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 in KIDS 글 쓴 이(By): dkkang (온톨러지) 날 짜 (Date): 2003년 8월 21일 목요일 오후 08시 55분 00초 제 목(Title): Serial Killers: Profiling the Criminal M 경고 - 이 글은 끔찍하고 메쓰꺼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걸 싫어하시는 분은 바로 q... Serial Killers: Profiling the Criminal Mind A&E TV 채널에서 1995년에 했던 시리즈입니다. 1. Profiling FBI 프로파일러인 John Douglas는 여기서 "serial killer"는 자신이 고안한 단어라고 말하고 있다. 중서부에서 살인이 일어나면 백인 남자 (그것도 대부분 얌전하거나, 아니면 겉보기에는 사회성이 높고 쾌활한 정도의 예측) 일거라는 식으로 보면, 프로파일링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통계적인 예측기법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럴싸하고 꽤 흥미롭기까지도 하다. 1편에서는 프로파일링으로 성공적으로 잡은 세 연쇄 살인마들이 나온다. 1.1 1979년부터 아틀랜타에서 일어났던 대부분이 아이들인 30 건의 살인에 대한 혐의를 받은 Wayne Bertram Williams. 그러나 법정은 그 중 2 건의 성인 살해에 대해서만 종신형의 두배의 기간의 형을 인정한다. (아마 사형 제도가 없는 주의 경우, 모범수로 감면되거나 유예되기도 하는 걸 막고자, 이런 우습지도 않은 형량이 나오는 거 같다.) 나중에 일부는 그중 몇 건이 KKK에 의한 소행일거라는 설도 제시했다. 1.2 1973년부터 1983까지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17 명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이 창녀나 댄서들)을 살인하고 30명을 강간한 범인. 알래스카에서 사냥을 즐기고 자신의 비행기를 운전하곤 하던 그는, 창녀를 점찍고 비행기에 태워서 사람이 걸어서는 빠져나가기 힘든 알래스카의 황량한 들판으로 데려간다. 거기서 희생자들은 그의 장난감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고, 만일 거부할 경우에는 가차없이 살해된다. 그는 희생자들을 놓아줄 때, "나는 경찰에 커넥션이 있고, 나를 건들면 매춘 행위로 고발하겠다"고 위협했다. 희생자들을 죽일 때는 마치 평소에 고라니, 늑대, 곰을 사냥할 때처럼, 사냥 나이프나 라이플로 쏴 죽이곤 했다. 1983년 여름, 아내와 자식들을 유럽 여행을 보내고 이젠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서 놀 계획을 세운다. 결국 탈출한 여자의 신고로 경찰에 덜미를 잡히고 만다. 1984년 유죄가 인정되어 종신형 + 461년 형을 받는다. 1.3 South Carolina의 Lexington, Larry Gene Bell, 두명을 살인한 혐의로 잡힌다. 2. Jeffrey Dahmer 아마도 가장 유명한 연쇄 살인마, 연쇄 살인마의 대표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시체를 멋대로 자르고 죽은 시체를 강간하고 가지고 놀았으며 먹어 치우기도 한 희대의 식인종이다. 위스콘신 밀워키를 최악의 범죄자가 살았던 도시로 기억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잡혔을 당시 아파트를 수색한 경찰들에 따르면 냉장고에는 네 개의 사람 머리과 손발 등이 보관되어 있었고, 찬장에는 트로피처럼 해골들이나 성기들이 있었다고 한다. 적어도 17명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유색인종들을 많이 죽였다. 결국 감옥에서 흑인 죄수에게 죽게 된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기르는 애완 동물들을 죽이곤 했는 데, 개를 죽여서 두개골을 막대기 위에 박아서 사진을 찍곤 했다. 다머의 수수께끼 중 하나는, 그는 다른 대다수의 범죄자들과는 달리 아버지는 박사였고 집에 연못도 있었던 나름대로 지적이고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나중에 "A Father's Story"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다머는 오하이오 주립대를 졸업하고 가끔 취직도 했지만 집에서 대부분 술을 마시고 범죄 행각을 벌이며 빈둥대기만 했다. 그는 대인관계에 자신이 없어서 수줍음이 많았고 여자에겐 관심이 없었거나 여자에게 다가서는 걸 많이 두려워했던 거 같았다. 