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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1997년08월01일(금) 23시41분47초 KDT
제 목(Title): 그래.. 오늘은 나도 도망쳐 버렸어..



누구의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종일 울어 부은 눈을 아직 채 가라앉히지도 못한 채..
난 또 눈물을 흘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환자는 누구나 힘들다..
암환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보이지만..

요즘 내가 맡았던 환자들은 뇌출혈, 뇌경색, .....
어쨋든 뇌의 병변은, 
그것이 때론 신체적 장애를 전혀 주지 않는 정신질환을 만들지라도..

인후두 부분의 근육 마비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사람.. 
그렇지만, 사지는 멀쩡해서 걸을 수도 있고.. 말은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고..
그렇지만,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늘 흐르는 침을 삼키지 못해 가제를 물고 있어 입술도 많이 헐어있었다.
입원일수는 보험이 허락하는 일수를 이미 넘은지 오래..
하나 뿐인 아들은 엄마와 함께 달아나 버렸고,
형제들조차 이젠 데려간다는 도장만 찍었을 뿐 발길을 끊은지 오래다..

내가 할 일은 그 사람에게 매일 찾아가서 ..
"오늘은 말하는 연습 좀 해보셨나요? 얼마나 좋아지셨는지 볼께요.."
이미 일상화된 처치외에 더이상의 회진도 무가치한 그 환자에게
마치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줄 것처럼 다가가 이리저리 고무망치로
두드리고 라이트를 비추어 반사 검사하고 손가락 맞춰보기를 하고...
푸.....

사실은 그러한 검사를 거절당한지 오래다..
환자 역시 지칠대로 지쳐있으니까..
이미 포기한지는 오래다..
어떤 때는 때릴 것처럼 거칠게 달라들기도 하고,
때론 반갑다는 듯이 웃으며 장난을 치려고도 한다.
왠 상반된 감정..?
그러한 감정조차 뇌병변으로 인한 인격변화로 취급받고 만다..

웃기는 하되 인정되지 않는 웃음이며..
저항을 하되 인정받지 못하는 항거일 뿐...

아직 50이 채 안된 그는.. 이미 생활력을 잃은지 오래다.
사지를 움직이지만, 턱수염을 못 깎은지도 오래... 덥수룩하다..
가족도 잃은 그가.. 과연 침상을 꼼짝없이 누워
그날 만을 기다리며  울고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는
암환자와 무엇이 다를까...

어제 저녁에는 그가 나에게 손끝이 저리다는 몸짓을 보여줬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이고.. 내가 알고 있는 한은
약이 투여되고 있다는 것..
그렇지만, 더 이상 아무도 그의 그 호소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난... 더군다나 아무런 것도 줄 수 없고...
그가 거부했지만... 난 잠시동안이나마 그의 손을 주물러주고 왔다..
손끝이 차가왔다.. 그가 쓸데없는 짓이라는 몸짓을 했다..

그 앞에서 난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TV에서는 쑥을 먹여 키운 닭으로 삼계탕을 끓였고..
아주 맛이 좋다는 내용의 방송을 하고 있었다..


난 더 이상의 TV 를 바라보는 그의 휑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의 손을 놓은 채.. 그냥 목례만 하고 나오고 말았다..

이 사람은 내가 맡은 9명의 환자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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