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Wedding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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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evian (레토나오너)
날 짜 (Date): 2004년 10월  8일 금요일 오후 07시 47분 01초
제 목(Title): 벼슬 운운하니 생각나는 유머



가 있네요.
친구 싸이에 올라온건데, 여기 펀보드에도 떴었는지 모르겠네요.
특히 저녁 9:30분 부분. 압권이군요...
이거야말로 '경험에 기초한' 각본일까요?

-----------------------<어느 유학생의 하루>

6:00am
자다가 발에 뭐가 걸린다. 잠시 눈을 뜬다. 아내의 배다. 배가 ‘산’만하다. 
"맞아, 임신했었지." 순간 벌받을 만한 생각을 한다. "아, 저 배가 그냥 
똥배였으면…" 또 한 아이의 능력 없는 아비가 된다는 자책감이 밀려온다. 
2초만에 다시 잠이 든다. 

8:00
두시간 전보다 침대 높이가 높아졌다. 아마도 아내가 내가 하도 발로 차대니까 
다른 방에서 자기로 했나보다. 

8:10
밖에서 학교 갈 준비하는 큰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분위기로 봐서 오늘은 
와이프가 "피곤한" 나를 위해 큰아이 학교를 데려다 줄 모양이다.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계속 자기로 한다. 옆에 같이 자는 사람이 없으니 침대가 
훨씬 평평해져서 좋다.

9:20
눈꼽을 떼며 일어나 런닝 바람으로 문밖에서 쪼그리고 담배를 피운다. "오늘은 
어제처럼 살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는 와중, 앞 집 한국 아줌마가 문을 열고 
나온다. 못 본 척할까, 가볍게 인사라도 할까. 고민하는데 앞집 아줌마가 내 
런닝이 민망했는지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아무래도 한국에 칼라 런닝 좀 
보내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 같다.

9:30
‘쉬야’와 세수를 한다. 면도는 내일해도 괜찮을 것 같다. 면도에 시간을 
뺏기기엔 오늘 하루도 너무 할 일이 많다.

9:45
셔틀버스를 기다린다. 나보다 청결 상태가 더 안 좋은 애들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10:10
학교 office에 도착.

10:11
이메일을 체크한다. "밤새 서있고 싶으세요?" 뭐 이딴 유사-비아그라 광고랑 
나이지리아의 갑부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메일. 유럽 어디서 내가 수천만 
달러의 복권에 당첨되었으니 답장하라는 개소리가 대부분이다. 쓸데없는 
메일들을 다 지운다. 윽, 내가 TA하는(조교로 있는) 과목을 듣는 학생의 
이메일이 실수로 지워진 것 같다. 아쉬우면 지가 다시 보내겠지. (아, TA는 
정말 할 일이 너무 많다. 연구는 언제하라고…) 

10:20
인터넷으로 신문을 본다. ㅎ신문으로 시작해서 스포츠 신문, 여기서는 이효리 
기사가 헤드라인이다. 아무래도 이효리는 운동선수인가 보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생각하니 가족에게 미안해진다.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ㅈ일보로 넘어간다. 북마크해놓고 시간을 절약하는 건 현명한 생각이다. 

11:25
(신문 읽는 사이에 도착한) 이메일을 체크한다. 

11:30
일련의 "웹질"을 마치고 상쾌한 하루를 위해 커피 한 잔을 사먹는다. 1불이 
넘는다.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남김없이 마신다.

11:45
담배를 피우다. 갑자기 내가 "인터넷 중독"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지?" 생각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로 하고 office로 
돌아온다.

11:50
구글에서 "인터넷 중독"을 검색어로 검색해 본다. 인터넷 중독 자가진단 
사이트들이 많이 있다. 각 사이트들의 설문내용이 어떻게 다른지, 신빙성은 
있는지, 주도면밀하게 분석해본다.

12:30
이메일을 체크한다. 답장은 나중으로 미룬다. 답장하는데 시간을 뺏기기엔 할 
일이 너무 많다.

12:35
딜(deal) 사이트 업데이트 확인하는걸 이효리 기사보느라 까먹었다는걸 
깨닫는다. 주요 딜 사이트들을 살펴본다. 

12:59
악 1시부터 TA office hour(조교 학생 면담 시간)다. 후다닥 준비해서 TA 
office로 향한다.

1:05
다행히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숙제 채점을 시작한다. 채점은 정말 지겨운 
일이다. 백지로 내는 애들이 제일 예쁘다. 상상의 나래를 펴고 훨훨 날아다니는 
답들은 같이 날아다니기가 너무 숨이 차다. 

2:25
열심히 채점하고 있는데 학생 하나가 온다. 순열-조합 문제를 물어본다. 다행히 
내가 고등학교 때 배운 것이다. 산뜻하게 풀어주고 한마디 덧붙인다. 이거 
우리나라에서는 high school에서 배우는 거라며 으쓱댄다. (이 친구가 흠칫 
놀란다) 매 맞으면서 배운 보람이 있다.

