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Wedding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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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miz (Daughter)
날 짜 (Date): 1998년 8월 19일 수요일 오전 09시 51분 56초
제 목(Title): 낙서 10.



오늘은 우리 딸 수빈이의 첫돌이다.
일년 전 이시간에 나는 분만 대기실에서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기의 머리가 크다나..나의 골반이 작다나..(밖에서 보는 크기하고는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헤헤..) 아기가 쑥 밀고 내려오지 못하고,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 같았다. 힘을 주라는, 안그러면 못 낳는다는 반 협박조의 말도 
몇시간에 걸친 힘주기에 지쳐서 거의 힘주는 시늉밖에 못하는 내게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 때, 나는 아기를 "송이"라고 불렀었다. 임신중 내내.
송이에게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미안하다...엄마가 힘이 없어서 너까지
고생시키고 있구나... 송이야 그래도 우리 조금만 참고...기쁘게 만나자...

몇시간을 혼자 고통스러워하는 동안, 정말 너무나 외로움을 느꼈다.
그 시간에 남편도 대기실 밖에서 초조하게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송이와 같이 있으니까...

의사는 아마도 다른 볼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사람이 자기 일을 다 마치고 나니, 흡입기로 빼내기라도 해야겠다면서
분만대로 나를 데려갔다...그리고는 옆에서 레지던트가 배를 밀고..잠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득한 고통의 순간이 지난 후에 아기가 나왔다고 했다..

아기가 온전하게 나왔을지..나는 너무도 두려웠다.. 어쩐지 아기의 울음소리는 
우렁찬 "응애"가 아니라, 물이 입안에 가득 고인 것 같은 우액 소리가 나고.

그 이후에는 출산보다 더 아픈 회음 봉합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수빈이와 처음 만났을 때, 정말 이상하게 생긴 아이가 잠깐 내 곁에 왔다가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는 회복실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한 24시간이 지나서야 
신생아실 밖에서 수많은 아기들 중 한 바구니에 있는, 잘 안보이는 
뻘건 아이가 내 아이라고 들여다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수빈이를 제대로 꼼꼼하게 쳐자본 것은 퇴원하던 날에서야 가능했고...

쳐다본

어쨌든, 그 때에 수빈이는 약간의 뼈와 약간의 살로 구성된 가냘프기 이를데 없는 
아기였는데... 들어봐도 무게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엄마들이 첫돌을 특별하게 느끼는 이유는 그 아이의 그렇게 작고 볼품없고,
안스러운 모습을 누구보다 깊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정말 많이 큰거다...
일 생 중에서 가장 눈부시게 변하는 시기라고 하던가..첫 일년이..

그 아이가 건강하게, 정상적으로, 그러면서도 엄마 아빠 별로 힘들이지 않는
순하고 착한(이건 좀 의문이지만) 아기로 자라 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다... 엄마의 인격이나, 뭘로 봐도 과분한 아이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엄마, 아빠를 또렷하게 발음하고, 자기 기분이 내키면 몇발작씩을 
내딛기도 한다.. 이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방법으로 
자기의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는 아기.. 그렇기에, 그 아이가 생긋 웃을 때는
"난 정말 웃을만해서 웃는 거예요..행복해서요.."라는 메시지를 
나도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고 그렇기에 나도 의심없이 행복해질 수 있다.

아기를 안을때�, 그 애의 무끈해진 무게에서, 일년 전보다 쑥 더나오는 
다리에서(키가 30cm도 넘게 더 자랐으니까) 꽃잎이 확벌어진 것처럼
커진 얼굴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

그래, 이 애가 커서 나한테 효도를 하구말구..이런 것은 생각하지도 말자..
이 애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이렇게 효도를 하고 있는걸..

나는 부모님이 나를 키우면서 모질게 힘들거라는 생각만을 막연하게 
해왔던 것 같다.. 우는 아기 달래고 기저귀빨고, 먹이고, 
여기저기 흘르는 걸 하루에도 수십번씩 닦아내고...윽..끔찍하겠다..
애 낳기 전에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기는 순간순간 보답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커서 ...해드릴께요...이런 말이 필요없을 것 같다..
지금 이렇게 엄마의 가슴을 채워주고 있쟎니...

내가 이 아기에게 두는 소망은 무엇을 하든, 어떤 모습으로 살든,
"peace maker"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엄마의 인격이 못 받쳐주는 것 같은 요즘이다..
엄마가 "trouble maker"이면서 어떻게 "peace maker"로 자라도록 할 수 있겠나...
엄마를 뛰어넘어 주렴... 엄마의 한계에 갇히지 말고...

자식을 키우면서 "사랑"의 깊이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나 역시 그런 사랑을 받은 존재였고,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 
미워하던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귀한 존재였구나...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도.

좀 더 마음이 열리고, 나은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본다...
좋든 싫든 나를 보고 배울 수 밖에 없는 수빈이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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