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Wedding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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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blueyes (魂夢向逸脫)
날 짜 (Date): 2010년 09월 13일 (월) 오후 05시 40분 20초
제 목(Title):   어느새 다 컸어 (2)



부모님이 서울 인근의 마석에 농장을 마련하셨다.
(농장 얘기를 썼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아마 쓰려다가 급한 일로 취소한 적이 몇번 있지 않을까 싶음.)
사실 말이 "농장"이지 텃밭에 가까운 규모이다.

땅을 구입한 것은 30년 가량 전이라고 하시던데,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고..
노년에 농사라도 지으려고 밭을 몇백평 사 두신 것이 이제는 주위에 주택가와 
아파트가 들어서서 동네 주민들의 텃밭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지금은 경춘선 역사가 바로 앞에 생길 예정이기 때문에 주위가 죄다 
개발제한으로 묶여서 딱히 쓸 용도도 없어서 밭을 일구던 동네 주민들의 양해를 
구해서 한켠에 담장을 치고 과실수 몇 그루와 고구마/고추/상추 밭을 일궜다.
그리고 거기에 손주들 재미를 위해 닭, 거위, 토끼 등을 키우기 시작했다.

농장을 만든 후에 매일 가 계시는 부모님을 뵙는 방법은 오직 농장으로 가는 
방법 밖에는 없게 되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일요일은 아이와 함께 농장을 가는 날이 된 것이다.
(한번은 집사람과 함께, 한번은 집사람 빼고..
집사람을 빼고 가는 이유는 2주에 하루라도 아이 없이 편하게 보내라는 
의미인데, 내 마음을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다빈이는 일주일 내내 주말을 기다리면서 산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게 안기고는 처음 하는 얘기가 "오늘 Saturday야?" 하는 
것이다.
아직 뺄셈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Monday나 Tuesday에서 몇 밤을 더 자야 
Saturday가 되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니, Friday야"라고 하면 무척 
기뻐한다.
"내일은 아빠가 회사 안 가는 날!"
이러면서 말이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이 되면 "내일은 농장 가는 날"이라며 할머니한테 전화를 
하며 무척 들떠한다.

솔직히 다빈이가 농장 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가서 재밌게 놀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겁이 많은 아이라 동물들과 놀기는 
커녕 가까이 가지도 않을 뿐더러, 아빠는 소소한 일(대부분은 고기 굽는 일)을 
하느라 집에서처럼 잘 놀아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대충 추측하기로는 다빈이가 좋아하는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데다가, 
자기 마음대로 했다가 엄마한테 혼나게 되는 친구와는 달리 마음껏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어제 일요일 아침의 다빈이는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예전에는 "계획"이란 것이 전혀 없이 모든 스케줄은 엄마가 조정해 주는 대로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였었다.
그런데,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집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씩씩 화를 내며 
내게로 다가왔다.
"누가 내 책 치웠어?"
전날 새로 주문한 책이 배달되었기에 아이 엄마가 늦게까지 정리를 하더니, 
뭔가 다빈이 마음에 맞지 않았나보다.
"다빈이 책 모두 책꽂이에 있잖아. 거기 있으니까 찾아봐."
그랬더니 아이가 무척 억울한 표정으로 침을 튀겨가며 얘기를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빼놓은 책이 없어졌다구."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애비를 닮아 한성깔 하는 다빈이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간혹 
폭발을 하곤 하기에 손을 잡고 아이 방으로 가서 뭔 일인지 물었다.
"내가 이거하고 이거하고 농장에 가져가려고 빼 놨는데 이렇게 됐어."
그러면서 다섯권의 책을 살짝 뽑아 놓았다가 다시 집어 넣는다.

이제사 이해가 되었다.
토요일 저녁에 다음날 농장에 가지고 갈 책을 골라 놓고는 반쯤 뽑아 놓는 
것으로 표시를 해 둔 모양이다.
그런데, 엄마가 책 정리를 하면서 죄다 다시 넣어 놓았으니 그게 무척이나 
억울한 모양이었다.
"아~ 밤에 엄마가 새 책 정리를 하면서 넣었나봐."
그 말을 듣더니 다시 씩씩 거리며 쿨쿨 자는 엄마한테 가서 큰 소리로 뭐라 
뭐라 그런다.

자다가 소리를 듣는 집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하겠지만, 옆에서 보고 있자니 이젠 
계획도 세우는가 싶은 생각에 기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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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농장에서 다빈이는 많이 먹었다.
내 손바닥 크기의 두터운 등심 스테이크를 세 개나 구워 줬는데, 그 중에 두 
개를 해치운 것이다.
그렇다고 옆에서 먹인 것도 아니고, 많은 손님들의 먹는 속도에 맞춰서 고기를 
열심히 굽고 있느라 후다닥 잘라 놓고 알아서 먹으라고 한 것이 그 정도였다.
무게를 가늠해 보면 얼추 300~350 그램 정도?
물론 그게 끝이 아니라 어른들이 고기를 다 먹을 때까지 잠시 뛰어놀다가 
반공기 정도의 밥을 또 먹었지만 말이다.
(엄마, 아빠를 닮아 살이 안찌는 체질인 것이 정말 다행이다.
먹는만큼 살이 쪘다면 무척 비만이었을텐데, 보기에는 말라 보이는 체형이다.)

먹는 것만 보자면, 다빈이는 고기를 맘껏 먹을 수 있어서 농장을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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