걸쳐 
꿈틀거리고 있다 하자! 인간인 이상 누가 그걸 맛있다고 흰쌀밥과 함께 먹겠는가? 
흰쌀밥과 꿈틀거리는 지렁이는 도저히 같은 자리에 같이 어울릴 수 없는 두 개의 
사태다. 이것은 불법의 무차별심을 말하기 전에 인간의 본래보습이다. 공적한 
대남문 虛空에 울려퍼지는 싸구려 녹음테이프! 이것은 참으로 흰쌀밥에 지렁이 
이상으로, 더 어울리지 않는 끔찍한 사태인 것이다. 그런데 문수사 주지스님은 
그러한 녹음테이프 방송이 중생을 위한 최고의 보시라고 착각하시고 善業을 
부지런히 쌓고 계신 것이다.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삼각산 문수사! 북한산 정상 해발 645m에 자리잡은 국내 三大 文殊聖地 중의 하나! 
고려 睿宗 4년(1109년) 九山禪門 중 堀山派 중흥조 大鑑坦然國師(1070~1159년)가 
開山하였고, 고려불교의 중흥조며 한국불교의 宗主인 太古普愚國師(1301~1382년)도 
잠시 駐錫하였고 수많은 선객들의 선방이 되었던 文殊寺! 조선조 朴文秀어사도 이 
도장에서 기도해서 낳았고, 금세기 영욕을 한몸에 지닌 이승만도 그 자당이 여기서 
기도해서 얻었다는데―. 나도 그 거대한 천연동굴 속 부처님께 우리아이들 그저 
건강하게나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건만―. 

『慧淨스님! 소생의 무례함을 용서하오. 스님께는 스님 나름대로 善意가 있으실 
연이오나, 분명 그것은 폭력이외다. 분명 그것은 소음공해방지법 위반이외다. 이건 
참으로 소생 한 개인의 私見이 아니옵고 갈 적마다 주변의 모든 중생들이 저놈의 
마이크소리 좀 안 들렸으면 좋으련만 하고 갈구하고 갈구하는 大衆의 마음을 
대변한 죄밖에는 없소이다. 내 주지실에도 들어가 인사드리옵고 차분히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도무지 제 얘기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라서…』 

한국불교의 현금 최대의 難題는 승려들의 무식이 아니다. 승려의 무식이 순수한 
것이라면 그것은 성철스님의 게송보다 더 위대한 돈오의 해탈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불교의 최대의 난제는 바로 승려들의 인간적 품격의 결여요, 판단력의 
협애함이요, 심미적 감수성의 저열함에 있다. 그리고 大衆들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자신의 수준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진리라고 믿고 사는 착각이다. 고요한 
대자연의 사찰에서 앰프마이크로 목탁소리·염불소리·재 올리는소리·타종소리 
등을 마구 방송하고 있는 현금의 작태는, 참으로 대중보시나 시주유도에 조금도 
보탬이 없는 단순한 소음공해에 불과하다는 사실 하나를 깨달을 수 없도록 
무감각해져버린 승려들의 미감의 타락, 불교방송에서조차 이런 캠페인은 하나도 
하지 않고 있는, 이런 불교계의 심미적 수준이 우리나라 사찰을 망치고 자연 
경관을 망치고 인간의 심성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요즈음은 예수쟁이들도 그런 무식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과거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하던 몰상식한 짓들을 반복하면서 그걸 
불교의 대중화라 하겠는가? 

廓然無聖! 다시 한번 생각하자! IMF시대, 아니 모든 시대에 불교의 참다운 역할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확연무성의 실천이다. 확연무성이라 함은 바로 텅 빈 것을 
텅 빈 채로 남겨두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텅 비우고, 우리의 생활공간에서 
소음공해를 텅 비우고, 자연생태계의 순환 속에서 텅 빈 여유를 유지시킴으로써 
모든 공해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禪은 「빔」을 
말한다. 老子는 「無爲」를 말하고 「虛」를 말한다. 禪의 空은 아무 것도 없는 
眞空이나 頑空이 아니다. 禪의 空은 인간의 생명이 살아숨쉬는 虛의 空이요, 無의 
空이요, 寂靜의 空이요, 새소리 물소리 노래하는 생명의 찬가요, 보탬도 뺌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如如요 自然이다. 어찌 절간에서 목탁이나 염불이나 도덕적 훈계를 
앰프마이크로 放送하고 있는가! 放下着! 이제 제발 마이크를 내려놓거라! 

아 이놈! 도올! 사족이 너무 길어졌다. 빨리 2칙으로 가라! 누가 알아? 뱀다리가 
길어지다보면 龍이라도 될는지! 

