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z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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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izona ] in KIDS
글 쓴 이(By): archa (jri)
날 짜 (Date): 1999년 2월 26일 금요일 오전 05시 13분 55초
제 목(Title): 칸트가 나보다 더할 쏘냐. 



입에 풀칠을 해야 하니 일은 해야 한다. 천하의 게으름 뱅이인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문제는 하기가 너무나 싫다는 것. 그래, 그건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고, 난 
월급주는 만큼만 일한다 치자. 그렇다면 일하기 싫어하는 건 아주 당연한 
본성이다. 노동착취에 항거하는 태업정도로 보면 내 속은 편하다. 

문제는 근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왜냐. 내 일도 하기 싫으니까.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하는 일도 하기 싫다면 이건 좀 다른 문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원래 2월 하순이 되면 아주 바쁠 것이라 생각했었다. 너무 바빠서 다른 일은 
신경도 쓰이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왜 난 바쁘게 살고 있지 않은 건가? 그래, 
바빠야 하는 데 바쁘기 싫은 것. 이게 문제다. 남의일을 해주고, 내 일을 하고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이제는 완연한 봄이다. 날씨는 화창하고 오후에는 졸음이 쏟아진다. 오늘은 내 할 
일 좀 해야지라면서 학교에서 일찍 도망나와 집에 오면 더 졸린다. 그래, 잠 좀 
쫓자면서 티비를 켠다. 농구 경기가 한창이다. 농구를 보고 나면 머리가 잘 돌아갈 
것 같다. 농구가 끝난다. 다른 채널로 돌린다. 이번에는 아이스 하키. 그게 끝나고 
나면 재탕 시트콤... 한 서너 시간 이 짓을 하고 있으면 오밤중이다. 괜히 맥주 
생각이 난다. 맥주 먹으면 머리가 더 잘 돌아 갈 것 같다. 집앞 가게에 가서 맥주를 
사온다. 가게 주인 아저씨가 친한 척을 한다. 나만한 단골이 없는 것 같다.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괜히 담배가 자꾸 땡긴다. 마당에 나가서 담배를 피운다. 아니, 
아예 책도 가지고 나간다. 마당에� 불 켜놓고맥주마시면서 담배피우면서 책보면 
뭔가 머리 속이 잘 풀릴 것 같다. 담배가 다타고 맥주캔이 비는 건 약 10분 후. 
이제는 집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뭔가 중요한 이메일이 왔을 것 같다.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해본다. 별 것 없다. 에이.. 다시 맥주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낸다. 또 담배가 땡긴다. 바당으로 나간다. 10분 후 다시 들어온다. 10분후 새 
맥주캔을 들고 다시 마당으로.  

저녁 6시부터 새벽 2사까지 이 생활은 거의 한치의 오차없이 반복된다. 

난 정말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다. 칸트가 나보다 더 할 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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