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 크로체) 날 짜 (Date): 1998년03월04일(수) 16시12분18초 ROK 제 목(Title): cap]양무제가 달마를 만났을때(3) 第一則 達磨廓然無聖 垂示云:「隔山見煙, 早知是火; 隔牆見角, 便知是牛 擧一明三, 目機銖兩, 是衲僧家尋常茶飯 至於截斷衆流, 東湧西沒, 逆順縱橫, 與奪自在 正當恁匿時, 且道, 是什匿人行履處? 看取雪竇葛藤」 제1칙 달마가 말했다. 텅비었는데 뭐가 성스러워? [수시] 산너머 연기가 피어오르면 거기에 불이 난 것을 지레 알 수 있다. 담너머 뿔이 지나가는 것만 보아도 거기에 소가 지나가고 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나만 들어 얘기해도 셋을 알아차리고 눈으로 척 보아도 몇 근 나가는지 알아맞히는 것 정도는 선승들이 보통 밥 먹고 차 마시듯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뭇 흐름을 끊어버리는데 이르러서는, 동쪽에서 솟았다간 서쪽에서 잠적하기도 하고, 따라 내려가기도 하고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종으로 갔다가 횡으로 갔다가, 주었다 뺏었다 하곤 하는 것들이 모두 상황에 맞게 자유자재롭게 이루어져야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마침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한번 말해보라! 과연 어떤 인간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것을! 그걸 알려면 다음 설두의 칡덩굴처럼 타래엉킨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라! [禱安] 산너머 피어오르는 연기만 봐도 거기 불이 났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논리적 추리와 합리적 사고의 전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인간들은 그런 것조차도 추리를 할 능력이 없을 때가 많다. 연기를 보고 연기로 그치고, 직접 두 발로 산너머 걸어가 불난 것을 두 눈으로 봐야 겨우 알아차리는 우매한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선승의 경지는 산너머 피어오르는 연기만 봐도 불난 것을 알고 담장너머 뿔(우리나라 소뿔이 아니고 중국의 水牛의 양쪽으로 뻗친 큰 뿔을 연상하라)만 보아도 소가 지나가는 것을 아는 데 있다. 허나 이따위 합리적 추리나 하나를 들어 열을 아는 정도는 智根의 기본이요 그걸 들어 자랑할 거리라곤 없는 것이다. 우리가 요즈음 「茶飯事(다반사)」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 唐宋代 어록체의 백화문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은 선승의 다반사에 속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여기 납승가(衲僧家)라고 하는 것은 옛 선의 수도승들이 누더기 옷(衲)을 걸치고 걸식하며 살았기 때문에 납승이라 한 것이니 이는 선승(禪僧)이란 뜻이요,「家」는 친근미를 나타내는 접미어다. 그런데 선의 경지는 이따위 논리적 추론의 교묘함이나 합리적 사고의 탁월성에 있지 아니하다. 여기 衆流(뭇흐름)를 截斷(끊는다)한다는 것은 인간사고의 뭇 흐름을 끊는다, 즉 절대적 사유의 세계로 비약한다는 뜻이다. 또 衆流를 인간 욕망의 뭇 흐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인간만사가 이루어가는 역사의 洪流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절대적 경지에 이르려면, 東湧西沒할 줄 알아야 하고, 逆順·縱橫·與奪이 자유자재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선적인 단순의 논리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東湧西沒이란 지금 우리말로 신출귀몰(神出鬼沒)이란 말과 같은 말이고 역순·종횡·여탈이 자유자재로워야 한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 상황에서 자유롭게 종횡무진으로 대처하는 인간 그릇됨의 분방함과 기민함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인간이 이렇게 대처할 수 있을까? 어떠한 이야기들이 우리 인간세 역사의 배면에 숨어있었을까? 자아! 다음 설두가 펴는 「개구라」를 한번 들어보자! 「恁匿」는 현대 백화의 「 匿」와 같은 것이며, 「이와 같은(如此)」의 뜻이다.