第二則 趙州至道無難 
垂示云:乾坤窄, 日月星辰一時黑. 直饒棒如雨點, 喝似雷奔, 也未當得向上宗乘中事. 
設使三世諸佛只可自知, 歷代祖師全提不起, 一大藏敎詮注不及, 明眼衲僧自救不了. 
到這裏, 作匿生請益? 道箇佛字, 拖泥帶水;道箇禪字, 滿面踵惶. 久參上士不待言之, 
後學初機直須究取. 



제2칙 조주스님 왈, 최고의 道는 어렵지 않아 

[수시] 드높은 하늘, 드넓은 땅이 비좁게 오므라들고, 찬란한 해와 달과 별이 
일시에 빛을 잃는구나 ! 조사님의 방망이가 비오듯 내려치고 선사님의 
할(소리침)이 번개처럼 귀에 스쳐도 그것은 선종 수도승이 지향하는 최고의 
경지에는 미칠 수 없는 어림없는 짓거리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저 
홀로만 깨달았을 뿐이며, 역대의 조사들도 이를 다 들어 말할 수 없었다. 해인사의 
대장경도 이 경지를 다 주석달 길이 없었고, 눈밝은(명철한) 선승도 제몸 하나 
구하질 못했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도무지 어떻게 가르침을 구할쏘냐? 아 하 ! 
그 놈의 부처님 佛자 하나만 얘기하면 모두 진흙탕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고, 
더더욱 禪자 하나만 얘기하면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만면 부끄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오래 공부한 지근이 뛰어난 자라면 내 말을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허나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후학 초심자라면 곧바로 다음에 나오는 공안을 붙들고 
고생 좀 해보아라! 

『벽암록』의 제1 캐스트는 누구냐? 『벽암록』의 최고급 주연배우는 누구일까? 
『벽암록』의 주역이라면 아마도 그는 아카데미주연상을 받을 정도가 아니라, 
선불교사의 깐느 대상을 받을 인물일 것이다. 선의 주역, 과연 그는 누구일까? 
대답하는 이마다 생각을 달리할지 모르겠지만 나 도올은 서슴지 않고 조주(趙州) 
종심(從劤, 778~897?)을 꼽는다. 아마도 이 나의 선택에 감히 이의를 달 자가 없을 
것이다. 『벽암록』의 최초의 편자 설두는 원래 雲門계열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벽암록』공안에 최대다수출연자는 역시 雲門이요, 그는 16회나 나온다. 그러나 
趙州 역시 출연횟수 12회나 된다. 그리고 그 공안의 파워에 있어 조주를 따를 자는 
없다. 達磨 이후 제2칙에 조주를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所以然이 바로 여기에 
있다. 『벽암록』에서 조주를 빼놓으면 『벽암록』은 휴지가 된다. 아니 禪에서 
조주를 빼놓으면 禪은 그 찬란한 平常心을 잃는다. 조주, 조주, 조주, 18세에 
득도하고 120세에 입적했다 하는 조주, 과연 그는 누구인가? 

조주는 山東省 曹州 疥鄕의 사람이다. 姓은 疥氏다. 어릴적에 이미 曹州에 있는 
扈通院으로 출가하였다가 훗날 安徽省 池州에 있는 南泉普願을 謁하고 契悟하기에 
이른다. 남천(우리 불교계에서는 보통 「남전」이라 발음하는데 「남전」은 잘못된 
발음이다. 『廣韻』에 泉이 疾綠切로 되어있고 그 音이 全과 같아 그것을 
「전」으로 발음한 것 같으나 그것은 反切을 오독한 결과일 뿐, 泉이나 全이나 
모두 유기음이므로 「천」으로 하는 것이 더 일관성있고 바른 발음임을 
명기해둔다) 보원이야말로 조주를 역사적 조주로 키운 위대한 선승이었다. 

10대의 새파란 조주가 남천을 처음 찾아뵈었을 때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한다. 
남천은 때마침 선원 조실 따뜻한 아랫목에 드러누워 문을 열고 한가로이 동지 겨울 
소조한 풍경을 음미하고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그럼 서상(상서로운 모습)은 보았겠군』 

『서상은 본 적이 없고 단지 드러누워있는 여래불만 하나 보았습니다』 

어럽쇼! 요 꼬맹이 봐라! 남천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아 정좌를 하고 다시 
물었다. 

『네가 스승이 있는 사미냐, 스승이 없는 사미냐?』 

『스승이 있습니다』 

『그 스승님은 어느 절에 계시냐?』 

그때 조주는 묵묵부답하더니 넙죽 엎드려 남천에게 큰 절을 올리며 하는 말이, 

『겨울이 깊고 날씨 살을 에는 듯 한랭하온데 스승님 기체후 만강하시옵소서』 

남천은 실로 놀랐다. 이 꼬맹이의 재치와 그 형형한 혜망을 간파한 것이다. 남천은 
내심 기쁜 마음으로 入室을 허락하기에 이르렀다. 

