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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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09월18일(목) 21시56분51초 ROK
제 목(Title): Re.Re.Re.Re [guest] 불교의 착함



"나"는 내가 아니다가 아니라
"나"는 없다입니다.

과거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약속을 지켜도 개운치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개운치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즉 어떤 행위 자체가 아니라
행위에 수반되는 결과에 대하여 이런 결과가 나타나도
찝찝하고 저런 결과가 나타나도 찝찝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 하는
행위전의 찝찝함이 역시 따라다닙니다.

그러므로 미래가 현재를 구속하고 또한 현재가 미래를 구속합니다.
이렇게 되는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은
"나"의 이익 혹은 반대로 "너"의 이익이라는 것들이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의 이익 혹은 "너"의 이익이
작용하는 바탕은 결국 "나"라는 어떤 습관적인 틀입니다.

현상적인 육신과 정신이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나"는 있을 것이라는 습성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무심코 "나" "나" 하고 있는 "나"는 고정체로서
인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없다라고 말해도 나는 없다라고 하고 있는 것이
못됩니다.

즉 약속을 지키는 것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그리고 되는데로 버려두는 것도
"나는 없다"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내가 없다는 것을 알면
그냥 약속을 지키거나 혹은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할 뿐이지
어떤 것이 옳은 것이다 아니다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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