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V ] in KIDS 글 쓴 이(By): riceworm (@~쌀벌레~*) 날 짜 (Date): 2000년 11월 13일 월요일 오후 02시 08분 04초 제 목(Title): 퍼온글 두가지-김용옥 교수 이야기 이야기 1 KBS와 김용옥 선생의 "노인학대사건 전말" 지난 10월17일 팔순에 가까운 한 노인이 공개방송 강의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방송국 녹화장에서 끌려 나와야 했습니다. 그 노인에게 독사같은 눈을 부릅뜨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친 장본인은 KBS에서 논어를 강 의하는 자칭 동양철학의 대가 김용옥이란 인물이었습니다. 중풍병력 때문에 몸마저 불편한 노인은 `늙고 병들고 힘없다''는 현실이 이처럼 사람을 참담하게 만들지 몰랐다며 큰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실은 그 노인이 제 아버지입니다. 미국 LA에 살고 있는 저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피눈물을 쏟아야 했습니다. 다음 글은 제가 아버지의 구술을 토대로 작성한 `김용옥의 노인학대 사건 전말''입니 다. 저는 여기서 김용옥의 학자적 자질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학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만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병들고 힘없는 노인을 향해 행한 그의 비인간성에 대해선 이 글을 읽으신 분이라 면 이론의 여지가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다소 긴 글이긴 하지만 끝까지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올린 제 이름(노세희)이나 피해자인 제 아버지(노동두)의 이름은 물론 실명입니 다. 혹시 저희 주장에 억지가 있었다면 어떤 비판도 달게 받겠습니다. 저(노동두)는 지난해 EBS에서 기획한 김용옥씨의 노자 강의를 첫 시간부터 한번도 빠짐 없이 방청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91년 뇌출혈로 좌측 상반신이 불수가 되어 반세기에 걸친 정신과 의사 생활을 접어 야 했던 저에겐 그의 강의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에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김용옥씨는 매주 방청을 하는 저에게 한번은 친필 휘호를 써서 건네 주기도 했습니다. 마음속에 항상 고마움이 있었기에 김용옥씨에 대한 비판적이 목소리가 높았을 때도 전 그 의 입장을 옹호해 왔습니다. 총 57회의 녹화 기간동안 저는 방청객으로서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 고 같이 방청했던 사람들도 제가 어떠한 태도로 그의 강의를 경청했는지 잘 알고 있으리 라 생각합니다. 김용옥씨의 강의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고대하던 중 KBS에서 논어 강의를 계획하 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지난 10월10일 첫 녹화가 있었습니다. 녹화 1시간 전에 도착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데 수백명의 방청객들이 한꺼번에 입장하 는 바람에 몸이 불편한 저는 앞자리에 앉을 수 없었습니다. 방송연출을 맡고 있는 홍PD라는 분에게 제가 시력과 청력이 좋지 않으니 칠판이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렸고 그 분의 친절로 앞자리의 좌측 끝 부분 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칠판 글씨가 잘 안보여 빈자리가 있는 곳으로 좌석을 옮겼습니다. 공자의 충효사상 및 경로사상에 대한 강의와 공자의 고향방문 장면을 찍은 녹화 필림을 보고 난 시간은 저녁 7시쯤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화가 끝나고 나서 김용옥씨가 남녀 두서너 사람과 단상에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기에 지난번 EBS 강의 때 휘호를 써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표시할 겸 잠시 기다리고 있었습니 다. 