남천의 시자가 된 조주는 어느날 스승 남천에게 묻는다. 

『선생님, 도가 무엇입니까?』 

『평상심(平常心)이지』 

『평상심에는 어떻게 이르지요?』 

『이르려는 생각에 이르면 곧 삐뚜로 가나니라』 

『근본적으로 생각이 없어지면 도는 어떻게 알지요?』 

『도라는 건, 아는 것도 아니요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아는 것은 妄覺이요, 
알지 못하는 것은 마비상태요 혼란이다. 의심할 바 없는 大道를 증득한다는 것은 
우주의 텅 빈 확연한 공간과 같다. 이러쿵 저러쿵 관념으로 그를 속박하려 들지 
말라!(道不屬知不知. 知是妄覺, 不知是無記. 若是眞達不疑之道, 猶如太虛廓然虛豁, 
豈可强是非邪?)』 

이 평범한 설법을 듣고 조주는 大悟한다. 그리고 受戒를 받아 정식 스님(和尙)이 
된 것이 18세! 

어느날 조주는 남천과 선원 뜨락을 같이 거닐다가 문득 스승님께 여쭌다. 

『있음을 깨달은 사람(知有底人)은 결국 어디로 가야 하지요?』 

『저 아랫동네에 내려가 밭 가는 소가 되거라』 

갑자기 예상외로 들이닥친 남천스승님의 반전에 놀란 조주! 그러나 조주의 깨달은 
환한 얼굴을 바라보는 남천. 침묵의 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 사이에 교감된 
언어는 인간의 언어를 억만배 초월하는 무진장의 언어였으리라! 조주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가르쳐 주신 것 정말 감사하옵니다(謝指示)』 

그리고 조주는 말없이 떠났다. 조주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는 남천은 이와 같은 
짧은 게송을 읊는다. 

『간 밤 깊은 삼경 창가에 달이 드리웠지(昨夜三更月到窓)』 

이것이 전부다. 독자들이여 과연 아는가? 이들의 깨달음의 언어를 과연 깨달아 
알아차렸는가? 과연 알아야 할까? 도올의 갈등의 개칠을 들어야 할까? 

조주 득도의 가장 중심언어가 된 계기는 「평상심」이란 한마디다. 平常心是道! 이 
평상심이란 한마디야말로 그가 남천스승으로부터 얻은 가르침의 전부였다. 그리고 
깨달음의 첫순간부터 그가 120세로 입적할 때까지 조주라는 인간됨 그 전체로부터 
이 「평상심」이라는 한마디는 떠나질 않는다. 

「知有」란 무엇인가? 有를 안다, 有를 깨닫는다. 있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조주가 
말하는 知有란 존재에 대한 단순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如如한 모습에 대한 궁극적 깨달음이다. 다시 말해서 知無, 무를 깨닫는 것은 
쉽다. 어설픈 선승들의 객기가 증명하듯, 무를 깨닫고 무를 운운하고 무를 
실천하기는 쉽다. 허나 有를 깨닫고 有를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知有! 그것은 
知無를 초월하는 것이요, 理事無碍法界를 초월한 事事無碍法界인 것이다. 그것은 
평상심의 구극적 표현이다. 자아! 이러한 구극적 경지에 이른 인간은 지금부터 
어디로 가야 하나? 단순한 질문 같지만 남천은 조주의 깨달음의 깊이를 이미 
깨달았다. 

『저 아랫동네에 내려가 밭 가는 소가 돼라!』 

여기에 소라고 하는 상징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아마 그 순간 남천의 머리에 
스친 어떤 대상이라도 돼라 했을 것이다. 깨달음의 道는 곧 나무든, 돌이든, 
똥이든, 소든, 어디든지 불문하고 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莊子』의 
「知北遊」에 나오는 장자와 동곽자 사이에 걸려 있었던 화두를 연상하게 된다. 
『所謂道惡乎在?(소위 도라는게 어디 있오?)』 『在屎溺(똥·오줌에 있오)』 

밭 가는 소가 돼라! 무소부재한 道, 깨달음의 도를 저 소처럼 묵묵히 실천하라! 
각자에게 던져지는 그 이상의 언어가 어디 있으랴! 뭘 더 대꾸하랴! 뭘 더 안다고 
是非의 피대를 걸려고 하는가?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가르침, 꼭 실천하겠습니다』 

감격의 눈물이 핑 도는 남천, 대각한 제자의 발랄한 생명에 순수한 열정이 
피어남을 목격하는 스승 남천, 그의 눈에 어디 道 아닌 게 있고 기쁨 아닌 게 
있었으랴! 

