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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 in KIDS
글 쓴 이(By): dkkang (질투는내힘)
날 짜 (Date): 2002년 8월 31일 토요일 오후 04시 13분 21초
제 목(Title): Re: [펌] 인어아가씨 조기 종영시키자


인어 아가씨 종영은, 사랑 놀이에다 원한을 풀기 위해 복수도 하고, 
남는 시간에 틈틈히 드럼에 살사 댄스 연습도 하다가, 그만 제대로 마감을 
지기키 못한 아리영이 결국 원고 독촉에 시달리다가 유명을 달리 
하는 것으로 하면 될 듯...


http://www.cine21.co.kr/kisa/sec-002700701/2002/07/020724171223093.html

일일극 <인어 아가씨>에서 채널을 돌린 이유

대한민국 유일한 사람들이라, 이거지?

 월드컵이 끝나면서 일일드라마가 황금시간대로 복귀했다. MBC는 <매일 그대
와>가 준비되지 않은 시청자들에게 5월29일 갑작스런 작별을 고한 한달 뒤인
6월24일 <인어 아가씨>(극본 임성한, 연출 이주환)가 시작했다. 같은 날
KBS도 <사랑은 이런거야>를 끝내고 새로운 일일연속극 <당신 옆이 좋아>(극본
정성희, 연출 이성주)를 선보였다. 3주가 지난 7월15일(월) 일일시청률에
4위는 <당신 옆이 좋아>(18.2%), 5위는 <인어 아가씨>(18%)가 나란히 점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서울 일일시청률은 <인어 아가씨>(18.6%) 4위, <당신 옆이
좋아>(16.9%) 5위로 역전된다는 것. 7월8일에서 14일 전국시청률은 13위
<당신 옆이 좋아>(17.9%), 18위 <인어 아가씨>(16.1%), 서울시청률은 15위
<인어 아가씨>(16.6%), 19위 <당신 옆이 좋아>(15.8%)다. 일일드라마가 시청
률 1위를 차지하는 경우는 한쪽이 독점하는 경우인데, 이번에는 두 드라마가
시청자를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며 서로 덕담 나누는 형태가 될 듯하다.

리모컨으로 오지게 채널을 돌려대는 시청법도 있긴 하지만 역시 시청자들은
구미에 맞는 하나에 채널을 고정하는 법. 이건 일일연속극을 같은 시간대에 
배치하여 시청자의 선택권을 배타적으로 박탈하는 방송사들이 선택한 운명이다!
그럭저럭 <인어 아가씨>와 <당신 옆이 좋아> 사이에서 설레발을 치다가 <당신
옆이 좋아>로 고정키로 했다. <당신 옆이 좋아>가 워낙 재밌기도 하지만,
혹시나 궁금하여 <인어 아가씨>로 가끔이라도 채널을 돌리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출발은 야심찼다

두 드라마 모두 시작하면서 새로운 포맷을 강조했다. <인어 아가씨>의 경우는
‘일일연속극에서 보기 힘든’ 극적인 드라마 구성을 취했다. <당신 옆이
좋아>의 경우는 ‘일일연속극에서는 보기 힘든’ 복고풍의 드라마라고 했다(sbs
일일극 <오남매> 역시 일일극에 복고풍 극을 도입한 경우이므로 그간의
상황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저간의 상황으로는 특별하달 게 없다 해야 할 듯하
다).

<인어 아가씨>는 과연 박진감 있는 연출로 포문을 열었다. 1회 주인공의
등장은, 첫 등장으로만 따지자면 지금까지의 어떤 드라마보다도 멋있다. 관계
설정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주인공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말미에서야 등장한다. 그녀는 공원이 정원인 떵떵거리는 부잣집으로 들
어간다. 양갓집 도련님이 식음을 전폐하고 한 여인(바로 이 여인이 주인공인
은아리영)에 목매다니 이를 보지 못한 마나님께서 친히 그 여인을 불러들여
허락하노라, 라고 말씀하시는 찰나, 그 여인은 “처음부터 그냥 사귈려고만
생각했지 결혼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니, 마나님은 일 때문에 그러냐고 일 
마음껏 하라시니 그 여인 답하여 가로되 “일 때문이 아니라” 한다. 마나님은
“너 무슨 한이 있구나”라고 짐작한다. 그 여인, 마나님 짐작대로 가슴에 맺힌
한이 있으니 눈이 먼 어머니(한경혜-김영숙)를 배신하고 늙은 나이에도
화장품 모델을 하는 아리따운 여인(심수정-한혜숙)에게 간
아버지(은진섭-박근형)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이 한의 사정은 친절하게
내레이션으로 표현되어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이 내레이션 또한 유례가
없는 도입이다. 이후 내레이션은 등장하지 않으니 이 내레이션은 1회에 관계
설정을 모두 설명하기 위해서 급박하게 처방한 응급조치로 보인다. 물론
응급조치라 쉽게 말할 수는 없으리라. 일일드라마의 1회를 얼마나 공들
였겠는가, 멋있게 보이려고 한 일일 것이다.

