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Wedding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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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maureen (Doctor豚)
날 짜 (Date): 2000년 6월 11일 일요일 오전 02시 12분 23초
제 목(Title): [펌]천리안여성학동호회-내어머니의모든것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가족'하면 떠오르는 건 무엇인가?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 편안한 쉼터,  
약육강식의 냉혹한 바깥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안식처...그건 아마도 우리 모두가 평생 찾아 헤매는, 그러나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 말 듯한 신기루  같은 곳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정 이런 집, 이런 가족을 가지고 있을까? 
 
  한 지인이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에게 결혼은 내 인생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환상같은  거 였어. 난 
무척이나 결혼이 하고 싶었어. 결혼을 떠올리
면  항상 따뜻한 햇살이 내려 쬐는 드넓은 평원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이 
생각났어. 그런데 말야...막상 결혼하고 났
더니 얼마나 황당했는 줄 알아? 난 누구였냐 하며는...      양이 아니라, 
평화로운 그 풍경, 누군가에게 그 풍경을 만들어주느
라  뙤약볕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죽어라 노가다를 하는 그림 밖의 존재였어."

   적어도 내 어머니에게 가족은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당신에게 평생 
가족은 휴식 시간과 업무 시간의 구분이 명확하
지 않은  일터였다. 아이들이 아플 때도, 4명의 자녀와 남편 뒷바라지를 하느라 온 
몸이 무너져 내릴 듯 고단할  때도,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4명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과 
싸울 때도 혼자였다. 
 
   어머니에게 가족은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끝없는 
희생만 강요당하는 억울한  공간이었다. 어느 한 사람 당신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았고, 따뜻한 위로 한마디 하지 않았다. 왜냐
면 그녀는 어머니, 그리고 아내였기 때문이다.  그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모든 아내들이 마땅히 해야할 일들이었기 때문
이다. 어머니가 느끼는  모든 갈등과 어려움들은 결코 인정받지 못했다. 내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를 더
욱 불행하게 만든 건 그녀의 불행이 '이상함', '비정상'으로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게서도. 왜냐면 여자는 어머니일 때 가장 행복하고 또 완벽한 존재이니까. 또 
그래야만 하니까. 
 
   물론 어머니에게도 행복한 순간, 즐거운 순간들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부터인가 어머니에
게선 웃음이 사라져버렸다. 어머니는 항상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나 있었고, 그녀의 
대화는  항상 잔소리로 시작되어 잔소리로 
끝이 났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첫 생리를 하던 날이 생각난다. 성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생리가 뭔지도 몰랐던 나는 당황하
여 '엄마, 나 많이 아픈가봐'라고 말했다. 그때의 어머니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화가 나면서도 슬픈...그런 복잡한 얼굴
로 이런 말들을 중얼거렸다. '너도 별  수없이 여자구나', '어린 것이 
벌써부터....'. 어머니의 표정과 말들은 어린 내가 감당하
기엔 너무도 낯설었고, 그것은 생리에 대한, 여자의 몸을 갖게 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혐오감을 심어주었다. 그리
고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지른 것같은 죄의식을 느끼게 했다.  그것이 내가 
여자로서 가졌던 최초의 피해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생리를 하면서 갑작스레 세상이 무섭고 낯설어졌기에. 어머니는 내가 
여자가 되는 것이,  여자로써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어머니, 아내로서 살아가야 하는 그 족속들이 싫었던 
것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언니, 언니는 절대고독이라는 게 뭔지 아세요?  그저 외롭다는 말은 그건  
적당하지 않아요. 절대고독이라는 말 외에는 
제  상황을 설명해 줄 단어가 없어요. 그건, 단지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 
없고, 하루 24시간 아내와 엄마, 며느리 역할
을 해야한다는 것, 언제나 혼자, 혼자라는 것, 그 이상 의 거란 말에요. 가장 
지독한 것은 외로움이건, 황당함이건, 억울함이건, 
내가 느끼는 그 낯선 감정들을 도대체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달라고 

     요구할 때, 혹은 표현할 때 내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이에요. 
그럼 말이에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그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려요. 난...난...말에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사람이 되는  거에요." 
 
    늘 화사한 표정에 활발했던 후배.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오랜만에 만났을  때, 
난 그녀에게서 내 어머니를 보았다. 우울
하고, 뚱하고, 뭔가 불만에  가득한...그런 미운 얼굴을 한 그녀에게서 말이다.  
그녀는 느끼지만 표현할 수 없고,  표현해도 이
해받지 못하는 숱한 일상의 딜레마들 속에서 점점 마음 속에 뭔가 나쁜 것들이 
쌓여가는 걸 느꼈고, 그러다가 한번씩 자기 자
신도 모르게 너무나 사랑하는 자기 아이에게 감정이 폭발되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아이를 때리거나, 아이에게  속상한 말들을 
마구 퍼붓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나면  금방 후회하고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되지만, 그러면  뭔가 또 쌓이게 되
고, 자꾸만 그런  순간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외롭고도 두려움에 가득한, 
그러면서도 어느덧 너무나 상처받기 쉬운 약한 인
간이 되어버린 그녀에게서 나는 내 어머니를 느낀다. 
 
    언젠가 한 선배로부터 "부모가 된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낯선 길을 
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두려움과 낯설음,  외로움에 지배당하는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의 
행복을 뒤로한 채  다른 사람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봉사하느라 점점 화난  얼굴, 미운 얼굴이 되어가면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몽땅 미워하는 그런 심술쟁이가  되고 싶지 않다. 자신의  인생을 자식과 
남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기에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고, 무력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다.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기에 자신의 딸에게도 자신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굴레들을  되물림하는 그런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다. 
 
   한 친구는 자기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평생 
아버지로부터 물리적, 심리적, 정서적 학대를 당해 온 
어머니,  정말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은 다음날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도시락과 
아침밥을 꼭 챙겨주셨던 어머니, 당신을 위
해서는 속옷 한 벌 제대로 안 사면서 자식들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았던 
어머니, 아낌없이 주는 한 그루 나무 같았던 어
머니. 그런 어머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냐고 했다.  나는 내 어머니를 
사랑하는가? 글쎄...잘  모르겠다. 내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다면, 그건 비극이겠지. 난 내 어머니에게서 사랑의 감정보다는 연민, 
안타까움, 미안함과  원망의 모순적 감정,  
기타 등등의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진정 어머니를 사랑한다면, 내 아내에게, 내 딸에게,  내 누이에게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누군가
에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강요하는 세상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머니가 행복하지 않을 때 과연 자식들이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어머니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자식들이 과
연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어머니가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닐 때, 
자식들이  한 사람의 독립적이고 성숙한 인
격체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머니가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낼 
수 없었는데, 자식들이 그럴 수 있을까? 
어머니의 아낌없는 봉사와 보살핌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온 자식들이 과연 그런 
봉사와 희생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똑같이 
베풀 수 있으며, 어느 누구의 일방적  희생이 아닌 의무와 책임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가족이 진정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 편안한 쉼터가  되려면 어느 누구의 
일방적 희생을 당연시 하거나 찬양해서는 안된
다는 가장 평범한 진리를 내  어머니를 보면서 느낀다. 어머니에 대한 찬양과 
비난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는 것이기에.    
떠돌이별


--

그림같은 풍경 밖의 어머니.... 가슴이 너무도 찡해서 한번 퍼옵니다.

 


..mau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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