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12월13일(토) 10시23분26초 ROK 제 목(Title): 경전을 공부하는 것이 화두선 한 때에 "도"는 문자에 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 경전 보기를 우습게 알고, 참선을 한다고 화두를 가지고 밤을 지새우던 적이 있었습니다. 즉 화두에 무언가 매우 심오한 힘이 있으니까 복잡한 경전을 보지 말고 화두를 의심하면 마음을 깨치리라... 이렇게 오해를 한 것입니다. 말해 주는 스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순전히 듣는 사람이 착각하기에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워낙에 불교계에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큰 어른 노릇을 하는 분들이 많아서 엉터리 책들을 마구 펴내었던 것이 큰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잘 못 알아들은 사람도 문제이지만 경전을 본 적이 없는 무식한 선승들이 무식함을 자랑하기 위하여 불입문자를 엉뚱하게 불용문자 즉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로 잘 못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잘 못된 길로 끌고 감에 있었습니다. 근대의 대 선지식인 용성 스님은 이미 예전에 이러한 폐단을 지적하였는데 갈 수록 더욱 심해진 것입니다. 경전을 보는 것 만큼 훌륭한 참선이 없습니다. 화두선의 화두는 의심이 되지도 않는데 의심을 하게 하여 병을 가져오거나 혹은 마음을 들여다 보는 가운데 생기는 헛된 망상경계를 깨달음으로 착각하게 만들지만 경전은 억지로 의심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의심이 들게 만듭니다. 경전을 보면 그 내용이 너무나 정교하지만 또한 어느정도의 집중력과 면밀한 지구력이 따르지 않으면 읽었지만 전혀 읽은 적도 없는 것 처럼 되어 버립니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는 것이 있는데 무엇이냐 하면 경전에 있는 문자들이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을 읽은 태깔을 내기 위하여 그 문자들을 쓰는데 문자의 파편들이 서로 소화되지 않은채로 자기의 입장에 따라 편리한데로 써 버리기 때문에 "도"는 문자에 있지가 않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실제로 "도"는 문자 자체에는 없습니다. 문자 자체에는 없지만 도는 문자에 의하여 실체를 드러냅니다. 문자 자체는 아니지만 문자를 통하여 혹은 음성을 통하여 도의 움직임이 나오는 것입니다. 대단한 정력과 결심이 없으면 경전을 보는 것은 앉아서 내면을 바라보는 것 보다 열배는 어렵습니다. 모르는 이야기 투성이인 것이 경전이기 때문입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무척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경전 가운데에 어떤 구절은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만을 보면서 경전을 보고 모르는 내용들은 "불입문자"라는데 하고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으로 경전을 보는 잘 못된 습관입니다. 오히려 알아듣는 이야기 보다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과 황당무개한 무협지 이야기 같은 내용중에서 참으로 도의 움직임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경전을 볼 때에는 이런 말들은 사용도 하지 않는 말들이니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도 넘어가자. 이런 짓만 하지 않으면 경전을 보는 것 자체가 그 어떤 화두보다도 훨씬 훌륭한 화두의 역할을 합니다. 다음에 불가에서는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을 점검할 때에 대부분이 경전을 가지고 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선가의 책을 보면 한 두 마디 문답을 가지고 점검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전혀 다릅니다. 소개서 같은데 나와 있는 것은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입니다. 경전을 가지고 하는데 경전에 막힘이 없이 물 흐르듯이 풀어나가는지를 봅니다. 깨닫지를 못하면 경전을 하나의 글자 덩어리 처럼 보이게 되지만 확철대오하면 경전에 글자 덩어리는 하나도 없고 문자 하나 하나 까지도 전부 진실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글자 하나 하나의 쓰임이 그렇게 아름답고 정확함에 감탄을 하게 되어 있지만 깨치지를 못하면 이것은 중요한 말이고 이것은 중요하지 않은 말로 생각하여 경전에서 꼭 막히고 걸리는 부분이 나오게 됩니다. 혹시라도 깨쳤다는 사람이 있으면 경전을 보아서 불필요한 글자 덩어리 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눈에 뜨이면 깨침은 커녕 관점 조차도 제대로 성립이 안되었다고 스스로를 평가하시면 정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