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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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08월01일(금) 15시10분01초 KDT
제 목(Title): [답변] ??



해탈은 현상적인 어떤 것도 담보로 하지 않습니다.

가령.. 해탈하기 위하여 밥 먹는 것은 해탈에 방해가 된다.

해탈하기 위하여 섹스는 방해가 된다.

해탈하기 위하여 감정은 방해가 된다.

해탈과 동의어가 "자유"입니다.

그러면 섹스가 해탈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섹스는 안되...

이렇게 되어 버리면 이것은 섹스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탈이 아닙니다.

즉 어떤 현상적인 것에서도 자유를 구가할 수가 있어야

해탈이라고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

어떤 것은 억누르고 어떤 것에서는 자유라면 이를 해탈이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같이 해탈이라는 것이 어떤 현상에서도

자유로운 것이라고 하면서

나도 해탈한 사람처럼 살아야겠다고

섹스에 탐착을 하거나 혹은 함부로 말과 행동을 하면

그럼 이것이 해탈인가 하면

또한 그렇지가 않은 것이

해탈하나 하지 않으나 자유롭게 살면 되지

마음을 그런데 그것에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마음데로 섹스하자고 지나가는 이성을 잡고서

섹스를 요구하면 귀싸대기를 맞거나 아니면

경찰서에 가게 됩니다.

자유인 것 같지만 자유가 되지를 못합니다.

분명히 현상을 벗어난g 탈은 자유가 현상에서의 자유가 아님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고 맘대로 되지도 않으니 그냥 그대로는

해탈이 아닌 것입니다.

마음이 즐거울 때에 남김없이 즐겁다고 하는 것은

즐거움에 장애가 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끊어져 있기에

현재의 즐거움 그 자체에서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후회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하여 모르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알기 시작하면

자신의 희노애락을 남에게 감추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정직해지게 됩니다.

정직하기 때문에

자기의 감정을 속이거나 혹은 감정에 대한 과대포장을

하지 않게 됩니다.

현상적인 희노애락 어디에도 감추어야 할 나만의 보호영역이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슬픔은 그대로 슬픔이고

이 슬픔이라는 현상을 감추고 싶어하는 것은

나의 자존심이나 혹은 보호관념 때문에 감추고 싶어하기에

슬퍼도 마음껏 슬퍼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켜야 할 자아라는 것이 본래 있어 본 적이 없음을

알게 되면

슬픔은 슬픔 그대로 생명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니 즐거워하기 전에도 즐거움에 찝찝했다가

즐거워 한 후에도 찝찝함이 남지를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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