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07월16일(수) 17시17분47초 KDT 제 목(Title): 나라고 말하고 있지만... 1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진 나입니다. 그러나 1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달라지게 하는 원리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원리는 또한 지금의 나 그대로입니다. 이것을 저 위에서 한번 컴퓨터의 비유를 통하여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947번 중도수행이란 글에 비유가 있습니다. 컴퓨터란 형체(나의 육체:하드웨어, 나의 정신:소프트웨어)는 형체로 모습을 보이기 전에도 존재했고 컴퓨터란 형체가 사라져도 존재합니다. 존재하기에 형체로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뉴톤이 만유인력을 발견하기전에도 만유인력이 있었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하기전에도 상대성이론이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컴퓨터란 형체가 모습을 보이기 전에도 컴퓨터란 형체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이미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육체와 정신이 모습을 보이기 전에도 나는 그대로 있었을 뿐입니다. 컴퓨터가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을 컴퓨터의 원리라고 한다면 나라는 육체와 정신이 나타나기전에도 나라는 육체와 정신을 드러낼 수 있는 모든 이치는 본래부터 있었습니다. 보통은 컴퓨터라고 하면 껍데기와 동작하는 소프트웨어의 형태를 가지고 컴퓨터라고 하지만 그런다고 컴퓨터가 고장났을 때에 껍데기를 가지고 어떻게 하거나 소프트웨어의 화면상에 나타난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여 고치지를 못합니다. 원리를 아는 사람은 쉽게 고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컴퓨터라는 형체가 컴퓨터가 아니라 컴퓨터의 원리가 컴퓨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컴퓨터란 형체와 컴퓨터의 원리가 서로 다른 것인가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컴퓨터 원리가 그대로 작동되고 있는 순간이 컴퓨터 형체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육체와 나의 정신을 제외하고 어디에 따로 나의 육체와 정신을 만들어내는 이치나 원리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육체와 정신의 이 변화무쌍한 순간이 그대로 나의 육체와 정신의 원리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유로 밖에는 말씀을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지금 이 변화무쌍한 나의 육체와 정신을 존재로써 인정하지는 않지만, 또한 변화무쌍한 나의 육체와 정신을 빼고 어디에 다른 곳에 있는 변하지 않는 나를 또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절대 : 상대가 끊어졌다" 라고 표현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