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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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10월10일(금) 00시28분44초 ROK
제 목(Title): 백천간두



부처님께서 쾌락의 즐거움을 버리고
처음 고행자들을 만나서 왜 고행을 하냐고 물었을 때에
"우리는 세간의 즐거움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통제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여서 즐거운 하늘나라에 나려고 한다"라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곧 즐거움을 버리는 댓가로 즐거움을
구하지만 즐거운 곳에 태어난들 죽음은 피할 수가 없고
즐거움을 구하기 위하여 즐거움을 버린 다는 것은
어리섞음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고 "애고... 그것은 아니야"라고
바로 판단을 합니다.

왜? 고행을 하느냐... 이 왜라는 불교의 물음은 여기에서 부터 이미
시작이 됩니다. 즉 조사선의 화두는 이미 여기에서 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고행자들을 떠날 때에 고행자들의 소개로 당시에 최고의 수행경지에 있다는
명상가인 아라다와 우드라카 신선을 찾아갑니다.

부처님은 묻습니다. "어떻게 생사를 해탈할 수 있습니까?"

아라다 선인이 말하기를
"성(性)이란 순수하고 깨끗한 것인데 이것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인(因)이라고 한다. 이 인으로 인하여 지.수.화.풍.공의
다섯가지 요소와 나(我)와 깨달음(覺)과 나타남(見)과
모든 근(根:눈.귀.코.혀.몸)과 인식의 대상이 생기느니라.
 이러한 성에서의 전변을 아는 것을 나(我)라고 한다.
이렇게 나를 헤아림을 인연하여 나고 죽은 흐름을 그대로 따르나니
이 인(因)은 원래 성(性)이 아니매 그 과(果)도 또한 성이
있음 아니니라.

이른바 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 사법 벗어나서 해탈로 나아가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묻습니다.

"어떠한 방편을 써서 마지막에는 어디에 이르며 어떠한 범행을
얼마만큼 해야 합니까?"

경론과 계율을 지니고 욕심을 절제하여 욕계의 모든 번뇌를
여의고 멀리 떠남에서 기쁨.즐거움 내어 첫 각관(覺觀)의 선(禪)을 닦는다.

등등... 초선.이선.삼선.사선을 이루고
공관(空觀)을 닦는다. 다음에는 한량없는 식관(識觀)을 닦는다.
안으로 지극히 고요함을 터득해 <나>를 떠나고 또 <내 것>을 떠나서
아무것도 없음을 관찰하나니 이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이 곧 <성>이고 이를
생사해탈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공곰히 생각합니다.

왜?

그러다가 아니구나라는 결론을 내리십니다.
왜냐하면 순수하고 참다운 곳에서 "나"가 나왔는데
그래서 생사가 거듭된다면 "나"를 소멸하여 성이 된들
그 성은 또한 이유없이 전변할 터이므로 생사를 거듭할 뿐이다.
라고 생각하여 역시 버리십니다.

즉 앞의 고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아이기에 생사반복이고
명상은 순수함과 참되고 깨끗함에 들어 해탈한다고 말은 하나
여전히 "나"가 불특정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이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으므로 해 봐야 생사유전이구나....

여기에서도
역시 "왜" 이 한 물음으로 불필요한 것을 후딱 넘어갑니다.

쾌락은 원래부터 고통의 씨앗일 뿐이고
고행은 즐거움을 버리고 더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이고
명상은 순수하다고는 하나 순수함이 전변함이 소멸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안되는 이유는 미세하나마 유아적이기에 안됨을
금방 아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소중한 "왜?"입니다. 이 "왜"라는 물음으로 단밖에
수백억겁의 시간낭비를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처님께서
유로는 되지도 않는 것이 뻔하므로 유라는 것을 무조건 멸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시어서

피말리는 고행을 6년간 하시게 됩니다.
나라는 것이 아마도 몸뚱아리 때문에 자꾸 드니까
이 몸에 대한 집착성을 떨구면은 나라는 생각이 없어지겠다고
생각을 하신 것입니다. 즉 천상에 나기 위한 몸과 마음의 통제가 아니라
아예 몸과 마음을 씨도 없이 없애버리겠다는 고행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가 되려고 애를 써보아도
몸을 삐쩍 삐쩍 말라서 뱃가죽이 등짝에 붙어서
흉칙할 정도가 되어도 여전히 <나>라는 것은 더욱 혼미하고
굳건해 지기만 하고 정신은 갈 수록 피폐해지기만 합니다.

무가 되기는 커녕 더욱 유만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에 완전하게 절망을 하시게 됩니다.
"아고.. 세상에 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인가 보다. 그만 여기에서
멈추고 돌아갈까?"하는 생각이 자꾸 드십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을 멈추게 한 것은
"내가 아니면 누가 저 중생들의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을까 하는
본래의 서원이 생각나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 서원을 되새기면서
물러서지 않고
생각을 고치십니다.