3:05
(오피스 아우어를 마치고 office로 돌아와) 이메일을 체크한다. 또 그 놈이다.

3:10
졸린다.

3:11
졸린다.

3:12
무지 졸린다.

3:13
..........zzz 

4:00
책상에 엎드려 불편한 자세로 잤더니 발이 저린다. 트림도 나온다. 엎드려 자고 
나면 왜 트림이 나올까 궁금해졌지만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 찾아보기로 
한다.

4:05
(낮잠 잔 사이에 온) 이메일을 체크한다. 지도교수한테 메일이 와있다.

4:06
몇 개월 전에 자기가 "이게 요즘에 팔리는 분야"라고 해서 난 별루 맘에도 
안드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는 그 쪽 방향이 다 crap(쓰레기, 
헛소리)이란다. 어쩌라는 거냐. 서서히 열을 받으며 심지어 "씨…교수 
바꿔버려?"라는 생각까지 들려는 찰라, 가족들 얼굴이 교차된다. 그리고 젤 
중요한 것은 나를 받아줄 만한 다른 교수도 없다는 거다.
온지 얼마나 되었는지 년수를 세어본다. 내 나이도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세어본다. 둘 다 만으로 센다. "영원히 졸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 
우리교수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다. 한국축구도 좋아하고…또..음.. 또.. 음.. 
암튼 좋은 사람이다.

4:07
교수님께 감사한다.

4:15
새로운 마음으로 내 연구와 관련 있어 보이는 논문을 검색한다. 주루룩 
이어지는 논문 리스트들…스크롤 압박이 심하다. 그러나 그것들을 프린트 하는 
동안 잠시동안의 ‘지적 포만감’에 젖는다. 내 논문도 아닌데..

4:30
프린트 되고 있는 동안 잠시 휴식을 하기로 하고 담배를 물어 피운다.

4:55
오늘 점심을 안 먹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 프린트한 논문을 보기에는 
저녁 밥 먹을 시간까지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와서 밤새고 일해야겠다.

5:00
가족에 미안함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딴OO보에 입장한다. 업데이트가 없다. 내 
방문주기가 너무 빠른가 보다. 내 자신이 한심해지며 가족에게 한없이 
미안하다.

5:20
밥만 먹고 금방 와서 열심히, 열심히 공부할 생각으로 집에 갈 셔틀버스를 타러 
간다.

5:22
멀리서 버스가 떠나려고 한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난 할 일이 너무 
많다. 떠나려는 버스 앞을 막고 간신히 차에 오른다. 오늘따라 학교 아파트의 
절대 다수인 동양애들보다 유난히 서양애들이 버스에 많이 탔다. 

5:30
버스가 약간 이상하게 간다. 아마 공사구간 때문에 돌아가는 모양이다.

5:40
버스 잘못탔다. 멀리서 보구 LA인줄 알았는데 ER이었다. 15가에서 집까지 
걸어간다. 어쩌면 밥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을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9:30
학교 오피스로 돌아온다. 밥만 먹고 오려고 했는데…내가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니라, 가족이 나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누구 때문에 되지도 않는 ‘박사’ 따려고 
하는데. 도대체 집에서 가족과 지내느라 몇 시간을 빼앗겼단 말인가? 가족은 
나에게 미안해 해야 한다!!! 

9:40
(가족에게 미안함 없이 당당하게) 이메일을 체크한다. 이번에는 그 놈 것도 
열심히 읽어준다.

9:45
미루어 놓았던 이메일 답장들을 쓴다.

10:15
밥 먹으러 집에 간 시간이 후회되며 오늘 하루도 이렇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아까 엎드려 자면 트림은 왜 나오는지 안 찾아봤다. 지금 
찾아본다. 검색 사이트에 가야하나?

11:00
아까 9:30분에 했던 생각이 말도 안된다는 반성을 한다. 오늘 낭비된 시간들을 
지금부터 만회하기에는 오늘이 얼마 안 남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오늘까지만 
놀고 내일부터는 새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러려면 오늘은 일단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보스턴 야구 결과만 보고 집에 가자. 

11:30
보스턴 야구 결과만 보려구 했는데 LPGA 박세리까지 봐버렸다.

11:35
집에 eDonkey에 걸어놓은 터미네이터3가 생각난다. 지금쯤 다 받았겠군. 
기분전환에는 역시 영화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내일부터는 공부만 해야하는 
상황이니까.

11:50
하루가 야속하게 가버린걸 후회하며 차를 몰고 집으로 간다. 

12:20
아놀드 아저씨가 나오는 터미네이터3를 관람한다. 이때만큼은 다른 생각이 
안난다.

2:00
영화 다 봤다. 재미도 없는데 괜히 봤다. 하루에 대한 후회를 뒤로하고 침대 
아내 옆 자리에 끼어서 잠이 든다. 마직막 걱정 하나, 지금의 페이스로는 
영원히 졸업하기 힘들 것 같다.
"내일은 오늘처럼 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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