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8년03월07일(토) 10시12분20초 ROK 제 목(Title): Re: 양무제가 달마를...의 bug 하나 감동을 받는데는 두 가지의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성향과 비슷하다. 나의 성향과 비슷하다는 것은 그것이 표층의식이 되었건 잠재의식이 되었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즉 내가 알고 있던 나의 표층의식과 부합이 될 때에도 감동을 받을 수 있고 표층적으로는 무엇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잠재의식 속에서 바라던 바, 즉 가려운 곳을 긁어 준 듯한 것에도 감동을 받습니다. 나의 성향과 비슷하거나 나의 욕망 체계에 부합되기에 받은 감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감동은 선(禪)의 입장에서 말하면 감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동 받은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속았고 자신에게도 역시 속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교 신앙의 정수이고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처님의 심인(心印)인 선(禪 : 선이란 부처님의 자리라는 뜻입니다)에서 말하는 감동이란 무엇인가 하면 나의 표층의식이나 잠재의식을 만족시키는 감동이 아니라 나의 표층의식과 잠재의식이 송두리채로 날라가는 감동입니다. 자아(自我)가 완전히 날라가니 감동이 아니라 막대한 손실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 손실감을 뒤없고도 남는 거대한 감동인 것입니다. 예리큰아빠께서 김용옥 교수의 글에서 받은 감동은 어떤 종류의 감동일까요? 성향이나 잠재욕망 만족에서 느끼는 감동일까요 아니면 자아가 통채로 날라가는 막대한 손실감의 감동일까요? 전자의 감동이라면 애기아빠께서는 벽암록에 감동한 것이 아니라 김용옥 교수에게 속은 것이고, 또한 감동을 받은 자가 감동시킨다고 예리큰아빠께서 말씀하셨으니 김용옥 교수가 먼저 느낀 감동수준도 예리큰아빠의 감동과 같은 것일 것입니다. 후자의 감동이라면 김용옥 교수가 큰 은혜를 예리큰아빠에게 준 셈입니다. 어떤 감동을 받으셨습니까? 중생 파괴하는 부처가 중생의 성향에 만족을 줄 것이라 기대하며 보고 듣기에 벽암록은 몇 차례 불태워지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