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tudyingabroad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4월11일(화) 02시51분31초 KST 제 목(Title): bullpop님 제 생각에는... 이 보드의 민감한 반응에 너무 놀라지 않으셨기 바랍니다. 비록 제한된 정보에 근거한 판단일망정 bullpop님의 문제의식 그 자체는 건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결론으로 너무 빨리 치달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국의 대학 학부 교육 수준은 미국에 비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우선 학부에서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을 가르치는 건 아니니까요. 한국의 대학들이 그 교육의 질과 수준에 있어 다양하듯이 미국의 학부 교육 역시 마찬가지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나태한 학생들의 모습에 실망하신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기만의 현상일까요? 저는 비교적 널널(?)하다고 알려진 서울대 학부를 다녔습니다만 제 대학 생활은 늘 시간에 쫓기고 잠에 쫓기며 제 능력의 한계를 수시로 절감하는 밤들의 연속 이었습니다. 제 곁에서 같은 길을 가는 친구들이 태만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자신의 태만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bullpop님 정도의 기개와 문제 의식을 지닌 분에게도 역시 이 점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봅니다. 솔직이 말씀드려서 대학원 교육 수준은 아직도 미국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느낍니다. 다만 외국에서 수학한 사람을 그 정당한 자격 이상으로 선호하는 (뒤집어 말하면 국내에서 딴 학위를 우습게 보는) 풍토가 더 많은 학생들을 유학의 길로 내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요. 대학원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얼마나 자기 발전을 가져오느냐 하는 것 역시 자신이 하기 나름입니다. 저는 항공 우주공학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므로 뭐라고 할 계제가 아닙니다만 저의 조잡한 지식으로도 그 분야의 최전선에 서고 싶으시면 유학을 다녀오시는 것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학부 유학... 그것은 저로선 권할 일도, 말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지막으로, 그러나 무엇보다도 bullpop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미국은 선진국이며 경제적 군사적 요소 이상으로 학문적으로 거대한 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전에 미국에 계시는 어느 분께서 제게 애기해주셨듯이 '한국에 없는 것은 미국에도 없는' 것입니다. 있다면 정도의 차이겠죠. 더우기 미국의 앞서가는 학문이 아닌 그 사회 자체를 동경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의식의 출발점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지만 동시에 걱정스러운 면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군요. bullpop님은 그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 사회를 등질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바람직스럽지 못한 풍토는 우리 스스로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고 하나하나 바로잡아 나가야 할 그 무엇입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야 그 사회를 떠나 동경하던 제 2의 사회로 옮겨 안주하면 그만이겠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재능과 이상을 가진 젊은 학생들이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도 될 만한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사회에 대한 책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정치가라든가 법조인,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모든 분야의 '지식인'이 같이 고민하고 노력할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내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여기서 석사를 마쳤지요. 저는 미국이란 나라를 싫어합니다. 그 능률과 합리성에 찬탄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우리 민족사에 미국이 뿌려놓은 숱한 얼룩진 모습과 오늘날의 패권주의, 유럽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미국의 문화가 싫습니다. 이런 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굳이 미국에 가는 것은 '돌아오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미국을 배우고 한국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작년엔가 스스로 다짐했던 말을 bullpop님께도 드리고 싶군요. 우리는 '큰 사람'이 됩시다. 좀더 큰 눈으로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커다란 사람이 되어 다시 만납시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