「行履」는 문자 그대로 「걸어간 족적」이요 동사로는 「행위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의 「處」字가 매우 해석의 걸림돌이 되기 쉬운데 이것은 宋代백화의 한 특성이며 해석하면 안된다. 그것은 「곳」이라는 뜻이 아니고 감탄을 나타내는 語氣助詞인 것이다. 「葛藤」이란 원래 칡덩굴이나 등나무덩굴이 마구 얽혀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는 모양을 가리키는데 선가에서는 갈등을 「인간의 언어」를 지시하는 말로 쓴다. 인간의 언어란 풀려고 하면 더 엉켜들어가기만 하는 미궁의 세계요, 감겨들어가게만 만드는 집착의 세계다. 그러나 인간은 이 갈등을 통해 또 갈등을 풀지 않을 수 없는 갈등의 존재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갈등선(葛藤禪)」이란 말이 있다. 갈등을 통해 선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니, 곧 문자선이란 뜻이다. 원오가 『자아, 이제 설두의 갈등을 보라!』한 것은 곧 이러한 갈등선의 한 예를 말하는 것이다. 양무제가 달마를 만난 이야기도 하나의 「갈등」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갈등을 통하여 우리의 갈등을 해소할 수밖에 없는 갈등의 존재인 것이다. IMF? 거 좋지! IMF? IMF가 비정상이 아니라 IMF 이전의 상태가 비정상이었지. 이제 IMF 덕분에 겨우 정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상이 된 것이 자율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타율적으로 된 것이라는 데 우리 조선사람들의 우매성이 있다. 허긴 김영삼대통령이 우리나라에 크게 공헌한 게 있다더라! 그게 뭐꼬?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를 줄였다는군. 참 위대한 공헌이다. 물러나는 놈 이제와서 치사하게 때려 뭐할꼬? 그런데 참 왜 IMF가 됐다더냐? 그거야 당연하지, 우리나라의 지도자라하는 사람들이 산너머 연기보고도 거기 불난 것을 못 알아차리는, 선승의 다반사에도 못 미치는 놈들이었기 때문이 아니겠누? 그건 그래. 새끼가 발호하면 지 신세 조진다는 추리도 못하고, 뭐 금융실명제하면 마피아만 날뛴다는 사회암면도 생각 못하고, 매년 의례적으로 임투만 하다간 지 모가지 친다는 추론도 못하고, 바닥이 드러났는데 그래 계속 퍼내기만 해! 에이그 이 미련한 녀석들아! 이젠 좀 정신차릴 때도 되지 않았느냐? 역사를 절단한다구? 역사의 홍류를 틀어?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김대중당선자님? 신출귀몰, 역순·종횡·여탈이 자유자재로우셔야 할 텐데,산너머 연기보고 불난 줄도 모르는 놈들 데리고 갑자기 그렇게 역순·종횡·여탈이 자유자재로울 것인가? 이 때 한번 말해보자! 과연 누가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를! 자아! 이제 이 도올의 갈등을 들어보게나! 【本則】擧:梁武帝問達磨大師:「如何是聖諦第一義」 磨云:「廓然聖」 帝曰:「對朕者誰?」 磨云:「不識」 帝不契, 達磨遂渡江至魏 帝後擧問志公. 志公云:「陛下還識此人否?」 帝云:「不識」 志公云:「此是觀音大士傳佛心印」 帝悔, 遂遣使去請, 志公云:「莫道陛下發使去取, 闔國人去, 豹亦不回」 [본칙] 들어보자! 양나라의 무제가 달마대사에 물었다. 『도대체 불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게 뭐요?』 달마가 대답했다. 『텅 비었지. 성스럽긴 뭐가 성스러워?』 무제가 말했다. 『도대체 짐을 대하고 서 있는 당신은 누구요?』 달마가 말했다. 『몰라』 아뿔싸! 무제는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달마는 드디어 강을 건너 위나라로 갔다. 그 후에 무제는 당대의 고승 지공에게 이 지나간 이야기를 들어 물었다. 지공은 깜짝 놀라 말했다. 『폐하! 아직도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신단 말입니까?』 무제가 말했다. 『몰라』 지공이 말했다. 『이분이 바로 부처님 심인을 전하는 관음대사이십니다』 양무제는 후회막급이었다. 그래서 사절을 보내 돌아오시도록 청하게 했다. 지공이 말했다. 『폐하! 사절을 보내 모셔오는 그따위 짓거릴랑 하지 마세요. 온 국민을 다 보내도 그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벽암록』이란 공안 백개의 冠頭가 바로 중국에서 선불교가 시작되는 모먼트가 된 조종(祖宗)의 이야기로 장식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양무제와 달마가 만나는 이 역사적 장면이야말로 공안 백개를 이끌어갈 만한 힘이 있는 무한한 상상력과 삶의 근본의(根本義)를 제공하는 탁월한 갈등이다. 