그게 그를 동성애로 빠지게 하고 결국 더 나아가 "자신이 모든 걸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쾌락만을 추구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첫번째(아니면 두번째) 살인은 "부모의 이혼"이 간접적인 요인이었다. 부모가 이혼하고, 그는 몇 주간 집에서 혼자 지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는 어느 히치하이커를 끌어들이고 술을 마시며 얘기하다가, 상대가 "이젠 집에 가야겠다"라고 일어서자, 혼자 남게 될 거라는 것에 순간적으로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결국 상대를 죽이고 가지고 놀고 시간하고 토막낸 시체는 마당에 묻는다. 살인 후 그는 아마도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또는 그가 술먹고 노는 꼴에 질린 아버지에 의해 독일에 주둔한 미군에 입대했고, 군대에서도 말썽을 부려 제대를 한다. 제대 후 할머니와 살면서 공공장소에서 자위를 하기도 하고 몇 명을 더 살해하고, 밀워키로 돌아가 아파트 이른바 213호에서 살인 행각을 계속 저지른다. 중간에 약을 먹은 희생자가 풀려나서 고소함으로써 경찰에 잡힌 그는 법원의 관대함으로 어이없게도 사회로 복귀한다. 그의 아버지는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들에게, 알콜 중동인 자신의 아들을 더 단호하게 처벌해 줄 것을 호소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머의 방식은 동성애자들이 많은 바로 가서, 스스로를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사진을 찍고 돈을 주겠다고 속여 자신의 아파트에 데려온다. 살아남았던 희생자의 진술에 따르면 그의 아파트는 악취로 가득했고, 무슨 냄새냐고 물으면 환기통이나 배수구가 문제가 생겨 저렇다는 식으로 둘러대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약을 탄 콜라, 맥주나 물을 줘서 꼼짝 못하게 하고 가지고 놀다가 목졸라 죽이곤 했다. 죽인후 섹스 내지 자위를 한 후,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나서 시체를 토막내면서 계속 사진을 찍는다. 다머는 이런 사진들을 나중에 자위를 할 때 쓰곤 했다. 시체 토막들은 전리품으로 쓸 생식기나 해골을 제외하고는 여러 약품으로 녹이거나 먹곤 했다. 다머는 시체를 먹을 때마다 발기를 했다는 데, 나중에 다머는 그렇게 먹음으로써 희생자들이 자신의 안에서 살아난다고 믿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전리품이나 남는 토막들에게 나름대로 예술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한 아시안계 희생자는 잡혔다가 약에 취한 체로 두들겨 맞다가 도망쳐 나왔다. 주변을 지나던 두 여자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으나, 다머는 그것을 연인들간의 사랑 다툼이라는 변명을 했다, 경찰들은 두 여자들의 의견이나 희생자의 아시안 액센트가 실린 두서없는 영어보다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영어를 구사하는 단정하고 조용해 보이는 백인 남자를 믿었고, 결국 다시 그 백인 남자에게 인계해 주고 만다. 이러한 경찰의 무선 통화가 나중에 TV에 나와서, 이로 인해 분노한 유색인종 단체가 들고 일어났고, 해당 경찰들은 가벼운 징계를 받게 된다. 만일 그 당시 경찰들이 받아든 다머의 신분증을 가지고 이름을 조회하기만 했어도, 그의 과거 기록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이후의 끔찍한 사건들은 없었을 것이다. 경찰들은 다머의 아파트까지 갔었는 데, 아파트 침실에는 그 전에 희생당한 시체가 토막되어 썩어가고 있었으나 그들은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결국 1991년 7월 어느 흑인 (나중에 법정 진술까지 하게 됨) 에게 수갑을 채우고 죽이려 했지만, 그 흑인은 도망치고 두명의 경찰이 다머의 아파트를 방문하게 된다. 처음에 경찰들은 그 흑인이 다른 경찰에게 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얘기를 듣고는 자신들이 괜히 나서지 말아야 할 사적인 동성애 문제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흑인이 수갑을 찼다는 사실 때문에 조사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다머는 조용히 수갑의 열쇠를 경찰들에게 인계했다. 