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Wedding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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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blueyes (魂夢向逸脫)
날 짜 (Date): 2009년 10월 19일 (월) 오후 08시 08분 05초
제 목(Title): 이름



난 사람의 이름에 따라 각자의 운명이 바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모가 개념없이 "강간범"과 같은 이름만 붙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 작명 프로그램을 구해다가 점수를 
비교해 본 이유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목적이었다.
첫째, 나중에 되도 않게 사고가 난다거나 건강이 나빠졌는데 그게 "아빠가 
이름을 이렇게 지은 탓"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고,
둘째, 누군가가 "작명하는 곳에서 지었냐"고 확인하는 질문에 괜히 길게 답변을 
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물어본 사람이 있었고, 내 대답은 "그렇다"였다.
돈만 주지 않았을 뿐이지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을테니까.)

이름과 운명의 상관지수가 0일 것이라고 확신을 함에도 불구하고 "센과 
치히로"였나 하는 애니는 한번쯤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나의 정체성은 내가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보다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봐주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
그리고 타인의 시각이 호칭을 통해 나를 가장 잘 규정짓고 있다는 생각..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을 직책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X 과장, Y 부장, Z 대리 등등..
이런 경우 대부분은 그 사람 자체보다는 그 사람의 역할과 업무권한을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역할을 호칭으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와이프를 부를 때에도 결혼 전과 동일하게 이름을 부른다.
어들들이 보시기엔 버릇없어 보일지 모른다는 걱정은 하면서..)
아이를 부를 때에도 난 의도적으로 이름을 부르는 편이다.
사실 이건 내 어릴적에 받았던 의무감에서 비롯된 점도 없잖아 있다.
부모가 다른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에 "우리 장남"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모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제 달랑 34개월밖에 안됐음에도 불구하고 대견하고 
기특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말이 "우리 아들"인데, 자주 있는 일은 
아니어도 그때마다 그러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곤 한다.
그런데..

이젠 와이프가 슬슬 아이를 "아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아들! 식탁에서 물컵 좀 가져와"

산달이 다 되어서 아들이란 것을 알았을 때에 와이프가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딸을 바랬던 사람인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달라진 점이 생겼는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엄마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아직까지 빈도가 높은 것은 아니기에 그냥 보고는 있는데, 두고 보다가 내 
바램을 얘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아이가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남편,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기대되지 않고 
그저 남들과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한 명의 사람"으로 존재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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