『간밤 깊은 삼경에 달빛이 창가에 드리웠지!』 

李太白의 「夜思」에 나오는 「牀前明月光, 疑是地上霜」이나 「月下獨酌」에 
나오는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을 연상하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일까? 
삼경에 드리우는 서리빛과도 같은 달빛, 득도의 경지! 그 이상의 표현이 어디 
있으리오! 제자 조주에 대한 최고의 찬사렷다. 禪의 세계란 다름아닌 생명의 
찬가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남천의 훈도를 받으며 南泉山에 머무른 것이 40년, 57세에 스승 
남천의 遷化를 당한다. 이제 홀몸이 된 조주! 60세에 다시 그는 수도승의 행각을 
하고 정처없는 유랑의 길에 몸을 맡긴다. 黃檗·寶壽·鹽官·夾山, 당대 최고의 
禪匠들과 問答商量하면서, 境涯를 練磨한 것이 무려 20년! 그 80세의 고령에 이른 
어느날! 그는 수유(茱萸)라는 화상을 방문하게 된다. 

『이 여든 노인네야! 그 나이가 되었으면 이제 그만 유랑하고 거처를 정해 法을 
넓히고 후학들을 길러야지』 

『그럼 어디 가서 살까?』 

조주의 이런 소박한 대꾸에 깜짝 놀란 수유스님이 말하기를 

『아니 이 늙은이야! 그래 老老大大하도록 아직도 거처 하나 모른단 말이냐?』 

아는가? 과연 여기 어떤 公案이 끼여들었는지? 수유의 화두에 대하여 달관에 이른 
조주는 그냥 『그럼 어디 가서 살지』 하고 평상적 언어를 내뱉은 것이다. 허나 
여기에 조주는 발목이 붙잡힌 것이다. 해탈한 인간에게는 본시 定處가 없는 
것이다. 바로 나 인간 존재, 그 몸뚱이 하나가 바로 나의 구극적인 定處일 것이다. 
그런데 수유화상은 그 꼬투리를 붙잡는 것이다. 

『아니 그 나이 되도록 네 정처도 모른단 말이냐? 수도 헛했군!』 

조주 대꾸하여 말하기를: 
『30년이나 말등 위에서 말고삐잡고 놀았는데, 이제 와서 말궁둥이에 
채는군!(三十年弄馬騎, 今日却被驢踏.)』 

그리곤 조주는 대중들의 간청에 못이겨 河北省 趙州의 觀音院에 住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조주지방의 관음원을 중심으로 江北에 독자적 새로운 선풍을 일으킨 
것이 다시 40년! 120세 죽을 때까지 그는 이 조주 관음원에서 머물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조주가 된 것이다. 唐乾寧4年 12월2일 示寂한 것이다. 897년! 불과 
10년 후 哀帝를 끝으로 그 찬란했던 大唐帝國의 막이 내린다. 즉 조주의 죽음은 
중국 최고의 문명의 죽음이었고, 禪學의 찬란했던 黃金시대의 大尾였다. 아니! 
조주의 삶이야말로 禪의 大尾 아닌 龍頭였다. 初唐의 慧能으로부터 晩唐의 趙州에 
이르기까지 3백년이 곧 禪僧들 깨달음의 역사요, 『벽암록』을 장식하는 
호화캐스트들의 삶의 역사다. 大尾의 조주가 『벽암』의 제2칙에 등장한 이유를 
알겠는가? 조주야말로 혜능의 가장 정통한 후계자였던 것이다. 孟子 이래 성인을 
꼽으라면 慧能을 꼽지 않을 수 없고, 慧能 이래 성인을 꼽으라면 趙州를 꼽지 않을 
수 없다. 朱子의 道統論의 강력성에 퇴색돼 이 盛唐의 혜능-조주史를 외면한다는 
것은 東方의 思想史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요, 왜 아직도 우리나라 불교사에 
원효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없는가를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원효는 바로 海東에 
핀 이러한 盛唐 개화의 한 奇訌다! 

조주,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조주, 우선 그는 귀엽다. 돈오돈수를 말하는 
성철스님이나, 그의 사리탑 건립을 강행하려는 그의 제자들처럼 위압적이 아니다. 
조주는 사랑스럽다. 조주는 공손하고 솔직담백하고 우아단아하다. 조주는 말이없고 
조용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일상적 한 마디 한 마디가 의미 심장하고 무엇보다도 
위트와 유머로 번뜩인다. 그는 골계의 대가였다. 

그가 살고 있는 절간엔 많은 스님들이 타지로부터 새로 오가곤 하였다. 그중 한 
스님을 붙들고 조주는 물었다. 

