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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 in KIDS
글 쓴 이(By): NeuMann (농땡이공주맧)
날 짜 (Date): 1997년11월05일(수) 16시02분56초 ROK
제 목(Title): 예감 에 대해 <씨네 21에서..>



MBC 월화 미니시리즈 <예감> 

연출 이승렬 극본 김진숙 출연 이혜영 손지창 감우성 방영 월화 밤 9시 55분

태초에 오해가 있었다. 전화를 받은 <예감>의 제작진이 요즘 PC통신에서
떠드는 표절시비를 취재하려나 보다고 짐작하는 거였다. 사실 전화 건 사
람은 표절시비 따위는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런 시비에 말려드는 일을
징그러워하는 부류였는데. 

그러나 몰랐으면 몰라도 일단 이야기를 듣고 보니 궁금해진다. 출퇴근시 간
강변도로보다 더 막히는 통신을 비집고 들어갔다. <예감>이 적어도 대
여섯개나 되는 일본만화, 드라마의 짜깁기 표절이라는 고발이 빽빽이 접
수돼 있었다. 고발장은 아주 구체적이었다.“며칠에 방송된 어떤 장면,
어떤 대사가 어느 작품의 어떤 장면과 어느 대사와 꼭 같다.” 이럴 때 일을
쉽게 하는 방법은, 이 드라마가 방송 첫회부터 무수한 일본만화며 드라마의
표절혐의에 시달려 왔고, 그 원전은 이러저러한 작품들이며 문 제가 되는
장면이나 대사는 이러저러하다고, 이에 대해 작가와 연출자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반박하고 있다고, 그러나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 라고,
주절주절 지면을 채우는 것이다. 

그러나 <씨네21>은 판관이 되어보고자 한다. <예감>은 표절이 아니라고.
무엇보다도 우리 TV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표절시비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뭔가가, 꼭 해야 할 말이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그래서 일은 또 어려워지고 말았다. 

애초에 <예감>을 ‘이주일의 TV지면, 무엇으로 덮을까’라는 의문의 해답
으로 점찍었던 것은, ‘트렌디의 종말’을 예감하게 하는 드라마를 이땅 의
‘트렌디’흐름을 선도했던 바로 그 이승렬 프로듀서가 만들고 있다는
역설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단어 ‘트렌디’의 뜻을 일단
젊은 선남선녀의 사랑과 성공이야기로 정한다면, 92년 6월부터 TV왕국을
점령하다시피 한 ‘트렌디’의 기본구도는 이미 <질투>에서 결판이 나 있
었다. 젊고 예쁘고 발랄하고 똑똑한 여행사 영업사원 하경과 젊고 예쁘고
발랄하고 똑똑한 화장품회사 영업사원 유림은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만 다
를 뿐이다. &ltTV시티>에서 김지호가 연기했던 역은 또 뭐가 다를까. 파탄
적인 가족사 때문에 창업주인 할아버지에 등돌리고 건축설계사로 홀로 오
똑 서는 오만하고 반항적이고 제멋대로인 경민은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풍호, <별은 내 가슴에>의 강민 그 자체다. 그런가하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그림자처럼 숨어서 헌신하는 준섭은 <별은…>에서의 준희를 빼다 박
았다. 단언하건대, 이 드라마는 일본 드라마의 표절작이 아니라 MBC표 미
니시리즈의 자기복제다. <협주곡> <여동생> <시마과장> <도쿄
러브스토리 > <롱 바케이션> <귀여운 악녀> <워킹 걸>을 표절했다는
통신내용을 보 고 는 얼핏,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구체적이군, 하는 생각이
안 든 것도 아 니었지만, 작가 김진숙씨의 설명은 너무나 분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정 말이지 한국에서 드라마를 쓰려면 일본 드라마를
봐야겠구나 생각했다. 피해가려면 봐야할 게 아닌가”고 그는 되물었다.
60분짜리 드라마는 약 80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8부작까지 모두
6백몇십개의 장면이 나간 셈 이다,그중에서 대여섯개가 비슷하다고
표절이라고?, 게다가 난 일본만화 나 드라마 볼 시간이 없다, 모두 듣도보도
못한 제목이다,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다보면 상황이 비슷해질 수도 있다,
통신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너 무 낮게 보는 것 아닌가. 김진숙씨는 이런
상황이 짜증나서 견딜 수가 없 다고, 오히려 ‘자기복제’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그게 더 중요한 문제인 게
확실하다. 원본을 한번 복사하고 두번 복사하면 화질이 떨어지듯이,
‘트렌디’도 <예감>에 와서 결정적으로 시 청흡인력을 잃고 만다. 우연의
과잉, 대사의 과잉 속에 줄거리 설득력의 과부족, 연기력의 과부족이
도드라져서 보기가 민망스러운 경지에 이른다 . ‘못된 며느리’인 방송이
바치는 설익은 밥에 어지간히 길든 ‘착한 시어머니’인 시청자들도
이번에는 무지무지 짜증을 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드라마를 만들다니)
PD들은 머리를 옵션으로 달고 다니나?”라는 의문을 품은 시청자도 있고,
심지어는 “(출연인물들이) 단체로 사고로 죽는 걸로 처리해서
조기종영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끔찍한 충고까지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는 시스템이야. <질투>를 만들었던 프로듀서가 5년
이 지난 뒤 <예감>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그가 속한 시스템은 인재를 키
우는 그런 종류라고는 할 수 없잖아. 아닌게 아니라 이번에도 촉박한 기 획,
캐스팅 지연, 연기자 출연펑크, 잦은 대본수정 등 있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악조건이 따라다녔다지.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일주일 내내 밤샘촬영, 밤샘편집의 쳇
바퀴 속에서 사는 이승렬 프로듀서를 전화통 앞으로 꾀어내기는 불가능했
다. 자칫 방송이 펑크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제작진 전체가 ‘패닉상
태’에 빠져 있다고 한 스탭은 전한다. 지난 10월24일에는 안 그래도 치
밀하기로 소문난 이 PD의 질책에 시달리다 못한 FD들이 “오늘 촬영 끝나
면 다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작은 소동까지 빚어졌다. 만드는 사람도
불행하고 보는 사람도 불행한 이런 불행한 체제 속에서 TV는 아무래도 ‘
바보제조기’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바보PD, 바보작가, 바보시청자. 그
리하여 뻔히 아는 얘기를 만날 하고 또 하는 바보기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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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되겠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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