갑자기 한 여자분이 돌아서서 하는 소리가 "몸도 불편하고 기침도 많이 하던데 집에서 TV나 시청하고 녹화장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비록 늙고 몸이 불편해도 녹화장에 나오는 문제는 내가 선택할 일이 아니냐"고 했 더니 이번엔 김용옥씨 하는 얘기가 "노자강의 때와는 분위기를 바꿔 보려 하니 내 눈에 띄지 않는 중간이나 뒤에 앉으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순간 불같은 거부감이 들었으나 아무 말 없이 녹화장을 물러 나왔습니다. 집에 오는 도중 곰곰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더군요. 방청객 중에는 나이든 사람이 제법 많았는데 왜 저한테만 그리 말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 습니다. 집에 와서도 늙은이 주책으로 그런 대접을 받았다고 가족들이 생각할까 바 혼자서 내내 고심했야 했습니다. 10월17일 두번째로 녹화장에 갈 때는 전주의 수모를 생각해 기침이 안 나오도록 타이레 놀을 복용하고 1시간30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안양에서 왔다는 한 여자분이 KBS 현관 입구에 서있다가 친절하게도 보행이 불편한 저 를 위해 자리를 대신 잡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대기실에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60세쯤 된 분이 "지난주 녹화 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 왔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하니까 그이도 분개해 하더군요. 녹화장에선 아까 그 여자분이 앞에서 두어 줄 떨어진 곳에 제 자리를 잡아 놓고 있었습니 다.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냥 앉았습니다. 예정시간 보다 30분 정도 늦게 김용옥씨가 도착했고 방청객들은 PD의 지시대로 그를 박 수로 맞이했습니다. 의기양양하게 단상에 올라선 김용옥씨는 저를 보자마자 호통을 치며 "내가 앞자리에 앉 지 말라고 했는 데 왜 앞에 앉았느냐"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공개 녹화장에서 왜 당신이 좌석문제로 그러느냐"고 항변했습니다. 그러자 김용옥씨는 "녹화장에서 좌석배정은 내 권한"이라며 "당신 같은 사람은 앞으로 녹 화현장에 절대로 나오지 말라"고 계속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저는 너무 분해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혈압마저 높아져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습 니다. 만인들이 지켜 보고 있는 가운데 반신불수의 늙은이가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너 무 처참하기만 했습니다. 분위기가 소란해지자 방송국 직원들이 달려와 저를 붙잡고 퇴장을 시켰습니다. 끌려 나올 때(그들은 저를 정중하게 모셨다고 주장할 터지만)의 제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 저는 방송 자체를 방해한 행동은 결코 한 적이 없습니다. 늙은이가 와 방청하는 게 싫다면 아예 연령제한을 하는 광고를 할 것이지 아무런 제한 없 이 받아 놓고 이게 무슨 짓이란 말입니까? 그는 끌려 나가는 제 등에다 대고 "노자강의 때 내가 저 사람한테 잘해줬다"는 말을 해 댔습니다. 휘호 한장 써준 것에 대한 자기 자랑이었겠지요. 전후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소란을 피운 장본인이라 끌려 나가는 것처럼 보일 까 바 더 참담했습니다. 이 때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와서 "왜 난동을 부린 사람을 경비원들이 와서 붙들어 내 지 않느냐"고 질책을 했습니다. 좌반신 불수에다 8순이 가까운 노인에게 난동을 피웠다니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냐"고 물으니 "여기 총책임을 맡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이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큰 모멸감을 느꼈지만 제 허약한 몸으론 더 이상 맞설 수 없음을 알고 그냥 끌려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KBS 직원중 한 사람이 차 한잔 대접하겠다며 저를 커피샵으로 데리고 같습니다. 그 분의 도움으로 집에 연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복도 한구석에 앉아 식구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제 심정이 어떠했는지 상상이 가십니 까. 그는 노자를 강의할 때 자기 어머니를 위대한 분이라고 칭송하곤 했습니다. 