몇가지 주의를 주고 나가려던 경찰 중 하나가 토막된 사람의 시체나 냉장고의 해골 사진들이 액자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서 다머에게 덤벼들어 체포한다. 다른 경찰은 냉장고를 열어보고 경악하여 소리를 지른다. "냉장고에 사람 머리가 있어". 다머가 잡히고 나서의 문제점은, 미국 내의 살인범에 대한 재판에서 다 제시되는 문제지만, 과연 다머가 정신병자인가 아닌가를 검사하는 것이었다. 만일 정신병자라면 그는 교정이 요구되는 범죄자가 아니라 도움과 치료가 요구되는 환자이며, 그가 저지른 짓은 그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었던 어쩔 수 없는 사고인 것이다. 변호사들은 이 점을 강조하려고 할 것이고, 뭐, 다머의 경우 변호사조차도 나중에 그를 정말 드물게 나타나는 악마의 화신으로 헬리 혜성에 비유했지만, 형사와 검사들은 반대로 그가 맨정신이었다는 것을 배심원들이 수긍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다머는 정해지고 철저히 통제된 상황에서만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술에 취한 상황에서만 그리고 자신의 아파트에서만 사람을 죽였고, 예를 들어 길을 가다 누가 시비를 걸어도 대응하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항상 약에 취하게 하여 저항을 못하게 하였다. 만일 맨정신인 상황이었다면, 결코 마각을 드러내지 않는 겁장이 내지는 치밀한 살인마였다. 사람을 죽이고 나서 토막내는 작업을 할 때는 옷이 더럽혀지지 않게 나체가 되었다고 한다.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정신병자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머 역시 종신형의 15배 기간의 형 (957년형) 을 선고 받아 복역하다 동료 흑인 죄수에게 맞아 죽는다. 비록 인간의 탈을 쓴 악마에 가까운 다머이나 그런 그치고는 비참하고 싱거운 죽음인 셈이다. 그가 쓰던 냉장고, 통, 드릴, 톱 등은 한 기업가가 그것들이 경매되지 못하도록 40여만달러에 사들여 매장해 버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연쇄 살인범들은 시간을 하거나 식인을 하지 않는 데, 다머는 이 분야에서도 특별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3. John Wayne Gacy 마릴린 맨슨 밴드의 멤버인 마돈나 웨인 게이시가 그 이름을 딴 살인범이다. 노스웨스턴 비즈니스 컬리쥐 (켈로그는 아님)를 졸업해서, 아이오와, 시카노 등에서 살았다. 게이시의 경우에는 강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게이시의 아버지는 딸을 더 사랑했고, 게이시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성공적인 중간 간부의 길을 걷기도 했다. 몇 번은 이달의 사원으로 뽑히기도 했다고 한다. 한번은 정치에 관심이 있었는 데 어느 유력한 정치인하고 같이 찍은 사진이 있기도 하다. 나중에 그를 인정하기 시작한 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나자,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게이시는 점점 소아성애자 내지 살인마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그마치 33명 가까이 죽여서 몇 구는 강에 던지고 나머지는 어이없게도 자신의 집 여기 저기에 암매장했다. 나중에 경찰 심문 기록에서 그는 횡설수설하면서 자기 집에 시체들이 묻힌 위치를 그리는 데, 그것이 실제 위치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주로 어린 소년들을 죽였는 데, 약을 먹인 후, 밧줄로 몸을 묶고 나서, 30 센티가 넘는 길이의 딜도같은 페니스 나무 모형을 희생자의 항문에 쑤시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기다가 목졸라 죽여버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는 겉보기에는 맘씨 좋은 아저씨같았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파티도 하곤 했다. 집에서 파티를 하면 스스로 오븐에서 음식을 구워서 나르기도 했는 데, 바로 그 오븐 밑에 한 희생자가 묻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집은 지하며 벽이며 지붕안이며 수많은 시체들이 묻혀 있었는 데, 그건 그가 한 때 건축업에 종사하기도 했던 재주로 인해 가능한 것이었다. 