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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 in KIDS
글 쓴 이(By): Gamja (감자)
날 짜 (Date): 2001년 10월 23일 화요일 오전 12시 56분 20초
제 목(Title): 나의 장비병....


위 글을 퍼오면서 나의 장비병에 대해 생각해 봤다. 장비탓을 할만한 실력이 
아님은 물론 알지만 '광각이 있다면...' 또는 '망원이 있다면...'하며 입맛을 
다시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돗수 높은 안경을 끼는 탓에 요즘 가장 부러운 
기능은 자동촛점이고.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카메라는 모두 세대다. 펜탁스 P30. 1/1000초에 불과한 
최대속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프로그램 모드라는 게 있는 걸 빼면 그냥 평범한 
SLR일 뿐이다. 내가 처음 만지게 된 카메라로, 대학때 써클에서 (사진 써클은 
아님) 카메라를 가져오라고 했던 게 인연이 되서 나와 10년 이상 정을 
나눈 사이지만 요즘은 서랍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그동안 
험하게 다뤄서 가끔씩 셔터가 터지지를 않고, 렌즈도 (표준렌즈) 중심부에 
곰팡이가 꼈는지 사진 가운데 부분의 색깔이 부옇게 뜨는게 아주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손에 넣은 카메라는 니콘의 FM2. 누구나 알만한 카메라이고, 초보부터 
전문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종이다. F3와 FM2를 모두 갖고 있고, 
몇개의 줌렌즈와, 그 줌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몇개의 수동 단렌즈를 갖고 있는 
대학 선배에게 거의 뺐다시피 빌린 카메라이다. 빌려온 지 2년이 다 되어 
가도록 돌려주지 않고 있으니 나는 반 도둑놈이다. 그런데 요즘도 호시탐탐 그 
형에게 유용한 소품들을 '빌려'오려 노리고 있다. :)

세번째는 여기서 몇번 얘기한 Rollei 35s. 사진 찍는 재미를 조금 알게 되고 
부터 일상 생활에서 지나치던 아름다운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SLR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기엔 너무 거추장스런 놈이기 때문에 주머니에 
들어가는 컴팩트 카메라를 원하게 됐고, 약간은 평범하지 않은 이녀석을 
선택하게 됐다. 처음 한달정도는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펑펑 
찍고 다녔지만 이녀석의 특성을 잘 모르고 찍었던 지라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었다. 요즘은 특성을 좀 이해하게 된 것 같지만,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는 않는다. :)

펜탁스의 화질에 대해서도 불평을 했지만 니콘으로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겨울에 지리산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지리산 능선 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설경을 찍으려는 참에 밧데리가 얼어서 셔터가 터지지 않았던 일. 사진을 
남기지 못한 덕에 그 장면은 더욱 아름답게 내 기억에 남아있게 됐지만,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밧데리에 의존하는 카메라를 '덜 떨어진' 놈으로 보게 됐다.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 비춰 볼 때 FM2는 유일한 해답이었지만, 그 마저도 
마련하기가 힘들어서 선배에게 강도같은 짓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 그 형과는 
아직도 무척 친하다 :)

FM2는 나에게 사진의 재미를 가르쳐 준 고마운 카메라다. (그래봤자 실력은 
뻔하지만...) 그런데 카메라를 다루는 데 좀 익숙해지고 나니까 이녀석이 점점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파인더를 들여다 보면서 심도냐 속도냐에만 
집중을 하고 싶은 경우에도 일일이 둘 다를 직접 조절해 줘야 한다는 것. 물론 
파인더 안에서 확인이 가능하긴 하지만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사람을 귀찮게 한다. 조리개 우선 모드가 있는 F3하고 바꾸자고 졸라볼까? 바꿔 
주지도 않겠지만 내가 아무리 깡패라도 그렇게까지는 못한다. 

그러던 참에 구미가 당기는 녀석이 나타났다. FM3A. FM2와 F3를 합쳐놓은 것 
같은 녀석이다. 요즘 내 목표는 돈 모아서 저녀석 하나 사는 것. 국내에는 지난 
7월에 출시된 터라 중고가 있을 리도 없지만, 새걸로 사서 평생 나의 손때만을 
묻혀보고 싶은 카메라다. 기능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도 있지만 나의 
요구조건에는 더할 나위 없이 딱 들어맞기 때문에 적어도 내게는 아주 
매력적이다. 게다가 칼 짜이스에서 이놈을 위해서 45mm F2.8 렌즈를 
디자인했다는 것도 나를 유혹한다. 가격은 바디 77만원(75였나?), 렌즈 45만원.