노자강의 종강 때는 그의 누이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타나자 단상에 자리를 깔고 방석을 높여 큰 절을 하면서 `효심''을 과시하더군요. 꼭 김용옥씨 한테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효도는 오직 본인의 어머니한테만 하는 것이고 다른 노인이나 남의 노부모에게는 눈을 부 릅뜨며 소리 지르고 호령하는 것은 올바른 행위라 생각하는지요. 그것이 소위 동양 고전의 1인자라고 자처하는 학자의 인간적 면모인지요. 김용옥씨는 강의 때 마다 그를 비판적으로 평하는 지식인층을 향해 원색적인 용어를 사 용, 욕을 퍼붓곤 했습니다. 그를 아끼려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고 자존심과 명예에 비수를 꽂 는 행위를 하면서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 동양철학을 했다는 사람이 할 짓 인지 요. 저는 지금 매우 참담한 심정으로 변호사를 선정, 김용옥씨를 상대로 민사 및 형사소송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반신불수에다 물리적인 힘도 없는 팔순에 가까운 노인을 학대한 사실 은 이 사회의 윤리적 기준을 위반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노자나 공자를 논하면서 그분들의 사상에 위배되는 행동거지를 수백명의 청중 앞에서 증 명해 보인 김용옥씨에게 한 늙은이가 당한 정신적, 육체적 치욕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PS: 김용옥씨는 제 아버지가 KBS 사장실과 시청자 상담실에 강력히 항의하자 사건 다음 날인 15일 밤에 부모님 집을 찾아와 제 어머니에게 대신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기는 했 습니다. 그러나 제 아버지는 본인이 공개적으로 명예훼손을 당한 만큼 그의 사과도 공개 적이여 한다는 생각에 사과를 거절했습니다. 참고로 사건현장이었던 `도올의 논어이야 기'' 책임 프로듀서는 박해선, 연출자는 오강선, 이태현, 홍경수 세 사람입니다. --------------------------- 김용옥씨는 평소에 인류의 보편적 진리를 주장해온 사람으로서 유창한 말로 현혹하였지 만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부모공경의 덕목조차 실천하지 못하는 어용 선생임이 이 사건으 로 판명되었다. 그 사람의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 사기이다. 김용 옥 선생은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이 말한 것이 진리임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 다. 이야기 2 알려지지 않은 도울 김용옥 비화 조회수: 1 a;el@yahoo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도울의 비화 김용옥 교수의 고려대 마지막 날은 이러했다. 김용옥 교수가 고려대 민주광장 앞 학생회관 계단 초입에 자필 붓글씨로 쓴 고려대를 떠 나겠다는 충격적인 유인물을 수북히 쌓아놓았다. 워낙 인기 절정인 교수인지라 학생과 교수 모두가 깜짝 놀라 교정이 술렁이기 시작하였 다. 그렇게도 고명한 교수님이 떠나시다니...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날 밤, 철없는 결정에 놀란 김용옥 교수 집안이 뒤집혔다. 김용옥의 형님인 고려대 이공대 교수 김용준 박사가 가족회의를 소집하여 김용옥을 크게 꾸짖고 사직을 철회하기로 결정지어 그 이틋날부터 김용준 교수가 방방 뛰며 문과대 학장 에게 전달된 사직서 반려 운동을 전개한다. 한편, 김용옥 교수는 차마 번복 의사 표명을 못하고 제자들이 어떻게 해 주겠지 생각하 며 제자들을 끌어모아 숙의를 거듭했으나 이미 업질러진 물이었다. 워낙 한번 결심하면 굽히지 않는 교수님인지라 학생들은 더 이상 결심 철회를 강요하지 않았고 도울은 그 것이 안타까웠다. 도울의 내심은 아차 하는 갈등으로 요동쳤고 나가는 발길을 막아서라도 결심을 되돌려 주 기를 바랬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의외로 시들해 졌다. 이유가 있었다. 도울과 한 솥에 밥 먹던 교수들이 제자들에게 원래 결심을 바꾸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했 기 때문이었다. 도울은 사직서를 내고서도 그의 사직을 슬퍼하는 학생들 곁에서 불안한 심정으로 제자들 이 엎지른 물을 주어담기를 바랬다. 그가 과연 사직할 결심이 서 있어서 그런 유인물을 발표했을까? 그 당시 교수들과 학생들 은 학생들이 엉엉 울며 그가 떠나는 앞길을 가로 막고 학생들이 그가 제출한 사표를 되돌 려 받아내어 갈기갈기 찢어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빠르게 멀어져갔다. 