게이시는 계속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주목을 받고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주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곤 했다. 경찰은 그의 집을 수색하고 싶었으나, 영장이 없었다. 대신 24시간 계속 그를 감시했고, 그는 심지어 감시하는 경찰들을 집에 불러 술을 마시기도 했다. 결국 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시카고 경찰은 그의 집을 뒤졌고, 행방불명되었던 희생자들의 물품들, 머리카락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한다. 결국 게이시는 범죄를 인정했는 데, 그의 엉뚱함은 심문 과정에서 표출되기 시작한다. 그는 변호사에게 자신이 그들을 죽인 것은 그들이 죽고자 해서 자신에게 죽여달라고 유혹을 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자신은 그들의 사악한 유혹에 굴복하여 어쩔수 없이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는 것이다. 비열한 범죄자들이 그러하듯, 내가 아니라 희생자가 나빴다는 적반하장격의 논리를 구사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는 나중에 그를 유명하게 만든 농담인 "내 유일한 죄는 허가없이 공동 묘지를 운영한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재판에서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역시 과연 게이시는 정신병자인가 아닌가의 문제였다. 다른 하나는 게이시는 너무나 많이 죽여서 변호사들은 이걸 33 명의 희생자 한 건으로 처리를 할지, 아니면 한 명 한 명의 희생자에 대한 재판을 각각 할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당시 법정을 스케치했던 기자들에 따르면 수많은 희생자들의 사진을 가로 세로로 배열한 차트는 마치 통곡의 벽같았다고 한다. 수많은 희생자의 가족들이 울먹였다. 그는 일리노이 주 법정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고, 사형 집행 당시 기술적인 문제로 10분간 사형 집행이 늦어졌다고 한다. 4. Charles Manson 마릴린 맨슨이 그 이름을 딴 찰스 맨슨은 다머와 비견될만한 역시 특이한 범죄자이다. 그는 살인마라기 보다는 극악한 사이비 종교 내지 컬트 집단의 교주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죄를 지으면 그 죄에 비해 너무 큰 형벌이 주어진다고 투덜대곤 했다. 실제로 그가 소년 시절에 저지른 범죄로 그는 꽤 오래 감옥에서 썩고 서른이 다 되서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 감옥에서 사회를 배운 그는 감옥은 또다른 사회다 나는 거기서 배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차라리 그 소년에게 좀 가벼운 형이 내려지고 바로 사회로 복귀했더라면 하는 여운이 남는 대목이다. 감옥에서 나오면서 아는 간수에게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신이 없다고 하기도 한 그가 세상을 나왔을 때, 세상은 바야흐로 히피의 물결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꽃을 손에 들라는 노래가 말하던 그 시절,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시작된 히피 문화는 전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드는 젊은이들로 인해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맨슨은 거기서 특유의 카리스마와 노래 실력으로 당시 무작정 집을 나와서 떠돌던 Patricia Kremwinkel, Leslie Van Houten 등의 추종자를 거느리게 된다. 그의 밑으로 젊고 예쁜 여자들이 몰려들자, 젊은 남자들도 몰려들었고, 반 휴턴의 증언에 따르면 맨슨은 뛰어난 포주 기질을 발휘하여 남자들에게 적당히 여자들을 공급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인기 그룹인 비치 보이스와도 어울렸다고 한다. 후애 그와 그 패밀리는 북가주를 떠나 남가주 부근으로 이동했고, LA 인근의 어느 산에서 캠핑을 하면서 지내게 된다. 