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nonymous ] in KIDS 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2002년 8월 22일 목요일 오전 10시 34분 53초 제 목(Title): Re: 이해찬인터뷰 회충이 일개 개인으로 살아간다면 현재와 같은 문제는 아무일도 아닐 겁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또다른 일입니다. 자기자식 귀한줄만 알고, 자기 명예 귀한줄만 알고,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 나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누가 그 뒤를 따라가려 하겠습니까? 오히려 못가진자, 못배운자 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양김대통령의 아들들, 잘못했으니 감옥에 가고 벌을 받아야 하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있을 대통령 조차 그런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과거에 있어왔던 많은 부정들이 없어지는 방향이 옳은 것이지 관행으로 굳어지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아래는 퍼온 기사입니다. '유빽 면제, 무빽 현역'이었던 시절 92년 군 병원에서 만났던 세 병사에 대한 기억 김종연 기자 terraic@lycos.co.kr P일병을 만난 것은 1992년 연말쯤 국군 **병원에서였다. P일병은 수도권에 있는 XX사단의 병사였고, 응급 입원되었다. 당시 그는 상병 진급을 목전에 둔 말년 일병이었고 1991년 군번이었다. 그의 병명은 확장성 심근 병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장을 기증받아 이식하지 않는 한 가망이 없다고 들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병은 분명히 국방부 부령에 의하면 5급 면제 판정이 나왔어야 하는 질병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1년 이상 군생활을 한 상태였고, 아들의 입원 소식에 달려온 어머니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아들의 운명을 들어야만 했다. 가난했던 그의 가족들은 그를 민간병원으로 데려갈 여력이 없었고, 결국 그는 몇 달만에 한줌의 재가 되어 가족에게 인도되었다. 어떻게 처리된 것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병은 사실상 비전공상이었다. 군병원에 입원할 경우 환자가 군 복무중 복무로 인하여 해당 질병에 걸린 것인지 아니면 선천적 요인, 자기 과실 등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인지에 따라 비전공상과 공상으로 나뉜다. 군복무가 사망에 이르는 심장병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없는 한 그의 병은 비전공상이어야 맞다. 물론 가난한 유가족을 위해서 군의관들은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공상으로 바꾸어주는 경우도 있다. 푼돈이지만 생계에 도움이라도 주려는 작은 인정에서. 그런 식의 부정을 비난할 수도 없을만치 어려운 생활을 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그도 그중에 하나 였다. 가난한 그는 자신의 몸에 있는 치명적인 병을 발견하기만 했어도 군복무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몇 년이나마 더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병원비조차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그의 병을 진단받기는커녕 임종마저 군병원에서 해야 했다. 그에겐 '이상체중감소'라는 존재 하지 않는 병명으로 병사용 진단서를 떼어줄 대학 병원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국군 **병원에는 흔히 '선천성 심장 판막증' '협심증'과 같은 군복무가 불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사들이 수십명 있었다. 몇 몇 환자들의 경우엔 심장 박동 소리를 청진기로 듣기만 해도 이상 징후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아 가슴이 아파요'인가 하는 어린이 심장병 수술을 위한 모금 운동의 대상이 되어야할 심장 판막증 환자들이 대한민국 육군 병사로 입대해 군복무 중이었다. 옆 병동엔 다른 P일병이 있었다. 그의 병명은 간경화 말기. 그의 나이 스물 하나였다. 그는 매일 그의 어머니의 옷에 피를 토했다. 얼굴은 황달이 아닌 흑달의 상황이었고, 그 역시 근 1년째 군에서 복무중이었다. 간경화가 하루 이틀에 진행되는 병이 아닌 한 그가 군에 들어 왔을때 그의 몸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군대에 오지 않고 대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면 그는 살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 역시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아니 그에겐 그럴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진단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일차적으로 우리가 쉽게 피검사라고 부르는 간기능 검사(LFT)만 했어도 그의 간 기능에 장애가 있음은 알았을 것이다. 아니, 그가 입영할 때 그의 얼굴만 군의관이 유심히 보았어도 황달의 징후 등을 발견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에겐 모 군의관처럼 '친절한' 군의관이 없었다. 그간 '친절한' 군의관을 만나지 못한 것은 그가 그 몸으로 군복무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해 하는 아버지를 갖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운이 좋은 H이병을 만난 것은 다른 군병원이었다. 그는 입대한 지 한 달 남짓된 병사였다. 그가 배치된 부대는 서부전선 전투 사단의 대전차 미사일 부대. 그러나 자대 배치를 받은 그는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선임병들의 부축을 받으며 군병원에 간 그를 보자 군의관은 놀란 눈이었고, 응급 검사를 요청했다. 그의 혈당 상태에 대한 결과는 당뇨로 인한 저혈당. 걸린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당혹스러운 것은 그가 자신이 당뇨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신검 당시에, 입영했을 때 자신이 당뇨환자임을 밝혔다고 한다. 그에게서 들은 입영 군의관의 반응은 약 먹으면서 군복무하면 된다. 그의 질환은 당연히 면제를 받아야 하는 질환이었다. 그러나 서울 어느 가난한 동네출신인 그에겐 당뇨가 '약먹으면서 군생활하면 되는' 가벼운 질환이라 말하는 군의관만이 배당되어 있었다. 이제 10년 가까이 전의 이야기들이다. 이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군대에서 말하는 소위 빽 좋은 집 아들들이 아니었던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들들이 만일 170센티가 넘는 키에 45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졌을때, 그들이 겪어야 할 일이 어떤 것이었을까를 생각해서 이다. 그들은 아마도 '이상 체중 감소'라는 존재할 수 없는 진단명을 가진 병사용 진단서를 받지 못했을 것이고, 진료부장의 친절한 키재기와 체중달기 서비스를 받지 못했을 것이고, 또한 그들의 병적기록부가 실수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저주 받은' 병적기록부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유빽 면제, 무빽 현역'이라는 말은 그냥 자신의 처지를 불만스러워 하는 '어둠의 자식' 현역 병사들의 불만 섞인 한탄이 아닌 현실이었다. 최소한 1991년과 1992년에는 말이다. 왕자들은 언제고 전쟁에 나가야 하고, 두 차례의 큰 전쟁에서 아들들이 하도 많이 전사해서 가문의 맥이 끊어진 귀족들이 많은 내가 사는 이 나라를 나는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저 명품을 팔기 위해서 노블리스라는 말을 남발하는 나의 조국에 사는 몇몇 정치인들의 모습은 하늘의 푸르름만큼이나 눈이 시리게 한다. 1992년에 군에 입대해서, 군병원에서 환자 생활을 하면서, 또 원대 복귀해서 군병원 관련 사병으로 복무하면서 본 이야기들이다. 병사들의 실명을 밝히지 않은 것은 아직 살아 있기를 바라는 당사자와 젊은 날에 간 고인들과 유가족의 명예를 위해서이다. 2002/08/20 오후 7:34 ⓒ 2002 Ohmy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