나는 달마가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역사적 인물이었는지 알지를 못한다. 그러나 그가 527년 廣州에 도착했으며, 『낙양가람기』에 달마가 150세경 洛陽 永寧寺의 伽藍의 華美로움을 찬탄하여 하루종일 「南無」를 외치면서 합장하고 돌아다녔다고 하는 역사적 기록을 보아 역사적 엑스(historical someone)가 달마라는 현금의 규정되는 성격을 구현하는 존재로서 존재했다는 상정은 쉽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허나 禪家에서는, 물론 佛家 전반에 공통된 이야기겠지만, 「報身」이라고 하는 역사적 업보의 존재를 중시하지 않는다. 그러한 보신에 대해 法身이라고 하는 진리 그 자체의 구현체로서의 존재, 그것은 역사적 실존이라기보다는 가치적 허상이요, 진리의 정체 그 자체인 것이다. 달마 역시 보신이 아니라 법신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양무제로 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양무제야말로 도올 김용옥과도 같은 생몰연대가 확실하며 그 사적과 유적이 확실한 역사적 「보신」의 정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무제가 달마를 진짜로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는 내 알 수가 없으되 달마가 동쪽으로 왔다면 그 온 시기가 양무제의 전성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에 그 두 사람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역사의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우리의 첫이야기는 이렇다. 달마라는 法身과 양무제라는 報身의 해후! 양무제(464∼549, 재위기간은 502∼549)는 남조 梁의 제1대 황제로서 南蘭陵(江蘇) 사람이며 원래 齊王室의 疎族이었다. 姓은 蕭, 名은 衍, 字는 叔達이다. 南齊를 멸하고 502년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재위 48년이나 되는 기나긴 기간은 보통 大通연간을 境으로 하여 兩半期로 나뉜다. 전반기는 沈約· 范雲·周捨·徐勉과 같은 명족을 재상으로 등용하여 훌륭한 정치를 폈다. 모든 일을 검약하게 하였고, 官等의 제정, 梁律의 반포, 大學의 설치, 인재의 등용, 土斷法이라는 새로운 호적제도의 실시 등 政務에 힘썼다. 그의 九品中正制의 개혁은 귀족제에서 과거제로 옮아가게 되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하는 중요한 시책이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오면 朱異 등을 중용하고, 慈善大士·寶誌와 같은 승려들과 친하면서, 520년경부터 점차로 방종에 흐르기 시작했다. 여기 寶誌(418∼514)가 바로 이 공안에 나오는 志公이다. 神異와 奇行과 학식으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그가 학문을 일으키고 불교를 흥륭시킨 공로는 크게 평가할 바도 있지만 그의 말년의 행각은 좀 상상키 어려울만큼 지나친 바가 있다. 大通元年을 최초로 해서 전후 서너번 捨身을 행하여 무황제 스스로 사원의 노예가 되어 봉사하였고, 이에 따라 群臣들은 일억만금을 모아 황제를 대속하였다. 사탑의 건립은 京師의 同泰寺로 시작하여 수없이 많은 사찰을 세웠으며 승려의 수는 10萬을 넘어 南朝佛敎의 極盛시대를 출현시켰다. 불경의 교의를 깊게 탐구하여 많은 저술을 지었고 계율을 돈독히 지켰으매 世에서는「황제대보살」이라고 그를 칭송했다. 특히 황제 스스로 가사를 걸치고『放光般若經』 『大般涅槃經』 등을 강의했다. 그는 말년으로 갈수록 대자대비의 실천에 눈이 어두어 王族·貴族들의 방자와 방종을 허락하였고 막대한 재물을 절간에 낭비하여 국가 재정의 곤란을 야기하고 가렴주구를 발호케 두어 官紀의 문란을 초래했다. 이때 東魏 部將 侯景이 항복하여 들어왔다. 帝는 그를 신임하여 군대를 맡겨두었는데 侯景은 드디어 반란을 일으켜 都로 진격하였고 帝는 幽閉되어 울분 속에 憂死하는 비극적 최후를 마쳤다(549). 달마가 중국(남방)에 왔을 때는 중국은 이미 황무지가 아닌 중국남조불교의 전성기였다. 그 전성기를 연출한 南朝의 전륜성왕 양무제와 달마가 만나는 첫장면은 그야말로 절정에 오른 역사의 한 클라이막스에서 이루어지는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양무제가 달마라고 하는 당대 무명의 납승 한명을 만났을 때 그가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던가? 