『자네 여기 온 적이 있나?』 

『네』 

그러자 조주는 말하는 것이었다. 

『차 한 잔 들게』 

그리고 또 한 스님에게 물었다. 

『자네 여기 온 적이 있나?』 

『아뇨. 스님, 전 요번이 처음입니다』 

그러자 조주는 말하는 것이었다. 

『차 한 잔 들게』 

그러자 후원의 원주스님이 조주스님께 여쭈었다. 

『온 적이 있는 스님한테 「차 한 잔 들게」라 말씀하시고, 또 온 적이 없는 
스님한테도 「차 한 잔 들게」라 말씀하시니 도대체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조주는 원주스님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크게 불렀다. 

『원주!』 

겁먹은 원주는 갑자기 목청을 높여,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조주는 온화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차 한 잔 들게』 

차를 마신다는 행위, 그 일상적 행위가 깨달음이요, 그것이 곧 해탈이다. 온 적이 
있든 없든 차를 마신다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원주 큰스님의 마음이 
진애에 싸여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평상심의 조주 모습이다. 

진리를 희구하는 어느 벽안의 어린 스님이 조주를 찾아와 엎드려 간청하는 
것이었다. 

『스님! 저는 이 총림에 처음 왔습니다. 사부님의 교시를 받고 싶습니다. 지극한 
도를 가르쳐주시옵소서』 

조주는 말했다. 

『아침 먹었냐?』 

『네. 먹었습니다』 

조주는 말했다. 

『그럼 가서 밥그릇을 씻어라(洗鉢盂去)』 

그 벽안의 신참 스님은 그 순간 대각을 얻었다. 

達磨도 처음에 廣州에 왔고 양무제도 江南사람이요, 慧能도 新州(廣東省 
新興縣)에서 태어났고 그가 弘忍의 衣法을 相傳한 후 禪風을 크게 발양한 曹溪山 
寶林寺도 廣東에 있다. 禪은 대체로 江南에서 크게 진작된 것이다. 그런데 조주는 
이 南宗禪을 그 禪機를 달리하여 北方에 크게 발양시킨 것이다. 조주로 인하여 
南宗禪이 北方에도 크게 떨쳤으나 그 맛이 자못 다르다. 

『德山門에 들어가면 곧 棒에 맞고, 臨濟門에 들어가면 곧 喝에 맞는다』 

유명한 얘기지만 조주는 이런 棒喝과 같은 어색하고 유치하고 치사한 짓을 하지 
않는다. 조주는 조용히 말로 타이를 뿐이다. 방할(棒은 봉·방, 喝은 할·갈의 
발음이 다 可하다. 그리고 읽는 방법도 봉갈, 봉할, 방갈 등 門中의 전통에 따라 
다르다. 허나 방할이 가장 古音에 가깝다)과 같은 물리적 수단에 호소하는 
뭇선사들의 단수보단 역시 조용한 조주의 위트가 윗길이다. 

「趙州下載上載」란 말이 있다. 어느날 여러 군데서 모여든 군승들을 놓고 
한말이다. 

『여기 南方에서 온 사람은 下載일 것이고 北方에서 온 사람은 上載일 것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방위적으로 남과 북은 下와 上으로 나뉜다. 그래서 남에서는 
上向(위로 향)하게 되고 북에서는 下向(아래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조주는 
말한다. 上向하는 놈은 하삐리고, 下向하는 놈은 상삐리다! 

『윗사람에게 붙어 도를 묻는 놈은 失道할 것이요, 아랫사람에게 붙어 도를 묻는 
놈은 得道할 것이다』 

그의 수도행은 向上宗乘中事가 아니요, 向下宗乘中事인 것이다. 그리고 또 말했다. 

『바른 인간이 사법을 말하면 사법도 또한 정법이 되고, 사특한 인간이 정법을 
말하면 정법 또한 사법이 되고 만다(正人說邪法, 邪法亦隨正;邪人說正法, 
正法亦隨邪.)』 

그에게 중요한 것은 道가 아니라 인간이요, 인간의 일상적 됨됨이다. 조주의 
언어는 언어를 초월키 위한 것이다. 그러나 조주의 언어는 명확한 논리가 있다. 그 
논리가 천갈래 만갈래로 꼬기꼬기 우그려서 감추어져 있을지언정 확연한 논리가 
있다. 그 논리를 터득지 못하고 不立文字를 말하는 것이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였다. 

『조주의 입술에선 광채가 난다』(趙州口唇皮上放光). 

자아 이제, 그 어렵고 어려운 조주의 공안에 들어가 볼까? 

