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iEncE ] in KIDS 글 쓴 이(By): soliton (김_찬주) 날 짜 (Date): 2004년 10월 7일 목요일 오전 01시 46분 32초 제 목(Title): Re: 올해 노벨물리학상 비화 이번 노벨상은 오래 전부터 이쪽 전공하는 사람들한테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거리였습니다. 온갖 뜬소문과 꼬인 이야기들이 난무해서 과연 노벨상 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문제였죠. 그래서 업적의 중요성에 비추어 매우 늦게 상이 돌아갔습니다. 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 1999년에 토프트 ('t Hooft)가 벨트만과 함께 노벨상을 받은 것입니다. 토프트가 노벨상을 받음으로 해서 사람들은 조만간 asymptotic freedom도 노벨상이 수여될 거라고 예상을 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농담삼아서 얘기하기를, 토프트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토프트가 아니라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폴리처, 그로스, 윌첵 세 사람이었다고 하죠. (노벨상은 세 명까지만 줄 수 있습니다.) 아무튼 asymptotic freedom 계산을 가장 먼저 한 사람은 토프트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러시아쪽 얘기는 제가 잘 모르겠네요.) 72년에 계산을 했는데 이것을 논문으로 출판하지는 않고 유럽의 어떤 학회에서 발표했답니다. 그런데 그게 그 주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 아니라 다른 주제에 대해 발표한 후 질문 시간에 시만직이라는 사람이 그 문제에 대해 질문했을 때 칠판에 답을 쓴 거라고 합니다. 그러니 공식적으로는 발표한 것이 없는 셈이죠. 그 다음의 공식적인 얘기는 토프트와 독립적으로 73년에 위의 폴리처, 그로스-윌첵 (윌첵은 그로스의 학생이었음)이 계산 결과를 논문으로 출판했다는 건데 여기에 떠도는 얘기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여기서부터는 소문에 따라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합니다) 그 다음 시만직이 미국으로 돌아가서 폴리처의 지도교수인 콜만에게 그 얘기를 했고, 그 계산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콜만은 폴리처에게 즉시 그 계산을 시켰답니다. 또 이 소문을 들은 그로스와 윌첵도 계산을 했습니다. 이 계산은 부호가 매우 중요하고 부호 이외에 다른 세세한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데 마이너스가 나와야 맞습니다. 윌첵은 처음에 잘못 계산해서 플러스가 나와 실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폴리처는 맞계 계산을 했지요. 그런데, 그때 콜만이 그로스에게 넌지시 부호가 어떻게 나왔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로스는 순간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대답을 거꾸로 한 다음 윌첵에게 계산을 다시 시켰다는군요. 이들은 Physical Review Letters에 논문을 보냈는데 그로스-윌첵이 조금 빨라서 먼저 실리고 바로 그 뒤에 폴리처의 논문이 실립니다. 토프트가 논문을 쓰지 않은 것은 그때는 계산만 하고 중요성은 미처 깨닫지 못해서가 아닌가 하고 사람들이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소문을 받아들이면 사실 이번의 세 사람에게만 노벨상을 주는 것은 좀 찜찜합니다. 최소한 토프트에게도 줘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러자니 네 사람이 되어버려 노벨상위원회에서 그동안 미적미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토프트는 이것 이외에도 전자기-약력 이론에 지대한 공헌을 했기 때문에 미리 노벨상을 줘버리는 것으로 문제를 그런대로 무리없이 해결한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