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 크로체) 날 짜 (Date): 1997년11월12일(수) 14시21분10초 ROK 제 목(Title): Re: Re. Re: 파도와 물결 조금 더 명확해져서 좋군요. 무슨 말씀하시려는지 알겠습니다. 예전부터 비유비무의 중도를 자주 말하셨는데, 제가 보기에 문사수님의 중도는 그 '아닐비'자에 편중되어있습니다. 부정으로 모든 것을 칼로 썰어내듯 제거하려 합니다. 미지의 것을 찾을 때는 확실히 찾는 그것이 아닌 것들을 쳐 나가면 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절대로 쳐버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치는 도구, 바로 '아닐비'자입니다. 비유비무의 중도라는 관념입니다. 1. 양극은 존재하지 않는 실재 양극을 왔다갔다하는 것은 곧 양극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양극이 인식 속에서 실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인식 밖에 따로 존재하는 '본질' 같은 것들은 허구라고 믿어지는 양극과 똑같이 인식이 만들어낸 허깨비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질이 따로 어딘가에 있을거라는 믿음은 망상입니다. 그 인식 속에서 양극을 이미 전제하고, 그 사이로 왔다갔다하면서 분별-집착에서 고통이 생기므로 원래의 양극이란 것이 대상과 인식작용과 인식기관이 서로 따라 일어난 것이므로 본래 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해도 번뇌와 미망을 끊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사실의 인식 또한 인식에 불과한 것이라서 도끼날이 백날 휘둘러봤자 제 도끼자루를 끊어낼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2. 그러므로 명상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 실재 처음 명상에 대한 용어정의를 나름대로 어떻게 내리고 계신지에 대한 질문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나왔는데, 명상이란 말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저는 분명히 문사수님이 생각하시는 명상이라는 게 뭔지 물었고, 문사수님은 자신이 생각하는 명상에 대한 살림살이를 보여주었습니다. 님의 인식 속의 세계에서 통하는 명상에 대한 표현인데, 여기서는 '아닐비'를 쓰지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문사수님의 인식세계에서는 명상은 '참이 아닌 모든 수행법(외도법)의 총칭'처럼 이미 부정으로 참 밖으로 밀려나있기 때문에 또다시 '아닐비'를 휘둘러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어떠어떠한 것은 명상이 아니다...는 식으로 말하면 그 '어떠어떠한 것'은 곧 참인 것이 되어버립니다. 문사수님은 명상=참 아닌 것이라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가 말해보겠습니다. 명상은 어느 한 쪽을 취하는 분별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결론을 제시하여 도달하게 하는 것도 아니며, 삶에 어떠한 환상이나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님이 그토록 폄하해왔던 '명상'이란 것이 양극이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Amor vincit omn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