작가가 쓰는 작가는, 작가 이상?

은아리영이 응어리을 푸는 방법은 바로 그녀의 직업을 이용하여 배우인
심수정을 괴롭히는 방법이다. 주인공은 드라마 작가다. 방송사와 배우의
뒷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인어 아가씨>의 시청자 유인 요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잘, 그리고 솔직하게 해낼 수 있는 분야라면 방
송 드라마라는 소재는 드라마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진실에 가까운 분야일 것
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라마 작가가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을 어떻게 전면에
등장시키고 있는가가 흥미를 끈다.

<인어 아가씨>에서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은 ‘선택’(‘현실’의 드라마 작가는
드라마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졌으므로)되었다. 미모로 승부를 걸어서 배우가
되거나 전면에 나서서 중재하는 PD보다도 드라마 작가가 괴롭히는 데 유용하
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드라마에서 드라마 작가는 ‘군림해야 한
다’. 작가가 배우보다도 높은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 배우를 자신의
꼭두각시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선택된 것이기 때문이다.

은아리영이 PD에게 언론에는 본명을 은아로 해달라, 대강 서른 넘었다 해달
라, 나이 어린 거 자랑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각본(드라마 상의 한(恨)의 계
획)을 위한 그녀의 대처법이다. 그리하여 드라마 작가(은 작가)는 드라마
주인공 심수정과의 대면을 계속하여 미룬다. 드라마 작가(임 작가)가 캐릭터
의 성격 형성과 앞으로의 전개를 위해서 ‘선택’(이것 또한 드라마 작가의
자유)한 것이다.

은 작가의 비밀주의는 대부분의 현실의 드라마 작가와는 달라 보이고 드라마
가 들어가기 전 주인공 연기자와 면식을 갖지 않는 작가 또한 들어보지
못했다. 작가가 ‘군림한다’는 것은 스토리 결정자가 작가이므로 퍼져 있는
통상적인 인식이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은 작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가(임 작가)의 상상력은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
자신이 몸담고 있지만 그것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디테일을 가공해냈던 것
이다! 물론 이런 도박을 한 것은 플롯을 위해서이다. 일일연속극 사상
유례없는 복수극 플롯 말이다. 하지만 이 복수극의 플롯은 한 ‘여자’의
플롯에 의해서 진행된다.


   
MBC 월∼금 8시20분
그녀는 방송 작가로서의 전략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파상적 공격을 펼치는데
아버지의 딸(은예영-우희진)의 애인(이주왕-김성택)도 빼앗으려고 시도한다.
아버지의 직장인 태양일보 내에 끄나풀(이라는 표현 외에는 둘의 친분을
표현할 수 없는)을 하나 두고 아버지와 딸의 동태를 살핀다. 그녀는 일상적인
삶조차도 자신이 제조할 수 있다는 드라마 작가의 태도를 보인다. 적당할 때
터져주는 코피 등으로 그녀의 플롯은 ‘천의무봉’이 되어간다. 이 정도 되면
드라마상의 현실을 제조해내는 실질적인 작가와 드라마 내에서 자기가
지어내는 드라마로 그리고 자신의 현실도 제조해내는 작가의 모습은 겹친다.
군림하는 작가 아래 죽어버린 인물들

책임있는 비평이라면 등장인물과 창조자를 구분해야 한다. 작가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고뇌를 하더라도 말이다(일요일 낮의 영화소개 프로그램 같은
말이지만). 앞에서 말한 ‘대부분의 현실의 드라마 작가’의 거의 유일한
예외가 임성한 작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작가가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이 하
고 싶은 말을 설교조로 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드라마
내에서도 그 이유는 충분하다. 비현실적 인물들과 사건이 이런 일들이 혹시
라도 일어날 수 없음을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어 아가씨>에서 할머니는 컴퓨터로 드라마 다시보기를 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장한 손자는 “대한민국에서 인터넷으로 드라마 다시보기를 하는 할머니는
당신밖에 없”을 거라는 말을 한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인물에 더해 이 드라
마에서는 인물에 성격을 더하는 에피소드들 역시 대한민국 유일한 경우가 많다.
은아리영의 아버지인 은진섭과 심수정은 호텔에 가서 가끔씩 정을 다지는
사이, 그래서 호텔에서 나오는 부국장의 모습을 본 약혼한 아들네 집에서 한
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사건이고, 이 사건은
드라마에서 일어났으므로 대한민국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사건이다.