도울이 장문의 사의를 표명하는 글을 발표한 저의가 무엇이었을까? 도울 자신만이 안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당시는 고대 교수 20여 명이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정부 시국성명을 발표할 때였는 데 서명 교수들이 도울에게 수 차 서명을 간청했으나 도울은 아무 이유 없이 한마디로 거 절하였다. 그 것이 그의 주관이오 철학이었다. 서명 명단에 빠져있는 것을 본 그의 제자들이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하였고 그의 옹고집 자존심이 상처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는 사표라는 돌발적인 표현으로 어려운 상황을 빠져나가려 했던 것 같다. 그 다음 얘기가 더욱 중요하다. 도울과 한 솥에서 밥을 먹은 철학과 교수들은 도울의 선배 교수들이었는데 단 한 사람도 도울의 사직을 슬퍼하지 않았다. 가장 기뻐한 교수가 김충열 교수였다. 인품과 덕망이 도울을 뺨치던 김충열 교수는 도울을 직접 가르친 스승이다. 도울은 학생 때 김 교수 연구실 조교로 있으면서 김충열 교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배웠고 김 교수의 도움으로 고려대 교수가 될 수 있었다. 도울은 김충열의 분신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스승을 애숭이 김용옥은 한 없이 씹어댔다. 심지어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기 스승의 철학이 형편없다고 쏘아댔다. 도울한테 혼나지 않은 스승이 없을 정도로 그의 아집을 말릴 장사가 없었다. 그는 철저한 외톨배기였고 패기와 거만함으로 가득찬 지식인이었고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 다. 그 옹고집과 패기가 그를 현재의 도울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교수는 이래야 한다는 정답을 보여 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선배 교수들은 고개를 흔들겠지만.. 도울만큼 성공한 학자도 드물 것이다. 베스트셀라 저서로 벌어들인 돈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는 학식도 차지했고 부도 차지했다. 대중을 상대로... 값싼 대중 언론에 영합하는 유능한 요리사가 되어 몸으로 가누기 어려운 명예와 영화에 파묻혀 KBS 스튜디오에서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상이 도울에 관한 거짓 없는 회고담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필자의 앞을 가로 막는다. 도울은 그의 저서에서, 그의 대중 강의에서 숨은 비화를 철저히 속여왔다. 그의 사직서가 고려대 교무처장의 캐비넷에서 제발로 걸어나와 자기 손에 주어져 찢어버 리고 싶은 절박한 심정에 고민했던 역사의 한 토막을 그는 끝내 숨겼다. 그리고 그가 대중적 학문으로 축적한 재산을 요긴하게 쓰고 있다는 서민다운 말 한마디 를 천진난만한 청중들에게 단 한번도 들려주지 않았다. 그의 공자 철학과 노자 철학은 심금을 울리기에 족하다. 그러나 그의 철학적 배경은 너무나 사대적이다. 우리 것과 너무나 거리가 먼 사대주의다. 그의 언어도 사대적이며 그의 정신도 사대주의다. 그래서 방청석 앞에 앉은 우리의 노인을 업신여길 수밖에 없었다. 학자는 왜 떠드는가? 왜 존재하는가? 대중의 심금을 울려주기 위해서다. 현재에 처한 심금을 울려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도울의 강의는 과거밖에 없다. 현재에 처한 민중의 심금을 울려주지 못한다. 그는 상업적 비판의 선을 결코 넘어가지 않는 명확한 계산하에 강의를 한다. 그 강의는 곧바로 그의 베스트셀라 서적과 직결되어 엄청난 부를 안겨 준다. 대중적 영합과 부의 축적 -- 그 것 이외에 도울이 현재를 위해 한 것이 무엇인가? 그의 노자 강의는 현재에 부디쳐 전파를 타고 날라가 버린다. 어둡고 참혹한 현재와 과거를 괴뚫는 철학이 아니기때문이다. 그는 참혹한 시절에 단 한번도 서명한 적이 없고 다시 참혹한 시절을 맞아 단 한줄도 서 명하지 않고 있다. 공허와 실망감이 넘실거리는 KBS 의 화려한 화면을 더욱 화려하게 치장해 주는 대중 이 론가로 그의 학자적 생명의 마지막을 향하여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이다. v v ..@"@.. 나비가 되고픈 푸른 애벌레의 꿈이여 ((~)) ( ) 하늘에 닿고픈 미물의 욕심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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