【本則】 擧:趙州示衆云:「至道無難, 唯嫌揀擇. 葯有語言, 是揀擇? 是明白? 
老僧不在明白裏, 是汝還護惜也無?」 時有僧問:「旣不在明白裏, 護惜箇什匿?」 
州云:「我亦不知.」 僧云:「和尙旣不知, 爲什匿沕 道不在明白裏?」 
州云:「問事卽得, 禮拜了退.」 



『그만 물러가보게!』 

[본칙] 들어보자! 조주가 법회에 모여든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설법했다. 『3대 
조사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는가?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오직 선택적 
판단을 싫어할 뿐이다」라고 말야. 인간의 언어가 있게 되면 곧 선택적 판단에 
떨어지지 않으면, 곧 명명백백한 절대경지로 가게 되지. 그런데 이 조주 늙은이는 
말야, 그 명명백백한 절대경지에도 있지 않단 말야. 그런데 그대들은 아직도 그 
절대경지를 구하고 있지 않은가?』 

이때, 어떤 스님이 일어나서 물었다. 

『좋습니다. 그런데 명명백백한 절대경지에도 있지 않다면 구할 대상조차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저희들이 뭘 구하겠습니까?』 

조주가 말했다. 

『나도 몰라』 

그 스님이 또 집요하게 물었다. 

『스님께서 「나도 몰라」하신다면, 왜 명명백백한 절대경지에도 있지 않다고 
아는체 하셨습니까?』 

조주스님이 말했다. 

『다 물었냐? 그럼 이제 절하고 가봐』 

조주의 공안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 공안의 대부분이 참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명공안들이다. 그런데 이 『벽암록』의 冒頭에 등장한 이 공안은 
조주의 그 많은 공안 중에서 가장 재미없고 가장 난해한 것이다. 허지만 이 공안을 
풀면 조주의 공안이 모두 다 풀린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독자 여러분들은 나의 
번역만 읽어도 쉽게 그 논리적 맥락을 터득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참으로 부아가 
터진다. 나는 이 공안을 이렇게 번역하는데 자그마치 19년의 세월을 소비해야 
했으니까. 

내가 이 공안을 처음 접한 것은 1978년 하바드대학에서였다. 나는 그때 양 
리엔성(楊聯陞)교수의 「불교학특강」을 수강했는데 교재가 바로 이 
『벽암록』이었다. 나는 이 두번째 조주의 공안에서 꽉 막히고 말았다. 그런데 
사실 지근이 웬만한 사람이라면, 조주에 대한 웬만한 정보만 가지고 있다면, 이 
공안이 了解 안 될 건덕지는 아무 것도 없다. 사실 그 대체의 요점을 잡기는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허나 문제는 매우 지엽적인 데에 있었다. 이 공안의 특색은 
그 내면에 흐르고 있는 「평행선」이다. 평행선이란 서로 만날 수 없는 두 개의 
선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는 논리와 분별을 근원적으로 거부하는 조주의 선이다. 

또 하나는 논리의 철저성을 추구하고 무분별을 거부하는 問僧의 선이다. 그런데 이 
問僧의 질문의 논리가 최소한 그 논리의 철저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조주의 거부 
이전에 철저한대로 우리에게 이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老僧不在明白裏, 
是汝還護惜也無?」라는 구문의 정확한 논리적 맥락과 그것을 논박하는 問僧의 
『旣不在明白裏, 護惜箇什匿?』라는 논리의 초점이 우리에게 확연히 전달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大唐帝國이 종언을 고한 이래 아무도 이 나의 답답한 심정을 
확연하게 풀어주는 이들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풀었다. 19년이나 고민 
고민 끝에 풀었다. 참으로 기나긴 숙제였다. 독자님들! 한번 잘 대조하면서 
고민해보시게나! 또 다시 논리가 헝크러지지는 않으실는지, 禪이란 대우주도 한 
미소로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학문이란 터럭하나도 물샐틈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후학들! 정신차리시게! 

훈덕지근한 지난 늦가을, 구중중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내가 졸업한 
원광대학교재단에서 山本에 양·한방 협진병원을 만들었다고 그 축사를 해달라고 
간청해왔다. 축사 같은 것 하러 돌아다닐 시간이 있으랴마는 은사님들 뵈러갈 겸, 
나는 山本으로 가는 비좁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비좁고 옹색하고 우산에선 물이 
뚝뚝 흐르고 전체적으로 화창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나에게 
비집고 다가왔다. 

『도올선생님이시죠?』 

『왜 묻나?』 

『기철학이 무엇입니까?』 

다짜고짜 기철학이 무엇이냐고 묻는데 내가 뭘 대답할 수 있으랴! 

