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 크로체) 날 짜 (Date): 1997년10월07일(화) 23시16분39초 ROK 제 목(Title): 깨어있음 깨어난 사람도 형광등을 처음 켰을 때처럼 수시로 잠들어버립니다. 밥 먹으면서 깜박,대화하면서 깜박,9시뉴스보며 깜박, 잠들면 깜깜. 완전한 불이 켜질 때까지는 의식적인 집중이 필요합니다. 또한 습기에 의해서 말이나 행동에서 구태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인아와 진아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 고민하기도 하지만 진아는 묵묵히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대화를 시작할 시간이군요. --- 1. 동일한 진아에서 서로 다른 역할현상이 나온 이유를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업과 역할현상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그렇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니 보편하게 잘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대답했습니다. 업과 역할현상의 이야기를 이해했다면, 역할현상이 다른 이유는 역시 현상적으로 찾아야 하고 그렇다면 진아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업에 의해 설명되어짐을 알 수 있습 니다. 진아만 설정되지 않았으면 무척 쉽고 보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아 즉 참된 나라는 것에는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그리고 읽는 사람들이 진아에 대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직 참되다는 것, 동일하다는 것, 그것 밖에는 풀어나갈 수 있는 어떤 것이 없습니다. 오직 현상적인 역할현상이라는 것이 가아라는 말을 던져 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오랜세월동안 불교계의 선각자들이 참나를 이야기하면서 진아를 생명의 근원처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은 "진아"라는 말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어렵게 만들고 크로체님이 상대방을 어리섞다고 몰아붙이게 되는 근원지가 "진아"라는 명사이고 지켜보는 자라는 명사입니다. 이름도 붙일 수도 없는 것에다 이름을 붙일 수도 없음을 쉽게 이끌어 내기가 어려운 명사를 붙였으니 어리석고 어렵게 만든 장본인이 곧 "진아"인 것입니다. ...진아 또는 참나와 같은 표현은 불교에서도 쓰이는 말입니다. 문사수님은 본래면목이나 불성과 같은 말만 들어보셨나보군요. 사실 본래면목이니 불성이니 하는 단어들도 그것을 가리킬 수 없습니다. 관념화 작용을 일으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용어에 자꾸 매달리시는데, 그냥 솔직하게 "낯설다"고 하세요. 낯설게 하는 용어들-자주 쓰이지 않는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 은 습관적으로 관념화 작용을 일으키지 말자고 하는 겁니다. 석가모니(석가족의 성자)는 죽었으나 석가모니불은 죽지를 않았습니다. 불이란 곧 영생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湧� 생사를 마주대하게 대부분 자비를 달라고 하는 것이고 역할현상으로 죽었다면 죽은 자에게서 어떻게 자비가 나올 수가 있겠고, 불교계는 다 무식해서 들이 그런 뻔뻔한 행위를 강요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가르침입니다. 가르침은 자비에서 나온 겁니다. 죽은 자의 말씀이 전해져 내려오므로 자비 또한 살아있습니다. 역할현상으로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망발은 삼가해주십시오. 절대삼매로 열반한 覺者는 현상으로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석가모니불은 구세주로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삼계의 스승으로서 나투신 것이므로 말씀으로만 존재합니다. 2. 마음의 근원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을 "불법"이라고 합니다. 제가 깨어있지 못하다고 크로체님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크로체님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크로체님이 그와같은 이야기를 할 때에 크로체님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크로체님 말고는 어느 누구도 역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직접 선지식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해보십시요. ...마음의 근원을 정확하게 알려주십시오. 문사수님은 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깨어있는 상태에서도 옳지 않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깨어있지 못하더라도 옳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진정 자신이 하는 말을 스스로 듣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틀린 말을 하게 되면 스스로 틀린 줄 알고 바로잡으며, 깨어있지 못한 상태에서 하게 된 옳은 말들은 자기 것이 되지 않고 그냥 사라져갑니다. 근거를 대라고 하시는데, 이미 근거는 저 위의 글들에서 말했습니다. 그 근거가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판단은 당신 스스로에 달려 있습니다. 자존심을 넘어서 스스로의 글들을 읽고, 읽음을 읽어낸다면 단숨에 문제는 끝이 납니다. 옳고 그름을 벗어나 문제는 거기서 종결될 것 입니다. 3. 경전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무슨 잘못된 일이라고 그러시는 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보편타당함은 밥을 먹으면 배 부르고 밥을 먹지 않으면 배고픈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할 때에 납득이 될 수 있도록 전개하자는 것입니다. 보편함은 불교의 핵입니다. 보문시현 모르는 이야기를 하나도 하지 않고도 근원을 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리고 용어의 사용을 자제하자는 것은 용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한다는 시도와 달리 또 다른 용어의 한계를 하나 더 제시할 가능성이 많고 지금 있는 용어만으로도 머리가 헷갈리는데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여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용어만으로도 머리가 헷갈리는 것은 당신입니까? 수많은 "불교도"들입니까? 정확하게 표현하십시오. 보통은 글을 보고 읽는데 형용사, 부사, 동사, 문맥 보다는 명사에 잡히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명사를 사용할 경우에는 그 이름에 명사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꼬투리가 있어야 이름으로 인한 혼란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크로체님이 지켜보는 자라고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하여 불교에서는 불 - 깨달음, 살려주는 자, 진리라는 의미 관세음, 지장, 보현, 아미타 등등의 의미가 풀어지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즉 명사이지만 단지 명사가 아니라 그 이름이 역동화되어서 전개가 되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새로운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름을 나름대로 정의해서 사용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사용하도록 하십시요. 이 게시판이 제가 돈 주고 산 게시판이 아닌데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켜보는 자" 또한 의미가 풀어지는 이름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더욱 이해하기 힘들어질수도 있지만, "지켜보는 자를 지켜보는 그것"이 됩니다. 앞에 '자'는 ego의 의미 이고 개성을 가진 것이며, 뒤의 '그것'은 "봄" 그 자체를 말합니다. ...................................................................I am Tha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