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V ] in KIDS 글 쓴 이(By): pareut (파릇&꽃) 날 짜 (Date): 1998년 9월 23일 수요일 오후 04시 32분 38초 제 목(Title): Re: 어제 PD수첩 보신분... 68년12월11일자 조선일보 특종...일부언론-단체 "조작" 공격 . {우리 집에 들이닥친 공비들 중 한 명이 [야, 너는 북한이 좋니? 남한이 좋니?]하고 물어요. 승복이는 서슴없이 [우린 북한은 싫어요. 공산당은 싫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그 공비가 [야!]하고 고함지르며 승복이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올렸습니다. 그 때 다른 공비가 버둥거리는 승복이의 입 속에 칼을 쑤셔 박았어요. 그런데도 그게 조작이라니요?}(이승복군의 형 학관씨의 증언) 그 동안 일부 세력에 의해 오보 사례로 지적돼 온 [이승복군의 공산당이 싫어요] 기사는 정확한 보도였음이 확인됐다.(상보 월간조선 10월호) 사진설명 : '이승복군의 공산당이 싫어요' 기사가 정확한 보도였음을 증언한, 당시 현장의 유일한 생존 목격자이자 이군의 형인 학관씨. 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때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당시 진부면)에서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다 살해된 승복군 이야기는 사건 이틀 뒤인 68년 12월11일자 조선일보에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찢어]란 제하의 특종기사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 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이승복 기념관]도 건립됐다. 하지만 이 기사는 그 후 [조작설]에 시달렸고, 최근에도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가 [오도된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작된 기사]라고 공격했다. 이승복 군의 [용기 있는 죽음] 또한 그 정신이 훼손돼 왔다. 조작 주장의 근거로 ▲목격자와 기자가 만난 적이 없고 ▲기자가 현장에 가보지도 않았다는 점이 거론됐다. 또 학살현장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군의 형 학관(45·당시 15세)씨가 {승복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처참했던 사건 당시에 관한 형 학관씨와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조작설은 전혀 터무니없음이 확인됐다. 학관씨는 공비들이 승복군을 포함한 세 동생과 어머니를 학살한 과정을 소상히 밝혔다. {공비가 승복이를 칼로 난자하자 내가 일어나 공비를 밀쳤지요. 그러자 내게 칼부림을 시작했고, 나는 손으로 막느라 칼날이 손등에 여러번 찔렸습니다. 피가 온 방에 뿌려지고, 동시에 옆방에서 어머니가 [사람 살려]하고 외쳤습니다. 이때 잠자던 동생들이 깨어나자 공비가 [이건 또 무어이야] 하더니 두 동생을 잡아 거꾸로 들어올려 벽에다 패대기쳤습니다.} 학관씨는 그때 공비에 의해 대검으로 가슴을 관통당하는 등 36군데나 자상을 입고도 살아남아 현재 강릉에 살고 있다. 당시 의식을 잃었다가 마을로 간신히 내려 온 학관씨를 처음 돌본 최순옥(66·현 강릉 거주)씨도 {학관이가 그때 다 죽어 가면서도 [승복이가 공산당이 싫다고 하다가 죽었다]고 말한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며 이씨 증언을 뒷받침했다. 최씨는 또 {사건 다음 날 새벽 학관이를 병원에 보낸 직후 특전부대 군인들과 함께 현장에 올라가 시신들을 수습했다}며 {그때 승복이 입이 찢어진 것을 보고 머리를 헝겊으로 묶어 줬다}고 말했다. 당시 기사를 쓴 조선일보 사회부 강인원(58·현재 D통신 감사) 기자도 그 동안 잘못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현장에 도착, 취재해 기사를 썼다고 증언했다. 강씨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한 아이는 입이 찢어져 죽었다]고 말해 그 이유를 물으니 [우린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입에 칼을 맞고 죽었다고 했다. 그 말을 받아 송고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사진부 노형옥(캐나다 이민) 기자와 함께 취재했는데 당시 노 기자가 찍어 조선일보에 실린 현장사진에 강 기자 모습도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월간조선이동욱기자 : don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