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09월19일(금) 17시24분33초 ROK 제 목(Title): 윤회 윤회 이야기는 참으로 많이 했었던 이야기인데 고맙게 guest님이 다시 이야기하니 또 이야기를 합니다. 윤회란 망령된 생각으로 인하여 망령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망령된 생각이란 "나"라는 생각입니다. "나"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이 "윤회"입니다. 우리가 "나"라고 할 때에 그 "나"라는 것에 붙어다니는 특성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유지하다가 죽는 것.. 이 세가지를 불가에서는 삼유라고 합니다. 즉 "나"하면 그 특징은 생유.본유.사유를 특징으로 합니다. 즉 "나"는 죽는 것만 "나"가 아니라 태어나는 것도 "나"이고 유지하고 있는 것도 "나"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것이 있는 가운데에서는 윤회라는 것은 허망함으로 있게 됩니다. 윤회만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고통이 또한 따라 다닙니다. 가령, "나"는 오욕락이 제일 좋아. 그러면서 식.음.재산.명예.수면만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이 오욕의 세계는 끝없이 오욕에 대한 추구로 돌아가고 오욕의 완전한 만족이 될 수가 없거든요. 왜냐하면 무척 많은 싸움을 해야만이 되니까요. 그러다 보면 갑자기 오욕의 세계가 싫어집니다.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순수한 정신세계라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오욕을 탐하던 결과가 종료가 되지를 않고 오욕락을 추구하던 결과가 돌아옵니다. 수 많은 싸움을 했기 때문에 그 싸움으로 인한 결과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욕락을 추구할 때에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해에 오욕락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자신은 언제나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숭고한 정신을 추구하는데 이런 결과가 나에게 오다니 이것은 말이 안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자신이 지은 것임을 회피합니다. 그리고 변명을 많이 합니다. 숭고한 정신세계를 추구하다 보니 오욕락 보다도 더욱 맘에 드는 것이 정신적으로 높아졌다고 하고 물질을 우습게 보게 되기에 이것은 오욕락 보다 훨씬 오래갑니다. 그런데 정신의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즐거움이 비교적 오래가지만 다시 권태로움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오욕락으로 맘이 돌아갑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추구하는 것이 달라지고 그리고 추구하는 것이 달라지는 가운데에 발생하는 결과에 대하여 싫다고 회피하니 회피하는 피곤함이 끝없이 따라다닙니다. 이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나" 때문입니다. "나"라는 것은 시간대와 공간대속에서 특별하게 누군가와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것 속에서 있으면 "생"과 "사"는 언제나 함께 하게 되고 그와같은 "나"가 언제나 삶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이쪽 저쪽으로 왔다 갔다하면서 도망다니고 피하고 하는 것이 계속됩니다. 이런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래도 인간이라는 육체의 모습으로 인하여 인간이 개나 돼지 보다 훌륭하다고 자부하지만 인간이라는 육신을 떨구면 인간이라는 어떤 외형때문에 유지되던 것은 떨어져 나가고 남는 것은 "나"라는 의식과 습성이 남아서 좋아하는 곳을 찾아서 물결에 휩싸입니다. 즉 나고 죽음의 "나"에 의하여 나고 죽음이 다시 됩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것은 알다시피 "태어남과 죽음"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특징은 끝없이 "나고 죽음"을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로는 그 "나"라는 것이 허망함으로 있는 것이기에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합니다. "내가 없다"라는 사실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사실이 아닌 허망함은 있어본 적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허망한 것을 있는 것으로 잘 못 알고 붙들고 늘어지기에 발생하는 것이 불교의 윤회의 고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