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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Jou ] in KIDS
글 쓴 이(By): leehs (젠틀이)
날 짜 (Date): 1999년 4월 19일 월요일 오전 08시 45분 55초
제 목(Title): 동해안 일주기 IV



  보통 산행을 하다가 이정표에 있는 목적지까는 몇 KM라는 것을 보고도 지나는 

등산객에게 '얼마나 남았어요'하면 올라가는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다왔습니다. 수고하세요'라고 하는데 여기는 거꾸로 '아직도 많이 남았어요..' 

라고 하는거다. 이에  우리는 뭔가 이상했지만 올라가는 도중 계속이어지는 계곡의 

멋있음에 심취하고 작품만들기에 정신없어 목적지인 용추 폭포에 가면서 그리 

어렸지 않게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일명 용추폭포사건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올라가는 도중에 계속된 작품만들기로 인하여 사진이 4방밖에 안남아 

용추폭포에 가서 찍자며 아끼고 두 개의 폭포 물줄기가 장관인 쌍추 폭포를 그대로 

지나쳐 올라가 막상 목적지에서 사직을 찍으려는데 카메라가 없어진거다. 주위를 

찾아보니 바로..  악!!.. 카메라가 계곡물속에 잠수중... 이로하여 우리의 

작품만들기는 이로 종치는 사건이 만들어졌다. 높은 바위절벽과 울창한 

소나무숲사이의 바위 틈새로 떨어지는 폭포는 너무 멋있었고 때마침 생긴 무지개는 

너무 장관이었다. 쌍추 폭포와 용추 폭포는 그리 높은 폭포는 아니었지만 

제주도에서 본 정방폭포나 천지연폭포와는 또 다른 멋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다시 가랑비가 내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채 야영지로 내려왔다.

  카메라로 시작된 악재(?)는 다시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영지에 차를 

세우고 차옆에 텐트를 치고 군대에서 배운 2개월동안의 짬장생활로 익혔던 나의 

음식 솜씨를 간만에 내세울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재료로는 참치와 감자와 약간의 

김치를 이용한 참치 김치 찌개를 끓이고 준비된 고기를 이용한 불고기.. 이로써 

우리의 진수성찬을 위한 준비는 되었고 식사를 시작하는데 산의 날씨는 아무리 

예측불허라 지만 잠시 맑아졌던 하늘에 구름이 많아지며 빗 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일단 설겆이를 마치고 빗방울이 굵어지자 우리는 민박을 할것이냐 

야영을 계속 할것인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다가 일단 텐트를 걷고 차안에서 잠을 

청하면서 잠시 기다리기로 하여 차안에서 의자를 뒤로 제치고 2시간여를 

잠들었나보다. 잠자다가 일어나보니 진계장은 잠이 오지 않는다며 바깥에서 

서성이다가 우리는 비가 오더래도 야영이 나을것같다는 결론하에 다시 텐트를 치고 

에어 매트리스를 이용하여 텐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물기를 방지하고 다시금 야참을 

준비하여 깊어가는 두타산 계곡의 맑은 공기속에서 신선이 부럽지 않도록 서로간에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가랑비가 오락 가락하는 늦여름밤을 보내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아직도 날씨는 개이지 않고 안개가 자욱하였다. 

기지개를 피고 간단히 라면을 이용한 아침식사를 준비하여 먹고 텐트를 걷고 자연을 

보호하는데 감히 일인자(?)라고 자부하는 우리는 10시반에 두타산을 떠났다. 다시 

동해시로 나와 7번 국도를 타고 삼척을 통해 울진쪽으로 내려오면서 주위 경관이 

좋은곳에 잠시 정차해 바다와 산의 아름다움을 그지역의 특산물인 찰옥수수로 

하모니카 연주를 하고 감상도하며 내려 갔다. 중간중간 맹방해수욕장에도 들렀지만 

날씨탓에 높은 파도와 수평선만 보고 우리는 강원도에서 경북으로 도를 옮겨 

좌측해변가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울진에 도착하여 성류굴에 갔다.

  성류굴에 들어가는 길 옆에 하천물이 깨끗하여 은어가 많이 산다고 한다. 

거기에서 채낚시를 하는 분들의 모습을 잠시 구경할 수 있었다. 허리까지 물속에 

잠겨 실패같이 생긴 낚시대를 물살의 방향으로 역으로 당김과 풀어짐을 반복하다가 

어느순간에 당기면 은빛이 예쁜 은어가 물위로 모습을 들어내 보인다. 이번 여행서 

준비 못해 아쉬웠던 것중에 하나가 바로 낚시대이다. 모처럼 바다 낚시를 즐길 수 

있었는데 말이다.   맑은 개천옆 바위산옆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통로를 통해 

나아가보니 팔각정이 나왔는데 그것이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아닌 매표소였다. 

입장권을 구해 성류굴안으로 들어갔다. 10개의 광장으로 구성해 놓은 동굴은 입구는 

조그마했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생각외로 넓었다. 오랜기간동안 생성된 종유석의 

아름다운 모습과 조명을 이용한 인위적인 모습도 있지만 그래도 생긴 모양이 

멋있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상당히 오랜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종유석을 

관광기념을 위해 관광객들이 그 석순을 잘라 가서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동굴은 옛날 원효대사가 수양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임진왜란때 주위 

동네 사람들이 피신했다가 왜군이 입구를 막아 주민들이 아사를 했고 지금도 안쪽을 

발굴하다보며 인골들이 석회석화되어진 화석들이 나온다고 한다.. 

그만큼 사연이 많은 석회동굴이었다.. 나에게는 단양의 고수동굴, 제주도의 

만장굴보다 나아보인굴이었다.
 
                             to be continue...


PS: 완연한 봄이다 못해 가끔은 이른 초여름 날씨...

    멋진 한주 이어나가길...

                      We are the First!.
                          We are the Best!.
                              조금은 어리석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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