『나도 잘 몰라!』 

『아이, 그러시지 마시구요. 기철학은 선생님이 만드신 철학인데 선생님이 
모르시면 누가 알아요. 그러시지 마시구요, 선생님이시라면 딱 한마디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딱 한마디로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은 
대가시니깐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거라구요』 

입도 넙죽넙죽, 막무가내 물러갈 기미가 없었다. 

『자네 어느 학교 다니나?』 

『아주공대요』 

『뭘 공부하나?』 

『전자공학요』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해주겠나?』 

『네』 

『딱 한마디로 전자공학이 무엇인가?』 

그 학생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만 물러가 보게! 다음 역에서 난 내려야돼!』 

『장자』 「추수」편에는 보통 「濠梁之上」이라고 불리는 다음과 같은 장자와 
혜시의 유명한 대화가 실려있다. 혜시는 당시 名家의 대표적 인물로서 탁월한 
논리가요, 정치가였다. 허나 장자는 근원적으로 논리의 장난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조롱한다. 장자의 이러한 태도는 「心齋」라든가 「坐忘」이라든가 
「朝徹」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 佛敎가 中原에 진입하기 
이전에 불교와 무관한 중국인 고유의 사상이다. 

장자와 혜시가 성곽 밖의 해자 위를 거닐면서 놀고 있었다. 그 위에 걸친 다리 
위에서 잉어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모습을 굽어보고 있던 장자가 다음과 같이 
탄성을 발하였다. 

『아~ 저 아름다운 비단잉어들 좀 보게. 한가롭게 노니는군. 저것이야말로 저 
잉어의 즐거움이 아니겠나?(恐魚出游從容, 是魚之樂也.)』 

이때 혜시가 잽싸게 받아 넘겼다. 

『아니 莊군! 그대가 고기가 아닐진대, 어찌 저 고기의 즐거움을 안다고 
말하는가?(子非魚, 安知魚之樂.)』 

그러자 질세라 장자는 되쳤다. 

『아니 惠군! 그대가 내가 아닌데, 어찌 내가 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그대가 알 수 있는가?(子非我, 安知我不知魚之樂.)』 

그러자 혜시는 집요하게 되쳤다. 

『나는 물론 그대가 아니지, 그러니 물론 내가 그대를 알 수는 없지. 허나 똑같은 
논리로 그대가 고기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대가 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없다는 나의 주장은 완벽하게 성립하지(我非子, 固不知子矣 
子固非魚也, 子之不知魚之樂, 全矣.)』 

여기서 장자는 논리적으로 분명히 깨졌다. 그렇다면 장자는 혜시의 논리 앞에 
패자임을 선언했을까? 아무 말도 못하고 혀를 깨물고 말았을까? 그렇지 않다. 이제 
장자의 마지막 논변을 들어보자. 

『아~아~ 그러지 말구. 우리 이제 솔직하게 그 근본으로 돌아가 보자구! 그대가 
처음에 「莊군, 네가 어떻게 그 고기의 즐거움을 아느냐」고 운운했을 때, 이미 
그대는 내가 그 즐거움을 안다는 것을 알고 물은 것뿐이야. 너무 입주둥아리만 
놀리지 말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구? 나 그걸 바로 이 다리 위에서 알았단 
말야!(請循其本. 子曰汝安知魚樂云者, 旣已知吾知之而問我, 我知之濠上也.)』 

이 기나긴 피튀기는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장자의 결론이다. 

『어떻게 알았냐구? 난 이 다리 위에서 여기서 알았단 말야!(我知之濠上!)』 

이 말 한마디는 이미 언어를 초월한 직관의 세계다. 

말해보라! 且道! 혜시와 같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어린 問僧 앞에 논파당한 
조주의 최후의 한마디는 무엇이었던가? 

『다 물었으면 절이나 하고 물러나게!(問事卽得, 禮拜了退.)』 

나는 아주공대생에게 말했다. 

『그만 물러가 보게! 다음 역에서 난 내려야 돼!』 

나는 무엇을 말했던가? 기철학은 내 삶의 직관의 총체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라구? 물론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지! 허나 그 한마디를 네놈이 
알아들어먹으려면 여우굴속에 1백번 들어갔다 나와도 될까말까 하느니라! 에끼놈! 
길거리 지하철에서 거저 주워 먹으려구해! 그것은 구극적으로 너자신의 삶의 
직관에 속하느니라! 

생각해보라! 조주가 인도인인가? 중국인인가? 선이 불교인가? 莊周之道인가? 잘 
생각해보라! 선은 불교도 아니고 도교도 아니니라. 오로지 「사람의 
깨달음」이니라. 그것이 조주스님의 본뜻이 아니겠누? 