『如何是聖諦第一義』 Shit! 무제가 뭘 말하자고 했을까? 참으로 성스러운 제일의 진리를 알고자 했을까? 그것은 불교사찰의 노예가 되기까지해서 불사를 일으킨, 불교문화의 외형의 찬란한 꽃을 피운 장본인인 그 위대한 연출가의 찬란한 과시였을 것이다. 『봤지? 요 납승아! 난 이렇게 불법의 찬란한 꽃을 피웠다. 내가 세운 사찰 사탑의 눈부신 모습을 보아라! 무엇이 진리더냐?』 전두환은 감옥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왜 나라가 이 꼴이 되었는지 모르겠군. 내가 치세를 할 때는 모든 기업이 융성하고 88의 올림픽의 꿈을 완성시켰고 한강의 중흥의 기적을 이룩했는데―』 달마가 당대의 전두환, 아직도 감옥에서조차 정신 못차리는 전두환을 만났다면 무어라 말했을까? 그것이 다 자기업보라는 것도 모르는 그 녀석 앞에서 뭘 말할 수 있었을까? 『텅 비었군! 뭐가 찬란해? 아무 것도 없는데, 니미 뭐가 성스럽다는 게야? 종교에 니미 무슨 성스러움이 있다는 게냐?』 당황한 전륜성왕 무황제는 말했다. 『도대체 감히 나 짐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너는 누구냐?』 그 최고의 언사, 그 갈등을 뛰어넘은 갈등은 다음 한마디였다. 『몰라』 Shit! 몰라! 무제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훗날 지공에게 물었다. 지공은 말했다. 『아니, 폐하 아직도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신단 말씀입니까?』 『몰라』 여기 두 개의 같은 「몰라」(不識)가 등장한다. 앞의 몰라는 달마의 몰라요, 뒤의 몰라는 무제의 몰라다. 이 두 몰라는 같은 몰라일까? 다른 몰라일까? 니에미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 도올이나 알겠지? 도올인들 알까? 나도 몰라. 속칭 왈, 앞의 몰라는 달마의 대각에서 우러나온 몰라요, 뒤의 몰라는 무제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른다는 불인지의 몰라라 한다. 과연 그럴까? 같은 몰라라는 말에 그렇게 대각과 졸부의 차등이 있을까? 「확연무성」이라 했는데 몰라에도 그런 등급이 있을까? 에이라 나도 몰라! 나도 몰라! 여기 지공이 「觀音大士」라 한 말에서, 觀音의 觀은 세상을 굽어 살핀다는 뜻이다. 音이란 世上의 고통의 소리요 구원을 갈구하는 부르짖음이다. 觀音이란 세상의 비애로운 통고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자비의 부처다. 이 때의 『관음경』의 신앙에 의하면 관음보살이 갖가지 인간의 모습으로 化하여 나타나 중생을 제도한다는 化身의 믿음이 있었다. 「佛心印」을 전한다 하는 것은 바로 禪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즈음 IMF덕분에 정리해고가 한참이다. 정리해고? 거 좋지! 짤라야 빈 자리가 생기고 그래야 또 들어갈 구멍이 생기겠지. 니미 웃기지마 구멍은 무슨 구멍? 짤라? 니 그거나 짤라라! 짤르는 건 좋다. 그런데 좀 알고 짤라라! 나뭇가지를 칠 때도 자를 가지가 있고 안 자를 가지가 있나니라! 정리해고? 좋지! 뭔 그게 새 말이냐? 우리사회가 날 한번 고용해준 적이라도 있다더냐? 난 한번도 고용된 적이 없어 짤릴 염려도 없다. 짤러? 잘못 짤랐다구? 쳐선 안될 가지를 쳤다구? 늦었어? 후회가 된다구? 그 짤라진 가지 도로 주워다 접붙인다구? 웃기지마라! 난 안 간다. 짤를 때 정확히 짤라라. 그리고 날 몰라보구 날 마구 짜를 때 원망하지마라! 되돌아선 달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짤렸다구? 미련없이 떠나라! 뒤돌아 보지말구. 『闔國人去, 豹亦不回!』 【頌】 聖諦廓然, 何當辨的? 對朕者誰? 還云不識 因玆暗渡江, 豈免生荊棘? 闔國人追不再來, 千古萬古空相憶. 休相憶, 淸風 餓地有何極? 師顧視左右云: 「這裏還有祖師匿?」 自云:「有」「喚來與老僧洗脚」 【송】성스러운 진리는 텅 비었다. 언제나 과녁을 맞힐꼬? 날 보고 있는 넌 누구냐? 아직도 모른다 말하는군. 그래서 달마는 몰래 강을 건넜지. 이제 양나라는 쑥밭이 되었군. 나랏사람 몽땅 뒤따라보내도 그는 돌아오지 않지. 천년만년을 부질없이 그리워하네. 이 녀석들아! 뭘 아쉬워해? 시원한 바람이 땅을 스치는데 어디 極이 있다더냐? 설두스님 갑자기 좌우를 돌아보시더니만 『여기 달마가 있느냐?』 그리곤 멋쩍게 스스로 말하기를 『있소』 『그래 그럼 그놈 불러와 이내 늙은 중 꼬랑내 나는 발이나 씻게 하거라!』 Copyright(c) 1998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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