그러나 유로서 하는 모든 것들은 되지도 않음을
번하게 알겠고 그렇다고 무를 만들려고 하는데 아무리 해도
무가 되지를 않습니다.

이 상황을 백천간두라고 합니다.

유는 처음부터 되지도 않는 것임을 "왜"라는 것으로 단밖에 뛰어넘었고
무는 맞는데 아무리 해도 무가 되지를 않습니다.

이도 저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벼랑에 서십니다.

고행은 아무리 해도 되지를 않는구나.

고행에 대한 미련을 6년에 대한 아까움도 없이 미련없이 버리시고
목욕을 하십니다. 수행자가 목욕하는 것은 당시에는
파계를 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수자타라는 여인이
나무신에게 받치려고 가져오던 유미죽을 부처님에게 저절로 주게 되는데
부처님께서는 그 유미죽을 받아 드십니다.
그 때까지는 하루에 쌀 한개만을 드셨는데
여인이 주는 음식을 받아드십니다.

여인이 주는 음식을 받아 먹는 것도 당시로서는
타락한 수행자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고행을 포기하시고 기운을 차리신 후에
보니 정신이 맑아지시기 시작합니다.

몸이 음식으로 인하여 편안해지니까 정신도 따라서 편안해지고
그러니까 음식에서 부터 생리작용과 거기에 따른 마음의 변화가
있는데로 느껴지고....

이때에 번뜩이면서 생명의 이치가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치를 따라서 완전하고 끝이 없는 적멸에 들어가시는데
그 적멸은 움직임과 정지와 관계없는 적멸입니다.

이제 불교가 시작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백천간두에서 진일보하는데
무엇으로 하는 가 하면
생명의 이치로 하여 있음과 없음이라는 극단적 관점이 아닌
참으로 오묘한 중도로서 팔정도를 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그랬더니 "아이쿠!!! 본래 무아였구나......"

그래서 제법무아가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법무아란 모든 법에는 나라는 것은 있어본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과법, 윤회법, 세상법 이 모든 것에는 "나"라는 것은
있지가 않구나!!!!

본래 있는 것은 오로지 참된 이치만이 있는 것이구나....

나는 본래부터 부처였구나... 단지 부처가 되어서
생사해탈을 하겠다고 하기에 중생처럼 살고 있었구나....

명상도 육년 고행도 다 시간낭비가 될 수 밖에 없었구나.

이것을 알려서 일체중생의 괴로움을 해결하도록 하여야 겠다.

그래서 나오시는 법문이
길지도 않은 여섯글자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나무 - 내가 있다는 것으로는 아예 되지도 않아
아미타불 - 없어 지려고 하지만 없어질 수가 없네 본래 무량광.무량수
아미타의 진리 그 자체인데 무엇을 없애려고 하니 될 턱이 없어...

내가 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내가 있어서가 아니니
그저 나무아미타불

내가 있지도 않은데
남이 있을 수가 없지..

저쪽도 나무아미타불...

즉 부처님의 성도한 그 인연을 그대로 여섯글자로
공덕으로 주는 것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내가 지금 나무아미타불을 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이 나무아미타불하는 것 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나무아미타불한다고 생각이 들어도
그러거나 말거나 나무아미타불...

무엇을 깨달을 필요도 없는 것이
나무아미타불 밖에 어떤 것도 있는 것이 없음이니
깨닫고 말건 아무상관없이 나무아미타불

깨달아 보았자 나무아미타불이니
그냥 나무아미타불....

이것을 한국에 뿌리내린 분이 대성 원효스님이십니다.

원효스님은
많이 알아 보았자 나무아미타불
아무것도 몰라도 역시 나무아미타불...

남자도 나무아미타불
여자도 나무아미타불

깨달은 이도 그래보았자 나무아미타불
미혹한 이도 그래 보았자 나무아미타불...

백천간두에 서있는 사람도 떨어질 곳은 나무아미타불
백천간두에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도 그대로가
나무아미타불이니 나무아미타불....

깨달았다고 잘난 것 하나도 없으니 나무아미타불
몰라도 못난 것 하나도 없는 것이 나무아미타불

살아서도 나무아미타불...
죽을 때는 죽으면서 나무아미타불...

밥을 먹을 때에도 밥이 없이 그저 나무아미타불만 있으니
나무아미타불...

연애할 때도 그저 있는 것은 나무아미타불이니 애인이 나무아미타불
공부할 때도 끝내 거기이니 나무아미타불
직장에서 일할 때도 일하는 것이 나무아미타불이니 나무아미타불

이 아미타불 말고 따른 성불의 길이 없음이
부처님 성도로 입증되었으니 무조건 나무아미타불...

이것이 한국불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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