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4년11월09일(수) 10시36분08초 KST 제 목(Title): 부처에 대한 오해 부처에 대한 오해 불교는 성불하여 생사해탈한다고 말하지만 묘한 것은 우리가 성불하여 성자가 된다고 하여도 부처가 둘이 되지를 않는 다는 것입니다. 부처는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한다는데 그 방법이 있는 중생을 마구 가르쳐서 부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여 중생제도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생제도라는 큰 인연으로 나오셨는데 그 때, 이미 중생제도가 다 끝났습니다. 왜냐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안 것은 세상에 중생은 없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하는 것은 오직 부처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기에 중생제도가 끝났습니다. 중생이 없으니 성불해도 부처가 늘지를 않습니다. 그것이 부처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억압이나 강박관념의 종교는 아닙니다. 신이라는 상대적 존재가 있을 수 없기에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위대함은 신이라는 허상도 없고 신의 종속되는 피조물도 없다는 완전한 인간해방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정말 중생은 없는가? 있습니다. 중생이라고 우기고 있기에 틀림없이 중생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저가 중생이 아니요 중생 아님도 아니니"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우기면 모든지 만들 수 있는게 부처의 위용입니다. 부처는 곧 우주의 주인인데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 우리의 마음이 중생이 있다하면 짠! 하고 중생이 만들어 집니다. 또 우리의 마음이 창조주인 신이라는 형태를 인정하면, 짠! 하고 창조주가 만들어 집니다. 부처는 무한 창조의 능력으로 뭐든지 만들기 때문입니다. 단, 하나 뿐인 부처가 천지와 우주와 모든 상대세계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자꾸 우기고 자꾸 인정하고 막 그래서 무한히 많은 형태들을 만들고 계속 만들 것 입니다. 그 부처를 보려면, 자신의 마음이 무엇을 인정하는 가를 보면 됩니다. 거기에 창조와 파괴의 생명 약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주인이 우주의 주인임을 알고 사는 살 극멋이 보살의 삶입니다. 믿기지 않는 것, 그래서 수보리는 미래에 이런 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냐고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반문을 하는 겁니다. 중생이라고 우기는 우리의 참모습은 이미 부처이니 그를 알고 공포심을 버리고 마음껏 창조합시다. 공포심과 동일어가 신, 조물주 등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