기계식만을 고집하다 보니 자동촛점 기능이 아쉬운 경우가 많다. 게다가 
평균측광, 또는 중앙부 중점측광만 있다보니 원하는 한 점에 칼같이 노출을 
맞춘 사진을 찍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물론 많은 경험이 쌓인 '뇌출계'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불행하게도 내 머릿속의 '뇌출계'는 내 욕심을 
채워주지 못한다. 기왕 AF SLR을 살 거라면 최고급으로 하나 '쏘자.' F100. 
물론 F5가 더 상위기종이긴 하지만 F5에서 잘 쓰이지 않는 기능만을 생략한
거품없는 카메라이고, 결정적으로 가볍다. (F5-1250g, F100-785g) 손에 들고 
다니다 보면 2-300 그램 정도의 차이도 꽤 크게 느껴진다. 이녀석의 가격은 
150만원대. 

이걸로 끝이냐. 물론 아니다. 바디가 있으면 렌즈도 있어야지. 기왕 F100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 AF렌즈군으로 장만해야 하겠다. 기본으로 1-20만원씩은 
추가되겠군. 24mm F2.8D 42만원. 50mm F1.8S 32만원. 80-200mm F2.8ED 115만원!
접사를 위해 105mm F2.8D Macro도 하나? 69만원. 

플래시나 삼각대, 기타 악세사리들은 더이상 말하지 말자. 속 아프다. 

너무 꿈이 크다. 다시 지구로 돌아오자.. 위에 말한 것 중에서 현재 내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은 FM3A 바디뿐이다. 자동촛점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고, 정밀한 
노출은 필름 좀 써서 브라케팅 하면 된다. 현재 28, 35, 50mm 수동 단렌즈에 2X 
컨버터가 있으니 28mm 광각에서 100mm 준망원까지 어느정도는 커버할 수 있다. 
정 아쉬우면 80-200mm 줌은 친한 사람들에게서 쉽게 빌릴 수 있다. 접사가 좀 
아쉽긴 하지만 축축한 땅바닥 가까이 몸을 숙이는게 귀찮기도 하다. 정 
아쉬우면 55mm MF Macro를 중고로 하나 구하면 되고. 그런데 아무리 욕심을 
줄여봐도 돈없는 대학원생에게 77만원은 여전히 부담되는 가격이다. 

필름값에 현상료, 인화료가 꽤 쏠쏠하게 들어간다. 더군다나 요즘은 슬라이드 
필름, 흑백필름에 손을 뻗치고 있는지라 필름값이 전보다 배 이상 들어간다. 
그렇다고 찍는 양을 줄여서 돈을 모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일단 푼돈 
모아서 목돈 만들 만큼 알뜰한 인간도 아닐 뿐더러, 사진 찍는 걸 즐기자고 
하는 일인데 사진 자체를 줄인다는 건 앞뒤가 바뀌는 일이 되는 거란 말이지!
음.. 슬라이드 필름은 굳이 인화하지 않고 루뻬로 보거나 영사기를 쓰면 
되는데... 이건 또 얼마냐.. 루뻬는 한 10만원 하려나.. 영사기는? 필름 
스캐너를 사? 도대체 끝이 어디야???

사진은 즐겁다. 지갑을 들여다 보는 건 괴롭다. 그래도 장비를 하나 하나 사 
모을 계획을 세우고 장비 리뷰를 보며 갖고 싶은 걸 골라보는 일은 즐겁다. 

지금 갖고 있는 장비를 어떻게 하면 최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펜탁스에 흑백필름을 넣어보기로 했다. 비록 색감은 좋지 않지만, 모든 색깔이 
빛의 농담으로만 기록되는 흑백이라면 한번 해 볼만 하지 않을까. 기다려라 
흑백의 세계여...

바디 두개를 넣고 다니려면 카메라 가방을 좀 더 큰걸로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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