악의와 질투와 응석과 편견과 복수심과 음모를 지닌 등장인물 중 유일한
도덕적 인물인 남자주인공은 태양일보 기자이다. 그런데 그는 보통 기자가
아니다. 장차 아버지에게서 회사를 물려받을 인물이다. 53살인 그의 아버지는
다시 그의 아버지로부터 언론사를 물려받았다. 편집권 독립은 이런
언론사에서는 물건너간 일이다. 그 회사의 문화부 부국장인 은진섭은 자신의
아내가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최고의 여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딸은 방
송담당으로 있다. 물론 방송담당이니 문화부 부국장인 아버지의 수하다.
언론사 사주 회사에서도 분개할 인사다.

이 상상력 뛰어난 작가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자율성을 잃었다. 작가가 그
위에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 인터뷰를 한 사람도 없고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없다는데 이 드라마의 작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아닐까.

구둘래 kudle@hihome.com



http://www.ktrwa.or.kr/html/200207/j_1.htm

이달의 주장    피를 말리는 작가들의 삶에 대하여


며칠 전, 본 회보를 통해서 한 후배의 부음을 들었다. 스물 아홉 살의 꽃다운
규수였다. 그 죽음의 소식은 당장에 가슴이 뭉클하는 애달픔과 연민으로
가슴을 뛰게 했다. 또 죽었구나.
도하 매스컴은 직업별 수명을 가려서 통계를 말하는 가운데 작가의 수명이
가히 그 어느 직업인보다 짧다고 했다. 그만치 작가라는 직업이 피를 말리고
수명을 갉아먹는 직업이라는 것이 알려진 셈이다. 그러나 스물 아홉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천재의 단명함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이기는 하되 지금 우리가 유명을
달리한 동료나 후배들이 천재였다고 하기에는 작가라는 직업이 가진 문화의
가치가 그것을 허락지 않는다. 차라리 공을 잘 차는 축구선수라든가 노래를
잘하는 가수였든가, 얼굴이 반반한 배우였다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기리려는 분위기가 훨씬 두드러질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 센세이션
문화의 그늘에 가려서 그냥 초라한 명성과 초라한 대우 속에서 시들어 가고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남는 것이 없는 장사. 바로 그것이 방송작가의
숙명적인 고통이고 운명적인 작업이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허무하고 안타깝게 요절한 방송작가가 얼마나 많은가.
대충 기억하기로도 40대 내지 50대에 생을 마감한 근래의 동료들이 엄청나게
많다. 한참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간 동료들을 열거하자면 대략 생각나는
대로 해도 수십명에 이른다.
구석봉, 김관봉, 이은성, 김기팔, 김민부, 박명성, 권평국, 최경식, 유 열,
박성조… 그 외에도 많을 것으로 알지만 일일이 열거하지 못한다. 어느 고인이
된 작가는 작가실에서 같이 작업하던 기억으로, 작업상의 스트레스가 극도의
노이로제로 발전해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그 증상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작가실에 전화가 울리면 행여 원고독촉이 아닌가 싶어서 가슴이 
뛴다는 지경이었다. 실제로 전화를 받으라면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사색이 되어 
마음을 진정하고야 수화기를 드는 현상을 보였다. 그러더니 얼마 후에 그만
유명을 달리했다.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쫓기면서 작업하는 현실이 지금 우리 입장이다. 그
답답한 작업의 궤적을 벗어나지 못하고 전전하다가 그만 사라져 간다.
충분한 휴식을 가질 수 없고, 그럴 만한 대우도 받지 못한다. 혹자는 방
송작가 수입이 많아서 고급의 직업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 작업의 성격 내지 내용을 알면 진저리를 칠 것이다. 작업현장을 떠나서
여유롭게 사는 어느 선배는 지금도 꿈을 꾸면 일에 쫓기고, 누군가 눈을 부릅
뜨고 달려드는 공포스런 무엇에 의해서 가위를 눌린다고 한다. 해마다 발표하
는 국세청의 순위에 작가의 이름이 올려지는 외국의 현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
다. 후진국을 면했다고 하나 방송작가가 돈을 벌어서 재충전을 위한 휴식을 
할 만치 벌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작가의 대우가 하루 벌어서 하
루 지탱하는 정도의 품팔이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문화의 풍토 속에서 우리의 작가들은 오늘도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다.
사람의 목숨이야 하늘만이 안다고 하지만 현대의 직업병은 그것을 조롱한다.
어쩌다가 단명한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되면 하늘도 그 천리를 버린다. 공해니
환경이니 하고 있지만 그런 무서운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스트레스라는 것
이다.
요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일인데 그것은 작업환경을 바꾸고, 몰아치기 내지
과분한 업무에 대한 제도적 배려가 마련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요는 그
스트레스를 용해할 만한 경제적 여건이다.
과연 우리는 목숨을 바꿀 만한 보람을 갖는가. 또 우리는 그만한 대우를
받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는 자체가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일에 대한 과도한 긴장과 과도한 작업량에서 해방
되어야 한다. 오늘도 한 사람의 아까운 후배가 저 세상으로 갔다. 통탄할 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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