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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1998년03월02일(월) 15시24분05초 ROK
제 목(Title): 어떤 사랑 I

94년 여름에 그녀를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석사를 마치고 현역병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기들이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살이 적었다.
그 중 한 녀석이 나를 특히 잘 따랐는데, 녀석은 나에게 어울릴거라며 교회
에서 아는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얽매인 몸애 무슨 연애는
연애냐며 몇 번 거절했는데, 부대를 옮겨서도 지속적으로 소개팅을 주선
하는 바람에, 혹 새로운 교제가 단조롭고 답답한 군생활을 활기롭게 행여
해줄지도 모른다는 약간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녀석의 청 아닌 청을 받아들
이게 됐다.

그러던 녀석은 달랑 전화번호 하나만 던져 준다. 물론 녀석은 녀석대로 그
여자친구와의 전화에서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 묘사를 한 모양이었다. 애초 계획은 둘이서 휴가를 맞춰 나가서 소개
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 대대장의 차를 모는 운전병이었던 녀석
은 휴가 마져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날짜가 결정되는 바람에 휴가 나가
서 잘해보라며 던져준 것이 전화번호였다.

두 번 째 휴가에서 그녀를 만나게 됐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4년 여름 
8월의 어느날 종로 3가에서 우리는 만났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던 까닭에 
가슴 조리며 기다리길 30여분. 나에게는 녀석이 알려준 인상, 키가 전부였고 
그녀는 아마도 머리 짧은 군인 아저씨라는 단서 밖에 없었 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나타난 순간 난 첫눈에 그녀가 그녀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비교적
큰 키를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화려한 미모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수선화 
처럼 수수한 아름다음을 지닌, 특히 눈이 초롱초롱 맑은 여자였다.

종로 3가에서 2가로 걸어오다 들어간게 생맥주집이었다. 그녀는 인상대로 말
이 별로 없었으며 내 말을 열심히 듣고 있었지만, 난 나 나름대로 처음 만남
의 어색함을 그녀가 느끼지 않도록 이런 저런 말을 주절주절 쉬지않고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여 당시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은 나
지 않지만 아마도 군대이야기는 되도록 피하지 않았나 싶다. 처음 만남부터
딱딱한 군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으며, 군대의 경직된 사고 방식을 누
구보다도 싫어하는 나였기에.

그렇게 약 두시간을 보내다 집에서 통행금지가 있기 때문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 거리로 나왔다. 좌석버스 정류장까지 걸으며 들어가야 
한다는 그녀의 말이 내가 맘에 안든다는 말과 같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저으기 당황되었다. 잘되기는 이미 틀렸나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밑져야 
본전이겠지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묘한 매력을 풍기는 그녀를 결코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거절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무 말을 못하고 있는데 급기야 그녀가 탈 버스가 
오고 있다. 있는 용기를 다내어 복귀하기 전에 한번 더 만나 줄 수 있겠느냐고 
간청하자 그녀는 못 내 승락한다. 순간, 일단 이게 마지막은 아닌 셈이다.
안도의 한 숨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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