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blueyes (魂夢向逸脫) 날 짜 (Date): 2009년 12월 25일 (금) 오전 02시 38분 29초 제 목(Title): 고역 신혼이 아주 오래전에 끝나버린 지금은 자주 싸우지는 않지만, 싸울때 간혹 내가 내뱉는 말이 있다. "넌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그때마다 이 사람은 대꾸도 않고 보고만 있는다. 나는 속으로 대꾸도 "못하는군"이라고 생각하며 대충 이쯤에서 이해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접고 만다. 하지만 오늘 얘기중에 (싸움이 아닌 얘기 중이었다) "대꾸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대꾸도 안하는" 것이었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지금에 와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을 하지만, 사실 집사람은 주부로서의 역할을 별로 하지 않는다. 결코 "잘 하지 못한다"라고 표현이 되지 않는 일이다. 잘하지 못한다는 것은 잘하려고 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실 이 사람은 잘하려는 의지 자체가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걸 나는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니"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남편 노릇을 일등급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바는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더라도 대부분은 아이가 자기 전에 들어가서 내가 재운다. (2시까지 재우고 나서 난 언제 자고 언제 출근을 하란 말인가?) -아이 목욕은 대부분 내가 시켰다. (지금은 의도적으로 멀리한다. 아이가 나하고만 목욕을 하려고 해서.) -아.. 집에 들어가면 우선 아이 치카치카부터 시킨다. (이것도 은근 고된 일이다.) -일주일에 한번은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을 한다. (아마 최근까지는 이게 청소의 전부였을거다. 집에 먼지가 많으니 자꾸 애가 기침을 하지! 라고 난리를 쳤더니 이젠 청소는 하는 듯 하다.) -모든 쓰레기는 내가 버린다. (재활용 쓰레기를 한주 쉬면.. 다음 주엔 쓰레기 버리는 데에만 한시간이 걸릴 정도로 쓰레기가 많다.) -집에 장보는 것의 절반 정도는 내가 구입해서 간다. (횟수로는 그보단 적겠지만 주스 하나 사서 들어가는 것과 양손에 한가득 들고 들어가는 걸 같게 비교하면 안되지.) -매주 서너번은 장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음식을 사가지고 들어간다. (사실... 집사람의 음식은 결코 맛있지도 않고 다양하지도 않지만.. 모든 끼니를 사먹다 보면 그 맛없는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지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에 어차피 나가서 사먹을 거면 귀찮아서 내가 사가지고 들어간다.) -2주에 한번은 혼자 아이만 데리고 왼종일 집밖에 나간다. (최소한 그 정도는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 쓰다보니 또 우울하다. 신세한탄을 하려는 건 아니었으니까. 암튼. 오늘 대화중에 집사람이 한 얘기는 "아이 땜에 힘들어 미치겠다"는 거였다. 물론 나도 100% 이해한다. 아이가 내 성격을 쏙 빼닮았으니 키우기 오죽 힘들겠는가. 지치지 않는 백만돌이에, 끝없는 호기심으로 계속 뭔가를 물어보고 있고, 잠시 한눈을 판다면 뭔가를 망가뜨리거나 누군가를 밀치고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집사람이 힘드니 내가 거들고 자기는 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누구의 인생이 더 고된지 하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칭찬을 들으려는 것도 아니고, 고마와하라는 의도도 없었지만.. 당연한 거라니? 겨우 그런 정도라니? 내 생활을 돌아봐 주길 바란다고 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은 고작 출퇴근 30분씩. 나머지는 회사에서 사고를 수습하거나, 덤벼오는 녀석을 상대하거나, 악의 길로 기꺼이 들어서려는 녀석을 설득하거나, 폭발 5초전의 폭탄을 해체하는 수준의 프로젝트 마감에 맞춰 여기저기 조율하고 일을 하거나, 고객에게 아부하거나.. 친구? 일년에 열번 모임에 나가면 잘 나가는 거고. 취미? 운동? 아이 볼 시간도 모자란데 그딴건 사치고. 그렇다고 집에 가면? 저 위에 열겨한 일들을 해야 하는거고. 그녀는 전형적인 남녀차별주의인 여자. 그딴 사회적인 일은 남자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고, 그 결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훨씬 힘들다는 결론. 자기는 아이를 키우느니 차라리 직장에 다니겠단다. (사실 나는 생계를 책임지느니 차라리 살림살이가 내 적성에 맞는다.) 내가 나이 마흔 넘어서 철이 들기 시작하고 깨닫게 된 한가지가 이거였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니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모든 일이 진행되므로, 그 관계가 능력 자체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있으면 뭐하나. 내 반대편에 서겠다는데.) 음.. 기억이 안나는데 왠지 무척 길어졌을 것 같다.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 PS: 아.. 그렇다고 뭐 분위기가 안좋거나 그랬던 건 아니다. 지금 이 글은 하루종일 왕비와 왕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자는 틈을 타서 힐튼호텔 꼭대기층의 공짜 무선 인터넷으로 쓰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열이 높아서 약을 한웅큼 먹으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