크렘윈클과 반 휴턴의 증언에 의하면 그곳에서 하루 하루는 소풍 또는 캠핑과 같이 즐거웠다고 한다. 맨슨은 적당히 주변으로부터 신격화되는 사이비 교주들이 그렇게 변하듯, 스스로의 환상에 도취되어 해괴하기 그지없는 미래의 비전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중에 경찰에 의해 발표된 바에 따르면 그는 "흑인들이 현재 자신들을 푸대접하고 반목하는 백인들과 대립하기 시작하고, 대다수의 백인들이 죽으며 흑인 세상이 되지만, 흑인들은 자기들 능력으로는 제대로 세상을 경영하기 어려워 다시 살아남은 소수의 백인들을 불러들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두 건의 살인 사건을 마치 흑인들이 일으킨 거 처럼 추종자들로 하여금 일으키도록 교사하는 데, 그 중의 나중의 사건이 7년 쯤 후에 미성년을 강간한 혐의로 유럽으로 도망치게 되는 명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인 샤론 데이트와 그녀의 친구들 (그 중에는 유명한 커피 브랜드인 폴저 재벌가의 아비게일 폴저도 있었다) 을 죽인 사건이다. 처음 사건에서 추종자들은 피해자들의 집에 칩입해 피해자들을 수십번 찔러서 죽이고는 "PIG"라는 문자 등을 피로 쓰고 도망갔으며, 샤론 데이트의 경우엔 결국 이로써 더 유명해진 비틀즈의 노래인 "Helter Skelter"를 "PIG"와 같이 남기고 떠났다. 샤론 데이트는 당시 임신 8개월이었다. 이 사건은 남가주를 뒤흔들었다. 특히 비벌리 힐즈는 총과 호신 도구들을 구입하려는 스타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 했는 데, 당시 살인에 가담했던 추종자 중 한명이 다른 건으로 잡히면서, 결국 꼬리를 밟히게 된다. 여기서부터 맨슨의 비정상적인 광신의 유치함이 매스컴을 통해 계속 드러나게 된다. 그는 경찰 및 법정 심문 기간 동안 같이 구속된 자신의 추종자들 (맨슨 외에 네 명이었는 데, 그 중 두 명은 크렘윈클과 반 휴턴이다) 을 만나, 오늘은 이런 식으로 행동하라고 지시하기 시작한다. 추종자들은 그런 종교나 컬트들이 그러하듯, 당연히 받는 박해의 단계로 생각한 듯 하다. 당시 젊다 못해 어려보이기까지 했으며 아름다웠던, 그러나 40번 가까이 피해자를 칼로 찔러 죽이기도 한 살인자들인, 크렘윈클과 반 휴턴 및 다른 추종자는 서로 손을 잡고 맨슨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법정에 들어가기도 하고, 카메라를 보고 언제나 당당히 또는 수줍게 웃음 짓곤 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제작된 1995년 당시 40이 넘은 나이로 여전히 감옥에 있던 그들은 자신들의 지은 죄에 괴로워하고 참회하며, 맨슨을 저주하며 살고 있다고 증언했다. 나중에 맨슨은 추종자들에게 계속 말을 바꾸어가며 위증을 반복하라고 시키기도 한다. 결국 그들은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나중에 종신형으로 바뀐다. 헐리우드는 이걸 간과하지 않고, 아직 법정 공방이 진행되는 동안에 이미 맨슨 패밀리를 주제로 한 영화를 기획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이 정도면 미국의 실용주의를 넘어선 물신 앞의 뻔뻔함은 혀를 내두를만하다. 맨슨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된 살인자들에 비하면 약한 편이나, 특유의 악마적 카리스마로 (실제로 그들 패밀리는 악마교 의식도 했었다는 얘기가 있다.) 사람들을 조종하며 끔찍한 살인까지 하게 함으로써 당시의 미국의 병리적인 사회상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연쇄 살인마로서 고려해 볼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5. 지금도 기억나는 부분들... 이젠 서너명을 죽여서는 매스컴에 이름도 안나온다. 1편의 마지막에서 연쇄 살인마의 현 세태를 얘기하던 어느 형사가 한 말이다. 서너명은 아무것도 아닌 세상인 것이다. 나의 오르가즘은 너의 목숨보다 귀중하다. 연쇄 살인마들의 특징은 그들은 인간을 물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존엄성 따위는 관심도 없다. 그들은 자신의 쾌락을 향한 본능을 충족하는 것을 남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 이러한 쾌락의 본능이란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도 암시되었듯이, 이른바 살인 본능이라 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