【頌】 至道無難, 言端語端. 一有多種, 二無兩般. 天際日月上下, 檻前山深水寒. 
悤紆識盡喜何立? 枯木龍吟銷未乾. 難!難! 揀擇明白君自看.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그렇구말구, 우리가 하는 모든 말끝마다 다 그렇구말구. 
하나속엔 여럿이 있구, 둘속엔 둘이 없네. 
저 하늘녘엔 해가 오르면 달이 지고, 
난간 앞의 설두산은 깊고 깊어 물이 차네. 
해골바가지 의식이 다했으니 어디 기쁘고 슬픈 감정이 있을쏘냐? 
말라빠진 고목에 용이 울건만 나뭇가지는 아직 마르지 않았어. 
어렵네! 어렵네! 정말 어렵네! 
선택적 판단이다 명명백백한 절대경지다 하는 것은 
그대 자신이 풀어보구려. 

이 공안 전체가 선종 제3대조인 鑑智僧璨의 『信心銘』이라는 산문을 전제로 하고 
이루어진 것이다. 조주가 이 승찬의 『신심명』을 매우 사랑하고 애송했던 것 
같은데, 이 구절을 둘러싼 공안이 무려 4칙이나 나오고 있다. 그 핵심이 된 한 
구절이 다음과 같다.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오직 간택을 
싫어할 뿐이다. 단지 미움도 없고 사랑도 없으면 모든 것이 뻥 뚫리면서 명백하게 
된다). 

「간택」이란 보통 사극에서 왕이나 왕자, 왕녀의 배우자를 고르는 의미로 쓰고 
있지만, 그 원래 뜻은 많은 중에서 골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간택)이라는 뜻은 인간의 언어인식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요, 모든 분별의 
근원이지만, 불가에서는 결코 긍정적인 의미로 쓰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언어적 
판단 그 자체가 「간택」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심신명』에서의 간택은 특히 인간 
감정의 호오와 관련되어 있으며, 불교의 근본의인 멸집(滅執)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증오하거나 사랑하거나 하는 감정의 간택 상태가 없어지게 되면 洞然하게, 
텅 빈것처럼, 모든 것이 명백하여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명백이란, 간택이 인간의 
상대적 집착을 말한다면, 그것은 상대가 모든 멸절되어버린 절대적 경계를 말하는 
것이다. 허나 조주는 이 절대적 경계마저 부정했던 것이다. 

설두의 송은 이러한 「지도무난」의 경지는 언어의 부정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모든 
언어 단초가 지도무난의 경지를 지향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나(一)란 무차별의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허나 그 하나 속에 多種이 들어 있다. 
즉 평등속에 차별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둘 속에 둘이 없다(二無兩般)는 말은 
그와 반대상황을 가리킨다. 둘(二)이란 차별의 세계다. 

무엇이든 하나면 무차별이지만 둘이면 차별이 생긴다. 여자도 한 여자만 있으면 
전념하여 사랑하지만, 두 여자가 있으면 이 여자 저 여자 분별심이 생겨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애증의 갈등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허나 둘 속에 둘이 없다 라는 
말은 차별속에도 하나됨의 평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여자 저 여자 사랑한다 
하지만 알고보면 다 인간의 집념에서 나온 허상이요, 그 진실을 밝히면 무차별한 
존재의 실상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하늘에 해가 뜨면 달이 지는 것은 너무도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설두가 
살던 설두산이 깊으니까 난간 앞에 흐르는 시냇물이 차가운 것은 너무도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이것은 곧 명백의 절대경지다. 인간이라는 해골바가지! 즉 
인간이라는 존재는 해골바가지와 같이 되어버리는 大死一番의 대각견성을 체험해야 
하는 것이요, 그 해골바가지와 같이 의식을 다 씻어내버리게 되면 어찌 근원적으로 
애증이 성립할 수 있을까보냐? 

허나 겨울에 죽은 듯이 보이는 나뭇가지도 바람이 불면 쌩~쌩~음~음~ 울게 
마련이다. 이를 원래 『전등록』 曹山本寂의 장에서 「枯木龍吟」이라 표현했던 
것이다. 그런데 枯木 속에서도 龍이 우는 것은 그 枯木이 완전히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銷, 녹아없어진다는 표현) 그 끝가지까지 새봄에는 항상 물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해탈은 촉루(해골바가지)와 같은 죽음의 경지를 희구하지만 禪의 
생명력은 늙은 나무 가지에도 물이 흐르고 있는 것과도 같은 그 생명의 분출에 
있다는 것이다. 

촉루와 고목의 아이러니! 아~참! 어렵다! 어려워! 간택이니 명백이니 이 조주의 
개구라! 나 설두가 어찌 다 설명하리! 관심있는 선지식들이여! 그대 자신들이 
간파해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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