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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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07월16일(수) 14시17분35초 KDT
제 목(Title): 불교는 존재론



불교는 진화론이나 창조론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화나 창조 모두 시간과 공간이 실제한다는 세계속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속에서 변화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라는 한정됨이 없는 "나"라는 것에 대한 존재론입니다.

윤회라는 것은 시간대와 공간적 무대속에서 우리의 삶을 볼 때에
이야기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중요한 것은 윤회라는 모습으로 보여지거나
아니면 윤회가 아닌 이번생을 끝으로 하여 천당에를 가거나 혹은
어느 시간대상에서 창조되었거나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일 윤회하는 형상적인 모습으로 보였다면
무엇이 그와같은 윤회적인 현상을 만드는 주체로 존재성이며
만일 어떤 시점에 창조라는 것으로 현상이 보였다면
창조를 한 스스로 있는 주체의 존재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섯살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공통점을 찾아볼려고 하면 별로 찾아질 것이 없습니다.
있다면 "이름"이 공통점이고 이름을 불러주는 생명들이 있어서
나를 인지하고 있다는 이것만이 공통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섯살 때의 내가 지금의 나로 바뀌었다면
바뀌게 한 무엇인가가 있을 터인데 그것이 무엇일까?

다섯살 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나를 정신과 육체속에 한정시킨다면 그것은 분명히 창조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유전인자가 같고 사람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겉의 꼴이 비슷하다고 하나 같은 유전인자를 내포하고 있는 세포는
다섯살 때의 세포가 아닙니다.

이런 면으로 보면 어쨋든 우리는 어제의 우리에 비하여
오늘의 우리는 창조입니다.

그런데 "이름"과 불러주는 것이 있어서 느끼는 나를 중심으로 두고 보면
나의 육체와 정신은 그 바운다리내에서 변화된 것 처럼 느끼기에
이러한 면으로 보면 진화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것은
어떤 대상이 있기에 존재처럼 보여지는 진화의 주체처럼 보이는
"나"나
혹은 어떤 시점과 지금 시점을 똑 떨어뜨려놓고 보는
창조적인 관점속에서의 "나"도
모두 환상속에서 시간과 공간속에서 제약받는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가 아닌 주체로서 한번도 변화되어 본 적이 없는
"나"

즉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나"를 믿고 확인하고 거기에서 부터
삶을 즐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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