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V ] in KIDS 글 쓴 이(By): ecrit (with u) 날 짜 (Date): 2000년 5월 18일 목요일 오전 09시 54분 14초 제 목(Title): 실종. 실종이란 현 시간과 공간에 엄연히 존재하던 혹은 당위적으로 존재해야할 사람의 부재이다.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부재를 실종이라 할 수있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 카이스트의 지난 주 제목인 실종은 뭔가 물리적 사건이 가져다 주는 '없어짐'의 해답을 오히려 '심리적'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데서 약간은 제목을 잘 못 선정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율리시즈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깨닫기 까지 험한 모험을 하고 돌아오는 기간동안 텔레마코스는 자기의 아버지가 실종 되었다고 생각했을까? 양들을 둘러싼 모험에서 정계의거물들이 사라지는 상황은 현실적으로 약자의 실종일까? 드라마 카이스트에선 이러한 상황에 대해 민재의 선택적 실종을 얘기한다. 주변의 인물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현실에서 사라져버린 것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건 현실이 되겠지 라는 경진의 말처럼 모두가 사라져 가는 시간 속에 민재가 겪는 실종은 결국 자신의 부재인 것이다. 민재에게 사람들이 사라지는 시점으로 설정되는 '생일파티'란 무언가 누군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 그게 동물의 번식과 달리 '삶으로 나왔다'란 '출생' 을 기념하기 위해 몇몇이 모이는 자리에서 최초로 언급되는 실종은 우리가 선택한 삶에 대해 부재를 선언한 것이라기 보단, 선택당한 삶에 대해 현실적 불만에 기인한 선택적 제거가 아닌가. 누구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건 우리의 의지가 아니지 않은가 라고.. 민재의 상황은 자신의 완벽주의적 성격이 소화해내야할 여러가지 벅찬 일들로 가득하고, 그 속에서 천재가 아닌 노력하는 인간으로서의 민재는 현실을 부인하고 싶었다는 것.. 거기서 심리적 모험은 시작한다. 첫째로 자신의 '출생'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다. 왜 원하지 않는 삶의 무게를 내게 주고는 아무런 해답도 없이 현실속에 내던져진 것인가.. 하는 심리적 반항 상태. 여기서 생일파티란 무의미한 것이고 거기 주인공으로 존재한 인물역시 사라져 마땅한 대상인 것.. 피리와 '나비야, 나비야 어서 날아 오너라' 오페라 마적에서 피리는 불행한 운명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도구로 쓰인다. '도화원기'와 '유토피아'에서 말하는 이상향은 하나같이 유유자적하게 '악기'를 연주 하면서 강가를 노니는 인간이 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는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레느라는 과자를 먹으면서 과거의 기억을 현재에 복구할 수 있다는 것에서 보듯, 인간의 기억을 복구하고 회복시키는 데는 '유희로의 도피'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실은 적분되는 미래가 되지만, 미분되면 과거가 되듯, 현실에서의 유희란 현실을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민재는 선뜻 그 피리를 들기 주저한다. 다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비야..'노래만이 피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여기서 '나비'란 장자의 나비가 연상될 수 있다. 도덕경에서 학의 다리가 길다 하여 자르지 말라, 란 말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얘기하는 장자의 생각은 나비 속에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주저하는 민재에게 얘기하는 것이다. '꿈이든 현실이든, 혹은 나비든 인간이든.. 너를 찾아라' 라고.. 실종된 것이 주변 인물이란 사실에 집착하는 민재에게 이 나비란 코드는 결국 현실을 포괄적이고 종합적으로 보지 못하고 상황에 집착하는 인간에게 잃어버린 자신을 찾게 하는 모티브가 된다. 위대한 게츠비에서 게츠비가 선택한 것은 미래이다. '시간은 미래로 빨리 달아나지만 두려워 마라, 나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더 길게 팔을 뻗을 것이다' 미래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진보주의의 망상으로 인간을 끝없이 몰아쳐 왔고 그로 인해 결국은 자기의 존재 상실이란 극한 상황에 맞부딪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자아를 찾는 코드는 민재가 연구하는 '서양'의 학문이 아니라 '동양'의 사상이란 점이 더욱 흥미롭다. 그에게 상실을 가져온 것은 선택적 상황에 집착하려는 진보적 의지였다면, 결국 자기를 찾게 되는 '모험'을 시도하는 계기는 동양적인 유희인 '피리불기'와 '나비와 친해지기 인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i and clyde-란 영화에서 미국은 '내일은 있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결국 '내일'을 담보로 무슨 일이건 하고야 마는 '파괴'적 상황으로 인간 본성을 채찍질하고 있었을 뿐인 것이다. 반면, 러브레터에서 내일이란 지나간 '첫사랑'의 안부를 묻는 지극히 회상적인 과거의 연장이다. 이로써, 드라마 카이스트의 '실종'은 우리가 선택한 미래는 너무 익숙해서 '결별'해 버린 과거의 코드로 찾아야 할 존재확인이 우선된 상황을 실종을 통해 보여준게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