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tudyingabroad ] in KIDS 글 쓴 이(By): nameless (무명용사) 날 짜 (Date): 1995년07월12일(수) 10시16분26초 KDT 제 목(Title): VISA-그 아비규환의 장소.. 제가 visa를 받으러 처음 대사관앞에 간것이 월요일 새벽 (7월 10일) 5시였습니다. kids를 통해 익히 그 명성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수백명의 인파를 보니 정말 한숨부터 나오게 되더군요.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할지도 몰라 두리번거리는 도중 한사람이 '처음 오신분 모이세요' 라는 외침에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책임자로 보이는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와 같은 유학생이었음.) 사람이 장부에 이름을 적고 있었습니다. 저는 169조. 한조에 10명씩이니까 제 앞으로 800여명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1조부터 100조까지는 100여명 밖에 안된다더군요.) 그 사람 얘기인즉, 하루에 보통 100여명밖에 인터뷰 딱지를 주지 않는다. 사람은 하루에 수백명이 몰려온다. 대사관측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만� 아무런 조취도 취하지 않으면 아비규환, 패싸움이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들이 직접 나섰다. 그들에게 ugly Korean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끼리 질서를 보여주어야 한다.... 제가 그곳에서 감동 받은 것은 그런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그들의 말에 아무런 불평없이 질서를 지켜주는 우리들의 동포애. 그날 오후 1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하여 24시간동안 꼬박 그곳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물론 새벽 1시부터 6시까지는 불침번 시간이 아니었습니다만 그 시간에 집에 갈수는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근방에서 밤을 샜습니다. 그 동안의 고생이나 (비가 좀 많이 왔습니까?) 일화는 대부분의 kids 여러분들도 경험하셨을 테니 생략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잠깐 얘기해드리면. 지난주까지는 하루에 100장밖에 없던 인터뷰 티켓이 그동안의 우리들이 보여준 질서의식, 방송국 신문사등을 통한 여론의 형성 (저희가 있을때도 SBS에서 촬영 하고 갔답니다.)등이 그들을 감동시켰는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월요일에는 200장, 그리고 제가 있었던 화요일에는 400여장의 티켓이 나왔읍니다. 아마 화요일에 오신분들은 당일에 받은 분도 계실껍니다. 화요일 오전에 발부받으신 분들은 7월 25일경에 인터뷰 날짜가 잡혔고 저처럼 오후에 발부받은 사람들은 내일 (7월 13일) 인터뷰입니다. 아마 급하게 보충분을 설정하다보니 운좋게도 앞당겨 진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visa를 발부받지 않으신 분들은 너무 걱정마시고 대사관에 가셔서 거기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지시에 침착히 따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인터뷰를 받으실 수 있을것 같군요. 이번 기회를 통해 저들의 우리국민들에 대한 인식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만� 미국에 있는 한국대사관 앞에서 그들의 국민이 번개와 천둥속에서 웅크리고 밤을 새고 있다면 그들의 정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이런 서러움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저들 나라에서 그들과의 경쟁에서 통쾌하게 승리해야 겠다는 결심을 몇번이고 되내이던 하루였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들 화이팅! 난 더이상 용사가 아니야- 무명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