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09월09일(화) 15시37분21초 ROK 제 목(Title): 테레사 수녀의 선 만일 테레사 수녀가 인도에 가난한 사람이 많아서 행복했다면 그것은 테레사 수녀의 행복입니다. 다음에 어떤 성직자가 중국에 가난한 사람이 많아서 그곳에서 가난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행복하다면 그 성직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테레사 수녀나 성직자를 위하여 인도나 중국에는 가난한 사람이 많아야 하는 것일까요? 물론 역설일 수가 있지만 가난한 사람이 많아서 사는 의미를 느끼고 행복했다면 그의 행복의 필수 조건은 가난이 되고 맙니다. 이와같은 봉사라면 불교에서는 "선"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와 관련된 비슷한 예가 옛날에 불가에서 행하던 탁발입니다. 탁발의 정신은 가난과 부를 차별하지 아니하고 평등한 것입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그가 선이되거나 악이 되지를 않고 가난하기 때문에 그가 선의 희생물이 되거나 악의 희생물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에게 봉사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이 부자에게 봉사하고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에 비하면 무척 쉬운 일입니다. 있는 자리에서 함께 있는 생명에게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굳이 말하면 불가의 봉사입니다. 그래서 탁발할 때에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차례대로 일곱집에서 밥을 구걸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빈부귀천 관계없이 일곱집이 동등하게 복을 짓도록 하는 것이 탁발의 공덕입니다. 테레사 수녀의 봉사는 귀감이 되는 행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수녀의 마음에 그 행복과 의무감이 가난을 필수로 하는 것이 었다면 카톨릭에서는 성인이라고 치켜세워도 불가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