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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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 크로체)
날 짜 (Date): 1997년09월30일(화) 21시31분46초 ROK
제 목(Title): 개인성과 보편성


 
지금 이야기한 것은 크로체님의 경험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즉 크로체님 개인의 영역입니다.
그와같은 내용이 불경 어디에 나오며
그리고 크로체님의 인생경험이 보편한 것으로 모든 사람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크로체님만의 인생이고 크로체님의 경험일 뿐이므로
그것을 보편함으로 믿고 따를 수가 있는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이상한 말씀이로군요. '믿고 따르'다니요?
   직접 해보면 될 것을 왜 믿고 따릅니까?

   크로체의 경험을 다른 사람이 이해못하리란 법도 없고,
   내가 경험했다면 다른 사람도 이미 경험했을 수도 있고,
   앞으로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랑이나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또한 보편적입니다.

 
"무아"는 사실이기에 믿고 말고도 없는 것입니다.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지금 사실이 아니라는 것일 뿐이고
사실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섞음일 뿐인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중언부언하지 마세요. 이미 나는 거기에 대해서 모두 
   말했습니다. 나는 단지 당신이 처음 "무아"를 말했을때,
   무기를 조장할까봐 한마디 덧붙였을 뿐 지금까지 당신과
   똑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술어라 한 것은 사실을 그대로 말한 말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비가 오는군요."라고 말했을 때, 그것을 믿거나 
   불신하지 않는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믿거나 안믿거나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크로체님이 수행에 세 단계가 있다고 하지만
어떤 경전에 그와같은 내용이 나옵니까? 만일 그와같은 내용이
나온다면 크로체님의 말을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가 않으면 그 과정을 통하여 끝내 갈 곳이
크로체님의 개인체험과 같은 것을 체험하는 것일 터인데
무엇을 근거로 크로체님을 믿어야 합니까?
무엇을 근거로 그 체험을 목표로 해야 하고 무엇을 근거로 그 체험이
보편함을 내용으로 하는 체험이라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아직도 크로체님은 주어진 물음에 대하여
또 다른 의문만이 계속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의문만이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누구나 쉽게 납득될 수 없는 특별한 세계라는 것이
아닐까요?
 
...의심은 무지의 증거입니다. '안다면' 믿거나 안믿거나 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의심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모르기 때문에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아ego의 자연스러운 보호본능입니다.

   수행에 세단계가 있다는 것을 경전에 있음을 확인하고서야
   믿겠다는 겁니까? 경전에 있어도 당신은 고작 믿거나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모른다는 점에서는
   변함없지 않습니까? 경전에 그런 말 없는데,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즉 크로체님의 체험한 경험의 세계가 보편적으로 이미 이루어져 있는
평범하고 타당한 모두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면 팔정도가 없다고 했는데
그럼 부처님께서는 한 마음을 돌이키는 사람들 끼리의
도 매니아의 우두머리였을까요?
한 마음을 돌이킨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팔정도라면
팔정도는 진리의 삶이 아닌 한 마음을 돌이킨 매니아 집단의 것이므로
그것은 진리의 소리가 되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란 보편하고 타당하고 어디에나 적용이 되는 것인데
한 마음을 돌이키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이므로
팔정도란 불교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한마음 돌이킨 곳이 팔정도가 돌아갈 자리이고,
   팔정도란 바로 한마음 돌이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한마음 돌이키면 팔정도에 들어갑니다.
   좀 더 주의깊게 읽고 생각해보신다면 이해될겁니다.
  
 
능엄경을 정말로 읽어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물어봅니다.
"아난아! 무엇이 있어서 보게 되는가?"
만일 이 때에 아난 존자가 "제가 있어서 봅니다."라고 말하였으면
크로체님께서 이야기하는 "가아"가 본다는 말이겠으나
"부처님! 보는 정기가 있어서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보는 정기라는 것은 "지켜보는 자" 혹은 "진아" 보다도
훨씬 문제를 적게 발생시키는 언어사용임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 그 문제점과 허구성을 지적합니다.
위에 올려놓은 경구를 다시 한번 보십시요. 
부처님께서
제행무상이기에 무아라고 하는 것인지를 한번 다시 보십시요.
유상이거나 무상이거나 그것은 무아라는 것 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무아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보는 정기"란 말은 훨씬 잘못된 표현입니다. 
   "보는 정기가 있어서" 보는 자가 다시 남습니다. 
   언제나 거기엔 주체가 남습니다.
   그 주체는 자아ego입니다. 
   그것은 현상이지만 그 자체로 실체입니다.
   현상계에서는 현상이 실체인 것입니다.
   그것은 생멸합니다. 
   그 '보는 자ego'에서 변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제외하면
   空만이 남습니다. 그것을 진아라 합니다. 空은 주시자이며,
   각성입니다. 

   제행무상이기에 제법무아가 됩니다. 무아만 말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문사수님처럼 오랫동안 의문으로 머릴 싸매야 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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