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10월24일(금) 10시06분09초 ROK 제 목(Title): 일체중생 차별몸 삼매 모든 중생의 차별한 몸 삼매 세상을 사는데에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수 도 없는 생명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데 특이한 것은 우리가 만나는 모양으로 보 이는 그 어떤 생명도 똑같은 모양의 생명은 단 한 생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외형적인 모 습에서 내면의 모습까지 따지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복제인간의 가능성으로 인하 여 세상이 시끄러우면서 사람들을 전율케하 였던 적이 있습니다. 유전자를 복제하면 모 습이 비슷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 다. 외형적인 모습이야 비슷할 수가 있습니 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간과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 전자 복제를 통하여 모습이 똑같은 사람을 복제한다는 것만을 이야기를 하고 있지 그 사람이 먹은 음식과 먹는 시간과 먹는 공간 을 복제할 수 있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또 한 내면도 복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과 학은 유전자가 생명을 분류하는 기준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생물학적인 유전 자만이 유전자일 수가 있을까요? 혼란과 문제는 유전자만을 복제해서 동일 한 생명을 복제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발생 을 하게 됩니다. 유전자만을 복제해서 우량 종의 인간을 복제한다고 할 때에 그렇게 과 학적인 지식과 실험상에서 복제한 그 인간이 우량종의 인간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사주팔 자만큼이나 허무맹랑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 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생명은 결정된 모습으 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교 류로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시 간에 동일한 음식으로 식사를 한다고 해도 똑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이 두 사람이 존재 하지를 못합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 지금부 터 대한민국에서 10년을 살고 난 미래의 우 리자신과 지금부터 미국에서 10년을 살고 난 미래의 우리자신이 있어서 둘이 만났다고 할 때에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장담을 우 리 스스로도 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서로 다른 생명이 하나도 없다고 하시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이 십니다. 어째서 안밖의 모습으로는 같은 모 습을 한 중생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또한 동일생명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 내 용에 대하여 보살은 일체 중생의 차별한 몸 큰 삼매를 통하여 알게됩니다. "보살 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물면 온갖 세 계에 집착이 없고, 온갖 방위에 집착이 없고, 온갖 겁에 집착이 없고, 온갖 법에 집착이 없고, 온갖 보살에 집착이 없고, 온갖 보살의 원에 집착이 없고, 온갖 삼매에 집착이 없고, 온갖 부처님께 집착이 없고, 온갖 지위에 집 착이 없느니라." 집착이란 추구할 대상입니다. 물론 그 추 구할 대상이 있게 되는 연유에는 추구함이 있어서 이익 됨이 있다는 "나"가 있기에 대 상도 설정이 됩니다. 세계에 대한 집착이란 것은 하늘나라 혹은 지옥과 같은 세계입니 다. 방위에 대한 집착은 서방 세계와 같이 현재 있는 곳에서 어떤 특별한 방향 쪽을 말 합니다. 요새 우리들의 삶 속에서 보면 특별 하게 살기 좋은 나라를 말할 때에 서방선진 국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니까 그런 방향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겁 에 집착이 없다는 것은 지금 보다 더 낳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현재를 더 낳게 해 줄 수 있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원망이 될 수 있습니다. 법에 집착함은 부처님의 말씀 중 에 이것이 옳은 법이다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법에 대한 집착입니다. 보살에 집착한 다는 것은 어떤 보살이 있어서 그 보살만이 참으로 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보살의 원력에 집착한다는 것 은 특정한 원력이 따로 있어서 그 원력만이 나를 구제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원력에 집 착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삼매에 집착한다는 것은 삼매의 이름과 삼매에 대한 설명을 듣 고서는 그 삼매를 실제적 모습으로 만들겠다 고 하는 것이 삼매에 집착하는 것이 되겠습 니다. 부처님께 집착한다는 것은 이름과 모 양으로 부처님을 찾으려 하는 것이 부처님께 집착하는 것이 됩니다. 지위에 집착하는 것 은 인생을 살아가거나 혹은 불법을 배우는데 있어서 어느 수준이 있다고 하는 것이 지위 에 집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매의 내용이 어떤 것이기에 이런 모든 집착이 떨어져 나갈 수가 있을까요? 이 대상 들이 모두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의 생명의 내용 그대로를 말하고 있는 것이 기에 그러할 수가 있습니다. 즉 대상으로 알 고서 추구하던 것이 대상이 아니라 모두 우 리의 생명내용의 본질로서 지금 이 순간의 서로 다른 현상 그대로 일 수밖에 없기 때문 입니다. 추구할 세상도 공간도 시간도 그리 고 인생을 올바르게 살기 위한 어떤 외부적 인 대상이나 기준 되는 힘이란 것을 나의 생 명밖에 따로 설정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설정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삼매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바닷물은 땅을 의지하고 있지 만 바닷물이 바탕인 구름은 땅을 의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름은 바닷물이 근원이었지 만 허공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모습 은 바닷물과 구름이 서로 다르고 의지함이 다른 듯 하지만 바닷물과 구름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구름은 다시 바닷물이 되겠 습니다. 그리고 바닷물이 구름이 되는데는 또한 여러 가지 요인이 결합하여 바닷물을 구름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습은 바닷물과 구름이 분명히 다릅니다. 바다를 용이라고 하고 구름은 변화무쌍한 건달바 귀 신으로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용의 몸으로 들어가 건달바 몸에서 나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의 몸과 정신에 대입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오근으로 이루어져 있는 한 개의 몸인 것 같지만 그 한 개의 몸이 한 개의 몸으로 있기 위해서 헤아릴 수 없는 몸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채로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지 금 이 한 몸이 있기 위하여 먹은 음식만을 따져 보아도 이 몸에서 들어가 셀 수 없는 몸에서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셀 수 없는 몸에서 출발하여 우리의 한 몸으로 귀 결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정신이란 면을 보 면 어떤 참으로 편하고 즐거운 정신에서 들 어가 보면 그 즐거움이 지옥과 같은 괴로움 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천상은 지옥을 바탕으로 하여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옥과 같은 고통은 또한 인간세계의 다투는 세계가 바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 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찾고 있거나 혹은 보살의 원력이나 삼매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지만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있는 현상에서 들어가서 거슬러 올라가 나오는 곳이 원래 부터의 삼매와 원래부터의 보살의 원과 원래 부터의 부처님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이 현재의 모습을 위 하여는 다른 모습의 생명들이 과거.현재.미래 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 다. 일체 중생의 차별한 몸 삼매를 통하여 보살은 일체 중생의 차별함이야 말로 "나무 아미타불"로서 동일 생명 자체를 말하고 있 음을 알게 되어 다름과 같음의 모순 마져도 있어 본적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